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이 남아있는 곶자왈 아침

외곽 길을 따라 활기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이름 모를 풀벌레가 아침을 알리듯 큰 소리로 울어댄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길은 꼬불꼬불 길게 이어져 있고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가 길가에 널브러져 있다. 길 좌우가 숲으로 둘러싸여 길 자체는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야영장 입구로 들어선다. 구름이 집어삼킨 곶자왈 숲을 보며 뚜벅뚜벅 걷는다. 비 때문에 더욱 짙어진 잔디밭과 대조적으로 하늘은 흐릿한 회색 색깔이 펼쳐져 있다. 돌담길을 걷는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길에 달팽이가 우아한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다. ‘산딸나무 열매를 다 먹으려면 하루는 더 걸릴 듯.’

 

비가 그쳤다.

제주의 가을을 만끽하러 버스를 타고 표선해수욕장에 왔다. 검푸른 바다가 보이는 해변을 차분히 걷는다. 빠져들 듯이 바다를 응시하다 정자 한쪽 구석에 앉는다. 하늘은 파란 도화지에 흰 밀가루를 뿌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시간을 가만히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풍향이 바뀌고 있다. 정면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측면에서 불어온다. 비가 그쳐 따가워진 가을 햇살 속으로 바람을 맞으며 걸어 들어간다. 한참을 걸어 마트에 도착한다. 오늘 밤에 먹을 음식물을 산 후 버스를 타고 다시 야영장으로 돌아간다.

 

어제 비가 너무 내렸나?

야영장 원두막에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혼자만의 세상, 너무 좋다. 혼자라서 가장 제정신이 들 때니까 쓸쓸하지 않다. 소맥을 마시며 이른 저녁을 먹는다. 고요함을 깨뜨리는 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음뿐이다. 라디오를 끄고 멍하니 주변을 바라본다. 어둠이 살며시 세상을 덮기 시작한다.

인공 빛에 의지한 체 의자에 앉아 있다. 어둠 속의 낯선 곳이라 몸이 떨린다. 그때 노루의 울음소리가 스산하게 들린다.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노루의 울음소리를 따라 외친다. 몇 번이나 울리던 노루의 울음소리가 잠잠해지고 인공 빛 아래 나는 다시 소맥을 마신다. 어둠, 동물 소리, , 나무, 바람, 돌 등 더는 나를 거스르게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욕망을 품지 않는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고 싶지도 않고, 이름만 들어도 귀가 솔깃한 자동차를 운전하고 싶지도 않고, 명품으로 겉모습을 한껏 치장하고 싶지도 않고,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고 싶지도 않다. 나의 욕망은 그들의 욕망은 다르다. 그래서 그들과 같이 달리지 않는다. 솔직히 그들의 욕망 중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거의 없다.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욕망의 굴레 속에 지지부진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진 물건중에 신제품은 거의 없다. 옷은 새 옷을 사본지가 10년도 넘었다. 실제로는 옷은 사지만 모두 중고 옷을 산다. 자세히 살펴보면 유일한 신제품은 등산화, 운동화가 전부인 것 같다. 불필요한 지출에 최대한 돈을 최대한 아낀다. 가장 좋아하는 여행을,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떠다닌다.

50여 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제주공항은 시끄러운 비행기 엔진 출력 소리만큼이나 거센 비가 워싱턴 야자수 앞 도로를 때리고 있다. 버스를 탔다. 빗속을 달리는 버스 중앙자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차창 밖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16개월 만에 다시 찾은 제주, 그대로인 듯하지만, 왠지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터미널이 가까워지면서 빗줄기는 다소나마 가늘어지고 있다.

같은 제주지만 공항과 터미널은 다른 세계인 듯싶다. 터미널은 텔레비전의 잡다한 소음 소리와 분식집의 어묵 냄새가 선풍기 바람에 뒤섞여 구석구석에 퍼지고 있다. 시장 같은 터미널 풍경 속 구석진 자리에 배낭을 내려놓는다. 타야 할 버스는 곧 출발할 듯 엔진이 뜨거워지고 있다. ‘, 다른 건 몰라도 이소가스는 꼭 사야 하는데.’

