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석양이 질 무렵,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남쪽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한층 더 짙은 먹색이 되었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2시간이 지났을 때 공기에서 생선 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통영에 왔다.

월요일 오전 651, 첫배를 타고 두미도에 가야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 번째 방문이다. 통영여객터미널 인근에 숙소를 정했다. 밤늦은 시간이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불 켜진 식당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었다. 낼 아침 또한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원조설렁탕, 수육 - 통영맛집

 

월요일 새벽 5.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나는 일어났다. 간단히 세안하고 짐을 꾸려 숙소를 나왔다. 이른 새벽이지만 서호시장은 활기찼다. 불 켜진 식당에서 복국을 먹었다. 어두웠던 새벽은 어느새 사라지고 해가 떠올랐다. 새롭게 단장한 통영항여객터미널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바다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배를 타면 비로소 바다가 보이는데 출발한 항구는 보이지 않았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본 사람은 바다는 넓고 육지는 좁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육지가 좁아서 바다로 나아가면 바다는 더 넓어지고 거기서 또 작은 섬을 만나게 된다.

 

부일식당, 복국 - 통영 서호시장 맛집
통영 바다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두미도

 

두미도는 살아 숨 쉬는 섬이다.

바다는 다정하게 섬을 껴안아 주고 있었다. 섬은 봄비와 봄볕에 숲이 부풀고 땅에 생명의 기운이 돌았다. 나무는 꽃을 통해 대기의 수분을 흡수했고, 초록의 잎을 통해 봄볕을 간직했다. 하늘도 아기 돌보듯 섬을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미도 북구항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건물 앞 조형물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1월에 다녀가고 3개월도 안 지났다. 만남이란 언제나 반가운 것이다. 짐을 놓아두고 두미도 옛길을 걸었다.

 

두미도의 봄
두미도 바다펜션 - 북구항

 

두미도 옛길은 발칵 뒤집혔다.

봄날의 두미도 옛길은 깊은숨을 쉬었고 더욱 견고해졌다. 봄비가 내려 풀과 야생화가 뒤섞여 자랐고 흙이 부풀기 시작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길 위에 그림자도 흔들렸다. 나무가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벚꽃길에 들어섰다.

벚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려서 연분홍빛 벚꽃잎이 길 위에 떨어졌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에서 빛이 들어와 땅에 닿았다. 떨어진 벚꽃잎은 빛을 받아 반짝이며 뒤섞였다. 육지는 벚꽃이 만개했는데 두미도는 벌써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두미도 옛길
홀아비꽃대

 

둥글레
남산제비꽃
꽃깔제비꽃
고은마을 벚꽃길 - 두미도 옛길

 

나는 천황산을 다시 찾았다.

숲의 나무 색깔이 바뀌었다. 만개한 진달래꽃, 벚꽃이 봄볕을 받아 그 색깔이 숲으로 퍼져나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숲의 색깔이 파도쳤다. 섬을 찾는 사람들과 섬사람들은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두미도 옛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숲속은 더 짙은 녹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숲의 색깔은 나무 우듬지 위를 굽이쳐 파도를 일으키듯 바다로 흘러갔다. 산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졌다.

 

천황산 등산로 조망점
진달래

 

산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드넓은 바다가 보이는 순간 나는 돌출된 바위에 두 다리로 섰다. 두 다리가 바위에 닿았을 때 닿는 느낌으로 바위가 단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남구항 선착장 공사는 마무리단계에 들어섰고 어선이 흰 거품 자국을 남기며 바다를 스쳐 갔다. 욕지도가 보이는 바다는 아득하니 멀었다.

계절이 바뀌었다.

핏빛처럼 붉게 핀 진달래는 바람에 흔들거렸다. 산은 각양각색의 색깔로 물들었고 새 생명이 움트는 나무에선 아기 젖내 같은 냄새가 났다. 바닷바람이 땀으로 젖은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등산을 시작한 지 4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두미도 남구항
청석마을과 동뫼섬
천황산 숲속
천황봉

 

안 가본 길을 갔다.

나는 투구봉 등산로는 가본 적이 없었다. 천왕산 정상에서 암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마치 바다가 하늘처럼 보이는 북구항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큰 바위와 그 바위에 붙어있는 바위솔, 숲을 뒤덮고 있는 현호색 군락지는 내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등산로는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등산로라고 생각했다. 등산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도 멀었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지만 걷고 또 걸어 임도에 도착했다.

