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던 나는 책으로 눈을 돌렸다.

책꽂이에 두서없이 쌓여둔 책들의 제목을 훑어내렸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에밀레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등이 눈에 들어왔지만, 오늘따라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는 두꺼운 매트가 깔린 탁자 옆으로 갔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다섯 권의 책들이 놓여 있었다. 전기장판이 켜진 매트 위에 이불을 덮고 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손을 뻗어 책들을 한 권씩 훑어보았다.

 

 

그중 책 한 권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책을 손에 들고 다시 한번 제목을 살폈다.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이다. 나는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노안이 찾아온 눈동자에 선명한 글씨가 펼쳐졌다. 무언가에 홀린 듯 이불 속으로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나는 책에 빠져버렸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부르르 떨렸다. 가끔 내쉬는 호흡과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책을 읽는 동안에 나를 휘감은 흥분은 내 얼굴에 홍조를 띠게 했다.

 

 

야성의 부름은 벅이 주인공이다.

벅은 늑대 개다. 미국 남부에서는 인간의 사랑을 받던 개였다.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광풍으로 하루아침에 썰매 끄는 개로 팔려 알래스카로 떠나게 된다. 가혹한 매질 속에 생존을 위한 처세술, 강자가 되기 위한 싸움기술 등을 배우게 된다. 그 과정에 자신을 부르는 자연의 소리를 듣게 된다.

벅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벅이 처한 가혹한 환경은 인간이 사는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은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지 말고 공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계를 뛰어넘어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 나가야 한다.

 

 

나는 모험과 여행을 즐긴다.

오늘 오후에 부산에 왔다. 부산에 여러 번 왔었지만, 동래구에서 숙박하는 건 처음이다. 이번 여행은 도심 번화가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 속에서 지내야 한다.

나는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다.

잠잘 곳은 정해졌으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금상첨화다. 음식은 여행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이다. 나에게 먹는 것을 빼놓는 여행은 상상하기 힘들다.

 

 

부산에서 8끼를 먹었다.

곰장어, 돼지국밥, 회정식 코스, 삼겹살, 호텔 조식 등. 음식은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반드시 입맛을 돋게 만드는 요소와 함께해야 한다. 그 요소는 술이 될 수도 음악이 될 수도 있다.

명심해야 한다.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모험과 여행을 즐기듯 음식을 즐겨야 한다. 한계를 뛰어넘을 때까지 먹고 마셔야 한다. 술에 취하듯 음식에 취해야 한다.

 

 

또 하루가 밝았다.

하루에 아침은 두 번 찾아오지 않는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내게 어서 밖으로 나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비록 나는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30분이 지났다.

금성산 자락 옥련암에 왔다. 차는 인근의 아파트 건물 앞 빈 공터에 세웠다. 등산화를 신고 천천히 산을 올랐다. 많은 사람이 산을 찾고 있다. 도심 인근의 산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산이 메말랐다.

바람에 휘날리는 건 희뿌연 먼지였다. 아름드리 소나무의 뿌리는 땅 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등산로는 훼손이 심해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양심도 메말랐다.

사람의 발길이 닿은 산 곳곳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눈곱만한 도덕심도 찾을 수 없었다. 생활 쓰레기, 음식물, 과일 껍질 등이 숲의 민낯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가본 산 중에서 가장 더러운 산이었다.

 

 

더는 안된다.

산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산을 이대로 버려뒀다가는 다시는 산의 기능을 회복할 수 없다. 이곳에 온 목적이 하나 있다. 내가 사흘 동안 이 산을 헤매고 다닌 이유와 같다.

나는 산에 대한 도덕적 신념을 갖고 있다.

나의 신념은 확고부동하며 살아있는 산 그 자체다. 산속의 나무, , , 곤충 등과 함께 있을 때의 청량함이 좋다. 산과 공존하는 조화로운 삶을 위해 오늘도 한 걸음 내디뎌 본다.

 

나는 꿈을 꾸었다.

지금보다 어릴 적에 더 많은 꿈을 꾸었다. 귀신이나 괴물이 등장하여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악몽을 종종 꾸었다. 악몽을 꾼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오줌을 싸고 말았다. 졸지에 오줌싸개가 된 것이다.

하늘을 나는 꿈도 꾸었다.

나비처럼 유유자적하게 꽃과 하늘 사이를 날아다녔다. 마음만 먹으면 꿈속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 꿈속은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를 모르는 대다수를 위해 나를 소개하겠다. 나는 꿈을 꾸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살아있다는 것에 원초적 행복을 느낀다. 오늘날처럼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엔 너무 순수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

예전에 그랬다는 말이다.

