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의 전원을 켜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지금은 술친구가 된 K형의 전화였다. 벌써 32년 된 인연 사이에 긴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내일과 모레 일정이 어떻게 되나?”

특별한 것은 없는데요.”

그럼 울진 놀러 가자.”

좋아요.”

K형은 내가 저녁을 먹을 때쯤 전화를 종종 한다.

전화를 끊고 보니 부재중 전화가 이미 와 있었다. 늘 그렇지만 저녁을 먹느라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울진 일정은 이렇게 잡혔다.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아침 820, K형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은 비교적 선선했지만, 자전거를 20분 넘게 타고 온 나는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벌써 더위를 느끼면 안 되는데 예년보다 빨리 날씨가 더워지는 것 같았다.

우리에겐 루틴 같은 것이 있다.

내가 승용차에 가방을 넣어두면 K형은 편의점으로 나는 커피숍으로 간다. K형은 담배와 물을 사고 나는 샷이 추가된 아메리카노를 산다. 아메리카노는 기온에 따라 HOT 또는 ICE를 선택한다. 이번엔 당연히 ICE를 선택했다. 모든 것이 준비된 후 K형과 나는 승용차를 타고 울진을 향해 출발했다.

 

울진 두천리 모내기한 논

 

3시간 20분의 긴 이동이 시작되었다.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답답하고 에어컨을 켜면 약간 쌀쌀함을 느꼈다. 날씨만큼 목요일 아침의 고속도로는 꽉 막히지도 그렇다고 뻥 뚫리지도 않았다. 앞차의 속도에 맞춰 뒤차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울진은 경상북도에 있다.

울진에 올 때마다 강원도에 왔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제, 양양, 평창, 춘천, 화천 등 강원도를 가끔 돌아다니다 보니 울진도 당연히 강원도라 생각한 것이다. 고속도로 졸음쉼터에서 화장실을 다녀온 것 빼고는 쉬지 않고 계속 운전을 했다. 그러고 보니 1년 만에 다시 울진에 왔다.

 

하원2교
울진종합버스터미널

 

울진에서 짬뽕을 먹었다.

K형이 월요일에 가봤다는 기절초뽕에 들어갔다. 이름만큼 특별하지 않은 여느 중국집 실내여서 약간 실망했었다. K형이 추천한 짬뽕은 숙주나물이 고명으로 가득 올려진 짬뽕이었다. 면과 숙주를 같이 먹으면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국물은 빨갛지만 맵지 않고 깔끔하며 시원했다.

기절초뽕에 한 번 더 갔다.

울진 산야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일로 일정이 하루 늘어났다. 이튿날 저녁에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짬뽕과 탕수육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소맥을 말아 목구멍으로 넘겼다. 막소주만 고집하는 K형은 술이 고팠는지 구포식 소맥이라며 직접 소맥을 말아 나에게 건넸다. 단무지를 안주 삼아 한잔, 양파를 안주 삼아 또 한잔, 그렇게 4잔쯤 마셨을 때 짬뽕과 탕수육이 나왔다.

 

울진마집 - 기절초뽕

 

승용차는 불영계곡 도로를 달렸다.

몇 년 전에 왔었던 곳을 다시 찾은 것이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고 야속한 세월만 흘렀다. 나는 산을 바라보면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래서 무작정 산에 올랐다. 보통은 등산로를 따라 오르지만, 오늘은 차를 타고 임도를 따라 높은 곳에 올랐다.

처음 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풍경을 한 번이라도 구경해본 사람이라면 또다시 산을 찾게 된다. 풍경 사워, 아름다운 풍경이 온몸과 정신까지도 말게 씻어줬다. 눈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었다. 전후좌우에 드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바람이 와락 내게 안겼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 오랫동안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이런 포옹도 좋네라고 생각했다.