 

현호색
투구봉
북구항
임도

 

섬의 밤은 고요했다.

낮의 선착장 공사 소음은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자리돔 회, 돼지고기 볶음, 데친 나물들(두릅, 방풍나물, 꾸지뽕잎), 달래, 돌나물 등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특별히 할 것도 할 일도 없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섬은 밤은 생각보다 길었다.

새벽부터 안개가 짙었다.

바닷가에 안개가 끼면 바다는 무언가에 놀란 듯 창백해져 수면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았다. 바다의 표면을 타고 배가 왔는데 바다의 배는 보이지 않고 뱃고동 소리만 들렸다. 안개 속에 배 엔진 소리만 가득했다. 바다엔 안개뿐이었다. 안개 때문에 배는 보이지 않았다. 안개 속에서 배에 탔다. 배 위에서 안개를 마시고 바람을 마셨다. 배는 천천히 두미도를 떠났다.

 

저녁식사
안개
안개낀 북구항에 접안중인 바다누리호

꽃피는 4월이다.

갑천 변 벚꽃은 이미 꽃을 피워 벚꽃 터널을 만들었다. 제방에 심어진 샛노란 개나리꽃과 어우러져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새벽 공기는 차갑지 않았다.

식목일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이 되었다. 밤새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다 온몸이 찌뿌드드한 상태로 일어났다. 냉수로 세수를 하고 계절과 어울리는 봄옷을 입었다. 오늘 난 머리털 나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섬으로 출발했다.

 

 

지난 10년 동안 강진, 해남, 완도를 갈 때마다 수없이 지나갔던 그 길이었다.

유성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정읍IC로 빠져나왔다. ‘띵띵 띵띵내비게이션은 광주까지 가라며 한동안 경고음을 울렸다. 그런 울림을 완전히 무시하고 한갓진 시골길을 달렸다. 어느새 내비게이션도 경로 재탐색을 통해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10여 분 후 선운산IC를 통과하여 서해안 고속도로에 다시 진입했다.

2시간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에게 그다지 특별할 것도 유별날 것도 없는 그런 길이었다. 목포IC를 벗어나 압해대교를 건너 신안군으로 들어섰다. 도로변 불 켜진 커피숍에 들어갔다. 분위기 좋고 경치도 좋았지만 한가하게 앉아 커피를 마실 시간은 없었다.

 

 

송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910분이었다.

차량에 앉아 해무 낀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지금 나는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로 갈 생각이다. 매표소에 들어가 왕복 배편을 예매했다. 소악도 선착장에 내린 후, 진섬, 딴섬, 소악도, 소기점도, 대기점도로 이동할 예정이다.

여객선은 검은 매연을 내뿜기 시작했다.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해무로 인해 시계는 좋지 않았다. 천사대교의 형태가 아주 흐릿하게 보였다.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선실에 들어왔다. 배는 당사도를 거쳐 40분 만에 소악도 선착장이 있는 진섬에 도착했다.

 

 

나는 배에서 내렸다.

해무인지 미세먼지인지 구별할 수 없지만, 바닷가 특유의 짭짤함이 공기에 묻어 있었다. 썰물 때라 갯벌 바닥은 그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섬이라고 바다와 갯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천장굴산, 개바우산, 앞산, 범바우산, 큰잔동산 등 구릉지 같은 산도 있었다.

선착장 옆 숲에는 철탑 가는 길이 있었다.

나는 그 길로 들어섰다. 굴착기로 무지막지하게 숲을 밀어버렸다. 4m 정도의 길이 능선을 타고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자연훼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이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황량함이 느껴지는 숲에도 자줏빛 붉은 꽃, 진달래꽃이 피어 있었다. 벌써 꽃을 피우다니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달래꽃을 보고 길 복원에 대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시몬의 집이 있었다.

기점·소악도는 순례자의 섬이라고 불린다. 순례자의 섬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졌다. 12 사도 이름을 따서 지은 작은 예배당이 노두길로 연결된 5개의 섬에 산재해 있다. 순례자의 섬을 찾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기점 선착장에서 하선한다. 섬과 섬을 연결한 노두길을 걸어 12 사도 예배당을 돌아본 후 소악도 선착장에서 다시 승선한다.

예배당은 바닷가, 갯벌, 호수, 언덕 등에 자리하고 있다.

