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문자 한 통이 왔다. 늘 오는 스팸 문자겠지.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대학 동기의 모친상 부고 문자였다.

죽음. 50대인 나에게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하나의 사건이 되어버렸다. 잠들기 전에 수원행 기차표를 예약했다. 30년 전에 가본 수원은 내 기억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오후 126분 무궁화호 기차를 탔다. 기차는 만석이었고 각자의 목적지에서 내리고 새롭게 타는 사람들이 반복될 뿐이었다.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영어회화를 들으면서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 눈 쌓인 풍경에 가끔 눈을 돌렸다.

수원역을 벗어나자 정면으로 쭉 뻗은 도로가 펼쳐졌다. 버스를 타지 않고 양지바른 길을 따라 그냥 걸었다. 한파가 막바지라서 음지는 엄청 추웠고 점퍼가 아닌 외투를 걸친 나는 더 추위를 느꼈다. 20여 분을 걸었을 때 팔달문과 마주했고 아무 생각 없이 팔달산을 올랐다. 성벽을 따라 걷다가 서장대에서 수원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성벽을 따라 화서문과 장안문을 지나 화홍문까지 왔다. 성벽 길을 내려와 방화수류정을 감상하고 하천길을 따라 걸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430분이었다. 천천히 성빈센트병원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조의금 봉투를 쓰고 8호실로 향했다. 방명록에 서명하고 조의금을 조문함에 넣었다. 상주 자리에 상주가 없어 기다리다 조문객과 이야기 중인 상주를 발견했다. 어색하지만 조문객과 상주의 예를 갖추고 조문을 마쳤다. 저녁을 먹고 혼자 소주를 마시면서 빈소에 남아 있었다. 일가친척을 제외하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끔 두세 명의 지인들이 찾아왔다. 점심때 대학 동기 2명이 다녀간 것을 제외하고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어색한 것보다는 오랜 시간 뻘쭘하게 혼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싫었다.

인터넷의 발달은 조문 방식도 바꿔놓았다. 먼 거리이지만 마음을 내어 찾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는 이미 지난 것 같다. 요즘은 많은 사람이 계좌에 조의금을 이체하고 카톡으로 조의를 표하고 있다.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과연 인간관계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담배 피우러 나가자는 상주의 말에 밖으로 나왔다. 그때가 오후 730분이었다. 상주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무거웠다. 세상은 네온사인이 어두워진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거리의 인파를 지나 수원역까지 터벅터벅 걸었다. 낯선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쓸쓸한 기분을 음악으로 달래며 밤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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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새벽 5. 이불 밖을 벗어났을 뿐인데 온몸이 서늘하다. 비가 내렸고 그 비가 눈으로 변했다. 그리고서 겨울다운 한파가 찾아온 것이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던 보일러를 가동한다. 화장실 입구 왼쪽 벽면에 있는 전원을 어둠 속에 누른다. 문을 열고 화장실 불을 켠 후 보일러 스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길게 뻗은 연통이 용트림하듯 큰 소리를 내지며 보일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마치 뱃고동 소리처럼 새벽하늘에 우렁찬 외침으로 절규한다.

엄마 방으로 간다. 어둠 속에 텔레비전이 켜져 있고 이미 깨어 있는 엄마는 밀크커피를 마시고 있다. 방 안 공기에는 달곰한 커피 향이 자유롭게 떠다니는 듯 내 코를 자극한다. 포트에는 이미 끓은 물이 있다. 방 불을 켜고 나도 커피를 탄다. 잠자느라 당이 떨어졌는지 입에 대기도 전에 냄새에 푹 빠져버린다.

 

오늘은 일찍 집을 나선다. 크리스마스 때에 맹추위가 기성을 부리다 연말이 되면서 따듯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해가 바뀐다는 것은 50대에 들어선 나에게 죽음이 한 발짝 더 다가왔다는 의미이다. 삶 속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내 삶을 더 충만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육체가 움직일 수 있을 때 마음이 원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게 나이니까.