 

불영계곡 - 하원리, 아미사 입구
대흥리 임도

 

산을 하나 넘었을 뿐인데 세상이 갑자기 낯설고 이상해졌다.

지난겨울, 산불은 매일 번져 나갔다. 소방헬기로 물을 뿌리고, 소방차로 물을 뿌리고, 수많은 사람이 투입되어 잔불을 제거했다. 산불은 바람에 의해 퍼져서 그 면적을 넓혀 나갔고 오래도록 타다가 비에 의해 완전히 소멸하였다.

산불피해지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다.

산불이라는 화마를 만나 죽을 고비를 겪었을 뿐이다. 그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 예전 상태로 돌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 , , , 도로, 강 등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었다.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공허했다.

 

금강소나무숲길(보부상길 입구-두천리)
두천리 마을 산불피해지
두천리 산불발화지점
대형산불 실화자 찾는 현수막

 

봄이 되기까지 산불의 흔적은 처참했다.

울진의 산은 초록의 천위에 실수로 먹물을 부어 놓은 것 같았다. 산은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검게 탄 잿더미였다. 산불의 흉터는 먹색으로 남았지만 봄이 되면서 그 흉터는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큰 산불을 겪고도 산은 생명의 씨앗을 틔웠다.

상처가 흉터가 되고 새살이 돋듯 잿더미 속에서도 희망의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산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더디 간다는 것은 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때처럼 긴 하루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호월1리

 

어둠은 무언가에 쫓기듯 물러났다.

새벽 5시가 넘으면 어느새 해가 떠올랐다. 모텔 창문으로 환해진 울진 시내를 내다봤다. 바람은 가로수를 마구잡이로 흔들고 있지만 시원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더위와 싸워야 하는 힘겨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오늘은 얼마나 걸어야 할까?

불영계곡 아미사에서 산에 들어섰다. 나는 가보지 않은 산을 돌아다닌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걷는 길을 기획하고 조사에 참여하는 일만으로도 희열을 만끽하고 있다.

능선을 따라 오르고 또 올랐다.

깊은 산속 이름 없는 고개의 소나무 그늘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었다. 청량함이 가득한 산골 바람은 더위를 식혀 주었다. 소나무 우듬지를 흔들리게 만드는 그 바람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바다에서 높이 물결치는 파도 소리 같은 허공의 바람 소리였다.

 

아미사 옆 숲길
초롱꽃
꼬리진달래
소나무
울진군 금남면 수곡리
울진군 금남면 수곡리

 

깊은 계곡 바위에 서 있었다.

여러 갈래로 흐르는 물처럼 내 마음도 여러 갈래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물이 흐르지 않아 속살을 드러낸 바닥은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듯 보였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맑고 투명했으며 수면 아래로 군데군데 두껍게 낙엽이 쌓여 있었다. 흐름이 느린 물줄기에는 사분음표 모양의 올챙이가 불안정한 상태로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계곡의 물은 아래로 흘러갔다.

비가 오지 않아 유량은 적었지만, 낙차 큰 암반 지형에선 파도처럼 걷잡을 수 없는 물이 쏟아져 내렸다. 하염없이 물이 불어나지도 않고 물살도 세지 않아서 장마철을 제외하면 계곡물을 이용하기엔 안전했다. 계곡을 건너고 또 건넜다. 일 년 중 가장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었다. 이태백이 술에 취하듯 나는 계곡에 취했다.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보부천길
울진군 하원면 소광리 보부천길
울진군 하원면 소광리 보부천길

 

맑았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후드득, 후드득.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은 이내 빗줄기로 변했다. 급한 대로 숲속 나무 밑으로 가서 넓은 잎사귀로 머리를 가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엷은 구름이 퍼져 있을 뿐 대체로 맑았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구나!’ 비는 곧 멈췄고 구름을 걷어낸 태양이 숲의 가지 틈새로 빛을 쏟아냈다.

들꽃처럼 희망의 꽃을 피우자.