1. 베드로의 집 2. 안드레아의 집 3. 야고보의 집 4. 요한의 집 5. 필립의 집 6. 바르톨로메오의 집 7. 토마스의 집 8. 마태오의 집 9. 작은 야고보의 집 10. 유다 타대오의 집 11. 시몬의 집 12. 가롯 유다의 집이다.

 

시몬의 집
가롯유다의 집
유다 타대오의 집
작은야고보의 집
마태오의 집
토마스의 집
바르톨로메오의 집
필립의 집
베드로의 집

 

순례자의 섬에는 섬과 섬을 잇는 4개의 노두길이 있다.

노두는 밑물 때는 사라지고 썰물 때에 모습을 드러낸다. 노두는 광맥·암석·지층·석탄층 따위가 땅거죽에 드러난 부분을 말한다. 지금은 노두를 시멘트로 포장해 놓아 차량도 이동할 수 있다.

조심! 밀물 때 통행금지

노두길은 밑물이 되면 물에 잠긴다. 물이 찰랑거려서 길이 보인다고 할지라도 물살이 세고 파래 등으로 매우 미끄럽다. 물이 차면 차량은 물론 사람도 절대로 건너가면 안 된다. 3~4시간이 지나면 썰물이 된다.

 

 

아쉬움이 남는다.

길을 만든다고 굴착기로 무지막지하게 숲을 밀어버려 자연을 훼손했다. 산자고, 보춘화 등 섬 야생화 보호와 훼손된 숲의 복원이 시급했다. 자연 그대로인 노두가 아닌 시멘트로 포장된 노두길이라 감흥이 덜했다. 밀물이 되어 바다에 잠기는 노두길과 그 위의 예배당(8. 마테오의 집)을 보지 못했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다.

노두길을 따라 만나게 되는 12개의 예배당은 조용히 묵상하기 좋을 정도의 공간이다. 나에게는 푸른 바다와 마주 보며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만들어진 길은 없다.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는 종교를 떠나서 섬의 자연과 더불어 편안하게 명상하며 걷는 그런 길이다.

 

산자고
보춘화

 

순례자의 섬을 다 돌아봤다.

물론 모든 예배당을 다 가본 것은 아니다. 안드레의 집과 야고보의 집은 가지 않았다. 나는 숲길과 노두길을 중심으로 섬을 걸었다. 대기점 선착장에 있는 베드로의 집에서 배를 기다렸다. 오후 432분 다시 배를 탔다.

배고픔이 극에 달했다.

아침은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셨다. 점심에는 캔맥주를 마시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막 배를 타고 기점·소악도에서 송공항으로 나왔다. 대전을 가려면 목포를 지나가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목포에 올 때마다 꼭 들리는 유달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선경준치회집에 갔다. 아귀탕과 갈치구이를 주문했다. 꼭 아귀탕과 갈치구이를 먹어봐야 한다. 일단 한번 잡숴봐!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대기점선착장
목포 맛집 - 선경준치회집, 갈치구이(4미 이상)
목포 맛집 - 선경준치회집, 아귀탕

올해만 두 번째 방문이다.

오후 340, 보름 만에 다시 단양을 향해 출발했다. 맑은 하늘 아래를 달리던 차는 어느새 비구름 속에 갇히고 말았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이 대지를 때린 듯 하늘의 수문이 열렸다.

오늘의 맑음은 어제의 비로 대체되었다.

비는 창문 표면으로 한두 방울씩 떨어졌고 와이퍼를 느린 속도로 작동시켰다. 제천을 지날 때는 많은 비가 내렸다. 비의 양에 비례해 와이퍼 속도를 빠르게 또는 느리게 조절했다. 와이퍼는 비를 닦고 되돌아오면서 창문을 조금씩 흐리게 만들었다. 2시간 후,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북단양IC를 지나쳤다.

 

 

비는 내리고 또 내렸다.

단양에 도착했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봄비는 겨울 가뭄에 바싹 메말라 죽어가던 대지를 촉촉이 적셨다. 대지는 봄비로 인해 생명수를 얻은 셈이다. 단양에 올 때마다 숙박하던 그라다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빗속을 뚫고 찾아온 벗이 반가웠나 보다. 단양에 사는 지인과 삼겹살에 술잔을 마주 잡았다. 계산 없는 즐거움이 술자리에 가득 찼다. 비 오는 밤이라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밤은 점점 깊어졌다.