한파가 지나고 기온이 예년 기온을 회복한 것 같다. 아침을 먹고 배낭에 이것저것을 챙겨 넣는다. 오랜만에 계룡산을 갈 생각이다. 107번 버스를 타고 동학사정류장에 왔다. 주차장과 도로에는 눈이 쌓여 있다. 터벅터벅 도로를 걷는다. 오늘은 동학사로 가서 천정골로 하산할 생각이다. 구름이 점점 산을 집어삼키고 있다. 나는 점점 구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동학사를 지나 등산로 초입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쉼 없이 걷는다. 물도 먹지 않고 쉬지도 않고 정상까지 한 번에 올라간다. 주차장에서 관음봉 정상까지 정확히 1시간 30분이 걸렸다. 오랜만에 산행의 짜릿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구름에 휩싸인 산은 나를 지워버리고 있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 전에 하산을 시작한다.

바람은 구름을 뚫고 갑사에서 불어와 산릉을 넘어 동학사로 향한다. 올해의 온갖 사연들이 바람에 실려 와 상고대가 피어있는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내 마음을 세차게 때린다. 시계가 없어 삼불봉을 오르지 않고 남매탑으로 내려간다. 허기진 배를 전투식량으로 채우고 천정골로 하산을 한다.

 

요즘 하루가 신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여행준비를 마치려고 한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로 유럽여행을 갈 계획이다. 아직 5개월도 더 남았지만, 하루하루가 설레는 기분이다. 일정을 계획하고 세부적인 것들을 알아보는 과정이 재미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뭔가에 애정을 쏟는다는 것은 삶의 활력을 준다. 그 뭔가가 난 여행이니까 더 좋다.

이제 하루 남았다. 정확히 12시간 30분 남았다.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 건가? 스스로가 분주해진다. 내년도 계획도 세우고 올 한해를 정리해야 한다. 할 일이 많은데 머리는 쇠망치에 맞은 듯 띵하다. 차분차분 한가지씩 저리를 해야 하는데. 내년에는 화려한 한량이란 신조로 현실의 비루한 한량을 벗어나 보자.

 

비가 내린다. 2023년의 마지막 날이라 구슬피 우는 건가? 아니면 묵을 때를 씻어버리고 싶은 마음인가? 세상은 고요한 적막이 어둠과 함께 찾아왔다. 가로등 불빛이 대로에 띄엄띄엄 희망의 빛을 발산할 때 그곳에서 한줄기 비가 불빛을 가른다. 오늘은 저무는 해를, 내일은 떠오르는 해를 기다릴 테지. 그게 인생이다.

 

Good Bye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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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첫째 주 목요일

아침에 나는 카키색 바지에 검은 스웨터를 입고 검은색 목도리를 한 후 아이보리색 점퍼를 입었다. 발목까지 오는 운동화를 신고 검은 장갑을 낀 체 미세먼지가 하늘을 여러 번 덧칠한 희끄무레한 하늘을 올려다본 후 길을 걸었다.

내가 걷는 왕복 8차선 도로는 지하터널을 빠져나온 차량이 학교 앞 횡단보도 앞에서 속력을 줄였고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엄마 손에 이끌려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길가에 아무렇게 놓인 공유 전동킥보드는 이용자의 비양심만큼 녹슬어 있었다. 오늘 한낮의 기온이 영상 7까지 올라가는 겨울치고는 따뜻한 1월의 한낮이다.

 

스물다섯 살 여름

나의 첫 해외여행으로 한 달 동안 베트남을 다녀왔다. 그 이후 싱가포르, 인도, 네팔,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라오스, 홍콩, 마카오, 러시아를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10개월 동안 다녀왔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낯선 나라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도시를 봤고 농촌을 봤고 산을 봤고 강과 바다를 봤다. 밤이 되면 지는 해의 자취를 따라 하늘을 봤고 달과 별을 봤다. 하지만 결국 내가 본 것은 낯선 사람들 속에 머물고 있던 나 자신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스무살이라는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남들이 흘리는 눈물보다 더 빨리 우리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위 문장을 각색하여 내 남은 인생을 표현해 봤다.

똑같은 365일이지만 작년보다 올해가, 똑같은 24시간이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더 빨리 지나간다고 느끼는 오십 살이 지나고 나면 오십 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십 살 이후가 오는 것이다.

나는 더는 스무 살이 아니다. 그보다 두 배 반이나 더 나이를 먹었다. 스무 살 때의 내 모습에서 이미 많이 변환 내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십 살, 내 나이다.

