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 남해 호도에 들었다. 이른 아침 미조항에서 막 배에 오르려는데 등에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배에서 내린다. 배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사는 곳, 조도에 사는 아이들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호도는 미조항의 지척에 산다.

조그마한 포구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해안 절애와 그래서 더 애틋한 기린초와 해국이 첫 마중을 한다. 섬에 들면 늘 마주하는 포구에 목멘 어선 한 척 없는 조그만 항에는 낚시꾼들 몇 명이 바쁘게 캐스팅을 해대고 있었다. 마을 쪽을 향해 난 콘크리트포장 길을 따라 길을 잡았다. 처음부터 가파른 비탈은 길을 이리저리 갈지자로 끌고 다니고, 두어 번의 모퉁이를 지나 마을 당산을 만났다.

 

마을에서 만난 첫 번째 사내에게 저간의 마을 사정과 숲에 있을 법한 옛길과 지명 등에 대한 질문을 두서없이 해댔다. 그는 끝없는 친절을 콘크리트 바닥과 허공에 마구 토해냈다. 더 물을 것이 없을 정도로 질문한 이상의 정보들을 얼굴이 벌게지도록 쏟아내고 있었다. 섬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들 친절할까! 순박해서라고, 외로워서라고 말하지 말자. 그냥 그들과의 인연을 섬여행의 첫걸음으로 삼으면 족할 것이다.

사내와 헤어져 마을 길을 따라 10분여 남짓 걸었을까! 마을 길이 끝났다. 저만큼 아래에 검푸른 바다가 혹하고 다가온다. 아직은 호도의 바다를 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급히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숲길로 접어든다. 남녘의 숲들은 늘 새로움으로 이방인을 맞는다. 흔히 보는 예덕나무며 광나무며 마삭줄 등속이 오늘도 반겨준다. 그런데 이 녀석은 뭘까? ‘! 모람이로구나!’ 오랜만에 보는 모람과 더불어 우묵사스레피나무, 섬노린재나무, 돈나무 등이 연속해서 우리를 맞는다. 반갑다.

그렇게 이어진 발걸음이 닫는 호도의 지명들이 예사롭지 않다. 보리마당, 스닷뽀닷, 청늘, 개발매밑, 코밧, 목넘, 진담, 뫼사니홈, 작은홈, 뜨뿌영, 기민장 그리고 서담늘홈 등등. 그 뜻을 알 수 없는 지명들이 연이어 다가온다. 아직은 공부할 것이 많다는 뜻이니 한편 기쁜 일이기도 하다.

 

이미 조성된 탐방로를 벗어나 본격적인 섬 탐사를 시작했다. 먼저 마을 당산 앞에 있는 골짜기를 따라 한달음에 능선에 올랐다. 그리고 작은홈으로 이어졌을 옛 바래길을 찾기 시작했다. 첫 번부터 만만치 않다. 우거진 숲과 가시덤불이 앞을 막는다. 그래도 쉽게 지치지 않는 내 미련스러운 고집에 오늘도 숲은 길을 내주었다.

작은홈에는 시원한 바람이 산다. 덤불과 싸우느라 흥건했던 땀들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등골이 오싹할 만큼 작은홈의 바람은 거칠게 온몸을 덮치고 들었다. 한참을 쉬었다. 지친 몸 하나 의탁하기도 힘든 급경사지에서 그렇게 한참을 쉬며 호도의 첫 속살인 작은홈과 교감하였다.

다시 길을 나섰다. 옛길의 흔적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늘 그렇지만 반복하는 만큼의 호기심이 거친 걸음을 앞으로 이끌고, 기어이는 숲을 벗어나는 길들을 찾게 된다. 뜨뿌영, 기민장을 지나 서담늘홈을 거쳐 다시 출발점인 마을 당산에 도착했다. 숲길을 걷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안도감에 잠시 다리쉼을 한다.

 

