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미도에 왔다.

여행은 나에게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특히 섬 여행은 내가 유일하게 매력을 느끼는 취미 생활이 되고 있다. 새로운 생각을 위해서는 언제나 새로운 장소가 필요하다.

여행은 자유로워야 한다.

여행의 최대 장점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라고 생각하기 쉽다. 진정한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싶은 것을 안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바다누리호
두미도 북구항

 

두미도는 느낌이 있다.

섬의 모양으로 드러나는 겉모습이 아니라 섬에 숨어 있는 마을 터, 옛길 등에서 풍겨 나오는 임의로 할 수 없는 불변의 것에서 이끌림을 느낀다. 나는 이 이끌림 때문에 두미도를 다시 찾게 되었다.

섬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차를 타고 임도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면 이색적인 풍경은 볼 수 있어도 섬을 관찰할 수는 없다. 어떤 장소를 잠깐 지나치는 게 아니라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천황산에서 바라본 북구항
천황산에서 바라본 청석마을, 동뫼섬

 

두미도에는 마을이 산재해 있다.

북구 항에서 반시계방향으로 고운, 설풍, 덕리, 순천, 대판, 청석, 남구 항, 사동으로 이어진다. 섬은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다. 가구 수도 얼마 안 되고 없어진 마을도 있다.

섬은 시간여행을 준비 중이다.

자연스럽게 사라져가는 것들이 있으면 잿더미 속에서도 한줄기 생명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살고 싶은 섬, 두미도 가꾸기 사업의 하나로 작년 말부터 남구 항에서 사동, 북구 항, 고운, 설풍까지 옛길을 복원 중이다.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남구항
설풍마을에서 바라본 고운마을

 

섬 속에 옛길이 묻혀 있다.

섬은 옛길을 둘러싸고 옛길은 세월의 흐름에 잊혀 있었다. 콘크리트 임도의 편리함 때문에 옛길은 무시되었다. 삶을 되돌아볼 때 옛길은 소중한 삶의 흔적이며 추억이 된다.

마을은 옛길을 통해 이어진다.

옛길을 따라 삶의 공간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다. 보석의 아름다움이 사람들을 홀리듯 옛길의 복원이야말로 두미도 사람들과 두미도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게 할 것이다.

 

북구항에서 고운마을 가는 옛길

 

마을 사이의 거리는 시간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덤불을 걷어내고 무너진 돌담을 다시 쌓으면 옛길은 선의 흔적을 걷는 길로 드러낸다. 설풍에서 묵은 밭 사이로 난 좁은 돌담길을 따라 서남쪽으로 걸어가면 덕리를 만나게 된다. 무거운 돌절구를 지고 오갔던 옛길이다.

그 옛길을 찾아 헤매던 중 칡을 보았다.

칡의 굵기는 얼마나 될까? 바위 밑까지 뻗어 있는 칡은 이제까지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굵은 것이다. 칡의 즙은 쌉쌀하지만 건강한 맛이다. 칡을 보고 있으니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칡은 오랫동안 인적이 드문 장소에 있어서 이렇게 뻗어 나갈 수 있었다.

 

설풍마을에서 덕리마을 가는 옛길 입구

 

덕리는 돌담만 남았다.

덕리는 산속 깊숙이 떨어진 외딴 마을이지만 돌구덕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칼로 두부를 잘라놓듯 돌담만 남은 옛 집터는 한때 반듯한 집들로 동네를 이루고 살던 곳임을 말해준다.

풍경을 바라보면 그림을 보는 것 같다.

해안 절벽과 돌구덕이 아무리 지척이라도 절대로 한걸음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돌구덕 풍경을 보고 파도와 바람 소리를 듣는데 사람마다 보고 듣는 것이 다 다르다. 각자가 지닌 마음속 세계의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덕리마을(겨울)
덕리마을(봄)
돌구덕
돌구덕 파노라마 사진

 

절벽 위에 길이 있다.

덕리에서 돌구덕을 발아래로 내려다보며 길을 걷는다. 낭떠러지 위 바위를 쪼아 만든 길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절벽 구간을 지나 동백숲에 다다르면 이내 임도와 만나게 된다.

임도가 옛길이다.

대판을 지나 청석까지는 옛길을 넓혀 임도로 만든 길이다. 따분하게 느껴지는 임도가 절대 아니다. 대판의 비탈은 고즈넉하고 청석의 들판은 평화롭다. 두미도 꼬리인 동뫼섬을 바라보며 임도를 걷는 즐거움이 있다

 

절벽 길
조망점
임도에서 바라본 동뫼섬

 

고갯길을 넘는다.