생물학적 오십은 작년 가을이었지만 어쨌든 202315일 나는 정확히 만 오십 살이 되었다. 100세 달리기에서 이제 반환점에 도달했는데 나머지 50년을 더 열심히 달려야 하나 아니면 다른 길로 빠질까 고민 중이다.

처음의 40년은 뭣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삼십 대까지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지만 고단한 현실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다. 사십 대까지는 이기지도 못하는 현실과 치고받고 싸우느라 나를 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될 대로 되겠지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나에게 사십 살 이전은 그런 시절이었다.

사십 대에 들어선 후 최근까지 무척 계획적인 삶을 살았다. 뭐든지 계획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룬 성과도 여럿 있었지만, 삶이 조금씩 지쳐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나는 상상을 한다.

오십 살의 여섯 번째 달에는 자동차를 타고 동유럽을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름 오십 년을 그럭저럭 잘 살았으니까 6월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스물다섯 살에 베트남을 다녀온 후 죽기 전에 전 세계를 여행해야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세웠었다. 돈 때문에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여행에 필요한 충분한 현금을 확보하느라 아주 계획적으로 돈을 모았다. 나에게 시간은 언제나 충분하니 망설이지 말고 떠나자!

이제 나의 무대는 유럽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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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거의 매일 책을 읽고 짧은 글을 쓴다. 매일 반복되는 특별한 것 없는 단순한 하루를 살고 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소신에 따라 당당하게 행동한다. 감정표현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행복이 내 삶의 목적이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데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려고 노력할 뿐이다. 인간은 본시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는 생존본능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생존을 위한 활동에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하여서 해 나갈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각자의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공유하는 삶이 확실히 존재한다. 집단이 개인보다 우선시 되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은 후 순위가 된다. 자유와 행복은 사회적 동물에게 필요했던 생존 도구이다.

사회 구성원의 삶은 행복할까?

행복하려면 즐거워야 하는데 많은 사람과 삶을 공유한다고 즐거울까? 많고 적음,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친밀한 감정이나 태도가 더 중요하다. 모든 사람과 친밀하게 지낼 수는 없다. 소수라도 나와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자유로운 삶이 좋다.

나는 자유로운 삶을 위해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안락함을 포기했다. 자유로운 삶은 생각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 일정 부분 물질에 대한 마음 비움이 필요하다.

돈을 좇기 시작하면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일만 최소한으로 하고 있다. 돈에 집착할수록 더 많은 돈을 갖고 싶어진다. 소유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늘어나고 소유물에 스스로가 저당 잡히고 만다. 결국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결국, 나는 없고 물질만 남는 삶이 되고 만다. 삶은 내가 사는 것이지 물질이 사는 게 아니다. 무언가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 더 크게 자유로워진다. 행복은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다. 삶은 자유를 추구할 때 한 걸음 더 행복에 가까워진다.

돈이 적다고 가치 없는 삶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다면 인간관계 속 행복을 찾아야 한다. 적게 일하더라도 즐기면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의 삶은 지나칠 정도로 소유 지향적이다.

풍족하게 물질을 소유하려고 평생을 돈을 벌기 위해 살고 있다. 돈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위한 필수품이지만 돈의 씀씀이가 자유와 행복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돈에 의존한다고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느끼는 것이다.

소유하지 못한 것을 갈망하면 불행을 느낀다. 더욱더 더 바라는 마음 때문에 만족할 수 없다. 소유한 것에 만족하는 생각과 태도를 가지면 행복을 느끼게 된다. 행복이 눈앞에 있는데 눈뜬장님이 될 것인가?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종종 일상을 탈출하여 나에게 자극을 줌으로써 행복해진다. 행복은 생각만큼 멀리 있지 않다. 가을바람에 낙엽들의 속삭임을 듣는 것과 같다. 어둠이 밝음과 이웃하듯 서로가 만나는 시간이 행복이다. 그래서 늘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행은 생존에 유익한 활동이다.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할 때 행복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잠시 일상을 벗어나 여행에 매진하면 그 순간 행복을 느끼고 나의 여행지는 행복한 세상이 된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행복은 뇌를 자극하는 감정의 경험이다.

자 떠나자. 일본 규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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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첫 주말이다.