우산을 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는 거리를 물웅덩이를 피해 조심스럽게 마트까지 걷는다. 맥주 6, 여행용 소주 2, 이소가스를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에코백에 물건을 담고 다시 터미널에 왔다. 배낭에 대충 물건들을 옮겨놓고 터미널 풍경을 바라본다. 버스 시간까지는 아직 45분이 남았다. 난 원래 계획적이고 급한 성격이지만 여행할 때만큼은 행동이 느긋해진다.

 

복잡한 도심을 버스가 부드럽게 비껴간다.

나는 버스 안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세상을 작은 창으로 바라본다. 40여 분 후, 버스가 인적 드문 정류장에 멈춰 서고 큰 버스에서 작은 사람이 우산을 펼치면서 나온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버스는 직선의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왼손으로 우산을 들고, 어깨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작은 사람이 교래자연휴양림 야영장으로 향한다.

체크인하는 동안 비는 더 거세게 내린다. 예약한 B17 오두막은 깊은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왼손으로 우산을 들고, 어깨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작은 사람이 또다시 걷는다. 잔디 야영장 옆 곡선 길을 걷다가 문득 멈춰선다. 길에 물이 고여있다. CROCS를 신은 발을 내려다보고 그대로 물이 가득한 도로를 첨벙첨벙 걷는다. 오두막 몇 개를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무가 우거진 공간에 오두막이 또 있다. 뚜벅뚜벅 그 길을 계속 걷다가 멈춰선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덩그러니 오두막 한 채가 있다.

 

곶자왈은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

어둠을 씻어내는 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밤의 풍경은 조금씩 변해간다. 나는 오두막에 갇힌 채 소주 1 : 맥주 2의 소맥을 탄 스테인리스 잔을 손에 쥐고 멍하니 어둠을 응시하고 있다. 술 한 모금을 마신다. 세상은 멈춘 것 같지만 실상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 번개가 치듯 어둠 속에 실오라기 빛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얼마후 천둥소리가 들려오고 비는 여전히 세상을 향해 감추었던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오두막 안에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본다. 라디오는 혼자 떠들고 있고 테이블에 술과 안주가 있는데 거의 마시질 않고 있다. 깜깜한 곶자왈에 랜턴을 비추고 퍼붓는 빗줄기만 하염없이 쳐다보다 의자로 돌아가 술을 마신다.

비는 멈출 생각이 없다. 호우경보 문자가 오고 비가 내릴수록 감성이 더해지니 우중 캠핑을 하러 제주까지 온 보람이 있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 노곤한 몸을 누인다. 두 귀는 라디오 소리에 집중하나 빗소리에 밀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안경을 벗고 무거워진 눈꺼풀을 닫는다. 세상의 소음은 점점 멀어지고 이내 잠에 빠진다.

 

왕피천 은어길

 

나에게 작심삼일이란 단어는 없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듯이 새해 다짐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평소처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2010년 이후부터 시작된 나의 습관들이기가 이제야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아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새해 첫걸음은 울진이다.

작년에도 5월에 울진에 갔었는데 해마다 한 번씩은 꼭 울진에 가는 것 같다. 이상하리만큼 포근한 날씨에 당황한 18일 오후 230, 검은색 승용차는 아우토반을 달리듯 울진을 향해 고속도로 내달렸다. 울진까지 가는 길 자체도 막힘이 없었다.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다 빨아들이듯 사위가 맑고 투명한 오후였다.

 

행곡리 처진소나무
광천 징검다리
불영계곡

 

밤의 어둠은 어제처럼 흘러갔다.

나는 어둠의 끝자락 속에 아침을 먹었고 앞으로 나흘 동안 가야 할 장소를 지도에서 살펴보았다. 우리는 왕피천을 따라 걸었다. 마을을 지났고 농로도 걸었으며 징검다리를 통해 하천을 건넜다. 그러다 불영계곡에 들어섰다.