청석 임도에서 다시 대숲으로 들어선다. 대판과 청석 사람들이 남구 항을 가기 위해 넘어 다녔던 고갯길이다. 지금은 천왕봉 등산로와 인접하고 있다. 고개를 넘으면 남구 항이 한눈에 보인다.

사람마다 보고 듣는 것이 다르다.

들으려는 의지가 있기에 귀가 있고 보려는 욕망이 있기에 눈이 있는 것이다. 섬에서 생활이 외로울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것처럼 살아가는 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행복의 기준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남구항 동백 숲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았다.

몸과 마음의 안식을 위해 23일 동안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건물 앞에는 재활용품을 이용하여 만든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비닐하우스 같은 두미 쉼터에는 난로도 설치되어 있어 휴식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살고 싶은 섬은 두미도다.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은 한호수 사장님 부부가 운영 중이다. 캐나다에서 20여 년 동안 관광업을 하다 귀국한 후 두미도의 매력에 반해 이주하셨다. 두미도만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다.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
두미도 바다 펜션 (민박)
저녁식사
두미쉼터

 

섬의 밤은 먹색이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고 고기잡이배의 불빛만이 넓은 바다를 좁게 비추고 있다. 밤바다의 경외감에 빠져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점점 옅어진다.

섬의 새벽은 짙은 먹색 빛깔에서 엷은 안개 빛깔로 바뀌고 있다.

나의 육체, 어둠에서 나와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머릿속 생각의 끈을 마음껏 풀어 놓는다. 창의적인 사고는 늘 나를 성장시킨다.

오늘도 살고 싶은 섬, 두미도에서 불멸의 희망을 꿈꾼다.

 

북구항 조형물(두미도 바다 팬션)

이주 만에 다시 찾은 두미도. 오직 선택받은 사람만이 살고 싶은 섬, 두미도를 이해할 수 있다. 헤어진 여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기뻐하는 남구의 누렁이가 나를 반긴다. 종을 뛰어넘은 인간과 동물의 우정이다.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할 때 이미 그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어떤 글로도 표현할 수 없다.

 

현실과 이상

 

무더운 한낮의 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걸음을 옮긴다. 녹음이 짙어진 그늘진 계곡은 맑은 물이 흐른다. 계곡물은 바위에 부딪혀 철퍼덕거리기도 하고 급류가 되어 헐떡거리기도 하며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신음하기도 한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계곡물은 졸졸 흘러야 아름답게 느낀다. 우리는 현실의 계곡물을 보고 이상적인 계곡물을 생각한다.

나무는 잎의 광합성을 통해 하늘로 가지를 뻗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다. 뿌리로 물을 얻고 잎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얻어 햇빛을 통해 광합성을 한다.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과 산소를 만든다. 나무가 배출한 산소를 우리는 숨을 쉬고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나무는 광합성에 이용하는 것이다. 나무와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눈에는 볼 수 없지만, 숲은 살아 있는 생물들의 고향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햇빛이라는 동료가 필요하다.

 

섬과 산

 

자연은 있는 그대로 그냥 놔두어야 한다. 늘 거기에 존재해야 한다. 존재하므로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이다. 하늘을 천장 삼아 봉우리를 마루 삼아 아무것도 없는 바위에 앉는다. 인생의 창밖으로 사랑도, 욕지도를 바라본다. 두 손을 입에 대고 힘차게 외쳐본다. 언어는 떠나버리고 소리만 남는다. 언어는 더는 현실 세계의 존재를 표현하지 못한다.

나뭇잎은 산에서 바닷바람에 흔들리고 나무 사이로 드넓은 바다와 인근 섬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바다의 섬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만 하지 말고 아주 잘 보이는 곳인 산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먼 곳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산을 오르듯 성장하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성장이 눈앞에 보이는 데 더 노력해서 높은 곳으로 맞으러 가야 한다. 길게 출렁이는 파도가 섬에 도착할 때까지 성장에 대한 열정도 파도처럼 어느 쪽으로 흘러가다 멈출 것이다.

 

긴 하루

 

두미도의 봄은 이미 지났고 여름이 찾아왔다. 섬에 하얀 뭉게구름이 걸려 있다. 아침 해가 수평선 위로 떠 오르고 한층 더 빛나고 있다. 예전 섬사람들이 왕래하던 길을 우리는 옛길, 삶의 길이라 여기며 오늘도 찾아다니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산과 바다가 깨끗하고 아름답다.

긴 하루를 보내고 어느새 밤은 깊어졌다. 산과 바다가 섬을 어루만져준다. 두미도를 찾은 여행자들은 밝은 달빛과 별빛 아래 편히 누워 잠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 마시는 맥주 한잔보다 나은 것 아무것도 없다.

 

오랜만에 통영에 들렀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든, 언제쯤 들고 나는지에 대한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굳이 기억하려고도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함께 통영을 누볐던 기억만은 그날의 강렬한 햇볕에 박제된 체 뚜렷이 남아 있다.