얼마쯤 쉬었을까! 다시 능선 삼거리에 올랐다. 이번에는 산봉우리를 따라 능선으로 길을 잡았다. 마을 사람들은 얼만큼이나 숲에 걸음 하지 않았던 걸까. 능선에는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럴 때는 지도와 감각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거친 바람의 친구인 섬의 능선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커다란 상수리 고목과 너럭바위의 부처손 군락지 등을 지나, 기어이 옛 초소가 있던 가물여 앞에 다다랐다. 기암괴석과 바닷가의 연못과 바닷속 동굴과 거친 파도가 함께 사는 곳, 진담과 목넘으로 이어지는 가물여 앞바다는 단연 호도의 절경이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옛 초병들의 흔적을 따라 목넘 골짜기에 다다를 무렵 길을 잃었다. 억지로 올라서면 밭 가생이로 올라설 수 있겠지만, 길이 아니었다. 그때, 마치 짱가라로 되는 양, 저만치 마을 길 위에서 어르신 한 분이 소리를 친다. 힘에 부치시는지 어르신의 목소리는 외마디 비명처럼 골짜기를 맴돌았다. “이리. 빠꾸. 건너.” “일리요? 계곡을 건너야 돼유? 식아, 너 내려오란다.” 어르신의 외마디와 몸짓에 위탁하여 길을 잡았다. 결국, 꼭 맞는 옛길을 따라 마을 길에 도착했다.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전에 어르신은 벌써 돌아서서 잰걸음을 옮겼다. 호도에 사는 강아지들도 이방인에게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꼬리를 흔들거나 살그머니 다가와 바라볼 뿐이다. ‘범섬이라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은 뜻도 모를 삶터와 가물여의 절경과 투박한 친절이 몸에 앉은 사람들이 사는 곳, 호도에 다시 와 볼 일이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이주 만에 다시 찾은 두미도. 오직 선택받은 사람만이 살고 싶은 섬, 두미도를 이해할 수 있다. 헤어진 여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기뻐하는 남구의 누렁이가 나를 반긴다. 종을 뛰어넘은 인간과 동물의 우정이다.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할 때 이미 그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어떤 글로도 표현할 수 없다.

 

현실과 이상

 

무더운 한낮의 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걸음을 옮긴다. 녹음이 짙어진 그늘진 계곡은 맑은 물이 흐른다. 계곡물은 바위에 부딪혀 철퍼덕거리기도 하고 급류가 되어 헐떡거리기도 하며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신음하기도 한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계곡물은 졸졸 흘러야 아름답게 느낀다. 우리는 현실의 계곡물을 보고 이상적인 계곡물을 생각한다.

나무는 잎의 광합성을 통해 하늘로 가지를 뻗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다. 뿌리로 물을 얻고 잎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얻어 햇빛을 통해 광합성을 한다.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과 산소를 만든다. 나무가 배출한 산소를 우리는 숨을 쉬고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나무는 광합성에 이용하는 것이다. 나무와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눈에는 볼 수 없지만, 숲은 살아 있는 생물들의 고향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햇빛이라는 동료가 필요하다.

 

섬과 산

 

자연은 있는 그대로 그냥 놔두어야 한다. 늘 거기에 존재해야 한다. 존재하므로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이다. 하늘을 천장 삼아 봉우리를 마루 삼아 아무것도 없는 바위에 앉는다. 인생의 창밖으로 사랑도, 욕지도를 바라본다. 두 손을 입에 대고 힘차게 외쳐본다. 언어는 떠나버리고 소리만 남는다. 언어는 더는 현실 세계의 존재를 표현하지 못한다.

나뭇잎은 산에서 바닷바람에 흔들리고 나무 사이로 드넓은 바다와 인근 섬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바다의 섬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만 하지 말고 아주 잘 보이는 곳인 산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먼 곳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산을 오르듯 성장하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성장이 눈앞에 보이는 데 더 노력해서 높은 곳으로 맞으러 가야 한다. 길게 출렁이는 파도가 섬에 도착할 때까지 성장에 대한 열정도 파도처럼 어느 쪽으로 흘러가다 멈출 것이다.

 

긴 하루

 

두미도의 봄은 이미 지났고 여름이 찾아왔다. 섬에 하얀 뭉게구름이 걸려 있다. 아침 해가 수평선 위로 떠 오르고 한층 더 빛나고 있다. 예전 섬사람들이 왕래하던 길을 우리는 옛길, 삶의 길이라 여기며 오늘도 찾아다니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산과 바다가 깨끗하고 아름답다.

긴 하루를 보내고 어느새 밤은 깊어졌다. 산과 바다가 섬을 어루만져준다. 두미도를 찾은 여행자들은 밝은 달빛과 별빛 아래 편히 누워 잠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 마시는 맥주 한잔보다 나은 것 아무것도 없다.

 

오랜만에 통영에 들렀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든, 언제쯤 들고 나는지에 대한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굳이 기억하려고도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함께 통영을 누볐던 기억만은 그날의 강렬한 햇볕에 박제된 체 뚜렷이 남아 있다.