불영계곡의 가장 친한 동반자는 물과 바위였고 그늘진 곳은 얼음이 물을 대신하고 있었다. 계곡 안에는 맑고 투명한 계곡물과 더불어 청량하면서도 야릇한 무언가가 깊숙이 숨어 있는 듯했다. 크레파스나 물감으로 표현할 수 없는 충만감 가득한 자연의 색감에 고요함까지 더해져 색상의 변화가 그늘에서도 강렬한 힘을 드러냈다.

 

불영계곡

 

불영계곡은 거대한 얼음 바다였다.

얼음 바다 위를 걷는 것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속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얼음 바다에는 작은 돌들이 드문드문 솟아 있었고 그것은 파도의 흰 물거품처럼 잔잔하게 이어졌다. 계곡 바람은 나를 겁주듯이 격렬하게 불어댔다. 내 걸음은 바람에 전혀 위협을 받지 않을 만큼 당당했다.

물은 쉬지 않고 흘렀다.

겨울이라 물의 형태가 고체로 변해 때론 검박하게 때론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꼬부랑 계곡을 따라 흐름을 멈추지 않고 얼음 아래로 자유롭게 흘러가 버리는 계곡물은 대지의 생명줄이다.

 

불영계곡 도강

 

물 말고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깊은 산속 골짜기를 지나 바다로 흘러가는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물줄기의 시원함과 전기가 오는 듯한 짜릿함을 몸소 체험했다. 얇은 개울을 건널 때 조심스럽게 한 발 내딛는 발걸음에서 전해지는 상쾌함은 어느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이태백이 술에 취하듯 나는 계곡에 취했다.

흐르는 물처럼 자유로운 이곳은 산속에 자리를 잡은 좁디좁은 계곡이지만 맑은 공기를 마시고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유유자적 지내기엔 내가 사는 도시보다 훨씬 좋았다.

 

불영사
선유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왕피천

 

탈출로는 그곳밖에 없었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계곡의 폭포와 깎아지른 듯 서 있는 바위산들이 나를 둘러쌌다. 그 순간 길 없는 불영계곡에 서 있는 나를 보았고 흐르는 계곡물을 보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산허리를 지나는 예전 36번 국도를 올려다본 것이다.

얼어버린 계곡물 사이로 드문드문 놓여있는 바위를 밟고 건넜다. 가파른 암벽 사이에서 국도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지점을 찾았다. 젖먹던 힘까지 손과 발끝에 모아 조심스럽게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다. 국도의 안전울타리를 뛰어넘는 순간 위험을 벗어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나는 얼마간 국도를 걸었다. 다른 길이 없기도 했고 차량까지 갈 필요가 있었다. 지금 닥친 현실을 더욱 맑고 밝은 눈으로 들여다보며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또다시 불영계곡에 올 거란 느낌이 들었다.

1월 첫째 주 목요일

아침에 나는 카키색 바지에 검은 스웨터를 입고 검은색 목도리를 한 후 아이보리색 점퍼를 입었다. 발목까지 오는 운동화를 신고 검은 장갑을 낀 체 미세먼지가 하늘을 여러 번 덧칠한 희끄무레한 하늘을 올려다본 후 길을 걸었다.

내가 걷는 왕복 8차선 도로는 지하터널을 빠져나온 차량이 학교 앞 횡단보도 앞에서 속력을 줄였고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엄마 손에 이끌려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길가에 아무렇게 놓인 공유 전동킥보드는 이용자의 비양심만큼 녹슬어 있었다. 오늘 한낮의 기온이 영상 7까지 올라가는 겨울치고는 따뜻한 1월의 한낮이다.

 

스물다섯 살 여름

나의 첫 해외여행으로 한 달 동안 베트남을 다녀왔다. 그 이후 싱가포르, 인도, 네팔,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라오스, 홍콩, 마카오, 러시아를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10개월 동안 다녀왔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낯선 나라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도시를 봤고 농촌을 봤고 산을 봤고 강과 바다를 봤다. 밤이 되면 지는 해의 자취를 따라 하늘을 봤고 달과 별을 봤다. 하지만 결국 내가 본 것은 낯선 사람들 속에 머물고 있던 나 자신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스무살이라는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남들이 흘리는 눈물보다 더 빨리 우리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위 문장을 각색하여 내 남은 인생을 표현해 봤다.