비로 인해 어둠이 더욱 까맣게 변했다. 남한강과 소백산과 하늘의 경계가 없어졌다. 남한강을 비추던 조명은 어둠 속에서 한층 더 선명해졌다. 비는 조명에 취한 듯 멋진 야경을 부러워하며 남한강으로 떨어졌다. 남한강도 이내 조명에 불타고 말았다.

 

 

흰 구름이 소백산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오전 7, 아침을 먹으려고 모텔을 나왔다. 상상의 거리에서 남한강 건너 소백산을 바라봤다. 어제 보았던 소백산의 풍경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고요함을 배우고 한가로움을 훔쳤다.

내 마음에 틈이 있어야 빛이 스며들 수 있다. 내 마음이 넓어지니 구름 덮인 산을 보고도 그 매력을 빠져 고요함을 즐기게 되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이 나의 한가로움이 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아침을 먹으려고 단양시장 내 충청도순대에 갔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 나왔던 식당이다. 그동안 단양에 올 때마다 각기 다른 음식을 먹었다. 아침에는 주로 황태해장국을, 점심에는 자장면을, 저녁에는 마늘 소고기, 마늘 떡갈비, 장어, 삼겹살, 쏘가리 매운탕을 먹었다.

편의점 커피를 마신 후 차에 탑승했다.

황정산 자연휴양림으로 목적지를 설정했다. 차는 단양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대강면을 지나 황정리에 들어섰다. 대흥사를 지나 구불구불한 숲속 도로를 천천히 운전 중이었다.

 

 

눈으로 확인된 것은 두 마리였다.

머리는 검은색이고 가슴 주변으로 금빛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한 마리는 산 경사지의 콘크리트 축대벽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도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멸종위기 야생동물 급인 담비였다.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량 소리에 놀랐던지 단비는 혼비백산하여 숲으로 달아났다. 나는 지금까지 단비를 5번 정도 목격했다. 모두 다 깊은 산속 인적이 드문 장소였다. 도로변에서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비를 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의 흥분된 감정은 내 머릿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단비를 두 눈으로 봤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운아인 셈이다.

 

 

황정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단비의 흔적을 뒤로 한 체 석화봉으로 향했다. 휴양림에서 석화봉까지는 길이 나 있다. 세 군데이고 모두 등산로이다. 나는 C 코스로 접어들었다. 이 등산로는 찾기가 쉬웠다. 계곡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등산로는 점점 넓어지고 경사는 완만해졌다.

때죽나무, 신갈나무도 있지만, 대부분은 굴참나무였다. 굴참나무는 굵고 곧게 뻗어 있었다. 말라 비틀어진 숲에도 노란 꽃을 피우며 존재를 과시하는 나무가 있었다. 굴참나무 아래로 샛노란 연둣빛 꽃을 피운 생강나무였다. 아직 만개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올해 처음 생강나무꽃을 본 것이다.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다채로운 꽃과 열매를 맺는 존재들이 있기 마련이다.

 

 

숲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낙엽은 먼지처럼 숲에 쌓여있다. 생명력을 읽은 나뭇잎들이 낙엽이 되어 오랫동안 켜켜이 숲에 쌓인 것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부스럭부스럭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리느라 분주했다. 나는 그 소리가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색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부추겨 줄 뿐이었다.

낙엽은 그냥 버려진 것이 아니다.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 자궁 같은 곳이다. 두껍게 쌓인 낙엽 속에서 땅은 양분과 수분을 흡수하고 추운 겨울 동안 씨앗은 얼지 않고 땅속에서 견딜 수 있다.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점점 깊은 계곡으로 들어갔다.

등산로는 계곡 끝에서 능선과 연결되었다. 그 지점에서 하얗게 말라버린 투구꽃 열매를 발견했다. 화려한 꽃만 보다가 이런 모습을 보고 매우 당황스러웠다. 능선은 가팔랐다. 굴참나무가 주를 이루는 계곡과 달리 소나무가 점점 많아졌다. 등산로 주변으로 사방오리도 몇 그루 자생하고 있었다.

처녀치마를 발견했다.

처녀치마는 낙엽에 덮여 있었다. 얼핏 봐서는 처녀치마인지 아닌지조차 구별할 수 없었다. 손으로 낙엽을 치우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고 녹색의 잎만이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한껏 부풀어 오른 꽃망울이 꽃의 아름다움을 말해주고 있었다.

