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일이 훌쩍 지나갔다.

새벽 4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한 야영장은 해가 뜨기 전부터 사람들로 분주했다. 이른 아침을 먹고 서둘러 텐트를 철수하고 배낭을 꾸렸다. 최대 3박만 가능하므로 오늘 야영장을 나가야만 했다. 일단 우리는 배낭을 야영장에 맡겨 두었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었다.

야영장을 벗어나 일주 버스를 타기 위해 언덕을 올랐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여러 대의 자동차가 지나갔고 갑작스럽게 은색 자동차가 우리 앞에 멈춰섰다. 울릉도에서의 세 번째 행운이었다.

오늘 함께 다닙시다.”

 

학포야영장 9번 데크
아침엔 라면

 

처음에 U형을 만난 건 야영장이었다.

사흘 동안 학포야영장에서 야영을 한 공통분모로 유대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특별히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몇 번 얼굴을 마주쳤다는 것만으로도 유대감이 긴밀해졌다. 살아온 시대나 환경이 다르지만,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존경심을 서로 가지게 되었다.

누구나 여행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부질없는 근심을 떠안고 있어 봐야 여행은 즐겁지가 않다. 매 순간에 몰두하고서 동시에 여행의 즐거움을 생각해야 한다. 낙관적인 태도로 순간을 즐기는 것이 여행의 본질이다.

 

뚜벅이
U형과의 만남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가 보고 싶은 장소를 상대에게 강요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U형은 여행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와 K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다. 여행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과연 우리는 함께 여행할 수 있을까?

차는 태하에서 멈춰섰다.

5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떤 설명도 없이 아침을 먹자는 U형의 말에 우리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원래 U형이 가려고 했던 중국집은 문을 열지 않았다. 인근에 문 연 식당에 들어갔다. 먹방 유튜버 쯔양이 방문한 우진이네였다. 우리는 야외 탁자에 앉아 홍해삼물회를 먹으면서 간단히 통성명했다. 초고추장을 넣지 않아도 맛있는 홍해삼물회가 두 번째 아침이었다.

 

태하, 먹방 유튜버 쯔양 방문 맛집, 우진이네
홍해삼물회

 

해가 높이 떠 있는 화창한 날이었다.

이따금 괭이갈매기가 창공을 순찰하듯 날아다녔다. 아침을 두 번이나 먹었으니 커피를 마시면 좋을 것 같았다. 추산에 다다랐을 때 차는 속력을 줄였다. 긴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데 관광버스 때문에 길이 막혀 있었다. 5분이 더 흘렀을 때 우리는 카페올라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먼 안쪽 창가에 앉았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K는 아이스 소금라테, U형은 아이스 녹차라테를 마셨다. 우리는 오랫동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을 찍으러 밖으로 나왔다.

듬직한 울라는 우울해 보였다. 울라는 수많은 사람을 반겨줬는데 사람들은 그저 사진만 찍고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울라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반가운 인사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다. 송곳봉 아래 독불장군처럼 서 있는 울라와 흰색 건물이 바다와 묘하게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카페울라
울라-울릉도 고릴라

 

오후 1시가 넘었다.

태양이 머리 정수리에서 조금 비껴 나갈 때쯤 우리는 삼선암에 도착했다. 그늘에 서서 U형이 주신 산양유 가루를 마셨다. 도로 건너편 바위에 올라서서 손차양하고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세 개의 바위를 바라봤다. 가까이 있는 두 개의 바위 위쪽에는 짙은 녹색의 나무와 풀이 자라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제일 늑장을 부린 막내 선녀 바위에만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뒤쪽의 조그만 바위에는 녹색이 전혀 없었다. 나는 해안가 평평한 바위 위에 두 다리로 우뚝 서서 아름다운 울릉도 해안 비경인 삼선암과 좀 더 가까이 마주했다.

석포마을로 향했다.

일주도로에서 석포마을까지는 굽이굽이 급경사지를 올라야 했다. 차를 타고 가는 이 길을 7년 전에는 걸어서 내려왔었다. 숭고한 나라 사랑과 독도수호 정신을 느낄 수 있는 독도 의용수비대기념관과 독도를 지킨 안용복의 업적을 기리는 안용복 기념관을 갔다. 전망대에서는 섬목과 관음도를 연결한 보행 연도교와 울릉도의 부속 섬 중 가장 큰 죽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삼선암
죽도
섬목, 관음도, 죽도

 

임도를 따라 석포전망대에 왔다.

바닷냄새가 바람을 타고 해안 절벽을 휘감아 돌았다. 발아래 울릉 북구 해안이 드넓게 펼쳐져 보였다. 가까운 곳에 홀로 바다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딴바위가 있었다. 정상부가 분화구 모양을 하고 있어 흡사 백록담이나 성산일출봉 같았다. 석포전망대에 올라오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을 한눈에 본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반가워

풍경은 시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졌다.

타이밍에 따라 더 좋은 모습이 될 때도 있다는 말이다. 햇빛을 받은 바다는 춤을 추는 것처럼 계속 반짝거렸다. 울릉도는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흑백으로 찍은 사진을 보니 더 멋진 풍경이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만 개의 별이 바다에서 영롱하게 반짝였다. 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되 감상에 빠지지는 않았다.

 

석포전망대, 딴바위

 

아름다운 동행은 계속되었다.

석포전망대에서 태하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었다. 아침에는 U형이 가려던 그 중국집에서 짬뽕에 탕수육을 먹었다. 지금은 울릉도에서 많이 안 잡힌다는 오징어가 아이러니하게 짬뽕에 들어 있었다. 모두 배가 고팠는지 쉴 새 없이 젓가락이 움직였다.

잘 먹었습니다.”

학포야영장으로 돌아온 후 배낭을 메고 인근 산으로 향했다.

전망대에 텐트를 친 후 학포해변으로 향했다. 학포해변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어둠은 금방 찾아왔고 우리의 아름다운 동행은 여기서 끝을 맺어야 했다. 오늘 나와 KU형 덕분에 아침, 커피, 저녁을 대접받고 온종일 편안하게 차도 함께 타고 다녔다.

오늘 하루 정말 감사했습니다.”

 

탕수육
짬뽕
학포인근 야산
학포일몰

 

한층 더 어둠에 휩싸였다.

백패킹은 여러 감정을 느끼게 했다. 모든 것이 불편하지만 직접적인 야외체험을 통해 색다른 감정과 희열을 만끽하게 된다. 캠핑의 꽃은 모닥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노을로 물든 서쪽 하늘을 말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석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으로 최고의 안식을 느낀다.

 

어둠에 휩싸인 학포마을
학포인근 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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