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이즈하라  - 최익현선생순국비(修善寺)

 

 

대마도에 첫발을 내딛기 전에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백패킹 여행도 중요하지만, 제일 먼저 수선사의 최익현선생순국비를 찾아 묵념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나라를 지킨

옛 선조들의 위대한 업적에 감사드리는 것은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지도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즈하라항에 도착을 한 후

걸어서 5분거리의 최익현선생순국비가 있는 수선사로 향했습니다.

 

 

 

 

수선사는

최익현선생순국비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마도에서는 스야마 토쓰안의 묘가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한적한 마을 골목길에 수선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수선사라는 표지석 뒤에 보이는 안내판에는 스야마 토쓰안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돌계단을 올라 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주지스님이 지내는 건물이 나옵니다.

 

여행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연출되었습니다.

이미 많은 한국 단체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수선사 이곳저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떠들어라, 난 내맘대로 쉬겠다."

실제로 수선사는 종교시설과 묘지가 있는 곳이라 아주 조용히 참배를 해야 하는 곳입니다.

 

 

 

 

주지스님이 지내는 건물 앞에는 지장보살 석상들이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모든 지장보살 석상에 턱받이 천을 해 놓았습니다.

 

지장보살 석상은 갓난아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해주는 보살이라고 합니다.

갓난아이와 관련되어 있기때문에 애기들이 밥먹을 때 하는 턱받이를 대어놓았다고 합니다.

 

 

 

 

지장보살 왼쪽편에 대한인최익현선생순국지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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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당하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위로는 상소를 올리고 백성들에게는 포고문을 내어 항일 투쟁을 호소하였다.

의병을 모집하여 순창에서 관군과 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패전하고 체포되어 쓰시마에 유배되어 순국하였다.

 

쓰시마에서 감금 3년형을 받게 된 최익현은 1906년 8월 28일 아침 이즈하라로 호송되어 왔다.

2년형을 받은 임병찬과 함께 하치만구신사(八幡宮 神社 ) 남쪽에 위치한 제사전습소(製糸伝習所)에 수용되었는데,

쓰시마경비대 수용소가 완성되기 전 3개월간 이곳에 구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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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찬의 「대마도일기(対馬島日記)」에 의하면

12월 4일 발병의 기록이 보이며 경비대에서는 사람을 붙여 간호하였으나 1907년 1월 1일 생을 마감하였다고 합니다.

장례는 백제의 비구니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수선사에서 치뤄졌으며 유해는 부산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최익현선생의 넋을 기리고자 1986년 한일 양국의 유지들이 힘을 모아 수선사에 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짧은 묵념을 마치고

무덤사이에 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대한인최익현선생순국지비를 지나면 하나의 이정표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스야마 토쓰안 선생의 무덤 이정표압니다.

 

 

 

 

이정표가 안내하는 데로

무덤사이로 난 길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

제일 높은 곳에 스야마 토쓰안의 무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스야마 토쓰안은 1600년대 중반

쓰시마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조선과의 무역에 힘썼고

쓰시마에서 골치거리로 여기던 멧돼지를 퇘치한 분으로 유명합니다.

 

수선사에서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마도에서 백패킹 여행을 뜻깊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즈하라 시내를 지나 덕혜옹주결혼봉축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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