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산 산행 - 충청 Sherpa와 함께하는 도전

 

 

충청지역 3월 이벤트 및 클린산행으로 구병산을 찾았습니다.

 

 

 

 

보은군내에서 농어촌버스를 이용하여

적암리 또는 구병리 방향에서 구병산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보은군내에서 적암행 농어촌버스를 타고 구병산을 찾았습니다.

 

 

 

 

올해는 청주 남부터미널에서

청주에 사시는 충청 셰르파들과 만나서 자동차로 구병리로 왔습니다.

 

 

 

 

구병리의 구병산장에서 시작되는 구병산 산행은

적암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합니다.

 

 

 

 

우리가 도착한 후에도

모든 셰르파와 도전단이 다 모이는데는 30여분이 더 지났습니다.

 

다... 모였으니 천천히 산행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가을을 곱게 물들였던 알록달록 나뭇잎들이

이제는 새롭게 태어나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바스락 바스락 소리를 내며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힘찬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습니다.

자연이 인간에게 선물해 주는 무한한 애정을 몸소 느끼면서 걸음을 옮겼습니다.

 

 

 

 

발걸음을 몇 발자국 옮기지도 않았는데

과자봉지, 껌종이, 사탕봉지, 담배꽁초, 생수병 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런 불평불만도 하지 않은 채

이정훈 셰르파가 연신 쓰레기를 주워담고 있었습니다.

 

 

 

 

이정훈 셰르파는

비닐봉지에 매직으로 다음과 같이 글을 써 넣었습니다.

 

2016. 3. 13

구병산

클린산행

 

정말 멋지십니다.

블랙야크 클린산행 비닐봉지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계절은 봄으로 치닫고 있는데

바위의 고드름은 아직은 겨울이라 항변하고 있었습니다.

 

물이라고는 전혀 흐르고 있지 않는 이곳에

바위의 고드름은 어떻게 생긴걸까요?? 정말로 궁금했습니다.

 

 

 

 

어느덧 구병산 정상 바로 아래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곳에는 풍혈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구병산 풍혈은 전북 진안군 대둔산 풍혈, 울릉도 도동 풍혈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풍혈로 명성을 얻고 있는 곳입니다.

 

 

 

 

충청 지역장인 이장원 셰르파가 풍혈을 체험해 보고 있습니다.

 

구병산 풍혈은 여름에는 냉풍이 겨울에는 훈풍이 솔솔불어 나오는 신비스러운 대자연의 결정체로

구병산 정상에서 서원계곡 방향으로 약 30m 지점에 직경 1m 풍혈 1개와 30cm 풍혈 3개 등 4개가 있으며

구병리 마을 뒤편으로 동굴형 풍혈 2개가 2008년 1월 새롭게 발견되었습니다.

 

 

 

 

구병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구병산은 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라

일명 구봉산이라고도 하며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보은지방에서는 속리산 천왕봉을 지아비산,

구병산을 지어머니산, 금적산을 아들산이라 하여 이들을 삼산이라고 했습니다.

 

 

 

정상은 평평하며

넓은 보은평야가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구병산은 속리산의 남단에 위치하여

속리산의 명성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최근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습니다.

 

 

 

 

 

보은군청에서는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43.9km 구간을

1999년 5월 17일 ‘충북알프스’로 출원 등록하여 관광상품으로 널리 홍보하고 있습니다.

응급처치법 일반과정

 

 

응급처치 정책(First Aid Policy)은 국제적십자사연맹과 각국 적십자사의 응급처치에 대한 책임성을 규정한 것입니다.

이 정책은 생명보호, 고통경감, 장애 예방,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신속하고 적절한 응급처치 활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월 10일(목) ~ 11(금)

1박 2일 동안 대한적십자사 대전•세종•충남지사에서

응급처치법 일반과정을 교육 받았습니다.

 

 

 

 

응급처치법 일반과정의 강의신청을 하게되면

응급처치법(First Aid) 교재와 구급함 세트(First Aid Kit)가 개개인에게 주어집니다.

 

 

 

 

응급처치법 일반과정의 일정은

오전에는 이론교육, 오후에는 실습 위주로 진행되었습니다.

 

 

 

 

응급처치는 다친 사람이나 급성질환자에게 사고 현장에서 즉시 취하는 조치로

119 신고부터 부상이나 질병을 의학적 처치 없이도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까지 포함됩니다.

 

 

 

 

한국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대표 질병은 암이지만

우리사회가 급격히 고령화되면서 혈관계 질환에 의한 사망률의 증가가 예측되고 있습니다.

 

혈관계 질환의 사망의 절반가량이 돌연사의 형태로 나타나므로

우리사회에서 응급처치의 필요성은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심장은 자신의 손 주먹크기 정도이고 무게는 자기 몸무게의 0.5% 정도입니다.

심장은 양쪽 폐 사이의 흉골 뒤쪽에 위치하며 좌심실이 왼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습니다.

 

 

 

 

심정지는 혈액순환을 담당하는 심장이 갑자기 멈춤으로 인하여

수분이내에 적절한 응급처치가 실시되지 않으면 사망하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심폐소생술(CardioPulmonary Resuscitaiton)은 심정지 환자에게

멈추어진 심장의 자발순환을 회복시키려는 일련의 응급처치 과정을 말합니다.