한주만 더 지나면 추석이다. 명절을 앞두고 즐거워야 할 세상은 구겨진 종잇조각처럼 뒤숭숭하다. 경기침체도 침체지만 여름내 조용했던 태풍이 명절을 앞두고 북상을 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힌남노이다. 각가지 뉴스매체는 연신 역대 최고의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추라고 당부하고 있다. 또한, 제주 서귀포로 진입할 태풍 힌남노의 경로는 여수, 통영 등 남해안을 통과한 후 경주, 포항, 울산 등을 거쳐 울릉도 인근 동해안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자마자 집을 나왔다. 내일이면 우리나라가 직접적인 태풍 영향권에 들어서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고 싶었다. 걷는 것보다는 자전거를 타는 게 더 멀리까지 가볼 수 있다. 페달을 힘차게 밟으니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층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주변 녹음이 한층 더 짙어진 하천 변 자전거길을 통해 이동한다. 도심지를 벗어나니 공기의 냄새가 평소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공기에 물비린내가 짙게 묻어있다. 세상은 고요하고 하천의 물 흐르는 소리는 오늘따라 더욱 애달프게 들린다. 자전거를 타고 30여 분만에 계룡산 수통골에 도착한다.

 

 

서서히 잿빛 구름이 몰려든다.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서 옷은 이미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수통골 주차장은 만차다. 등산객과 인근 식당 이용객들이 많다 보니 주차장은 언제나 차산차해를 이룰 수밖에 없다. 태풍이 오기 전 조금이라도 여가를 더 보내려는 사람들로 수통골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수통골까지 온 김에 빈계산, 금수봉, 도덕봉 종주는 시간관계상 안 되고 가까운 빈계산만 올라갔다가 오려고 생각 중이다. 자전거를 주차장 한쪽에 세우려 하는데 잘 안된다. 공공자전거라 전용구역 외에 반납처리가 되지 않았다.

 

 

자전거를 재대여하다.

복잡한 수통골을 벗어나 한밭대 정문에서 공공자전거를 반납하고 바로 재대여한다. 대전 공공자전거 타슈는 1시간 이내에 반납하면 무료로 다시 재대여할 수 있다. 작년까지는 매해 1년 회원권(30,000)을 구매하여 이용했었다. 올해부터 앱도 바뀌고 자전거도 바뀌어서 더욱 편리하게 이용 가능해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전거가 예전과 비교해 턱없이 적다는 점이다. 다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이적까지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로 다니며 1시간 동안 자전거를 알차게 타려고 한다.

 

 

광수사에 왔다.

수통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대한불교 천태종 힐링 행복 도량이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보다는 불교가 조금 더 친숙하다. 세계와 나를 따로 구분하는 이원론보다는 세계와 나는 하나인 일원론을 더 믿는다.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一切唯心造).

포대화상은 대 자유인이다.

긴 막대기에 포댓자루 하나 둘러메고 뚱뚱한 몸집에 항상 웃는 얼굴로 세속 모든 이들과 분별없이 어울리며 불법을 전하고 탁발한 모든 것을 어려운 중생에게 나누어주며 무애(無碍)의 삶을 살았다. 자연과 함께 행()하고 자연으로 돌아간 걸림 없는 대 자유인이다.

 

 

거리를 누비다.

자전거는 도로를 건너고 새로 구획정리가 된 주거지구의 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대부분 비슷한 형태의 건물들이지만 간혹 한옥도 있고 특이한 모양의 건물도 있고 넓은 자연공원도 있다. 간판을 대충 눈으로 훑어보다 특이한 이름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보물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들녘은 아직 푸르다.

하천의 제방길을 따라간다. 왼쪽은 하천이 흐르고 오른쪽은 드넓은 들녘이 펼쳐진다. 밭도 있고, 논도 있고, 과수원도 있다. 들녘에는 아직 익지 않은 초록의 벼가 물결치듯 출렁거린다. 자전거를 멈추고 논에 가까이 가본다. 낱알은 아직 여물지 않았지만 벼는 벌써 고개를 숙이려고 한다.

 

 

세상은 변한다.

제방길은 어느새 좁은 마을 길로 이어진다. 재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여러 가구 수가 살았던 곳인데 지금은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내 키보다 두 배나 높은 담벼락은 세상의 모든 아픔을 다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얗던 담벼락은 거무칙칙한 그을음으로 얼룩져 있고 그 아래의 하수도에 매캐한 시궁창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나무만이 그대로 서 있다.