화마가 덮친 후 예전 생활로 돌아오기까지는 꽤 시일은 걸릴 것이다. 화마가 덮친 후 새싹이 움트고 꽃을 피우기까지 들꽃은 시련을 견디어 꽃을 피웠다. 무수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비록 삶은 고되겠지만 상황은 호전될 것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하원리 불영계곡
하원리 불영계곡
하원리 불영계곡
백선
함박꽃나무
붓꽃

오후가 되자 뜨거운 열기가 몰려왔다.

오전의 햇빛이 냉장고 속 상추처럼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은 것이라면 오후의 햇빛은 젖은 수건을 골판지같이 딱딱하게 바싹 말린 것이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이 녹아내린 듯한 뜨거운 날씨였다.

나는 방 한쪽 벽에 기대어 앉았다.

주말이지만 밖에도 나가지 않고 텔레비전을 켰다. 프로야구 중계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캐스터와 해설자는 한화이글스가 9연패의 사슬을 끊고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떠들어 댔다. 텔레비전의 소음과 달리 집은 고요하고 모든 것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 햇볕을 쬐며 길을 걸었다.

여행이라도 온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계속 걸었다. 낯선 장소를 지나온 내 자취는 벌써 햇빛에 말라버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푸르렀던 하늘빛은 시간이 지나면서 엷은 주황색에서 짙은 보라색으로 물들어 갔다. 도로의 이팝나무는 바람에 흔들려 흰 꽃을 떨구는데 18개월을 길러온 내 머리카락은 전혀 흩날리지 않았다.

도로를 따라 인도를 걸었다.

길을 걸을 때마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냄새가 났다. 요란스럽게 질주하는 차량의 움직임과 함께 강력한 돌풍이 내 머리칼을 날려버렸다. 후텁지근하고 기름 냄새나는 바람이었다.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청년기를 지나 이제 막 장년기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처럼 오십 대가 되어도 여전히 혼자 여행을 다니려고 노력 중이다. 어제의 다음 날인 오늘은 내가 여행을 떠나려고 생각한 미지의 내일이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대도시를 벗어나 적당한 소음만이 존재하는 평화로운 장소이다. 그 장소가 농촌이든, 산이든, 섬이든 상관없다. 내가 늘 접하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 그런 곳에서는 호흡도, 걸음도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내 속에 감춰져 있던 본능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나는 일출보다 석양을 좋아한다.

새벽의 어둠이 밝으므로 변하는 시간보다 저녁의 어스름이 어둠으로 변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새벽은 모든 것이 잠들어 있어 고요하지만, 저녁은 모든 것에 생명력이 깃들어 있어 시끌벅적하다. 24시간이 지났다. 나는 일출과 석양을 같은 공간에서 맞이했다.

머무름은 완벽했다.

내가 머물렀던 자리에 내 몸 크기만큼의 여백이 생겼다. 그 여백에 내 흔적이 남아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려고 늘 노력 중이다. 오늘도 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낯선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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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가파도에 간 적이 있다.

청보리의 흔들림으로 바람이 내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알았다. 내가 어디에 서 있든 바람이 속삭였다. ‘네 인생을 나에게 맡겨볼래.’ 나는 단호하게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청보리는 자신의 짧은 인생을 바람에 맡겼다. 중심을 잡지 못하는 청보리 인생, 바람이 사라질 때까지 그 움직임을 멈출 수 없었다.

햇살이 넓은 청보리밭을 비췄다.

바람을 타고 청보리가 외치는 아우성이 들려왔다. 나는 아우성을 잘 들으려고 주의를 집중했다.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해야 했는데.’

 

제주 가파도

 

지금 모습이 초라하다고 결코 좌절해서는 안 된다.

남과 비교하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내 인생을 확신하게 되면 그 길로 가자는 결심을 할 수 있다.