 

 

숲이 노래했다.

양지바른 곳에는 햇빛이 노래했고 가파른 능선에선 바람이 노래했다. 바람의 노래에 화답하듯 소나무 우듬지가 부드럽게 춤을 추었다.

일종의 풍경놀이를 시작했다.

그저 말없이 정상에 올라 숲의 기묘한 형태를 바라봤다. 맑은 하늘,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각양각색의 구름, 아직 겨울이라고 말하고 있는 눈 덮인 소백산 연화봉 정상,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산맥들과 그 속의 기암괴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시간 풍파를 견뎌낸 소나무가 서 있다. 척박한 곳에서도 숲의 포용력과 충만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숲은 아름다움과 끔찍함을 동시에 끌어안고 있다. 숲은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나는 숲을 관찰하지만, 숲은 나를 관찰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숲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것이다. 오늘 난 석화봉을 오르내리면서 숲이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을 간직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황정산 자연휴양림 - 석화봉]

 

편의점 커피를 마신 후 차에 탑승했다.

황정산 자연휴양림으로 목적지를 설정했다. 차는 단양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대강면을 지나 황정리에 들어섰다. 대흥사를 지나 구불구불한 숲속 도로를 천천히 운전 중이었다.

 

눈으로 확인된 것은 두 마리였다.

머리는 검은색이고 가슴 주변으로 금빛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한 마리는 산 경사지의 콘크리트 축대벽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도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멸종위기 야생동물 급인 담비였다.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량 소리에 놀랐던지 단비는 혼비백산하여 숲으로 달아났다. 나는 지금까지 단비를 5번 정도 목격했다. 모두 다 깊은 산속 인적이 드문 장소였다. 도로변에서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비를 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의 흥분된 감정은 내 머릿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단비를 두 눈으로 봤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운아인 셈이다.

 

 

황정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단비의 흔적을 뒤로 한 체 석화봉으로 향했다. 휴양림에서 석화봉까지는 길이 나 있다. 세 군데이고 모두 등산로이다. 나는 C 코스로 접어들었다. 이 등산로는 찾기가 쉬웠다. 계곡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등산로는 점점 넓어지고 경사는 완만해졌다.

 

때죽나무, 신갈나무도 있지만, 대부분은 굴참나무였다. 굴참나무는 굵고 곧게 뻗어 있었다. 말라 비틀어진 숲에도 노란 꽃을 피우며 존재를 과시하는 나무가 있었다. 굴참나무 아래로 샛노란 연둣빛 꽃을 피운 생강나무였다. 아직 만개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올해 처음 생강나무꽃을 본 것이다.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다채로운 꽃과 열매를 맺는 존재들이 있기 마련이다.

 

 

숲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낙엽은 먼지처럼 숲에 쌓여있다. 생명력을 읽은 나뭇잎들이 낙엽이 되어 오랫동안 켜켜이 숲에 쌓인 것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부스럭부스럭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리느라 분주했다. 나는 그 소리가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색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부추겨 줄 뿐이었다.

 

낙엽은 그냥 버려진 것이 아니다.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 자궁 같은 곳이다. 두껍게 쌓인 낙엽 속에서 땅은 양분과 수분을 흡수하고 추운 겨울 동안 씨앗은 얼지 않고 땅속에서 견딜 수 있다.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투구꽃

 

점점 깊은 계곡으로 들어갔다.

등산로는 계곡 끝에서 능선과 연결되었다. 그 지점에서 하얗게 말라버린 투구꽃 열매를 발견했다. 화려한 꽃만 보다가 이런 모습을 보고 매우 당황스러웠다. 능선은 가팔랐다. 굴참나무가 주를 이루는 계곡과 달리 소나무가 점점 많아졌다. 등산로 주변으로 사방오리도 몇 그루 자생하고 있었다.

처녀치마를 발견했다.

처녀치마는 낙엽에 덮여 있었다. 얼핏 봐서는 처녀치마인지 아닌지조차 구별할 수 없었다. 손으로 낙엽을 치우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고 녹색의 잎만이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한껏 부풀어 오른 꽃망울이 꽃의 아름다움을 말해주고 있었다.

 

처녀치마

 

숲이 노래했다.

양지바른 곳에는 햇빛이 노래했고 가파른 능선에선 바람이 노래했다. 바람의 노래에 화답하듯 소나무 우듬지가 부드럽게 춤을 추었다.