모두가 떠나고 황폐해지어 버린 그곳에는 여전히 나무가 서 있다. 보여줄 사람도 없는데 한층 더 성장해 잎을 피웠고 한낮의 태양을 가려 그늘을 마련해주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오늘처럼 구슬프게 들리는 건 왜일까? 이번 태풍에도 부러지거나 뽑히지 않고 잘 버텨주기를 간절히 빈다.

 

 

비가 내린다.

주말은 어찌어찌 버텨내더니만 결국 월요일이 되어서 비가 내린다. 아직은 간접적이긴 하지만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서고 있다는 증거다. 대전은 중부지방이고 내륙이다 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 태풍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 같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분주하다.

물에 불린 쌀을 빻아다 냉장고에서 숙성을 시킨 후 반죽을 시작한다. 요즘 집에서 송편 빚는 집이 있을까? 우리 집은 명절날이면 아직도 떡을 직접 빚는다. 시중에 파는 떡은 별로 안 좋아하셔서 번거로워도 집에서 직접 빚는다. 나는 떡을 잘 안 먹는데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떡을 다 좋아하신다. 솔잎과 함께 쪄진 송편이 오늘따라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어둠이 찾아왔다.

열린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낙숫물이 처마를 타고 대야에 폭포수처럼 떨어지고 있다. 비 오기 전의 후텁지근함은 어느새 싸늘함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따금 들려오는 바람의 커다란 고함을 들으며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아침을 기다린다.

새벽 5.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습관적으로 알람을 끄고 불을 켠다. 날이 밝으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간밤에 발생한 일들이 궁금하여 텔레비전 전원을 켠다. 매체는 연신 태풍 속보를 방송하고 있다. 예상했던 태풍의 위력보다는 약해졌다지만 태풍이 동반한 강풍의 위력은 대단했다. 남쪽 해안가보다 동풍이 발생한 경주 포항의 피해가 훨씬 더 컸다. 태풍 힌남노는 오전 7시를 지나 동해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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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지났다.

돌풍이 바람의 방향을 순식간에 변화시키듯 계절은 여름을 지나 겨울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직 8월 하순이지만 아침저녁의 체감온도는 이미 가을로 접어들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창문을 활짝 열고 선풍기를 켜놓고 잤었는데 지금은 창문을 닫고 얇은 이불로 배를 덮고 잔다.

 

새벽 5.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2주 전에 바꾼 핸드폰 알람 소리가 익숙하지 않지만, 몸에 밴 습관은 나를 깨우기 충분하다. 확실히 어둠은 색이 더 짙어졌고 길어졌다. 커피포트의 전원을 켜놓고 밖으로 나온다. 아직 뽑지 않은 고추와 새로 파종한 씨앗에 물을 준다. 여름만큼 충분히 물을 주지 않아도 촉촉하게 대지가 젖어 든다.

 

커피를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믹스를 큰 머그잔에 타 먹는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김에서 달콤한 향이 코를 찌른다. 뜨거움을 조금이라도 식히려고 호호불어가며 머그잔에 입을 대었다 떼기를 반복한다. 나른한 몸을 일순간에 깨우는 달콤함이 혈관을 타고 흘러 구석구석 퍼져나간다.

 

벌초 날이다.

아침의 느긋함은 해가 뜨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뭇국에 밥을 말아 먹고 낫 2, 갈고리, 소주, 담배, 육포, , 음료수, 빵 등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한다. 어제 오후에 녹슨 낫을 열심히 숫돌에 갈아 두었다.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등산화를 신으면 벌초 준비는 끝이 난다.

 

 

고속도로를 달린다.

집에서 불과 1시간의 거리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고속도로는 정체가 시작된다. 지금은 용담댐으로 수몰되어 마을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지만, 선조의 혼이 서린 지역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금산에서 용담댐 수문을 지나면 한적한 도로가 계속된다. 작년의 홍수피해로 방류를 많이 했는지 댐의 수위가 한결 낮다는 느낌이 든다. 봄에는 벚꽃이 만발하는 곳이라 지금도 그 여운이 남아있다. 창을 여니 자취를 감춘 봄의 벚꽃 냄새가 살며시 다가오는 듯하다. 오늘의 집결지인 월계교가 눈앞에 보인다.

