2022. 11. 30(수) ~ 12. 06(화) / 6박 7일 

북규슈(후쿠오카, 나가사키, 쿠마모토, 모지코, 시모노세키 등)를

자유 여행으로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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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여행 3일차]

 하카타에서 나가사키 가기,

나가사키 여행[하시마(端島), 군함도(軍艦島), 구라바엔, 나베칸무리야마 공원, 오란다자카, 사이사키야(さいさき屋 築町店), 메가네바시(めがねばし), 안경교(眼鏡橋), 스와 신사, 일본 성인식, 나가사키 공원, 쓰키미 다옥(月見茶屋)],

하루요시야키토리(春吉焼鳥)

 

일출

 

동이 뜨지 않은 아침과 마주했다.

날 것 느낌이 물씬 풍기는 어둠은 우리를 미지의 어느 지점으로 인도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손을 마주 잡듯 어둠을 꽉 잡지 못했다.

다치면 안 되니까

문뜩 날카로운 새벽 공기가 내 손바닥에 상처를 남긴 것처럼 찌릿한 느낌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어떤 상처가 남아도 우리는 한 걸음씩 새벽 공기를 뚫고 걸어야 했다. 이 순간은 슬픔에서 기쁨으로 바뀔 때의 색감처럼 어둠에서 빛으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 같았다.

오늘은 나가사키를 가겠다는 결심만으로도 즐거운 날이다.

 

에키벤 판매점
3 번 탑승구
RELAY KAMOME 5 특급열차
소고기 덮밥
무알콜 아사히맥주

 

기차여행에 마음이 들떴나 보다.

예전 북해도(홋카이도) 하코다테역에서 산 장어 덮밥이 생각났다. 도시락(에키벤) 판매점은 아직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무엇을 먹을지 고민에 빠졌다. 정확히 오전 7시에 문이 열렸는데 내가 원하던 장어 덮밥은 없었다. 잠시 고민 끝에 소고기덮밥을 골랐고 전자레인지로 데운 후 계산을 마쳤다.

오전 716, 기차를 탔다.

RELAY KAMOME 5는 하카타에서 다케오 온센(武雄溫泉)까지 가는 특급열차다. 3번 탑승구에서 3호차에 탑승한 후 10-C 좌석에 앉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탑승객이 생각보다 적었다. 기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소고기덮밥 냄새가 열차 안에 가득 퍼지기 시작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냄새 때문이기도 했지만 배고파서 게걸든 사람처럼 순식간에 도시락을 비웠다. 어젯밤에 잘못 산 무알코올 아사히맥주로 기름진 입을 헹구니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기차 밖 풍경

KAMOME 5  신칸센
다케오 온센역
JR 북규슈 레일패스 3일권과 기차 좌석표
나가사키역

 

금강산도 식후경

배가 부르니 기차 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철길을 달려가는 기차의 속도만큼 추수를 마친 농촌 들녘을 끝없이 지나갔다. 서대전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목포로 갈 때 보는 풍경과 아주 비슷했다. 다만 논에 밭고랑을 만들어 이모작을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여기가 일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냥 한국의 농촌 풍경이라 생각할 것이다.

기차를 갈아탔다.

다케오 온센에 도착하니 맞은편에 KAMOME 5 신칸센이 기다리고 있었다. 1호 차고 좌석은 4-C였다. 진회색 특급열차에서 흰색 신칸센으로 갈아타고 나가사키로 향했다. 특급열차보다 좌석이 넓고 편안했으며 무료인터넷에 충전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맘에 든 것은 신칸센은 정말 빨랐다. 31분 후인 오전 9, 우리는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나가사키 거리
나가사키 항구모습
데지마 워프

 

나가사키역을 빠져나왔다.

바다와 인접해서 그런지 날은 맑은 데 바람이 차가웠다. 기차역에서 나온 후 공사 중인 건물을 우측으로 돌아 인도를 따라 걸었다. 낯선 곳이지만 익숙한 듯 행동했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을 때 조급하지 않게 왕복 6차선 도로를 건넜다.

딱 이 정도 속도로 걸으면 적당할 것 같았다.