똑같은 365일이지만 작년보다 올해가, 똑같은 24시간이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더 빨리 지나간다고 느끼는 오십 살이 지나고 나면 오십 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십 살 이후가 오는 것이다.

나는 더는 스무 살이 아니다. 그보다 두 배 반이나 더 나이를 먹었다. 스무 살 때의 내 모습에서 이미 많이 변환 내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십 살, 내 나이다.

생물학적 오십은 작년 가을이었지만 어쨌든 202315일 나는 정확히 만 오십 살이 되었다. 100세 달리기에서 이제 반환점에 도달했는데 나머지 50년을 더 열심히 달려야 하나 아니면 다른 길로 빠질까 고민 중이다.

처음의 40년은 뭣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삼십 대까지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지만 고단한 현실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다. 사십 대까지는 이기지도 못하는 현실과 치고받고 싸우느라 나를 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될 대로 되겠지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나에게 사십 살 이전은 그런 시절이었다.

사십 대에 들어선 후 최근까지 무척 계획적인 삶을 살았다. 뭐든지 계획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룬 성과도 여럿 있었지만, 삶이 조금씩 지쳐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나는 상상을 한다.

오십 살의 여섯 번째 달에는 자동차를 타고 동유럽을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름 오십 년을 그럭저럭 잘 살았으니까 6월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스물다섯 살에 베트남을 다녀온 후 죽기 전에 전 세계를 여행해야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세웠었다. 돈 때문에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여행에 필요한 충분한 현금을 확보하느라 아주 계획적으로 돈을 모았다. 나에게 시간은 언제나 충분하니 망설이지 말고 떠나자!

이제 나의 무대는 유럽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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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거의 매일 책을 읽고 짧은 글을 쓴다. 매일 반복되는 특별한 것 없는 단순한 하루를 살고 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소신에 따라 당당하게 행동한다. 감정표현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행복이 내 삶의 목적이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데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려고 노력할 뿐이다. 인간은 본시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는 생존본능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생존을 위한 활동에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하여서 해 나갈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각자의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공유하는 삶이 확실히 존재한다. 집단이 개인보다 우선시 되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은 후 순위가 된다. 자유와 행복은 사회적 동물에게 필요했던 생존 도구이다.

사회 구성원의 삶은 행복할까?

행복하려면 즐거워야 하는데 많은 사람과 삶을 공유한다고 즐거울까? 많고 적음,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친밀한 감정이나 태도가 더 중요하다. 모든 사람과 친밀하게 지낼 수는 없다. 소수라도 나와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자유로운 삶이 좋다.

나는 자유로운 삶을 위해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안락함을 포기했다. 자유로운 삶은 생각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 일정 부분 물질에 대한 마음 비움이 필요하다.

돈을 좇기 시작하면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일만 최소한으로 하고 있다. 돈에 집착할수록 더 많은 돈을 갖고 싶어진다. 소유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늘어나고 소유물에 스스로가 저당 잡히고 만다. 결국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결국, 나는 없고 물질만 남는 삶이 되고 만다. 삶은 내가 사는 것이지 물질이 사는 게 아니다. 무언가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 더 크게 자유로워진다. 행복은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다. 삶은 자유를 추구할 때 한 걸음 더 행복에 가까워진다.

돈이 적다고 가치 없는 삶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다면 인간관계 속 행복을 찾아야 한다. 적게 일하더라도 즐기면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의 삶은 지나칠 정도로 소유 지향적이다.

풍족하게 물질을 소유하려고 평생을 돈을 벌기 위해 살고 있다. 돈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위한 필수품이지만 돈의 씀씀이가 자유와 행복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돈에 의존한다고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느끼는 것이다.