(전문 심장 소생술이 아닌 기본 소생술입니다.)

 

 

1. 심폐소생술 실습

 

 

 

 

현장조사

현장조사

현장은 안전합니다.

 

 

 

 

무릎꿇고 앉아

환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괜찮으세요?"라고 말한 후 반응과 호흡을 확인한다.

 

"안경쓴 남자분 119에 신고해 주시고 저에게 통보해 주세요."

"운동화 신고 있는 학생 자동제세동기를 가져다 주세요"

 

 

 

 

환자를 단단한 바닥에 바르게 눕히고

환자의 가슴중아에 두 손을 포개어 손꿈치만으로 가슴을 압박합니다.

(깊이 5~6cm, 분당 100~120회 속도)

 

 

 

 

머리를 젖히고 턱을 들어올려 기도를 확보합니다.

기도개방을 유지한 채 이마에 있는 손으로 코를 막고 처치자의 입으로 환자의 입을 완전히 덮은 다음

1초에 2회씩 가슴이 올라올 정도로 공기를 불어 넣습니다.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은 각각 30:2의 비율로 반복해서 시행되어야 합니다.

가능한 가슴압박이 5초이상 중단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환자가 움직이거나 119 구급대가 도착할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2. 자동제세동기 사용 심폐소생술 실습

 

 

 

 

현장조사, 현장조사, 현장은 안전합니다.

 

무릎꿇고 앉아

환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괜찮으세요?"라고 말한 후 반응과 호흡을 확인한다.

 

"안경쓴 남자분 119에 신고해 주시고 저에게 통보해 주세요."

"운동화 신고 있는 학생 자동제세동기를 가져다 주세요"

 

 

 

 

환자를 단단한 바닥에 바르게 눕히고

환자의 가슴중아에 두 손을 포개어 손꿈치만으로 가슴을 압박합니다.

(깊이 5~6cm, 분당 100~120회 속도)

 

 

 

 

"자동제세동기 가져왔습니다."

 

1. 전원을 켜고 두 개의 전극을 부착합니다.

전극 1은 오른쪽 쇄골 아래, 전극 2는 왼쪽 젖꼭지 바깥쪽 아래

 

2. 전극을 제세동기에 연결합니다.

 

3.심장리듬을 분석합니다.

CPR을 중지해 주십시요.

 

4. 제세동이 필요합니다.

제세동기가 스스로 설정된 에너지로 충전을 시작합니다, 접촉을 금지합니다.

 

5. 제세동번튼을 누릅니다.

 

 

 

 

6. CPR을 시작합니다.

 

제세동 시행 후 2분이 경과하면

자동제세동기는 다시 분석을 시행하므로 3의 단계부터 순서대로 반복합니다.

 

"제세동 필요하지 않습니다"라는 음성메시지가 나오면

지체없이 가슴압박을 시작으로 기본 소생술을 시작합니다.

환자가 움직이거나 119 구급대가 도착할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심장마미 환자의 90%이상이 현장에 목격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격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 받는 경우는 5~10%에 불과합니다.

 

 

3. 완전 기도폐쇄 환자의 응급처치 실습

실습을 너무 열심히 하느라 사진을 못 찍어서 교재사진으로 대체합니다.

 

 완전 기도폐쇄가 의심되는 환자를 발견하면

먼저 환자에게 "목에 뭐가 걸렸나요?" 또는 "목이 막혔습니까?"라고 물어봅니다.

 

만약 환자가 말이나 기침을 하지 못하고 고개만을 끄덕이거나, 청색증이 진행된다면

환자에게 자신이 도와줄 것임을 밝히고 즉시 복부밀어내기법을 실시해야 합니다.

 

 

 

 

1. 환자 뒤에 서서 한손은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 방향을 환자의 명치와 배꼽사이에 위치시킵니다.

2. 주먹 쥔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서 양쪽 팔꿈치가 환자의 바깥쪽을 향하도록 합니다.

3. 양손으로 환자의 복부를 안쪽으로 힘껏 잡아당기면서 위쪽으로 빠르게 밀쳐 올립니다.

4. 기도 내의 이물질이 나오거나 환자가 의식을 잃을 때까지 계속 실시합니다.

5. 환자가 의식을 잃는다면, 즉시 119에 신고하고 심폐소생술과 이물질 제거를 실시합니다.

 

 

4. 롤 붕대 및 삼각건 사용방법 실습

붕대의 종류는 탄력롤붕대, 사두붕대, 삼각건 등이 있습니다.

 

붕대는 신체의 어떠한 부분이라도 감쌀 수 있습니다.

또한 붕대는 더러운 것으로부터 상처부위를 보호하거나 출혈을 멈추게 하기 위하여 사용됩니다.

 

 

 

 

롤 붕대 감는 방법은

환행대, 나선대, 절전대, 사행대가 있습니다.

보통 환행대로 시작해서 환행대로 룰 붕대 감기를 마칩니다.

 

  

 

 

삼각건 사용시에는 말굽매듭을 이용합니다.