메가미다리(女神大橋) 너머 바다로 길게 뻗은 해안지형, 나가사키의 대표 야경명소 이나사야마 전망대, 평화로운 바다 풍경과 비교하면 적막감이 감도는 여객선 터미널과 데지마 워프를 지나 수변공원까지 천천히 걸으면서 나가사키를 눈에 담기 시작했다.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
하시마 ( 端島 )  일명 군함도 ( 軍艦島 ) 라 불리는 안내 사무실

 

일본 역사의 어두운 면과 마주했다.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軍艦島)라 불리는 안내 사무실과 인접 거리에 군함도 디지털 박물관이 있다. 바다를 마주하고 전범 기업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도 있다. 하루에 두 번 출항하는 배를 타고 많은 일본인이 군함도를 방문하고 있었다. 일본은 여전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징용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징용은 모든 일본 국민에게 적용됐다.’라고 주장하면서 조선인을 일본 국민으로 취급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아무런 반성 없이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글로버 가든 (Glover Garden,  구라바엔 )
오히려 산 중턱에서 바라본 풍경
나베칸무리야마 공원 전망대

 

경사진 골목을 걸었다.

글로버 가든(Glover Garden, 구라바엔)을 외곽으로 끼고 돌면서 나베칸무리야마 공원으로 향했다. 인공적인 요소와 색채가 너무 강한 구라바엔에 620엔의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들어가 보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산 중턱에서 바라본 풍경이 자연스럽고 고상하며 우아한 품위가 느껴졌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색깔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푸른 하늘, 에메랄드빛 바다, 녹음이 우거진 산 등 일상생활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말 대부분에는 색깔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색의 대비가 있어야 아름다움이 극에 달할 수 있다. 나는 기쁜 표정으로 나베칸무리야마 공원 전망대에서 드넓게 펼쳐진 나가사키 항구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곳엔 산, 바다, 도시, 하늘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늘어지게 잠들어 있는 고양이
구라바엔 스카이 로드에서 경사진 엘리베이터
아이와 엄마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베칸무리야마 공원에서 내려와 구라바엔 입구에서 수직 엘리베이터를, 구라바엔 스카이 로드에서 경사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평지로 내려왔다. 오토바이 위에서 늘어지게 잠들어 있는 고양이처럼 몸은 편했지만,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공자묘를 지나 오란다자카로 향했다.

오란다자카는 네덜란드식 주택이 있는 유서 깊은 거리를 말한다. 힘겹게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가면서 무어라 종알종알하는 어린아이와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면서 응원해주는 엄마의 모습이 한없이 정겨웠다. 호기심이 왕성해서 이리저리 움직이다 무언가에 걸려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아도 벌떡 일어나 박수 다섯 번을 치며 씩 웃는 아이의 모습은 더없이 귀여웠다.

아이의 시선으로, 때론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정말 즐거울 텐데.’

 

사이사키야 ( さいさき 屋 築町店 )
오늘의 추천메뉴
생면
온(溫) 소바, 계란덮밥, 단무지 먹방

 

배가 고팠다.

차이나타운과 하마노 아케이드를 지나쳐 쓰키마치에 있는 사이사키야(さいさき屋 築町店) 소바전문점을 찾았다. 간판을 아무리 뚫어지게 쳐다봐도 어떤 음식을 파는 식당인지 몰랐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메뉴판을 보게 되었고 출입문 왼쪽에 놓인 오늘의 추천메뉴를 발견했다.

そば(소바) 또는 うどん(우동)’

밖에서 볼 때는 조용했던 내부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시끌벅적했다. 출입문 왼쪽 창문으로 생면을 뽑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오늘의 추천메뉴를 사진으로 보여주며 주문했다. 종업원이 뭐라고 연신 말을 하는데 우리가 못 알아들었지만 '온면(溫麪)'이란 단어가 들리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 소바, 계란덮밥, 단무지

계란덮밥은 허기진 배를 채울 만큼 양도 많았고 식욕을 한층 더 돋웠다. 바람이 불어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딱 어울리는 온() 소바의 육수는 전혀 짜지 않았으며 무언가가 숙성된 깊은 맛이 느껴졌다.

'소바가 육수에서 살아있다.'

 

하트 모양의 돌
메가네바시 ( めがねばし ) 는 일명 안경교 ( 眼鏡橋 )

 

다시 혈기가 왕성해졌다.

나가사키 최대의 번화가 하마노 아케이드를 걸었다. 오전보다 많아진 사람들은 활기찬 걸음을 걷는다. 이곳에서는 상점 구경보다 사람 구경이 더 재미있다. 나카시마 강이 흐르는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을 중심으로 좌우에 평범한 일본식 가옥이나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10여 개가 넘는 오래된 돌다리가 있었다.