통영 서호시장에서 시락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두미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아름다운 섬이라는 것과 머리 두() 자와 꼬리 미() 자를 이름으로 가진 섬이라는 정도의 무지함을 걸머지고 두미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사월 중순이었다. 남구 항의 첫인상은 평범했다. 차를 타고 일주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돌 때도 아주 특별한 인상은 없었다. 물론 청석의 앞바다나 덕리마을의 기암괴석들은 아름다웠지만 아주 특별한 풍광은 아니었다. 그 두미도에서 오월 초까지 일주일을 살아냈다.

 

두미도의 삶터는 북구 항에서 시작한다. 북구는 두미도의 대처다. 제법 반듯한 항구와 몇몇 신식으로 지어진 건물들 그리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항구에서부터 이어지는 비탈에 기대어 앉은 집터들은 섬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곧바로 토해내고 있었다.

북구항의 우측 모퉁이에서부터 옛길이 시작된다. 2015년쯤 완성된 일주도로가 있기 전에 모두가 걸음 하였던 그곳으로 길을 잡았다. 처음부터 오르막길이다. 여전히 잘 보존된 그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임도와 마주하였다. 그곳에서 실거리를 만났다. 지독한 가시 탓에 그들이 부르는 이름 옷까시나무, 그 실거리를 본 것이다. 섬사람들의 삶 속에서나, 불리는 이름에서나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이쁜 꽃을 품은 실거리, 그가 피워낸 노란 아름다움이 한창인 계절이다.

 

옛길의 흔적을 더듬어 첫 번째 다다른 곳이 고운마을이다. 마을 입구인 능선에서 보이는 삶터가 제법 부드럽다. 옹기종기 어우러져 섬사람들의 질긴 삶을 이어가는 몇 채의 집들이 그 너머 바다와 맞닿아 있었고, 그 유순한 삶터만큼이나 선한 고운마을의 사람들이 사는 그런 마을이었다.

옛길은 고운마을의 삶터를 휘휘 돌아 숲속으로 이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는 설풍마을, 겨우 두어 채의 집들이 비탈진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도 마을의 옛이야기 한 보따리나, 달고나 커피 한잔쯤은 넉넉히 내어주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고운마을과 설풍마을은 그 부드러운 삶터만큼이나 선한 옥빛의 바다에 안겨 산다. 이따금 바다를 지나는 어선들도 힐끔힐끔 마을을 바라볼 뿐, 그 흔한 뱃고동도 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그렇게 침묵의 안부를 확인하며 옥빛 바다의 삶을 지켜내고 있었다.

 

다시 숲을 따라 옛길을 찾아 나섰다. 덕리마을로 가는 길은 고단한 생활 길이다. 덕리마을이 돌절구 제작으로 열을 올리던 시절, 그 무거운 돌절구를 지고 북구를 오가던 길이다. 그 아릿한 흔적을 따라 덕리마을에 들었다. '! 빈터의 흔적이란!' 마치 선사시대의 유적처럼 녹슨 돌담들만이 덕리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들이 절묘하게 가슴을 휘저어 댔다. 이 비탈진 골짜기의 삶을 살아내던 그들은 누구였을까? 어떤 마음으로 겨우 정과 망치에 기대어 돌과 사투를 벌이며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그렇게 살아냈을까?

덕리마을의 바다 끝에는 돌구덕이라고 이름 붙여진 해안 절애가 산다. 덕리마을의 바다는 늘 으르렁대며 돌구덕에 덤벼들고, 돌 구덕은 그 넉넉함으로 우뚝 서 있을 뿐 말이 없다. 결국, 바다는 하얀 물꽃을 돌구덕에 내어주고, 덕리마을 사람들은 그 물꽃을 벗 삼아 골짜기의 고된 삶을 살았으리라.

덕리마을에서 다시 길을 나선다. 연이어지는 해안의 절애는 절벽 위에 길을 만들고, 무사하길 빌고 빌며 겨우 숲을 벗어나면 대판마을 가는 임도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청석마을까지 이어지는 임도는 옛길을 넓혀놓은 길이다.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은 다른 듯하나이다. 고운마을의 부드러운 삶터가 설풍마을에서 끝나듯, 대판마을의 비탈은 청석마을의 넓은 들의 시작이다.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의 앞바다에는 두미도의 꼬리인 동뫼섬이 산다. 호수같이 포근한 청석의 쪽빛 바다를 끌어안고, 동백꽃과 새 울음과 함께 이웃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청석에서 고갯길을 넘어가면 남구가 나온다. 옛 남구의 어린이들이 청석의 학교를 넘나들던 길,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의 어른들이 남구 항을 가기 위해 무던히도 넘던 길이 바로 이 길이다.

 

남구 항과 북구 항은 다른 듯 닮았다. 비탈에 기대어 사는 모습이 영락없이 닮은 듯하다가도, 조금은 더 외로운 듯이 바다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남구 항의 모습이 다르다. 남구는 두미도 제2의 도시다.