 

칡덩굴을 뚫고 나가야 한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올해는 유독 칡덩굴이 무성하다. 낫으로 칡덩굴을 끊어가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칡덩굴에 가려져 있던 찔레나 초피나무 가시가 피부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칡덩굴을 낫으로 끊는 순간 내 등을 강렬한 무엇인가가 찌르기 시작한다. ‘아 따가워.’

 

벌침을 맞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칡덩굴 사이 어딘가에 벌집이 있다. 제트기가 굉음을 내며 하늘로 치솟듯 갑자기 벌떼가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도망가라는 짧은 비명과 함께 우리는 달리고 달려 다행히도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벌에 쏘이지 않았다. 길로 나와서 벌에 쏘인 곳을 확인한 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월계교 옆 수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간 후 댐수위 위쪽으로 우회한다.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 산소에 도착한다. 예년과 비교하면 봉분의 피해는 상당히 적어 다행이다. 벌초한 후 성묘를 마치고 할아버지 산소로 이동한다. 다니던 능선길이 아닌 계곡 부로 질러간다. 청미래덩굴과 초피나무를 제외하곤 이동하는 데 방해물이 없어 손쉽게 도착한다. 성묘를 먼저 한 후 다시 30여 분간의 벌초를 한다. 잡풀로 무성했던 산소가 깨끗하니 내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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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연구용역 보고서를 쓰고 있다.

‘00000 지역 활성화 전략수립이라는 제목이 막막해서 참고문헌을 많이 준비했지만, 현장자료가 부실하다. 일주일 동안 보고서를 끝내보려고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할 것 없이, 자료를 토대로 현황을 분석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글을 쓰고 있다. 처음 노트북 모니터를 마주했을 때 막막하기만 했다. 기승전결을 어떻게 펼쳐나가야 할지 생각은 넘쳐나는데 뒤섞여 있어서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판을 두드리는 손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시간은 폭포처럼 흘렀지만 글쓰기는 민달팽이가 움직이는 속도만큼 더뎠다.

조급히 쓸 수 있는 보고서가 아니기에 끈기를 가지고 노트북 앞에 진득이 앉아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분량을 조금씩 쓰면서 글발이 생겼고 언제 끝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갖지 않게 되었다. 낮에는 백색소음에 시달리고 깊은 밤에는 풀벌레의 구슬픈 속삭임을 들으며 새벽 2시쯤 보고서를 끝냈다. 일주일이 걸렸다. 아직 완성도가 높은 보고서가 아니라서 회의를 통해 수정·보완해 나가야 한다.

 

글쓰기에 집중하다 보니 정신이 자주 멍해졌다.

보고서는 자유로운 글쓰기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온 정신을 장기간 집중해서 쓴 것에 만족한다. 짧은 글을 매일 쓰고 있지만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매일 글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표한다. 홀가분하게 책을 읽거나 메모지에 글을 끄적거리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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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일기예보는 적중했다.

새벽 4시쯤 세상을 환하게 만든 번개와 천둥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돌격, 앞으로라는 호령에 맞춰 비는 맹렬하게 세상을 향해서 돌진하는 중이다. 올여름은 아직 태풍은 오지 않았는데 폭우와의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세상은 끈적끈적하고 습한 날들의 연속이다.

오후에 폭우가 할퀴고 간 화단을 정리했다.

물에 잠겨 썩은 쪽파를 뽑아내고, 키가 훌쩍 자라고 열매는 영글지 않는 방울토마토를 뽑아버렸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태풍도 안 왔는데 폭우의 위력이 대단하다. 평상시에 좋은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텃밭 겸 화단이기에 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

올여름 폭우는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치고 자연에 순응하도록 요구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 세상의 질서는 파괴되지 않을까? 위대한 자연 앞에 고개를 숙인다.

 

 

어둠 속에 몸을 뒤척이다 잠에서 깼다.

선잠을 잔 것은 아니지만 몸이 찌뿌둥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묶은 후 화장실을 다녀왔다. 조카가 할머니 드시라고 사 온 순대를 어젯밤 늦게 막걸리와 먹었었다. 막걸리 한 대접이 새벽에 나를 깨운 것이다. 자다 깼는데 또 자기는 뭐하고 해서 법정 스님의 텅 빈 충만을 읽는다. 새벽의 고요함은 책을 읽기에 더없이 좋다.