소유하지 못한 것을 갈망하면 불행을 느낀다. 더욱더 더 바라는 마음 때문에 만족할 수 없다. 소유한 것에 만족하는 생각과 태도를 가지면 행복을 느끼게 된다. 행복이 눈앞에 있는데 눈뜬장님이 될 것인가?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종종 일상을 탈출하여 나에게 자극을 줌으로써 행복해진다. 행복은 생각만큼 멀리 있지 않다. 가을바람에 낙엽들의 속삭임을 듣는 것과 같다. 어둠이 밝음과 이웃하듯 서로가 만나는 시간이 행복이다. 그래서 늘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행은 생존에 유익한 활동이다.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할 때 행복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잠시 일상을 벗어나 여행에 매진하면 그 순간 행복을 느끼고 나의 여행지는 행복한 세상이 된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행복은 뇌를 자극하는 감정의 경험이다.

자 떠나자. 일본 규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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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이었다.

이미 해는 떴지만 안 뜬 것처럼 어두컴컴했다. 갈천약수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을 먹고 구룡령으로 향했다. 어제부터 강원도를 뒤덮은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황태해장국처럼 희뿌옇게 흐려졌다.

차창으로 보이는 달만이 막 떠오른 햇빛을 받아 뚜렷한 형태로 산을 넘고 있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지나간 것처럼 길이 구불구불하고 험했던 옛길은 어느새 아스팔트 포장길로 변해 있었다.

 

치래마을(갈천마을)
백두대간 구룡령 비석

 

나는 백두대간에 서 있었다.

뼛속까지 전해지는 강한 울림 때문에 우리나라 등줄기에 나 홀로 선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차가운 바람 속에 구불구불 이어진 구룡령 고갯길의 음침한 그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구룡령에서 갈전곡봉까지는 체 4km가 안 되었지만 나는 서둘러 길을 걸었다. 걷다가 능선 아래를 내려다보면 깎아지른 벼랑이 펼쳐졌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참나무 가지에 붙어 있는 겨우살이를 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바람은 시원하게 불었고 오늘 산행은 포근한 날씨 속에 이루어질 거라는 낙관적 마음이 스며들었다.

 

구룡령
등산로 입구
겨우살이

 

달은 높은 능선을 넘어 잠들었다.

동시에 태양은 능선 위로 솟구쳤다. 낮 동안의 햇빛 아래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깨달았다. 구룡령 옛길을 지나면서 적막함과 함께 외로움이 찾아왔다. 쓸쓸함을 느끼지 않도록 나는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를 부지런히 걸어 갈전곡봉에 1시간 만에 도착했다.

해발고도 1,204m인 갈전곡봉은 휑했다. 자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헐벗은 가지와 떨어진 낙엽만 보고 겨울이 코앞에 왔음을 확신하는 나에게 반감이 치솟았다. 나는 자연 편에 서서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지 않는 내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백두대간
구룡령 옛길 정상
갈전곡봉

 

2년 전

이맘때에 단목령에서 조침령까지 백두대간 등산로 정비를 위해 현장조사를 했었다. 4, 조침령에서 왕승골 삼거리까지 백두대간 등산로 정비를 위해 현장조사를 했었다. 이번에도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명확했다. 왕승골 삼거리에서 갈전곡봉까지 백두대간 등산로 정비를 위해 현장조사를 해야 했다.

오랫동안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에 숨겨진 자그마한 흔적이라도 찾아내려고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떴다. 이제 당분간 짙은 초록을 한껏 머금은 푸른 숲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날이 추워지면서 더 분명해졌다.

 

백두대간 등산로 조사
조침령방향 백두대간

 

자연은 아무 조건 없이 그 자체를 인간에게 내줬다.

인간이 자연에 저질렀던 것을 생각하면 자연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맡겼다. 나는 말도 없이 그저 능선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백두대간을 걸었다. 능선의 가파르고 좁은 길만이 내가 갈 길이었다. 봉우리에 올라 물 한 모금 마시고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둘러보았다.

바람에 감기는 몸으로부터, 내 몸이 하늘로 떠오를 수 있는 풍선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떠오르기만 하면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어디든 날아갈 수 있으리라.

 

백두대간 어디쯤... 점심식사
왕승골삼거리
왕승골로 하산
구룡령 쉼터에서

 

다음날

백두대간 트레일 6구간을 찾았다. 백두대간 트레일 6구간은 방태산을 기점으로 강원도 인제군과 홍천군의 3(월둔, 달둔, 살둔) 4가리(아침가리, 명지가리, 연가리, 적가리) 일대에 조성된 21km의 숲길이다.