남구 항에서 당산을 지나면 다시 사동마을 가는 옛길로 접어든다. 사동마을은 남구와 북구 사이에 있는 마을로서 덕리마을과 더불어 폐촌이 된 마을이다. 임도 위에 있는 독가촌이 그 명맥을 이어가긴 하지만 옛터는 이미 수풀의 세상이다. 그렇게 임도 아래위로 한참을 더듬어 옛길을 따라가자면 저만큼에서 북구 항이 손짓한다.

그만큼에서 북구 항을 본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북구 항이 한결 정겹다. 이만큼의 삶을 두미도에서 살아냈다. 곧 다시 두미도에 들 것이다. 그땐 사동마을의 옛터도 더 돌아보고, 근처로만 지나온 순천마을의 터들도 찾아보고, 덕리마을의 삶터에 앉아 소주 한잔 기울여야겠다.

 

두미도에는 노란 실거리와 하얀 물꽃과 녹슨 돌담과 붉은 동백과 선한 사람들이 산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옛날부터 두미도에 사람이 살았다. 내가 지금 통영에서 바다누리 호를 타고 그 섬에 가는데 두미도를 모른다면 말이 되겠는가? 두미도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천천히 알아보자. 아름다운 섬도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다. 아름다운 섬에 있어도 그 아름다움을 찾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두미도 옛길

 

두미도 옛길을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다. 옛길이 험하다고 찾지 않으면 잊힌 길이 되는 것이다. 옛길을 찾는 데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우선 고지도와 현재 지도를 현장과 비교해 본다. 현지인들의 생생한 증언은 옛길을 찾는 데 최고의 도움이 된다.

두미도의 자연 앞에서는 아름다운 기운을 느끼게 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산의 힘을 보여주고 바다로 뻗어 들어간 갯바위는 바다를 넘치게 한다. 자연의 웅장함에 기가 꺾인 나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내가 더 나아갈 수 없으니 옛길을 찾을 수 있을까?

옛길을 찾다 보면 가시나무에 긁히고, 산속 벌레에 쏘이고, 뱀과 멧돼지 등 야생동물과 마주치기도 하며, 낭떠러지에 서게 되는 경우가 늘 있다. 하늘은 처음에 육체에 고통을 주지만 마음이 강인해지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을 키워준다. 그런 힘듦을 이겨내고 옛길을 하나씩 찾았을 때는 그보다 더한 즐거움과 내재적인 만족을 느끼게 된다.

 

살고 싶은 섬

 

바다의 고기잡이배 위에 바람이 불어오니 봄은 깊어가고 여름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저 멀리 수평선은 하늘과 맞닿고 하늘의 태양은 구름과 마주하고 있다. 부두의 갈매기는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은 나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오랫동안 홀로 서 있었다. 푸른 바다에 선혈을 남기며 수평선 아래로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물이 좋고 산이 좋아서 살고 싶은 섬, 두미도. 드넓은 바다가 만들어낸 파도의 출렁임을 고즈넉하게 바라보는 것도 좋다. 옛길의 흔적 따라 산속을 헤매도 즐겁다. 공자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지금 나는 물, 산과 더불어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바다가 바라보는 자리에 텐트를 치고 찬 바닥에 팔베개하고 눕는다. 바닷바람이 차가워도 즐거움이 그곳에 있다.

 

두미도 오락(頭尾島 五樂)

 

밤하늘에 뜬 별들을 우러러보고 밤바다의 고요한 속삭임을 듣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머위, 줄딸기, 산괴불주머니 등 야생화를 발견하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바닷바람이 숲의 나뭇가지를 흔들면 잠에서 깬 새들의 아침 인사를 듣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북구에서는 사랑도, 수우도, 삼천포가 바라다보이고 남구에서는 추도, 노대도, 욕지도를 바라보는 것이 네 번째 즐거움이다. 섬사람 특유의 강인함보다 내면에 숨은 온화한 마음을 느끼게 해 준 두미도 섬 주민을 만나는 것이 다섯 번째 즐거움이다.

 

쉼표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잊고 지내는 것들이 많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유는 돈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된다. 한껏 몸을 움직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지친 마음은 자연이 알아서 다독여준다.

초록빛의 두미도가 푸른빛의 바다를 어우르고 있다. 섬의 봄은 푸른 바다로 충분하고 짙은 녹음으로 충만하다. 오늘 난 이곳에서 쉼표를 찍는다.

 

이년 전 사월 어느 봄날, 오래 묵은 빚의 이자라도 갚는 심정으로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나들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는커녕 늘 마음으로는 죄인이다.