이제 내 귀는 대숲을 스쳐오는 바람소리 속에서, 맑게 흐르는 산골의 시냇물에서, 혹은 숲에서 우짖는 새소리에서, 비발디나 바흐의 가락보다 더 그윽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빈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텅 비어 있으므로 오히려 가득 찼을 때보다도 더 충만한 것이다.”

 

 

열린 창문으로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온갖 소음에 사로잡혀 사는 도시의 삶에 문득 찾아온 반가운 소리다. 우리 집은 아파트가 아니라 오래된 단독주택이다. 텃밭이 있고 화분이 즐비하게 있는 넓은 마당이 있다. 텃밭에는 봄부터 심은 상추, 부추, 열무, 대파, 당근, 가지, 방울토마토, 고추, 쪽파 등이 자라고 있다. 30개가 넘는 화분은 각양각색의 꽃들로 마당은 언제나 녹음이 가득하다.

마당 한쪽에 자리 잡고 서 있는 터줏대감 감나무는 집을 보호하듯 그윽한 시선으로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다. 가끔 새들도 찾아와 감나무 가지에 앉아 있곤 한다. 회색 도시 속 우리 집은 갈 곳 없는 풀벌레와 새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아늑한 공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옛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나귀를 타고 눈 속에 피어난 매화를 찾아다니는 그림이다. 그림을 보면 어딘가에 피었을 매화를 찾아 무작정 떠나는 옛 선인들의 운치와 멋을 엿볼 수 있다. 폭우 속에도 꽃은 핀다. 비록 굵은 빗줄기에 맞아 꽃잎이 시들고 강풍에 꽃대가 꺾여도 화분의 선인장 꽃과 란타나 꽃은 피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물을 주면서도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았다. 생전 처음 겪는 일처럼 폭우 속에 피어난 화분의 꽃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 순간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이 생겼다. 가지마다 꽃이 피어나는 모습과 색이 다른 꽃을 피우는 아름다움을 비로소 보게 되어 기쁘다.

 

 

뭉게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점심을 먹고 어머니 방 침대 정리를 시작했다. 지금보다 낮은 매트리스로 교환하는 작업이다. 한다고 다짐만 하다 며칠이 지났다. 이불과 베개를 걷어내고 무겁고 높은 매트리스를 들어낸다. 벽과 침대 틈의 먼지를 쓸고 걸레질을 한다. 캠핑용 매트리스를 가져와 공기를 넣고 침대 크기에 맞게 조절한다. 매트 위를 얇은 이불로 덮고 베개를 놓으면 침대 정리가 끝이 난다.

날을 흐리지만 바람은 시원하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벗고 찬물로 샤워를 한다. 샤워 후 선풍기 바람을 즐기며 달콤한 수박을 먹는다. 막힌 코가 뻥 뚫리듯 수박의 시원함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간다. 이때의 여유로움을 오랫동안 즐긴다. 땀 흘린 뒤의 개운함은 이런 것이다.

 

 

장마전선이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다.

아침에 붉은 고추를 따다가 문득 여름은 다 지났구나라고 생각했다. 연약해 보이는 가지에 빨갛게 물들어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를 보니 결실의 계절이 완연해졌다. 기나긴 장마 뒤에 한껏 부드러워진 햇살을 받으며 봄의 풋풋함과 여름의 신선함은 가을의 충만함으로 변해가고 있다.

연이은 폭우는 더위를 잊게 했다.

야생화같이 짧은 계절, 순식간에 계절이 변해가고 있다. 생각 없이 반복된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을 오늘 아침에서야 알게 되었다. 솔솔 불어오는 아침 바람은 가을임을 더욱 실감하게 만든다.

진정, 가을이구나.

 

 

나무는 여름의 무성한 잎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

가지가 잎 무게에 휘어질 정도로 수북하게 매달려 있다. 세월이 가면 무성하던 잎들이 맥없이 땅 위로 떨어질 것이다. 올여름엔 태풍이 오지 않았고 폭우 때 바람도 심하게 불지 않아서 잎들은 선명하게 물 들을 것이다.

오늘은 감이 4개나 마당에 떨어졌다. 지붕이나 마당에 둔탁하게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면 내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 떨어진 감을 보면 계절의 변화가 실감이 난다. 세월은 속절없이 빨리 흘러간다. 세월은 온다고 안 하고 간다고 표현하는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다 보니 알게 되었다.

때가 되면 잎이 떨어지듯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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