둘레길은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도록 산의 둘레를 따라 조성한 길이며 트레일은 산줄기나 산자락에 길게 조성하여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지 않는 길을 말한다.(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 제22조의 2)

 

백두대간트레일
아침가리 전망대

 

하늘엔 여전히 미세먼지가 자욱하다.

대기의 먼지와 습기가 막을 이뤄 먼 거리일수록 사물의 윤곽을 흐리게 할 정도로 이 막들의 색채가 우세해졌다. 멀리 있는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는 앞에 펼쳐진 풍경에 비해 미세먼지 자욱한 색으로 변해버렸다.

숲길 입구의 자작나무 조림지와 박달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황철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만날 수 있고, 계곡과 숲을 교차해 지나며 감상할 수 있어 아름다운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자작나무

 

아침가리에 왔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국토의 63.7%가 산림인 우리나라에서 아침가리는 작은 계곡일 뿐이지만 자연 그대로 흐르고 있는 그 숨은 가치는 실로 거대하다. 아침가리 주변에는 자작나무 숲이 있다. 그곳에 서 있으면 북유럽 어느 숲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안구가 정화된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우듬지의 함성이 들리고, 구불구불한 계곡을 흐르는 물의 노래를 들으며 명상에 빠졌다. 인제를 몇 년 동안 자주 오게 되면서 맞이하게 된 소중한 추억이다. 참으로 괜찮은 경험이다.

 

 

아침가리

안개가 짙게 끼었다. 새벽 찬 기운을 만난 수증기가 희뿌연 연기처럼 아주 작은 물방울이 되어 세상을 조금씩 집어삼키고 있다. 어제까지 익숙했던 세상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오전 830, 어젯밤에 꾸려둔 배낭을 메고 등산화 가방은 손에 쥐고 집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 형님 안녕하세요.’

다 왔습니다.’

, 집 앞에 있어.’

흰색 SUV는 육중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도로를 달린다. 차창으로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는 풍경에 두 눈이 고정된 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후배와 이야기꽃을 피워본다.

 

안개 자욱한 날

 

출근길 왕복 6차선대로는 정체 중이다. 대로를 벗어나 토박이만이 아는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아뿔싸 유성 장날이었다. 시장 도로에서 골목으로 진입하려던 우회전 차량이 도로를 막고 서 있어서 신호대기도 없이 유성 나들목에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각양각색의 차량이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며 고속도로를 내달리고 있다. 흰색 SUV도 한풀이하듯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린다. 그렇게 5분의 시간이 지나고 흰색 SUV는 북대전나들목을 빠져나와 또 한 사람을 태우고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흰색  SUV

 

신탄진을 지나 죽암휴게소에 왔다. 오늘의 종착지는 양양에 있는 구룡령휴게소이지만 단양에 있는 황정산 자연휴양림에 들렀다 가야 한다. 이동 거리가 멀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여유롭게 아침부터 출발한 것이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TOM N TOMS에서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레모네이드를 샀다. 진한 커피 향기가 공기 중에 퍼져 안개에 스며든다. 멍멍한 정신을 차리기엔 커피 한 모금이면 충분했다. 내가 뜨거운 커피를 음미하는 동안 후배는 담배를 피우고 나서 흰색 SUV의 배도 채웠다.

소풍 가기에 딱 좋은 날씨다. 11월인데 봄 날씨처럼 포근하다. 주행 중 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갑지 않다. 유일한 흡연자인 후배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금왕휴게소에, 껴입은 옷을 벗기 위해 한 번 더 졸음쉼터에 들렀다.