 

 

 

 

삼각건 사용 1

머리에 댄 드레싱을 고정하기 위하여 머리에 사용합니다.

특치 머리에 넓게 상처를 입었을 때 사용합니다.

 

 

 

 

삼각건 사용 2

뺨 또는 귀에 상처가 났을 때 사용합니다.

 

 

 

 

삼각건 사용 3

손바닥에 생긴 상처에 사용합니다.

 

손바닥 압박붕대는

손바닥에 출혈이 있을 때 소독한 드레싱으로 압박용 고임을 하고

손가락을 구부려 주먹을 꽉 주게 한 다음 주먹을 붕대로 감습니다.

 

 

 

 

삼각건 사용 4

팔꿈치 또는 무릎의 상처에 댄 드레싱을 고정시키고 팔꿈치나 무릎의 운동도 가능케 합니다.

팔꿈치나 무릎을 ㄱ자로 구부린 자세로 삼각건을 감습니다.

 

 

 

 

삼각건 사용 5

가슴에 창상, 총상이나 화상을 입었을 때 넓은 드레싱을 고정시키는 데 사용합니다.

 

 

 

 

삼각건 사용 6

인대 등 관절조직이 일부 또는 전체적으로 파열된 상태의 발목염좌에 사용합니다.

 

 

 

 

삼각건 사용 7

어깨나 상완(위팔)엔 댄 넓은 드레싱을 고정하기 위하여 사용합니다.

두개의 삼각건을 사용할 경우에는 그 중의 한 개는 좁게 접습니다.

 

 

 

 

삼각건 사용 8

팔걸이는 어깨손상 시 팔을 지지하거나 고정시키기 위하여 사용합니다.

 

 

5. 근육 골격계의 골절처치 실습

근육 골격계의 골절처치에서는 부목과 삼각건을 사용합니다.

부목을 댄 상처부위의 삼각건은 위, 아래, 그다음 위 아래 순으로 삼각건으로 묶어야 합니다.

 

 

 

 

부목과 삼각건 사용 1

위팔뼈(상완골) 골절

 

팔꿈치를 ㄴ자로 구부리고

어깨로부터 팔꿈치에 이르는 길이의 부목을 바깥쪽에 대고

삼각건을 부러진 뼈 위쪽에 대고 부목을 잘 묶어줍니다.

 

 

 

 

부목과 삼각건 사용 2

팔꿈치뼈(주관절) 골절

 

환자가 팔을 편 자세로 있으면 겨드랑이에서 손가락까지에 이르는 부목을 손바닥 쪽에 대어줍니다.

팔꿈치가 구부러진 채로 있는 환자를 발견하면 팔에 무리가 가지 않게 끌어올리고 팔을 동체에 대고 삼각건으로 고정시킵니다.

 

 

 

 

 

부목과 삼각건 사용 3

무릎뼈(슬개골) 골절

 

부상당한 다리를 곧게 편 후

넓이가 10cm 이상이며 허리에서 발뒤꿈치까지 닿을 정도로 충분히 긴 부목을 다리의 밑쪽에 댑니다.

무릎과 발꿈치 아래에 고임을 대고 붕대 하나는 슬개골 바로 위에

또 하나는 그 바로 아래에 부목과 함께 돌려 묶고 다른 2개의 붕대로 다리와 부목을 단단히 묶습니다.

 

  

 

 

응급처치는

다양성의 존중과 차별 없이

생명을 구하려고 자발적으로 보여주는 인도주의 활동을 말합니다.

 

1박 2일, 12시간 동안

응급처치법 일반과정을 수료하여 수료증을 받았습니다.

 

 

 

 

응급처치법 일반과정을 수료하고 나니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든

응급처치 3단계(현장조사, 119신고, 처치 및 도움)의 위급 시 행동 요령에 따라서

부상자나 급한 환자에게 적절한 처치를 하고 전문의료인에게 인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구불 6길 - 달밝음 길

 

 

구불길은 자연과 사람,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보존의 길입니다.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수풀이 우거진 길을 여유와 풍요 자유를 느끼며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은 군산도보여행 길입니다.

3월 8일 오전 7시 40분 서대전역을 출발한 무궁화 열차는

계룡, 논산, 강경, 익산을 거쳐 9시 22분에 군산역에 도착을 했습니다.

 

 

 

 

옛날 군산은 일제의 한반도 진출을 위한 거점이었습니다.

 

1912년 경부선의 대전역과 이어지는 철도가 개통되고,

1914년 호남선 철도의 나머지 구간이 완공되면서 전북과 충남 지방의 관문 구실을 했었습니다.

 

이곳 군산역에서 한걸음만 옮기면 구불길이 시작됩니다.

군산역은 구불1길 비단강길이 시작하는 곳이면서 4길과 6길이 종점입니다.

 

군산역에서 강바람에 이끌려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구불 6길 - 달밝음 길을 반대방향으로 걷는 것입니다.

 비단결처럼 고운 물결을 담고있는 금강을 따라 시원한 강바람과 함께 걸었습니다.

 

 

 

 

황사로 인해 화창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금강과 서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통 산행이나 트래킹시에 등산복을 주로 입지만

이번 구불 6길 - 닭밝음 길 트래킹에는 평상복을 입었습니다.