나의 젊은 날을 회상하면 하루하루가 힘겹고 괴로운 일상이었다.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인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씁쓸한 일상이 토대가 되어 지금의 내 인생이 되었다. 마음의 응어리가 사라진 후에 어른이 되었고 비로소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인생은 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누구나 고민과 번뇌 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은 마음을 찾는 과정이다. 마음이 흔들리면 짧은 인생은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내가 걸어가야 할 인생은 내적 자신과의 진실한 교감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내가 진심으로 결정한 일은 그 누구도 좌지우지할 수 없어야 한다.

나는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인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스스로 생각한 것을 스스로 판단하여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지다. 자유의지로 이룬 것들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자유의지를 믿으며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내 인생의 설계자는 나이기 때문이다.

 

제주 함덕서우봉해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매달린다. 그런 순간의 행복 따위는 인생의 행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순간의 행복은 단지 쾌락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루를 소중히 여기면 인생이 소중해진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노력하면 최소한 후회는 하지 않는다. 잠에서 깨면 굳은 결심을 해 보자. 굳은 결심이 후회라는 적을 물리친다. 인생의 행복은 주거나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화천 딴산 자작나무

 

인간관계는 줄다리기다.

한쪽이 힘이 세서 일방적으로 끌거나 끌리기만 한다면 그 관계는 유지될 수 없다. 서로 밀고 당기는 과정이 유지되어야 인간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똑똑한 관계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관계는 내가 선택하고 상대가 선택한 인생의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크게 가치를 느끼는 것을 내줄 때 인간관계는 최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화천 딴산 출렁다리

 

매 순간의 선택이 내 인생을 좌우한다.

긴 인생의 여정에는 언제 닥칠지 모를 무수한 상황이 발생한다. 언제나 유연성을 가지고 과감한 궤도수정이 필요하다. 목표를 설정하고 실천 계획을 세워야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실망감을 느끼기보다는 소신껏 목표지점까지 걸어야 한다.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산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 마음의 평화로움이 행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곧 행복이다.

 

제주 위미 동백나무군락지

 

내가 좋아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그 누구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에 대해 늘 생각한다. 뭐든지 내가 편하고 좋아하면 그만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소신에 따라 당당하게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좋거나 싫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살아간다. 내 가치관은 내가 지켜야 한다. 감정표현을 두려워하면 자신의 삶을 지키지 못한다.

나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맞춰 살고 있다. 남을 의식하기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좋아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을 때만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지만 싫어하는 것은 일절 하지 않는다.

 

금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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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월요일 새벽이다.

내가 다시 인제에 온 것은 일요일 저녁이었다. 마침내 백두대간(조침령~구룡령)을 가기로 한 날이 되었다. 다섯 시에 잠에서 깨어나 샤워를 마치고 창문의 커튼을 열었다. 동이 뜨기 전이지만 오늘 날씨가 썩 좋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호텔을 나섰다.

나뭇가지를 흔들리게 만든 바람이 내 얼굴도 스치고 지나갔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바람은 여전히 밉살맞게 불었다. 아침을 먹는 동안 날이 밝았다. 차를 타고 인제에서 출발하여 조침령으로 향했다. 내린천 변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눈이 내리듯 흩날렸다. 바람은 찾아온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생떼를 부렸다.

 

인제 - 스카이락호텔

 

조침령에 도착했다.

바람은 인제에서보다 더 밉살스럽게 불었다. 가까이 있는 CCTV 스피커에서 연신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하늘에는 봄의 어떤 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다 탄 나무의 재처럼 그저 옅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환하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바람이 불면 쌀쌀했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더위를 느꼈다. 아침 기온은 높았지만 바람이 불어서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에어컨을 켠 차 안에서 얼음이 가득한 냉커피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백두대간 조침령

 

너는 가고 나는 본다.