 

죽암휴게소
금왕휴게소

 

정오 40분 전에 황정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계절은 가을인데 황정산은 이미 겨울의 문턱에 서 있다. 단풍은 거의 다 떨어졌고 낙엽은 바싹 말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거렸다. 낙엽에 갇혀 정체를 숨기고 있던 처녀치마의 잎만이 주위 환경과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후배만이 숲길 정비사업이 진행 중인 석화봉 등산로를 올랐다. 나와 또 한 사람은 휴양림을 돌아다니며 주변을 관찰했다. 햇빛이 비치는 양지는 따뜻한 느낌보다 더 뜨겁고 그늘로 들어서면 서늘함을 넘어 싸늘함이 느껴졌다.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2시간이 지난 뒤 후배가 산에서 내려왔다. 이미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우리의 배고픔은 극에 달했다.

 

황정산 자연휴양림

 

늦은 점심을 먹으러 대강면 장림산방에 왔다. 장림산방은 60년 전통, 3대째 향토 음식 계승자의 집이었다. 건물 위쪽에 단양마늘축제 곤드레가마솥밥 금상 수상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나는 첫 방문이고 후배와 또 한 사람은 두 번째 방문이다. 건물 내부는 천정이 높아서 식당임에도 음식 찌든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출입문 벽 상단에 음식으로 고치지 못한 병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한다라는 문구가 두 눈을 사로잡았다.

 

장림산방

 

우리는 능이버섯전골을 주문했다. 식사 조리시간은 20분 소요된다고 메뉴판에 적혀 있다. 물을 마시면서 핸드폰으로 뉴스 기사를 검색했다. 10분쯤 지났을 때 나물과 채소로 만든 9가지 반찬과 함께 능이, 싸리, 두부, 호박, , 콩나물 등이 들어간 능이버섯전골 나왔다.

내 인생의 첫 능이버섯전골은 아니다. 산을 다니면서 여러 번 먹어봐서 그 맛을 적확히 알고 있다. 버너 위에서 능이버섯전골은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다. 우리는 며칠을 굶은 게걸든 사람처럼 바닥이 보일 때까지 끊임없이 먹었다.

 

능이버섯전골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차량 네비게이션은 구룡령휴게소까지 250km라고 알려줬다. 적어도 2시간 30분은 소요될 것이다. 홍천을 지나면서 양양까지는 터널 구간이 많이 나온다. 터널에서 운전할 때마다 나는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은근히 걱정되었다.

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으려나

후배와 또 한 사람이 식곤증에 잠을 동안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운전을 했다. 잠든 이의 평화로움과 고요함을 한순간에 깬 것은 후배의 전화벨 소리였다. 공적인 용무의 전화는 후배의 단잠을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강원도 어느 들녘

 

원주휴게소에 왔다. 이번에는 ANGELINUS에서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레모네이드를 샀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후배는 담배를 피웠다. 잠이 확 깬 후배가 운전대를 잡았다. 내가 계속 운전을 했더라도 홍천휴게소에서 후배와 교대할 생각이었다. 좌우지간 내가 터널 운전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홍천에 가까워지면서 고속도로 공사 구간이 반복되었고 조금씩 지체되었다. 동홍천을 지나면서는 터널의 연속이었다. 반복되는 터널 구간에 피로를 느낀 후배가 내린천휴게소로 들어갔다. 차량에서 내리자 강한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차가운 정도가 사뭇 달랐다. 후배의 입과 코로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가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원주휴게소
내린천휴게소

 

구룡령휴게소까지는 40km 정도 남았다. 5시가 다 되어가니 사위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터널을 지나고 또 지나 우리나라 최장터널에 진입했다. 작년에 통과해 본 적이 있는 인제양양터널로 길이가 10,965m이다. 일반 터널과 비교하면 조명도 밝고 갓길도 있어 도로 폭이 넓다. 물론 터널이 구간단속구간이라 속도를 높일 수 없어 한결 안전하게 느껴진다.

 

인제양양터널

 

고속도로를 벗어나 인적없는 도로를 달려 구룡령휴게소에 왔다. 아침에 출발하여 9시간만인 해 질 무렵에 갈천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갈천마을은 구룡령 아래 첫 마을로 칡이 많아서 비롯된 이름이고 치래마을은 갈천을 우리나라 말로 풀어쓴 명칭이다.

예약한 펜션에 여장을 풀고 서둘러 갈천약수식당에서 오리고기로 긴 여정의 회포를 풀었다. 오후 7, 펜션으로 돌아오는데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산속의 밤은 어둡고 길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다.