 

여기에 블랙야크 YG클래식 백팩

봄나들이용 등산화인 블랙야크 칼리버로 포인트를 주었습니다.

 

 

 

 

한강 이남지방 최초로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핀

구암동산을 지나 경암동 철길마을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 기찻길은 페이퍼코리아선(약2.5km)으로 불렸으며

1944년 4월 4일 개통한 뒤 2008년 6월말까지 화물열차가 다녔습니다.

 

현재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데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곳으로

철길 위에 나란히 서서 사랑과 우정을 확인하는 군산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발걸음을 옮겨 째보선창으로 향했습니다.

째보선창의 본래 명칭은 조선시대부터 죽성포구였습니다.

 

째보선창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유로는 2가지 설이 있다고 합니다.

그 하나는 이곳 선창에 째보(언청이)라고 불리는 객주가 있었는데 그가 포구의 상권을 장악하였기 때문에 불리어 졌다는 설입니다.

또 하나는 포구의 모습이 안쪽으로 째진 모습이 마치 째보(언청이)처럼 생겼다 하여서 불려 졌다는 설입니다.

 

째보선창을 지나면 도시의 골목길을 걸으며 근대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최근 군산에서는 일제 강점기 수탈의 역사적 현장이었던 월명동 일대를 보수, 복원하여

기억의 공간으로 재조명하기 위한 '근대 문화 도시 조성 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근대 역사박물관을 개관하고

근대 건축물인 조선은행 군산지점, 일본 제18은행, 미즈상사, 대한통운창고

등의 원형 복원을 통해 근대 문화 테마거리를 조성하였습니다.

 

 

 

수덕공원을 지나면  홍천사 앞에는 해망굴이 있는데

구)군산시청 앞 도로인 중앙로와 수산업의 중심지인 해망동을 연결하고자 만들어진 반원형 터널입니다.

한국전쟁 당시에 인민군의 작전본부로 이용되면서 폭격기의 탄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본격적인 숲길 트래킹이 시작됩니다.

숲길에는 꽃과 숲이 어우러진 곳으로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군산을 대표하는 이것저것을 만나게 됩니다.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 장소와 군산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수시탑이 있습니다.

숲터널을 걷다보면 3.1운동 기념탑을 만나는데 한강 이남 최초로 호남에서 일어난 군산 3.5만세운동의 발원을 기념하는 탑입니다

군산의 자긍심이 느껴지고 억압과 핍박 속에서도 항거와 애국을 높이 세웠던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느껴집니다.

청소년수련관을 지나면

이제부터 제대로 월명공원 산책을 즐길 수 있습니다.

편백숲과 호수와 등산로가 있고 사람이 있고

만나고 웃고 즐기고 행복을 담아가며 우리는 발을 옮겨서 월명호수부터 가슴에 담기 시작합니다.

 

최근들어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인해

울창하던 산림이 벌목될 수 밖에 없고, 대체조림을 하고 있지만 민둥산 처럼 보여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월명공원 산책로를 지나 나운배수지에 도착을 했습니다.

 

 

 

 

동아아파트 뒤편 생태터널을 지나 부곡산으로 향했습니다.

 

사부작사부작 양말을 벗고 발길이 쉽게 닿지않는 부곡산을 오르다보면

발부터 머리까지 맑아지며 이것이 삼림욕이고 힐링이구나 하는 것이 온 몸으로 전해옵니다.

 

 

 

 

구불 6길 - 달밝음 길은

군산시의 상징인 월명산을 비롯하여 설림산, 점방산, 장계산 등으로 이어져 있는 곳으로

시민들의 안식처이자 대표관광지로써 금강과 서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길입니다.

군산의 중심에 위치한 곳인 월명공원을 뒤로하고

부곡산을 내려와 궁전예식장 앞편 횡단보도를 건너 은파관광안내소에 도착을 했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소통하는 도시 군산에 오시면 구불길 한번 걸어보세요.

어제 모처럼만에 회사에 갔었습니다.

회사에서 반가운 분들을 만났습니다.

 

권경익 산림청 숲길 자문위원과

윤정준 문화관광부 생태탐방로 자문위원을 만났습니다.

 

요즘 턱걸이 해 본적 있냐고...

저녁을 먹다가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옛 기억을 많이 하죠!!!

지금은 할수도 없는 일을...


고등학교 체력장때 턱걸이하는 자신이

지금의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현재를 살아갑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닌데 말입니다.

이렇게해서 턱걸이 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동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턱걸이 하나도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내기에 이겼습니다.

 

모두들 나이가 들어서 근력없는 팔힘보다

중력이 세다는 것을 몸소 느꼈으니까요.


모두들 턱걸이 한번 해 보세요.

대덕사이언스길 코스1

 

 

대덕사이언스길은 도시와 자연, 그리고 과학이 어울어진 전국 유일의 길이다.

 

 

 

 

중앙국립과학관 주차장을 지나 교육과학연구원 앞을 지나면

수형이 아름다운 15m 크기의 회화나무가 서 있다.