 

일종의 풍경놀이를 시작했다.

그저 말없이 정상에 올라 숲의 기묘한 형태를 바라봤다. 맑은 하늘,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각양각색의 구름, 아직 겨울이라고 말하고 있는 눈 덮인 소백산 연화봉 정상,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산맥들과 그 속의 기암괴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석화봉

 

항상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시간 풍파를 견뎌낸 소나무가 서 있다. 척박한 곳에서도 숲의 포용력과 충만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숲은 아름다움과 끔찍함을 동시에 끌어안고 있다. 숲은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나는 숲을 관찰하지만, 숲은 나를 관찰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숲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것이다. 오늘 난 석화봉을 오르내리면서 숲이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을 간직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신안)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에

가기 위해서는 송공항(송공여객선터미널)을 이용해야 한다.

 

전남 신안군 압해읍 송공리

 

송공항(송공여객선터미널)에서는

당사도, 소아도, 매화도, 소기점도, 대기점도, 병풍도

도초(비금), 흑산를 갈 수 있다.

 

송공항(송공여객선터미널) 매표소

 

송공항(송공여객선터미널) 운항시간표이다.

 

송공항(송공여객선터미널) 운항시간표
당사도, 소악도, 매화도, 소기점도, 대기점도, 병풍도 - 금일페리 2호 운항시간표
도초도(비금도), 흑산도 - 뉴드림호 운항시간표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 배 요금표입니다.

대기점도 기준이고 편도 6,000원입니다.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 배 요금표, 편도 6,000원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

안내지도, 배편, 소악도 선착장, 대기점 선착장이다.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 지도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 배편
송공항
소악도(왼쪽으로 딴섬)
소악도 선착장
대기점 선착장

[단양에서의 하룻밤]

 

올해만 두 번째 방문이다.

오후 340, 보름 만에 다시 단양을 향해 출발했다. 맑은 하늘 아래를 달리던 차는 어느새 비구름 속에 갇히고 말았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이 대지를 때린 듯 하늘의 수문이 열렸다.

오늘의 맑음은 어제의 비로 대체되었다.

비는 창문 표면으로 한두 방울씩 떨어졌고 와이퍼를 느린 속도로 작동시켰다. 제천을 지날 때는 많은 비가 내렸다. 비의 양에 비례해 와이퍼 속도를 빠르게 또는 느리게 조절했다. 와이퍼는 비를 닦고 되돌아오면서 창문을 조금씩 흐리게 만들었다. 2시간 후,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북단양IC를 지나쳤다.

 

 

비는 내리고 또 내렸다.

단양에 도착했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봄비는 겨울 가뭄에 바싹 메말라 죽어가던 대지를 촉촉이 적셨다. 대지는 봄비로 인해 생명수를 얻은 셈이다. 단양에 올 때마다 숙박하던 그러다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빗속을 뚫고 찾아온 벗이 반가웠나 보다. 단양에 사는 지인과 삼겹살에 술잔을 마주 잡았다. 계산 없는 즐거움이 술자리에 가득 찼다. 비 오는 밤이라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밤은 점점 깊어졌다.

비로 인해 어둠이 더욱 까맣게 변했다. 남한강과 소백산과 하늘의 경계가 없어졌다. 남한강을 비추던 조명은 어둠 속에서 한층 더 선명해졌다. 비는 조명에 취한 듯 멋진 야경을 부러워하며 남한강으로 떨어졌다. 남한강도 이내 조명에 불타고 말았다.

 

 

흰 구름이 소백산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오전 7, 아침을 먹으려고 모텔을 나왔다. 상상의 거리에서 남한강 건너 소백산을 바라봤다. 어제 보았던 소백산의 풍경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고요함을 배우고 한가로움을 훔쳤다.

내 마음에 틈이 있어야 빛이 스며들 수 있다. 내 마음이 넓어지니 구름 덮인 산을 보고도 그 매력을 빠져 고요함을 즐기게 되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이 나의 한가로움이 되었다.

 

 

가는 날이 단양 장날이었다.

아침을 먹으려고 단양시장 내 충청도순대에 갔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 나왔던 식당이다. 그동안 단양에 올 때마다 각기 다른 음식을 먹었다. 아침에는 주로 황태해장국을, 점심에는 자장면을, 저녁에는 마늘 소고기, 마늘 떡갈비, 장어, 삼겹살, 쏘가리 매운탕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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