우리는 조침령에서 서남쪽으로 나아갔다. 20m마다 측량을 하면서 백두대간을 걸었다. 네가 폴을 들고 20m를 걸어가면 나는 측량한 것을 기록한 후 너의 뒤를 쫓아갔다. 측량하는 동안 우리는 만날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의 행동을 쳐다만 볼 뿐이다.

너와 내가 떨어질 수 있는 최대 거리는 20m이다.

이름도 없는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를 걸어갔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네가 남기고 간 자취는 내 피부에 와 닿았다. 노면이 다 드러난 흙길 위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등산로 주변에는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 향기가 가득 차 있다.

 

숲길 측량

 

처음 뵙겠습니다.

내가 노루귀를 발견한 것은 오전 열한 시였다. 백두대간 갈림길에서 길의 흔적을 찾아 우거진 조릿대 숲을 걷고 있었다. 어깨까지 올라온 조릿대를 손으로 밀어낸 순간 그곳에 노루귀가 있었다. 별다른 특징이 있는 노루귀는 아니었다. 봄이면 산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노루귀였다.

낙엽 속에 숨어있었다.

내가 얼레지를 발견한 것은 오후 한 시였다. 낙엽 속에 있어 오히려 그 존재가 눈에 띄었다. 분홍색 꽃잎이 뒤로 말린체 도도하게 서 있었다. 녹색의 잎은 흙탕물이 튄 것처럼 군데군데 자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얼레지는 무방비한 구석이 있다. 등산로에 자란 엘레지를 실수로 밟게 되어 나를 당황케 했다. 언제나 미안하다.

 

노루귀
얼레지

 

시간을 들인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산에 온 목적에 맞게 백두대간을 걸었다. 20m마다 측량을 하면서 걷다 보니 오늘 하루 4.8km밖에 못 왔다. 속도는 느렸지만, 그만큼 산에 더 많은 애정을 품은 시간이었다. 내일 다시 이곳에서부터 측량을 시작해야 한다. 해가 지기 전에 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숲은 평온함에 빠져 있었다.

산불통제 기간이라 허가 없이는 백두대간(조침령~구룡령)을 다닐 수 없다. 인적없는 숲에는 야생화, 계곡, 폭포 등 극적인 요소들이 언제나 숨어있었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미줄처럼 치밀할 정도로 잘 짜여 있었다. 내일 다시 이곳을 지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형이상적인 봄의 화원을 소리 없이 걸었다. 아주 길고 넓은 꽃밭으로, 그곳에는 얼레지, 바람꽃, 제비꽃, 현호색, 괭이눈, 노루귀 등의 다양한 야생화가 파도치고 있었다. 꽃냄새와 더불어 물 냄새가 났다. 바위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졌다 속삭이고 있었다.

계곡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건조한 대기의 냄새가 났다. 나무의 잎사귀는 햇빛을 한껏 받았지만 메마름보다 촉촉함이 느껴졌다. 땀이 흐를 정도로 더웠다. 나는 바위 사이에 다리를 딛고 허리를 숙여 세수했다. 두 손을 오므려 계곡물을 담아 얼굴로 가져갔다. 몇 번이나 그렇게 했다. 어느새 땀은 물로 대체되었다.

 

바람꽃
얼레지
현호색
고비
괭이눈
처녀치마
연영초

 

봄의 어느 맑은 오후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기온이 쑥쑥 올라갔다.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에서 노란 꽃이 완벽하게 핀 한계령풀을 발견했다. 봄만큼 화사한 한계령풀이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누런 낙엽 사이에서 초록빛 풀 사이에서. 노란 꽃은 초록의 잎과 줄기에 대비되어 더 멋져 보였다. 한계령풀은 순도 100%의 황금색 꽃을 가졌다.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계령풀을 본 적이 있는가? . 있다. 작년 이맘때 곰배령에서 한계령풀을 처음 보았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의 비옥한 토양이었다. 한계령풀은 환경부에서 희귀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한계령풀

 

나는 몇 번이나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안이 찾아온 시력이지만 초점을 정확히 잡으려고 안경을 콧등 끝에 걸쳤다.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며 한계령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두 개만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800m 이상 등산로 주변에 자생하고 있었다. 천상의 화원이 이런 것이었다. 한계령풀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심장박동 수는 점점 빨라졌고 발걸음은 현저히 느려졌다. 실수로 밟지는 않을까 가슴이 조마조마해졌지만, 사진을 찍는 손놀림만큼은 번개처럼 빨랐다.