통영 서호시장에서 시락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두미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아름다운 섬이라는 것과 머리 두() 자와 꼬리 미() 자를 이름으로 가진 섬이라는 정도의 무지함을 걸머지고 두미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사월 중순이었다. 남구 항의 첫인상은 평범했다. 차를 타고 일주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돌 때도 아주 특별한 인상은 없었다. 물론 청석의 앞바다나 덕리마을의 기암괴석들은 아름다웠지만 아주 특별한 풍광은 아니었다. 그 두미도에서 오월 초까지 일주일을 살아냈다.

 

두미도의 삶터는 북구 항에서 시작한다. 북구는 두미도의 대처다. 제법 반듯한 항구와 몇몇 신식으로 지어진 건물들 그리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항구에서부터 이어지는 비탈에 기대어 앉은 집터들은 섬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곧바로 토해내고 있었다.

북구항의 우측 모퉁이에서부터 옛길이 시작된다. 2015년쯤 완성된 일주도로가 있기 전에 모두가 걸음 하였던 그곳으로 길을 잡았다. 처음부터 오르막길이다. 여전히 잘 보존된 그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임도와 마주하였다. 그곳에서 실거리를 만났다. 지독한 가시 탓에 그들이 부르는 이름 옷까시나무, 그 실거리를 본 것이다. 섬사람들의 삶 속에서나, 불리는 이름에서나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이쁜 꽃을 품은 실거리, 그가 피워낸 노란 아름다움이 한창인 계절이다.

 

옛길의 흔적을 더듬어 첫 번째 다다른 곳이 고운마을이다. 마을 입구인 능선에서 보이는 삶터가 제법 부드럽다. 옹기종기 어우러져 섬사람들의 질긴 삶을 이어가는 몇 채의 집들이 그 너머 바다와 맞닿아 있었고, 그 유순한 삶터만큼이나 선한 고운마을의 사람들이 사는 그런 마을이었다.

옛길은 고운마을의 삶터를 휘휘 돌아 숲속으로 이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는 설풍마을, 겨우 두어 채의 집들이 비탈진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도 마을의 옛이야기 한 보따리나, 달고나 커피 한잔쯤은 넉넉히 내어주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고운마을과 설풍마을은 그 부드러운 삶터만큼이나 선한 옥빛의 바다에 안겨 산다. 이따금 바다를 지나는 어선들도 힐끔힐끔 마을을 바라볼 뿐, 그 흔한 뱃고동도 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그렇게 침묵의 안부를 확인하며 옥빛 바다의 삶을 지켜내고 있었다.

 

다시 숲을 따라 옛길을 찾아 나섰다. 덕리마을로 가는 길은 고단한 생활 길이다. 덕리마을이 돌절구 제작으로 열을 올리던 시절, 그 무거운 돌절구를 지고 북구를 오가던 길이다. 그 아릿한 흔적을 따라 덕리마을에 들었다. '! 빈터의 흔적이란!' 마치 선사시대의 유적처럼 녹슨 돌담들만이 덕리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들이 절묘하게 가슴을 휘저어 댔다. 이 비탈진 골짜기의 삶을 살아내던 그들은 누구였을까? 어떤 마음으로 겨우 정과 망치에 기대어 돌과 사투를 벌이며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그렇게 살아냈을까?

덕리마을의 바다 끝에는 돌구덕이라고 이름 붙여진 해안 절애가 산다. 덕리마을의 바다는 늘 으르렁대며 돌구덕에 덤벼들고, 돌 구덕은 그 넉넉함으로 우뚝 서 있을 뿐 말이 없다. 결국, 바다는 하얀 물꽃을 돌구덕에 내어주고, 덕리마을 사람들은 그 물꽃을 벗 삼아 골짜기의 고된 삶을 살았으리라.

덕리마을에서 다시 길을 나선다. 연이어지는 해안의 절애는 절벽 위에 길을 만들고, 무사하길 빌고 빌며 겨우 숲을 벗어나면 대판마을 가는 임도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청석마을까지 이어지는 임도는 옛길을 넓혀놓은 길이다.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은 다른 듯하나이다. 고운마을의 부드러운 삶터가 설풍마을에서 끝나듯, 대판마을의 비탈은 청석마을의 넓은 들의 시작이다.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의 앞바다에는 두미도의 꼬리인 동뫼섬이 산다. 호수같이 포근한 청석의 쪽빛 바다를 끌어안고, 동백꽃과 새 울음과 함께 이웃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청석에서 고갯길을 넘어가면 남구가 나온다. 옛 남구의 어린이들이 청석의 학교를 넘나들던 길,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의 어른들이 남구 항을 가기 위해 무던히도 넘던 길이 바로 이 길이다.