 

 

 

 

대덕사이언스길 코스1는 엑스포과학공원내 꿈돌이동산에서

우성이산, 화봉산을 지나 화암네거리에서 대덕대학, 표준과학연구원을 거쳐 매봉공원에 이르는 11.10km로

주변에는 엑스포과학공원, 꿈돌이랜드가 있으며 문화재로는 숭현서원과 김익희의 묘가 있어 아이들이 우리시의 문화재를 이해할 수 있는 산악형 건강 코스이다.

 

나는 위 설명과는 다르게 역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곳부터는 현대식 건물의 삭막함을 뒤로하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힘들게 올라가는 급경사지가 없기에 산책하듯 숲속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매봉산을 넘는 짧은 숲속 산책은

이내 표준연구소 정문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내 횡단보도를 건넌 후 도룡삼거리로 향하면 된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이 길에는 뜻하지 않은 선물들이 있다.

인도 보도블럭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는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다) 나무열매의 조각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곳의 일부 가로수가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다)인 것이다.

 

개잎갈나무는 소나무과의 상록교목으로 잎갈나무(낙엽송)와 비슷하나 상록성이다.

개잎갈나무 보다는 히말라야시다로 더 많이 알려져 있고 히말라야삼나무, 성서에 나오는 레바논 삼나무 또는 설송이라 불리기도 한다.

 

 

 

 

어느 가정집의 대문에서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가 있다.

 

오늘이 바로 삼일절이다.

1919년 3·1 독립운동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민족의 단결과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제정한 국경일인 것이다.

 

 

 

 

도룡삼거리를 지나면 다시 숲길을 걷는다.

숲길은 태전사를 거쳐 화암사거리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나는 숲길을 벗어나 KT대덕연구센터로 하산을 한다.

횡단보도로 도로를 건넌 후 버스정류에 있는 위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림과 글이다.

곧이어, 나는 버스정류장 뒤편 숲으로 다시 올라간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때 상황은 상당히 즉흥적이었다.

 

 

 

 

나는 길도 없는 숲속을 무작정 걷는다.

 

어제밤 내린 눈으로 온통 지표면은 하앟다.

이곳에 내 발작국이 남는다.

 

 

 

 

무엇에 홀린듯 정처없이 걷다가

나는 얼음꽃눈이 활짝 핀 나무가지을 발견한다.

 

좋다. 좋아~

이제는 봄이 왔구나! 라고 느낀다.

 

 

 

 

얼마후 눈쌓인 경사지를 올라오니 화봉산 능선이다.

산을 횡단하여 다시 대덕사이언스길 코스1으로 돌아온 것이다.

 

 

 

 

화봉산으로 향하는 숲길에서 구즉과 신탄진이 보인다.

 

 

 

 

예전에는 화봉산 정상에 경찰폐초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육각정자가 설치되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해발 226m 화봉산 정상이다.

이곳은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휴식의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는 장소이다.

 

 

 

 

나는 화봉산에서 완만한 능선을 따라 우성이산 도룡정으로 걸어간다.

오른쪽에는 계룡산과 왼쪽에는 계족산이 조망되어 숲속을 걷는 즐거움이 배가 되는 순간이다.

 

우성이산 일원은 5백여 년 전 이래로 여흥민씨 선영이 모셔져 있는 세장지로 전통과 정신이 깃든 곳이다.

 

 

 

 

이젠 엑스포과학공원 방향으로 내리막길이다.

주변의 리기다소나무가 줄지어 숲길을 안내하고 있다.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엑스포과학공원과 대전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2시간 30분 후

나는 중앙국립과학관 주차장에 다시 도착했다.

이곳에서 나는 대전공공자전거 타슈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생각하는 부는 충분한 시간과 여행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대덕사이언스길 코스1을 걸은 후 오늘 나는 엄청난 부를 소유했다.

계룡산 산행 - 아름다운 동행

 

 

저는 SNS에 대해 저만의 생활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트위터를 제외하고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밴드 등의 SNS를 전혀 이용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카카오톡도 이용하지 않습니다.

 

SNS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구시대 사람같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SNS를 통한 이야기의 90% 이상이

아무 의미없이 주고받는 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과감히 제 생활에서 그 부분을 제외한 것입니다.

 

 

 

 

 

오늘은 충청셰르파의 지역 모임을 겸한

블랙야크 명산100 첫 도전을 하는 도전자들과의 산행으로 계룡산을 찾았습니다.

 

원래는 아침 10시부터 산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침 7시 3분 이명섭 사다 셰르파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서울남부터미널을 7시에 출발하여 8시 50분쯤 학동삼거리에 도착합니다.

 

헉... 문자를 다시한번 확인했습니다.

 

 

 

 

곧이어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처음보는 번호입니다.

처음보는 번호라면 제 핸드폰에 등록이 안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 절대로 낯선 번호의 전화는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받고 말았습니다.

전날 밤 10시 29분에 김창현 셰르파가 문자를 보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내일 대전 도전자 두분이 함께 갈건데 문셰르파 연락처를 알려줬습니다.

 

여보세요.

핸드폰에서 낯선 여자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진찍기를 무척이나 싫어하시는 아직까지도 이름을 모르는 위 사진의 도전자이십니다.