그중 메가네바시는 돌로 만든 아치형 다리를 통칭하는 말이다. 메가네바시(めがねばし)는 일명 안경교(眼鏡橋)라 불린다. 다리 자체와 수면에 비친 모습이 합쳐져 안경처럼 보이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메가네바시 상류 방향 산책로에서 하트 모양의 돌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나카시마 강을 유유히 헤엄치고 다니는 잉어처럼 상류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꼬마들의 가위, 바위, 보
스와 신사 대문
녹나무
일본 성인식

 

꼬마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뭐가 그리 유쾌한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꼬마들은 가위, 바위, 보를 하며 계단을 내려오고 엄마들이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그 뒤를 쫓아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아기자기한 꼬마들의 신나는 놀이를 도로에 서서 한참을 바라다보았다. 나도 잠시지만 동심의 세계로 돌아갔다.

꼬마들이 내려온 계단을 올랐다.

여러 개의 도리이(とりい)를 지나니 스와 신사 대문이 보였다. 비탈진 계단은 비탈진 마을이 많은 나가사키를 상징한다. 그 왼쪽으로 병 퇴치에 효과가 있다는 녹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대문을 지나는데 기모노를 예쁘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을 발견했다. 20세 성인이 된 날을 기념하려고 후리소데를 입고 스와 신사를 찾은 것이다. 후리소데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입는 기모노 중에는 가장 격식을 갖춘 것으로 의상 전체에 색감이 넘치는 무늬가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나가사키 공원내 수목

 

스와 신사 옆에는 나가사키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나가사키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며 잉어와 거북이가 헤엄치는 가장 오래된 분수를 재현해 놓았다. 나가사키 중심부에 위치하여 접근성도 좋고 주변이 녹음으로 둘러싸여 한적한 분위기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었다.

나무껍질을 보고 언뜻 떠올랐다.

배롱나무, 모과나무, 노각나무처럼 뱀 껍질 모양으로 색깔을 달리하는 나무껍질 모양. 그런데 이 나무 이름을 모르겠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수평선을 바라보면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번져나가듯 모호해진다. 이처럼 뭉개버린 듯 짓눌린 녹음이 숲과 나무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곳은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기에 나는 여전히 가을의 정중앙에 서 있었다.

 

쓰키미 다옥(月見茶屋)
보타모치 (ぼたもち)

 

쓰키미 다옥(月見茶屋)에 들어갔다.

우동 전문점이지만 덮밥류도 있고 보통은 우동에 보타모치(ぼたもち)를 함께 먹는다고 한다. 오늘 하루도 나가사키 이곳저곳을 많이 걸어 다녔다. 허기도 달래고 잠시 쉬어도 갈 겸 말차와 함께 보타모치만 맛보기로 했다.

보타모치(1인분 5) 580

보타모치는 찹쌀과 멥쌀을 섞어 쪄서 팥고물이나 콩가루를 묻힌 떡을 말한다. 인절미와 아주 비슷한 것이 아니라 똑같았다. 생각보다 보타모치의 크기가 커서 잠시 당황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낱개로 시켰을 텐데. 일본어를 못하는 우리가 잘못이지. 약간 달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꽤 좋은 맛이었다. 말차와의 궁합이 아주 좋았다.

 

나가사키역
JR 북규슈 레일패스 3일권과 기차 좌석표
하카타역
나카스 크리스마스 트리
나카 강

 

나가사키 여행은 끝이 났다.

오후 443분 출발하는 KAMOME 44 신칸센을 타고 다케온 온센에서 RELAY KAMOME 44 특급열차로 갈아탄 후 17분 연착한 오후 630분에 하카타역에 도착했다. 친구 K와 헤어져 각자의 저녁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카스와 텐진거리를 걸었다. 이미 어둠의 보자기가 세상을 뒤덮고 있었지만, 크리스마스 조명장식과 거리의 네온사인이 나카 강에 반사되어 두 배의 빛으로 힘을 합쳐 어둠에 저항하고 있었다.

 

하루요시야키토리 ( 春吉焼鳥 )
생맥주와 메뉴판
닭과 돼지 꼬치, 하이볼
고독한 뚜벅이

 

하루요시야키토리(春吉焼鳥)에 갔다.

딱 한자리 남은 문 앞 좌석에 앉았다. 내 귀에 들리는 건 일본어, 눈앞의 메뉴도 일본어,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일본사람이었다. 여기서 당황하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호기 있게 한마디 했다.

나마비루

생맥주를 마시며 닭과 돼지 꼬치를 주문했다.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가리켰다. 그곳에 닭 계() 돼지 돈()이 있었다. 메뉴판에 아는 한자가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생맥주를 다 마시고 하이볼을 주문했다. 하이볼이 너무 싱거웠다. 위스키 소량에 얼음과 탄산수만 많이 넣은 것이다. 하이볼을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꼬치를 먹었다. 이곳에서의 고독한 기분만큼 어느새 밤이 깊어졌다.

호텔로 돌아가 진한 버번위스키 JIM BEAM이나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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