 

남구 항과 북구 항은 다른 듯 닮았다. 비탈에 기대어 사는 모습이 영락없이 닮은 듯하다가도, 조금은 더 외로운 듯이 바다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남구 항의 모습이 다르다. 남구는 두미도 제2의 도시다.

남구 항에서 당산을 지나면 다시 사동마을 가는 옛길로 접어든다. 사동마을은 남구와 북구 사이에 있는 마을로서 덕리마을과 더불어 폐촌이 된 마을이다. 임도 위에 있는 독가촌이 그 명맥을 이어가긴 하지만 옛터는 이미 수풀의 세상이다. 그렇게 임도 아래위로 한참을 더듬어 옛길을 따라가자면 저만큼에서 북구 항이 손짓한다.

그만큼에서 북구 항을 본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북구 항이 한결 정겹다. 이만큼의 삶을 두미도에서 살아냈다. 곧 다시 두미도에 들 것이다. 그땐 사동마을의 옛터도 더 돌아보고, 근처로만 지나온 순천마을의 터들도 찾아보고, 덕리마을의 삶터에 앉아 소주 한잔 기울여야겠다.

 

두미도에는 노란 실거리와 하얀 물꽃과 녹슨 돌담과 붉은 동백과 선한 사람들이 산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옛날부터 두미도에 사람이 살았다. 내가 지금 통영에서 바다누리 호를 타고 그 섬에 가는데 두미도를 모른다면 말이 되겠는가? 두미도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천천히 알아보자. 아름다운 섬도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다. 아름다운 섬에 있어도 그 아름다움을 찾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두미도 옛길

 

두미도 옛길을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다. 옛길이 험하다고 찾지 않으면 잊힌 길이 되는 것이다. 옛길을 찾는 데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우선 고지도와 현재 지도를 현장과 비교해 본다. 현지인들의 생생한 증언은 옛길을 찾는 데 최고의 도움이 된다.

두미도의 자연 앞에서는 아름다운 기운을 느끼게 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산의 힘을 보여주고 바다로 뻗어 들어간 갯바위는 바다를 넘치게 한다. 자연의 웅장함에 기가 꺾인 나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내가 더 나아갈 수 없으니 옛길을 찾을 수 있을까?

옛길을 찾다 보면 가시나무에 긁히고, 산속 벌레에 쏘이고, 뱀과 멧돼지 등 야생동물과 마주치기도 하며, 낭떠러지에 서게 되는 경우가 늘 있다. 하늘은 처음에 육체에 고통을 주지만 마음이 강인해지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을 키워준다. 그런 힘듦을 이겨내고 옛길을 하나씩 찾았을 때는 그보다 더한 즐거움과 내재적인 만족을 느끼게 된다.

 

살고 싶은 섬

 

바다의 고기잡이배 위에 바람이 불어오니 봄은 깊어가고 여름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저 멀리 수평선은 하늘과 맞닿고 하늘의 태양은 구름과 마주하고 있다. 부두의 갈매기는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은 나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오랫동안 홀로 서 있었다. 푸른 바다에 선혈을 남기며 수평선 아래로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물이 좋고 산이 좋아서 살고 싶은 섬, 두미도. 드넓은 바다가 만들어낸 파도의 출렁임을 고즈넉하게 바라보는 것도 좋다. 옛길의 흔적 따라 산속을 헤매도 즐겁다. 공자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지금 나는 물, 산과 더불어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바다가 바라보는 자리에 텐트를 치고 찬 바닥에 팔베개하고 눕는다. 바닷바람이 차가워도 즐거움이 그곳에 있다.

 

두미도 오락(頭尾島 五樂)

 

밤하늘에 뜬 별들을 우러러보고 밤바다의 고요한 속삭임을 듣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머위, 줄딸기, 산괴불주머니 등 야생화를 발견하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바닷바람이 숲의 나뭇가지를 흔들면 잠에서 깬 새들의 아침 인사를 듣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북구에서는 사랑도, 수우도, 삼천포가 바라다보이고 남구에서는 추도, 노대도, 욕지도를 바라보는 것이 네 번째 즐거움이다. 섬사람 특유의 강인함보다 내면에 숨은 온화한 마음을 느끼게 해 준 두미도 섬 주민을 만나는 것이 다섯 번째 즐거움이다.

 

쉼표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잊고 지내는 것들이 많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유는 돈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된다. 한껏 몸을 움직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지친 마음은 자연이 알아서 다독여준다.

초록빛의 두미도가 푸른빛의 바다를 어우르고 있다. 섬의 봄은 푸른 바다로 충분하고 짙은 녹음으로 충만하다. 오늘 난 이곳에서 쉼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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