유성 나들목을 지나 자연스럽게 우회전을 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대전 IC에서 국도로 길을 잡았다. 왜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흑석리를 지나고 우명동을 지나면서 길은 논산 벌곡으로 접어든다.

"진산 가려고?“

"어떻게 허다 보닝께 이리루 왔구먼!“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자주 다니던 드라이브 코스였지만 꼭 우연만은 아니었다. 왠지 모를 끌림으로 차는 자꾸만 고향 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매년 봄날 하루쯤은 시간을 내어, 들로 혹은 산으로 쏘다니며 나물 사냥을 하곤 했었다. 국수딩이든 벌금자리든 냉이든 달래든 돌미나리든 돌나물이든 취나물이든 두릅순이든 다래순이든 때론 산부추나 도라지나, 우리에겐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루 종일 함께하며 웃고 떠들고 힘들다고 투정하다가, 저녁 무렵 나름대로 어렵게 얻은 노획물을 풀어놓고 소주 한잔을 기울이면 족할 일이었다.

 

덕곡리 도산리를 지나고, 행정리 두지리를 지나 묵산리에 접어든다. 접바위 지나 을음실, 그래 고향이다. 그렇게 이년 전 고향 땅을 걸음 하였다.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을음실, 깊은 내력은 알 수 없으나 뫼 산자가 셋이요, 새가 우는 마을이란 이름을 가진 것이 내 고향임은 변함이 없다.

백마가 끄는 수레가 개울을 건너는 날, 급히 몸을 피한 물비늘을 찬란하게 앉고 도는 햇살의 눈 부심이 사는 땅. 더위에 지친 각다귀들이 잠시 쉬는 밤, 소금밭처럼 하얀 별 무리를 이기겠다고 그 여린 빛을 뽐내던 반딧불이가 살던 땅. 그런 삶터가 을음실이다.

을음실은 그런 터였다. 진산 읍내에서 문우고개를 넘어서고 심방골을 지나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옥순이가 나온다. 신작로에서 보면 왼쪽의 산기슭이 옥순이다. 어린 기억으로 보면 그곳에서 고향의 삶터가 시작된다.

 

옥순이에는 구백 평쯤 되는 밭이 있었다. 어린 시절 동생을 업고 엄니 젖을 먹이러 다니던 나름 고단했던 기억, 어린 아들의 넉넉한 시험성적에 고구마 가득한 지게를 성큼성큼 지고 가시던 아버지의 첫 웃음 짓던 기억 그리고 늦은 오후 무렵 비탈밭에 지친 엄니가 풀린 다리를 이기지 못해 밭 아래로 구르셨던 전설 같은 기억들이 옥순이의 편린들이다.

옥순이를 지나면 쪽다리가 나온다. 미루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던 쪽다리는 마음에 터다. 어느 봄 늦게 집에 오던 날, 미루나무는 그 큰 몸에 하얀 옷을 걸치고 저 멀리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순간 뒷머리가 쭈삣섰다. 분명 귀신이었다. 허나 망설임도 잠시 이내 씩씩한 걸음을 내디뎠다. 쪽다리 양짓녘에 할아버님께서 누워 계심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쪽다리를 지나 멍미를 돌아서면 마을이 나왔다. 그래 을음실이다. 마을은 겨우 몇십 평쯤 되는 산 아래 여기저기에 집터를 꾸미고 살았다. 몇백 평쯤 되는 농토를 위해 누구의 삶터든 소박한 그런 마을이었다.

아랫말과 윗말을 지나면 옹달샘의 터 얼깅이가 나온다. 그곳에서부터 다시 농토가 시작된다. 바로 뒷짐메다. 제법 번번한 모양새를 갖춘 뒷짐메는 을음실의 곡창지대다. 그곳에 팔백 평쯤 되는 논이 있었다. 어린 나에겐 뒷짐메도 옥순이 만큼이나 멀고 고된 걸음으로만 기억된다.

 

도대체 세월은 무슨 마법을 부렸을까! 옥순이 비탈밭에서 다리가 풀려 밭 아래로 구르셨던 엄니의 아들은 반백의 늙은 군인이 되고, 그의 아들은 오늘 논산훈련소로 떠났다. 아무리 오래전 기억이라고 치도곤을 놓아도 엊그제의 일처럼 고향의 기억이 솟구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삶은 김과 짧음으로, 거침과 부드러움으로 그리고 찬란함과 시린 볕으로 서로 그렇게 순치하며 사는 것인가 보다.