 

 

 

 

전날밤

밴드를 통해 1시간 산행이 일찍 이루어진다는 것과

대전에서 도전자 2분이 함께 계룡산 산행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트위터를 제외한 SNS를 사용하지 않는 저만이 이 모든 사실을 모르거나 나중에 알게 된 것입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즐겁게 산행을 하면은 되는 것이지요!!

 

이런 저런 사연들로 조금 늦게 합류하기로 한 충청셰르파를 제외하고

서울에서 오신 6분의 도전자분들과 대전 도전자 1분, 이명섭 사다셰르파 그리고 제가

계룡산 동학사탐방지원센터 분기점에서 천정골 방향으로 아주 천천히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큰배재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습니다.

평소같으면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오늘은 1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큰배재로 향하는 등산로 중간의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명섭 사다 셰르파가 횡성 더덕무침을 직접 해 가지고 오셨습니다.

 

난 무릎이 안좋아서...(연장자)

내년에는 내가 산을 탈 수 없을 것 같아서...(최고 연장자)

저는 돌길이 싫어요...(대전 도전자)

저는 자전거는 많이 타는데 산행은 처음입니다... (젊은 남성도전자)

 

가만히 도전자들의 사연을 듣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했습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느리지만 결코 느리지 않은 그들만의 계룡산 산행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큰배재를 지나 남매탑에 도착을 했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모두들 승리를 한 순간이었습니다.

 

시야에는 남매탑 주변의 잎이 진 나목위로 겨울바람이 차갑게 불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남의 행복과 비교해서 느끼는 불행이 있는가 하면

남의 불행과 비교해서 얻는 작은 위로도 있습니.

 

사연이 각양각색인 명산100 첫 도전자들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아무런 사고도 없이 남매탑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남매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곧바로 하산을 하지 말고 계룡산 주능선을 볼 수 있는 삼불봉까지만 올라갔다 하산을 하자고 말입니다.

 

모두들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주저없이 동의를 했습니다.

이분들에게는 두렵지만 셀레는 또 하나의 도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어제밤 살짝 내린 눈때문인지

개인적으로는 계룡산의 겨울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했습니다.

 

 

 

 

짧은 거리이지만

급경사지의 돌계단과 철제계단을 올라 모두들 삼불봉에 도착을 했습니다.

모두들 한동안 말없이 계룡산의 주능선을 바라다 보시고 계셨습니다.

 

아쉽게도 자연은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제가 원했던 겨울설산을 연출되지 않았습니다.

 

 

 

 

도전자분들이 안개낀 계룡산의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은

갓난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때의 순수함을 간직한 또 다른 세상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정말로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모두들 삼불봉에서의 감동을 그대로 간직한 채

동학사 방향으로 남매탑을 지나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동학사 앞을 흐르는 세진정에서는

혹한을 견딘 보상인 봄에 피는 꽃을 구경하기엔 이르지만

청명하게 흐르는 계룡산의 아름다운 물줄기는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부처에게 공양으로 바치는 쌀인

공양미를 사 가지고 동학사 대웅전에 갔습니다.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합니다.

 

오늘 명산100 첫 도전자들과 함께한 계룡산 산행은

많은 도전자들이 비록 몸은 조금 불편했지만 마음은 정말로 충만했던 분들이라서 좋았습니다.

 

 

 

동학사를 비추는 오후 햇살은

풀, 나무, 사람을 가리지 않고 골골루 비추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5시간이 훨씬 넘는 계룡산 산행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수고 많이 하셨고 다음에 또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비록 관음봉까지 가지 못해서

5시간이 넘은 오늘 계룡산 산행은 실패라 말하지만

실패라는 씨앗이 나중에는 꼭 성공의 열매가 맺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변방의 달마산

 

 

일반적으로 변방은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 지역을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살고 있는 대전을 중심으로 멀리 떨어진 주변부를 변방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대전을 출발한 후

광주, 나주, 영암, 해남을 거쳐 완도에 왔습니다.

 

지금 저는

완도대교 아래 달마산과 두륜산이 보이는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 한 선착장에 서 있습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달마산 암벽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다시 오른쪽 고개를 돌리면

두륜산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 결심했어!!

대전에서 조금 더 먼 변방의 달마산으로 먼저 가자!!

 

한참을 망설이던 저는

그저서야 변방의 달마산을 뚫어져라 쳤다보았습니다.

 

 

 

 

완도에서 다시 해남으로 차를 타고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송지면 서정리에 위치한 미황사에서 달마산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 것입니다.

 

미황사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관광버스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변방의 달마산 산행은 미황사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미황사에서 달마산 달마봉을 거쳐 귀래봉, 떡봉, 도솔봉을 지나 마봉리로 하산을 했습니다.

 

 

 

 

미황사는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에 있는 사찰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입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오백나한전, 응진전, 명부전, 칠성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기타 석조, 당간지주 등의 문화재가 있습니다.

 

 

 

 

미황사를 잠시 구경한 후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했습니다.

 

비교적 완만한 숲길을 걸어간지 채 몇분도 안되어

일렬로 줄을 지어 산행을 하고 있는 등산객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난감한 일입니다.

 

한 두명이었다면 '실례합니다. 먼저 지나 가겠습니다.' 라고 말했을 텐데.