내일은 구룡령으로 go go~.

 

구룡령휴게소
황토펜션
갈천약수식당

배에서 내린 시간 오전 9

나는 기차 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며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을 배회했다. 5분도 되지 않은 사이에 무작정 유달산을 향해 골목을 걸었다. 오래된 건물들이 삐뚤빼뚤 제각각의 형태로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길게 서 있었다. 그리고 구석진 곳에 노란색 리무진 택시가 건물 가까이에 주차되어 있었다.

 

지치지 않고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가진 한정성의 짧은 목포여행이 시작되었다. 배에서 내린 후 두 다리는 날아갈 듯 가벼워 보였지만 배낭을 짊어진 어깨는 천만 근의 쇳덩이가 짓누르는 듯 움츠러들었고 고통스러웠다. 나는 반바지에 반소매 차림으로 맨손으로 계단 난간을 잡고 계단을 올랐다.

 

슬로아일랜드
목포해상케이블카
목포골목
목포근대역사관 옆 계단

 

노적봉을 뒤로하고 유달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짧은 보폭 다음에는 길고 무더운 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순간으로 이어졌다. 마지막까지 타오르는 불꽃처럼 오랫동안 나도 짧은 보폭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 누구도 나처럼 빨리 발의 놀릴 수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계단을 오르면서 대학루, 달선각, 유선각에서 본 목포의 항구풍경을 잠깐씩 즐길 수 있었다. 유달산 케이블카, 관운각, 마당바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힘이 소진되었고 얼굴을 흐르는 땀은 눈으로 흘러 들어가 따가웠다.

 

노적봉
대학루에서 바라본 목포시내
일본잎갈나무(히말라야시다) 전정
달선각에서 바라본 목포시내
유선각

 

일등바위에 올라섰다.

이곳이 유달산 정상이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 듯 보이는 하나하나의 색조가 숨을 쉬듯 살아 있었다. 초록이 숲 너머 무지개색 지붕의 다양한 건물이 들어서 있고, 에메랄드빛의 바다에 흔 물거품으로 획을 그으며 오가는 배들, 바다 건너까지 연결된 곡선미를 한껏 뽐내고 있는 목포대교, 얇은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달리도를 포함한 다도해의 섬들이 있었다.

뒤쪽으로는 북항까지 이어진 목포 해상케이블카가 바다와 산을 굽이쳐 지나가고 목포 시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었다.

 

유달산 일등바위
목포영웅 촬영지
다도해와 목포대교
유달산 케이블카

 

나는 사람들 틈을 피해 재빠르게 유달산을 내려갔다.

목포 시내를 걷는 동안 들뜬 기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목포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태생이 똑같은 ‘1972년부터~ 목포원조 맑은뼈해장국 해남해장국을 찾았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도 나왔던 곳이다.

 

원조돼지뼈해장국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팔각회향 추출물을 첨가한 깔끔한 국물맛과 돼지 뼈에 붙어있는 푸짐한 고기가 나를 설레게 했다. 막걸리 한잔 마시고 손으로 뼈를 들고 입으로 최대한 많은 고기를 흡입했다. 마무리로 깍두기를 먹었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맛도 맛이지만 골수를 빨아먹는 재미가 있었다.

 

목포시내 영산로
해남해장국
원조돼지뼈해장국

 

목포는 항구였다.

내 가슴과 자연이 강렬하게 공명하는 순간이 여러 번 찾아왔었다. 바다를 이동시키는 원양의 바람, 바람에 밀려가는 파도의 출렁거림, 파도의 쏠림에 옮겨가는 여객선, 유달산과 바다를 지나가는 목포 해상케이블카 자연과 문명은 구분되지 않고 이어져 있었다.

 

오전이 천국에서의 삶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기차를 타고 목포를 떠날 때 나는 웃음을 지었다. 항구, 여객선, 바다, 갈매기, 목포 해상케이블카, 목포대교, 달리도, 캠핑장, 염전, 석양, , , 유달산 등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을 가슴에 담았다.

 

유달산
달리도 백패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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