 

그해 뒷짐메 끄트머리 골짜기인 채도골에 들었다. 입구에는 미나리농장이라고 쓰인 정갈한 표지판이 있었다. 평소 나물을 좋아하던 차여서 망설임의 시간도 없이 채도골로 들게 된 것이다. 얼마쯤을 올라갔을까, 아내가 소리친다.

"저게 무슨 꽃이에요?“

"뭔 꽃, 나는 못 봤는디!“

"차 좀 뒤로 빼봐요, 이쁜 꽃이 있었단 말이에요.“

"이쁜 꽃은 무슨" 기어를 넣고 천천히 후진하였다.

"저 꽃, 말이에요, 저 꽃 이름이 뭐예요?“

'! 얼레지!‘

그렇게 이년 전 고향 땅에서 오십 수년 만에 얼레지를 보았다. 늘 지리산에서만 강원도에서만 볼 줄 알았던 얼레지를 채도골에서 본 것이다.

작년에도 채도골에 걸음을 하였으나, 늦은 걸음을 탓하며 얼레지는 꽃을 보여주지 않았다. 올해는 이미 너무 늦은 줄 알면서도 자꾸만 고향 땅이 나를 당긴다. 아니 내 마음이 이미 줄달음을 치는 걸 거다. 그렇게 조만간 걸음 해야겠다. 늦은 얼레지 핑계 삼아 채도골에 들어 짙푸른 고향의 미나리 한 아름 안고 실컷 울어봐야겠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연에 있어 대역죄인이다. 자유로운 존재라고 주장하지만, 불법 활동으로 자연이 훼손되었으니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유전자 보호구역을 무단 침입하여 야생화를 짓밟고 쓰레기를 내버렸다. 자연에 피해를 준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기적인 자신의 욕구 충족이 우선이고 진정한 자연의 돌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연과 우리의 위치를 바꾸어 자연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은 무시무시한 파괴자로 보일 것이다. 자연은 해의 흐름에 따라 하루를 살지만,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고 하루를 산다. 자연은 언제나 그곳에 평화롭게 있었는데 인간이 갑자기 다가가니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위치를 바꾸어 생각함으로써 자연을 어떻게 보존해야 훼손을 덜 하게 될지를 알게 된다. 인식의 기준을 잠시 바꾸어 보아야 진정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곰배령 가는 길

 

곰배령으로 향하는 길은 닫혀 있다. 오직 허가받은 사람만이 강선마을을 지나 좁은 숲길과 계곡을 따라 걸어갈 수 있다. 노루귀, 괭이눈, 바람꽃, 개별꽃, 모데미풀, 제비꽃, 현호색, 미나리아재비, 한계령풀, 얼레지 등 숲에서 발견한 야생화는 경이롭다. 겨우내 숨어 지내던 식물들이 봄소식에 깨어나 생명의 빛을 발산하고 있다. 숲길은 좁고 자연은 시련에 훼손되었지만 완전한 만족을 느끼기 위해 오늘도 이 길을 따라 걷는다. 오랜 세월 버텨온 야생화가 만들어낸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 그 길에 있다.

맑은 날,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빛이 숲에 끝없이 펼쳐질 때 활짝 꽃을 피운 야생화를 본 적이 있는가? 야생화는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저마다의 색깔로 활짝 피어난다. 나는 야생화가 활짝 핀 숲속을 거닐고 있다는 것에 대해 신비함을 느낀다. 계절은 정해진 절기로 순환하면서 쉼 없이 변화하고 있다. 숲은 분주히 깨어나는 생명체들로 가득 차 있다. 나 또한 숲속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자연에서 자유를 느낀다. 가장 원초적인 세계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느낌과 감각에 자극을 주어 현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늘 변화를 원한다.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정체되어 있지 않은 자연에서 봄의 새싹, 야생화 등 역동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자연을 보고 진리 탐구를 하기보다는 미적 탐구를 통해 감성적으로 느껴야 한다. 자유를 꿈꾸는 사람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은 자연에서 찾아야 한다.

 

적당한 무관심

 

곰배령에 올라서면 평화로운 자연풍경이 펼쳐진다. 우뚝 솟아있는 나무 아래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점점 길어진다. 산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지키려면 적당하게 무관심해야 한다. 너무 지나친 관심은 자연에 고통을 줄 뿐이다. 쓱 스쳐보면서 마음속으로 감탄해야 진정으로 자연을 위한 것이다.

큰 산맥은 여러 갈래의 지맥을 품고 있다. 웅장한 산봉우리는 호주머니의 송곳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그 산이 어느 산의 봉우리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작은 봉우리가 없으면 큰 산맥도 없는 것이다. 곰배령에서 점봉산, 설악산 중청과 대청을 바라본다. 마음은 소박해지고 사사로운 욕심은 어느새 사라지게 된다.