 

한계령풀 군락지
산바다, 지리산고무신 - 박무열

 

천상의 화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백두대간의 변덕스러운 바람에 한계령풀 씨앗이 주변으로 운반되었다. 해가 지날수록 그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씨앗이 떨어진 거리에서 각자의 생존을 위해 꽃을 피우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바람의 흔적은 말했다.

백두대간에서 양양 앞바다를 건너온 바닷바람을 맞았다. 백두대간을 스쳐 간 바람의 흔적, 그 모든 것이 바다의 냄새였다. 시계가 트였을 때 양양 앞바다가 몇 킬로미터쯤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오늘은 양양에서 하룻밤 묵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박새와 현호색
바람꽃
미천골자연휴양림 방향

 

하산은 선택의 문제였다.

다른 사람들은 연가리 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했고 나만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선택의 중심에 항상 내가 있었다. 산악가이드인 내가 차량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태우러 가야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발길을 잡았던 천상의 화원은 나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헐떡거리면서도 연신 오르막을 뛰다시피 올랐다.

시간은 뒤로 돌아가진 않는다.

오늘은 근심 없이 감각적으로 야생화를 보고 즐겼다. 해가 지기 전에 양양 낙산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드넓은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니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저녁을 먹으면서 저녁노을을 바라봤다. 동쪽에 와서 서쪽의 노을을 바라보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해물두부전골
모듬생선구이

 

또 하루가 지났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아는가? 난 그 질문의 답을 석양을 보려고라고 말했다. 달마는 해가 제일 먼저 뜨는 동쪽에서 해가 지는 서쪽을 그리워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내 마음이 어제 그랬다. 사람은 변하는 게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육신의 고통을 느낀 후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

어제 하산했던 장소로 가기 위해 갈천으로 왔다. 백두대간 왕승골삼거리로 올라오는 등산로는 내 육신에 고통을 주기에 매우 가팔랐다. 두껍게 쌓여 있는 낙엽 때문에 연신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가벼웠는데 배낭의 무게가 삶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바람은 좀처럼 불지 않았다.

메마른 대지에 미세먼지가 자욱했다. 아무 생각 없이 어제 하산했던 장소로 이동했다. 굵은 땀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평평한 곳에 앉아 두 눈을 감았다. 우듬지에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색한 침묵의 순간처럼 내 몸의 열기는 오랫동안 식지 않았다.

아무도 지나간 적 없는 길은 없다.

시간이 흘러 그 흔적이 사라졌을 뿐이다. 백두대간을 측량하며 다시 왕승골삼거리 돌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흘 동안의 백두대간 조사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갈천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산작약
숲길 측량

 

내 시선이 닿는 곳에 피나물과 금낭화가 있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숲은 출렁거렸다. 멈춘 것처럼 보였던 모든 것들이 분주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를 지각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다. 눈으로 본 것 때문에 가슴이 설레고 흥분되었다. 순간이 이처럼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백두대간은 나름의 소리도 머금고 있었다.

바람 소리, 나무 소리, 새소리, 계곡물 소리 등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 소리가 들렸다. 백두대간의 매력에 한 번 사로잡히니 헤어나오기 쉽지 않았다. 백두대간은 서두르며 지나는 그런 길이 아니다. 자연과 시선을 맞추며 천천히 걸어야 백두대간의 진가를 제대로 볼 수 있다.

 

피나물
금낭화
귀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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