맨 뒤에서 바라본 줄선 사람들의 선두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한참을 느린보 걸음으로 그렇게 뒤어서 걸었습니다.

결국엔 급경사지의 암반 오르막에서 모두를 한꺼번에 추월할 수 있었습니다.

 

여유가 생긴 저는 바위에 서서 주변을 바라보았습니다.

송지면 일대와 함께 저멀리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죽도, 서당도, 하마도, 중마도가 차례로 보입니다.

 

 

 

 

'꿈을 담는 도서관'이 있는

해남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도 보입니다.

 

서정분교는 마을 사람들이 울력으로 세운 학교입니다.

교정의 돌과 나무 하나하나가 모두 마을 사람들이 달마산에서 캐어 와서 심은 것입니다.

 

 

 

미황사 금강스님은

서정분교는 학교의 폐교를 막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 낸 분입니다.

그리고 '꿈을 담는 도서관'이라는 현판의 글씨를 쓴 분이

2016년 1월 15일 향년 74세로 생을 마감하신 신영복 교수님이십니다.

 

위 그림은 제가 2016년 들어 일곱번째로 읽은

신영복 교수님의 책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의 내용을 찍어 편집한 이미지입니다.

 

7. 변방을 찾아서 - 신영복 145p

 

 

 

 

지체없이 달마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달마산은 해남군에서도 남단에 치우쳐 긴 암릉으로 솟은 산입니다

 

 

 

 

 

달마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환상적이었습니다.

봄처럼 따뜻하고 맑은 날, 달마산을 찾은 저는 행운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기 전에 서둘러서 인증샷을 찍었습니다.

 

 

 

 

두륜산과 대둔산을 거쳐

완도로 연결되는 13번 국도가 지나는 닭골재에 이른 산백은

둔덕 같은 산릉을 넘어서면서 암릉으로 급격히 모습을 바꾸고 있습니다.

 

 

 

 

봉화대가 있는 달마산 정상(불썬봉)에서

달마산을 병풍 삼아 서록에 자리잡은 미황사가 보입니다.

 

미황사는 어여쁜 소가 점지해준 절인 동시에

경전을 봉안한 산이라는 뜻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덧 등산객들이 하나둘씩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로 붐비는 달마산 정상에서

도솔봉으로 향할 시간이 되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위험한 암릉구간을 이동하여 작은금샘삼거리에 도착을 했습니다.

따뜻한 남쪽지역이라 그런지 겨우내 꽁꽁 얼어 있었던 땅이 벌써 녹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간식으로 곶감을 먹기 위해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요즘들어 산행을 할때마다 제가 행동식으로 챙기는 음식이 곶감입니다.

 

이 곶감은 산 곶감이 아니라

우리집 마당의 감나무에서 가을에 직접 딴 감을 곶감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 감나무는 제가 초등학교 2학년(1982년)때에 아버지와 함께 집 마당에 심었던 나무입니다.

 

 

 

 

잠깐의 휴식과 행동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한 저는 또다시 암릉을 타고 올랐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인적이 드문 암릉 꼭대기에 흑염소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도 안전로프를 잡고 겨우 올라오는 힘든 이곳에 어떻게 올라왔을까요??

 

정말로 궁금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이곳을 지나간다는 것을

이 흑염소는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제가 완도대교 아래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 한 선착장에 서서 달마산을 바라본 것 처럼

이곳에서 흑염소는 제가 서 있었던 완도대교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짧은 흑염소와의 만남은

저로 하여금 자연풍경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을 갖게 해준 것 같습니다.

 

암릉은 달마산 정상을 거쳐

도솔봉(421m)까지 약 8㎞에 거쳐 그 기세를 전혀 사그러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 암릉은 땅끝에 솟은 사자봉에서야 갈무리 합니다.

 

 

 

 

대밭삼거리, 큰금샘, 떡봉을 거쳐 도솔암에 도착했습니다.

 

산길 오솔길을 걸어서가야 도착할 수 있는 사찰이 도솔암입니다.

이 길은 웅장한 바위와 시원한 들녘과 바다가 조망되는 정말로 호연지기의 길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도솔봉에서 신비한 기암괴석 너머로 펼쳐진

산 아래 촌락과 들녘 그리고 바다가 너무나도 청정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마봉리로의 하산길에

맛있는 한라봉을 먹으면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이번 달마산 산행은 두 눈으로 자연의 청정함을 만끽하였고

입으로는 제주 한라봉의 상큼함을 맛 보았던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함박눈의 겨울산행

 


가리산은 강원도 춘천시와 홍천군에 걸쳐있는 산입니다.

정상에는 3개의 봉우리가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발 1,051m의 명산입니다.


 

 


홍천고개에서 가리산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산행코스는

홍천고개~가삽고개~가리산 정상~무쇠말재~합수곡~가리산 자연휴양림 주차장

로 이어진 약 9.3km의 거리입니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약간 쌓여 있는 경사지의 등산로를 올라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힘겹게 능선부에 올라서서 아이젠을 착용했습니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겨울이 되기전 떨어진 나뭇잎들이 두껍게 쌓여 있었고

그 위에 눈까지 쌓여 있어서 생각보다 훨씬 미끄러웠습니다.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산행전 홍천고개에서 잠깐 보았던 주변풍광은 이내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가삽고개까지는 능선을 타고 끊임없이 오르막길이라서 연신 숨이 차오릅니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서 멈추었습니다.


