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4월이다.

갑천 변 벚꽃은 이미 꽃을 피워 벚꽃 터널을 만들었다. 제방에 심어진 샛노란 개나리꽃과 어우러져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새벽 공기는 차갑지 않았다.

식목일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이 되었다. 밤새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다 온몸이 찌뿌드드한 상태로 일어났다. 냉수로 세수를 하고 계절과 어울리는 봄옷을 입었다. 오늘 난 머리털 나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섬으로 출발했다.

 

 

지난 10년 동안 강진, 해남, 완도를 갈 때마다 수없이 지나갔던 그 길이었다.

유성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정읍IC로 빠져나왔다. ‘띵띵 띵띵내비게이션은 광주까지 가라며 한동안 경고음을 울렸다. 그런 울림을 완전히 무시하고 한갓진 시골길을 달렸다. 어느새 내비게이션도 경로 재탐색을 통해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10여 분 후 선운산IC를 통과하여 서해안 고속도로에 다시 진입했다.

2시간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에게 그다지 특별할 것도 유별날 것도 없는 그런 길이었다. 목포IC를 벗어나 압해대교를 건너 신안군으로 들어섰다. 도로변 불 켜진 커피숍에 들어갔다. 분위기 좋고 경치도 좋았지만 한가하게 앉아 커피를 마실 시간은 없었다.

 

 

송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910분이었다.

차량에 앉아 해무 낀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지금 나는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로 갈 생각이다. 매표소에 들어가 왕복 배편을 예매했다. 소악도 선착장에 내린 후, 진섬, 딴섬, 소악도, 소기점도, 대기점도로 이동할 예정이다.

여객선은 검은 매연을 내뿜기 시작했다.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해무로 인해 시계는 좋지 않았다. 천사대교의 형태가 아주 흐릿하게 보였다.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선실에 들어왔다. 배는 당사도를 거쳐 40분 만에 소악도 선착장이 있는 진섬에 도착했다.

 

 

나는 배에서 내렸다.

해무인지 미세먼지인지 구별할 수 없지만, 바닷가 특유의 짭짤함이 공기에 묻어 있었다. 썰물 때라 갯벌 바닥은 그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섬이라고 바다와 갯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천장굴산, 개바우산, 앞산, 범바우산, 큰잔동산 등 구릉지 같은 산도 있었다.

선착장 옆 숲에는 철탑 가는 길이 있었다.

나는 그 길로 들어섰다. 굴착기로 무지막지하게 숲을 밀어버렸다. 4m 정도의 길이 능선을 타고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자연훼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이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황량함이 느껴지는 숲에도 자줏빛 붉은 꽃, 진달래꽃이 피어 있었다. 벌써 꽃을 피우다니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달래꽃을 보고 길 복원에 대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시몬의 집이 있었다.

기점·소악도는 순례자의 섬이라고 불린다. 순례자의 섬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졌다. 12 사도 이름을 따서 지은 작은 예배당이 노두길로 연결된 5개의 섬에 산재해 있다. 순례자의 섬을 찾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기점 선착장에서 하선한다. 섬과 섬을 연결한 노두길을 걸어 12 사도 예배당을 돌아본 후 소악도 선착장에서 다시 승선한다.

예배당은 바닷가, 갯벌, 호수, 언덕 등에 자리하고 있다.

1. 베드로의 집 2. 안드레아의 집 3. 야고보의 집 4. 요한의 집 5. 필립의 집 6. 바르톨로메오의 집 7. 토마스의 집 8. 마태오의 집 9. 작은 야고보의 집 10. 유다 타대오의 집 11. 시몬의 집 12. 가롯 유다의 집이다.

 

시몬의 집
가롯유다의 집
유다 타대오의 집
작은야고보의 집
마태오의 집
토마스의 집
바르톨로메오의 집
필립의 집
베드로의 집

 

순례자의 섬에는 섬과 섬을 잇는 4개의 노두길이 있다.

노두는 밑물 때는 사라지고 썰물 때에 모습을 드러낸다. 노두는 광맥·암석·지층·석탄층 따위가 땅거죽에 드러난 부분을 말한다. 지금은 노두를 시멘트로 포장해 놓아 차량도 이동할 수 있다.

조심! 밀물 때 통행금지

노두길은 밑물이 되면 물에 잠긴다. 물이 찰랑거려서 길이 보인다고 할지라도 물살이 세고 파래 등으로 매우 미끄럽다. 물이 차면 차량은 물론 사람도 절대로 건너가면 안 된다. 3~4시간이 지나면 썰물이 된다.

 

 

아쉬움이 남는다.

길을 만든다고 굴착기로 무지막지하게 숲을 밀어버려 자연을 훼손했다. 산자고, 보춘화 등 섬 야생화 보호와 훼손된 숲의 복원이 시급했다. 자연 그대로인 노두가 아닌 시멘트로 포장된 노두길이라 감흥이 덜했다. 밀물이 되어 바다에 잠기는 노두길과 그 위의 예배당(8. 마테오의 집)을 보지 못했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다.

노두길을 따라 만나게 되는 12개의 예배당은 조용히 묵상하기 좋을 정도의 공간이다. 나에게는 푸른 바다와 마주 보며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만들어진 길은 없다.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는 종교를 떠나서 섬의 자연과 더불어 편안하게 명상하며 걷는 그런 길이다.

 

산자고
보춘화

 

순례자의 섬을 다 돌아봤다.

물론 모든 예배당을 다 가본 것은 아니다. 안드레의 집과 야고보의 집은 가지 않았다. 나는 숲길과 노두길을 중심으로 섬을 걸었다. 대기점 선착장에 있는 베드로의 집에서 배를 기다렸다. 오후 432분 다시 배를 탔다.

배고픔이 극에 달했다.

아침은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셨다. 점심에는 캔맥주를 마시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막 배를 타고 기점·소악도에서 송공항으로 나왔다. 대전을 가려면 목포를 지나가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목포에 올 때마다 꼭 들리는 유달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선경준치회집에 갔다. 아귀탕과 갈치구이를 주문했다. 꼭 아귀탕과 갈치구이를 먹어봐야 한다. 일단 한번 잡숴봐!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대기점선착장
목포 맛집 - 선경준치회집, 갈치구이(4미 이상)
목포 맛집 - 선경준치회집, 아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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