 

아름다운 기억

 

세월과 함께 잊히는 것도 있지만 자연과의 추억은 세월과 함께 아름다운 기억이 짙어진다. 찾아오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사람과의 만남처럼 산이 정답게 느껴진다. 농익은 자연풍경이 계절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슬프도록 푸르고 싶은 하늘을 바라보며 다짐한다. 자연과 사귀기 위해 이곳에 홀로 머물러야겠다. 자연은 홀로 있는 사람에게만 가슴을 연다.

 

기린에서 길을 들자면 방동리도 멀다. 도시의 삶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더 가야 방동리가 나오나? 할 것이다.

진동리는 그다음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동네가 진동리다. 초입에 들어서 한참을 가다 보면 아침가리계곡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온다. 여기인가 싶지만 어림도 없다. 오늘 가야 할 지표는 설피 마을, 부지런히 페달을 가속한다. 마치 군 경계 하나쯤을 넘었을까 하는 지루함이 몰려들 때쯤 조침령터널을 마주하며 좌회전을 한다. 설피 마을의 초입이다. 그렇게 깊은 골을 품고 사는 마을이 진동리다.

 

진동호를 돌고 돌아 말안장으로 훅 들어선다. 백두대간이다. 오늘은 단목령으로 길을 잡는다. 이렇게 부드럽고 두터운 대간이 있을까! 늘 대간은 가파르고 곧추서고 칼 능선으로 길잡이 노릇을 한 터였다. 너무 낯선 두터운 대간을 걷는다. 우뚝 선 나무들도 있지만 역시 대간이다. 제멋에 겨운 군상들이 대간을 호위한다. 제멋대로 생긴 그들은 나름, 모두가 백 년의 세월 동안 백두대간을 지키는 장군들이다.

대간은 이제 막 첫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다. 박새, 한계령풀, 노랑제비꽃 그리고 얼레지. 사이사이에 노루귀도 얼굴을 내민다. 아직은 이른 봄을 준비하는 대간을 따라 단목령에 들었다. 훅 들어서 미안한 마음으로 나선 길에 두터움으로 다가오는 대간을 벅차게 안고 도는 하루가 간다. 대간의 오른쪽으로 보이는 양양의 바다는 덤이다.

 

다음날 다시 들어선 진동호의 산허리, 오늘은 조침령이다. 역시나 두텁고 평활한 산맥이 길라잡이로 나선다. 1000고지에서 삶터를 본다. 얼마쯤인가 걸음을 하였다. 대간을 호위하는 군상들은 제모습을 감추고, 겨우 살아낸 못생긴 나무들이 열병식을 한다. 그들의 삶터는 틈이 없다. 얽히고설키고, 내가 살아있음을 선포해야 하는 그들은 만 가지 모양으로 대간을 지키고 있다. 그렇게 허리를 감고 도는 바람을 벗으로 삼아, 아직은 서늘한 대간은 꿈을 꾼다. 왼쪽으로 보이는 양양의 바다는 오늘도 덤이다.

 

일주일 후에 다시 든 진동리, 오늘은 곰배령이다. 모두 '천상의 화원'이란다. 사실은 늘 꿈꾸었다. 곰배령, 곰배령, 곰배령. 탐방센터를 지나 계곡을 따라 길을 나선다. 초입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속새, 얼레지, 바람꽃, 투구꽃, 개별꽃, 애기괭이눈, 한계령풀 그리고 모데미풀. 사실을 고백하자면 알 수 없어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수백 가지다. 아직은 봄의 초입인 진동리에는 준비하는 봄의 무게가 더 깊다. 알 수 없어 부르지 못하는 그대들의 품에, 미안하지만 오늘도 걸음을 한다.

곰배령을 지나 능선에 든다. 고운 생명의 움틈을 발아래 두고 아직은 시린 거친 걸음을 걷는다. 머리가 시릴 만큼 진동리 능선의 4월의 바람은 거칠다. 얼마를 걸었을까, 저만큼에서 설악산 대청봉이 사람 좋은 웃음으로 고개를 내민다. '그래 설악산이구나, 네가 설악인 거야!‘