가리산은 가래나무가 많아서 가래산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는데

현재는 가래나무는 찾아보기 힘들고 신갈나무 등 참나무류의 숲이 울창합니다.


신갈나무 등 참나무에 주로 기생생활을 하지만

엽록소가 있어 초록색을 띠고 있는 겨울살이가 흰눈이 내리는 날이라서 잘 보였던 것입니다.



 


벌써 4년동안 겨울산행의 동반자였던

아이젠을 다시금 확인한 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비좁은 등산로를 따라서 무작정 걷고 있는

앞서가는 사람들의 아이젠을 착용한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낙엽과 눈이 발을 잡아 당기는 것 같았습니다.



 


가리산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만에

먼저 산행을 시작한 한 무리의 다른 등산객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비좁은 등산로를 일렬로 움직이기에 잠시 저도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가삽고개를 지나면서 그들을 모두 추월했습니다.

흰 눈이 내린 등산로에 흰 도화지의 여백처럼 여백이 생겼습니다.


산 정상부 능선에는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층에는 두릅나무, 철쭉, 싸리나무, 산초나무 등 수많은 관목류가 보입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그 여백에

피나물, 애기똥풀, 양지꽃, 등 수많은 야생화가 피어날 것입니다.



 

 

어느덧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너무 눈이 많이 내리기에 점심을 먹을 장소를 찾는다는 것이 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행동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곶감과 어머니가 직접 만드신 땅콩, 깨 등으로 만든 한과류로 주전부리를 했습니다.

겨울산행에는 열량이 높은 행동식이 최고입니다.


 

 


가리산 2봉에 올랐습니다.

함박눈과 안개로 주변 풍경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 바로 옆의 큰바위 얼굴만 보일 뿐입니다.


가리산 2봉 정상의 바위는 사람얼굴과 너무 닮아 ‘큰바위얼굴’로 불리웁니다.
가리산 아래에 펼쳐진 고산준령들과 소양호를 응시하는 큰바위 얼굴은 가리산을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큰바위 얼굴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250년 전 조선 영조시대에 가리산이 있는 홍천 두촌면 천현리에 한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선비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활달해 공부를 잘 했고 틈틈이 가리산 정상에 올라 책을 읽고 휴식을 하면서 호연지기를 키웠습니다. 20살 때 과거에 장원급제 한 후에는 판서까지 올랐습니다. 그후 판서가 앉아서 공부하며 호연지기를 키우던 가리산 2봉 암벽이 조금씩 사람얼굴을 띠며 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가리산 큰바위 얼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가리산 큰바위 얼굴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주변지역에 사는 선비들이 가리산 2봉정상에 올라 학업과 호연지기를 키워 과거에 급제하는 이가 많았다고 합니다.


 

 


소양호를 조망할 수 있는 3봉을 다녀온 후

다시 2봉의 큰바위 얼굴을 지나 1봉인 가리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2봉에서 바라보는 가리산 정상은

순식간에 함박눈처럼 흰 물감으로 색칠하여 물들인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이 쌓인 급경사지의 구간을

설치된 안전로프를 잡고 조심스럽게 올라갔습니다.



 


가리산의 산 이름인 가리는

"단으로 묶은 곡식이나 땔나무 따위를 차곡차곡 쌓아둔 큰 더미"를 말하는 순 우리말로써

산봉우리가 노적가리처럼 고깔 모양으로 생긴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가리산 정상 남쪽에서 홍천강이 발원하여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의 수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느덧 함박눈이

소나무 가지의 솔잎마다 하얀 솜이불을 덮었습니다.


점점 더 눈이 많이 내리기에 서둘러서 하산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가리봉 정상에서의 하산길도 쉽지는 않습니다.

흰 눈이 쌓여 있으며 곳곳에 얼음이 얼어서 상당히 미끄러운 암반길을 안전로프를 잘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갔습니다.



 


가리산 정상에서 하산을 하다가 바위에 매달려 있는 고드름을 발견했습니다.


고드름은 흘러내리던 물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길게 얼어붙어 매달린 얼음을 말합니다.

고드름은 얼음이 녹고 얼 수 있도록 영상과 영하의 기온이 함께 있어야 생긴다고 합니다.





가리봉 정상에서 비교적 평탄한 지점까지 하산을 했습니다.

이제는 무쇠말재를 거쳐 합수곡기점을 지나 가리산 자연휴양림으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합수곡 기점을 지나고

가리산 강우레이더 관측소의 모노레일까지 하산을 했을때 함박눈을 더욱더 거세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늦게 하산을 했더라면 하산길이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하산을 한 후 주차장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았습니다.

머리에 쓴 비니에 쌓였던 함박눈이 녹아 어느새 얼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함박눈으로 인해 아름다운 가리산의 주변풍광은 보지 못했지만

2016년 들어 처음으로 눈꽃산행을 신나게 했기에 그것만으로도 만족한 산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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