오랜만에 방동리 너머 진동리의 삶을 산다. 거친 산들의 아래에, 그렇지만 초라하지 않게 두터운 삶을 살아내는 진동리. 백두대간도 진동리를 지날 때면 거친 걸음을 멈추고 따스하고 두터운 품에 잠시 숨을 쉰다. 그 품속에서 우리는 함께 숨을 쉰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누구나 유토피아, '이 세상에 없는 장소'를 꿈꾸며 세상을 살고 있다. 현실 상황이 복잡하고 힘들수록 이상에 대한 염원을 끝없이 추구하려고 한다.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유토피아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삶이 즐거워지려면 마음과 상반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육체와 정신의 조화 속에 즐거움을 추구해야 한다. 나 좋을 대로, 자유와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면 어디에도 없는 곳과 만나는 순간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떠돌이 여행자

 

봄의 산뜻함이 좋고 여름의 싱그러움이 좋다. 가을의 풍요로움이 좋고 겨울의 총명함이 좋다. 내 인생은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었다. 인생은 떠돌이 여행자다.

나는 가끔 도보여행하면서 경험주의자가 되고자 한다. 세상의 모든 것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가장 멋진 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은 마음의 길을 따라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사는 것이다.

훌쩍 떠나온 인제 여행이 기쁘다. 공기가 바람에 녹아 솜사탕같이 달콤한 한밤 공기는 싱그러운 냄새를 품고 있다. 지금 이곳은 흐르는 시간이 느려지는 기분이다.

 

숙취

 

간밤에 마신 알코올의 취기가 아직 남았는지 머리가 무겁다. 술이 덜 깼는데 날씨가 화창해 왠지 슬픔이 몰려온다.

함께한 상대와 분위기에 따라 주량은 달라진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되지만 많이 마시면 마약과 같은 것이다. 숙취가 주는 지속적인 머리의 통증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고통을 주고 있다. 아침에 먹은 막국수의 소화되지 않은 것들을 원대리 야산의 급경사지에서 쪼그리고 앉자 비워내야만 했다.

 

숲을 보다

 

숲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내가 처음으로 본 것은 미세하게 자라고 있는 나무의 생명력이다. 숲속으로 더 들어가니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생명줄을 놓아버린 전도된 나무와 부러진 나무들이 있었다. 본시 아름드리나무들이 들어차 있었는데 폭설에 그 기상이 꺾이고 만 것이다.

숲의 햇빛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더욱 밝은색으로 지면을 비춘다. 바싹 말라버린 낙엽 사이에서 생명력을 키워낸 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숲에 들어왔던 햇빛은 다시 반사되어 숲을 빠져나간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변해 버린다.

 

천상의 화원

 

내가 돌단풍을 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올망졸망 제각각 놓여 있는 돌들 사이에서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민 작은 생명체 같은 것이 있었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을 거로 생각하는 장소에 생명의 씨앗을 키웠다. 나는 움직일 수 없는 자연의 피사체의 사진을 조심스럽게 찍었다. 그것은 내가 본 백만 송이 돌단풍 중 하나에 불과했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돌이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돌단풍은 돌이 삶의 지표가 되는 것이다.

한낮의 태양은 하늘 높이 떠 있고 내린천은 미세한 거품을 일으키며 찰랑찰랑 흘러간다.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지는 반대편 강기슭, 물에 빠지더라도 열정적으로 건너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봄날의 내린천은 돌단풍의 보금자리이고 물소리의 힘찬 외침 속에서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내린천

 

내린천은 물길이 트면 그 방향으로 흐른다. 어떤 가식적인 치장은 허용되지 않는다. 내린천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여주고 있다. 계절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기적과 흐르는 물로 인한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물살이 주는 공포 때문에 처음엔 별로 내키지 않았다. 오랜 산행으로 세숫대야에 찬물을 받아놓고 족욕을 하듯 그냥 발을 내린천에 담그고 싶었다.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바위에 철퍼덕 앉았다. 물이 주는 시원함에 잔뜩 취해서 세수도 했다. 오 맙소사. 1분도 안 지났는데 발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몸서리치며 얼른 물에서 발을 뺐다.

흐르는 물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물에 반사된 내 머리가 보인다. 이런 것을 보게 되면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내린천의 흐르는 물속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매우 친밀하고 떨어질 수 없는 친한 물고기와 물의 사귐인 수어지교(水魚之交)의 사자성어처럼 그걸 말로 표현하려 노력했지만,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인생

 

시간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세월은 흐르는 내린천처럼 쉬지도 않고 계속 흘러간다. 때로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완만하게, 때로는 급류를 만난 성난 강물처럼 거침없이, 마치 폭포수처럼 끊임없이 흘러내릴 뿐이다. 인생은 물처럼 흐르기 위해 사는지도 모른다. 흘러가는 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면 어느새 거대한 바다와 마주하게 된다. 바다는 물이 더해져도 흘러넘치지 않는다.

오늘도 내 인생은 내린천처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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