누구도 나를 길들일 수 없다. 내 신조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통용되는 악습은 따르지 않는다. 예외는 없다. 내 신조에 어긋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는 늘 행복한 꿈을 꾸며 그 꿈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

 

 

어린 시절이 그립다.

꿈을 꿀 수 있는 그때가 그립다. 삶이 다른 두 세상을 살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가만히 앉아 행복한 꿈을 꾸었다.

내 이름은 문성식이다.

나는 대전 유성에서 태어났다. 유성에서 초, , 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다녔다. 유성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 이후 베트남,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지금은 일과 모험과 여행을 적절하게 공유하며 나 하고픈 대로 사는 사람이 되었다.

 

 

내 맘대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버릇이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휴가철 전이나 후에, 주말이나 공휴일 말고 평일에, 나는 해마다 여행을 떠났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

15년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제주도에 갔다.

3월 초에는 오름에 올라 봄바람을 맞았다. 5월 말이나 6월 초에는 백패킹을 하며 제주 자연을 느꼈다. 9월 말이나 10월 초에는 곶자왈을 걸으며 숲 향기를 맡았다. 12월 초, 중순에는 눈 덮인 한라산에 올랐다.

 

 

처음엔 그랬다.

여행은 신발이 닳도록 낯선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다녀야만 했다. 나의 발자취가 허무하게 흩어지고 말았다. 남들에게 자랑하는 보여주기식 여행이 힘들고 피곤했다. 여행을 다닌다고 삶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자주 찾고 오래 머물렀다.

호젓하게 앉아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았다. 노을에 물들어가는 바다의 몸부림을 볼 수 있었다. 이름 모를 새 소리를 통해 숲의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은 현실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숨통이 트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

나의 꿈은 내가 좋아하고 하고자 하는 것은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고, 하고자 하는 것은 글쓰기이다.

생각을 글로 쓰고 있다.

하루 세 끼를 먹듯 하루도 빠짐없이 쓰고 있다. 습관처럼 볼펜을 쥐고 메모지에 끄적거린다. 숨을 쉬듯 한 글자씩 써 내려 가다 보면 어느새 말하는 것처럼 생각이 글로 표현된다. 여행기나 단편을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도 난 떠날 준비를 한다.

가본 적은 없으나 들어본 적은 있는 장소로 향할 것이다. 내 앞에 어떤 여행지의 모습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여행은 경험과 더불어 추억을 남긴다. 나는 여행을 통해 꿈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나에게 여행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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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과 다른 점이 없었다.

125,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서관을 나왔다. 왕복 8차선 도로의 인도를 걸었다. 수년 동안 보아오던 흔한 거리의 풍경이 펼쳐졌다.

10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사이 태양은 조금 더 높이 떠올랐다. 햇살이 지표면으로 엄청난 광선을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이 순간 계절이 변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햇볕은 따뜻했다.

2월의 어느 수요일, 하늘은 구름 한 점도 없다. 모든 게 밝고 고요하며 바람마저 향기롭다. 향기는 새롭지 않았다. 오랫동안 맡아오던 익숙한 냄새였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

햇살의 온기가 열린 창문 사이를 통과하여 실내로 들어왔다. 바람의 향기에 햇살의 열기가 더해져 방안으로 퍼져나갔다.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떡볶이는 가래떡에 채소 등을 넣어 볶거나 끓인 음식이다. 유튜브(youtube)에서 떡볶이를 검색했다. 백종원의 요리 비책을 보고 황금비율 양념장 제조법을 습득했다.

주방에 들어섰다.

냄비에 물을 붓고 진간장, 설탕, 고춧가루를 섞은 뒤 양배추와 대파를 잘게 썰어 넣었다. 뽀글뽀글 끓어오를 때 삶은 달걀과 어묵을 넣고 졸이기 시작했다. 떡볶이 고유의 색깔이 드러나고 특유의 향이 코를 찔렀다.

 

 

떡볶이를 먹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기 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커피를 마시고 양치질을 했다. 입안이 상쾌해졌다. 나는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에 자전거를 탔다.

선글라스로 바꿔 쓰고 두꺼운 장갑을 꼈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 안장을 장갑 낀 손으로 닦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도 안장을 닦았다.

 

 

햇볕 속으로 뛰어들었다.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굴렸다. 한참 동안 그렇게 했다. 가고 싶은 곳을 가서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왔다. 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수목원에 도착했다.

수목원 가장자리를 천천히 걸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쪼개지듯 빛의 파편이 쏟아졌다. 추운 겨울은 천천히 물러가고 있었다.

 

 

남은 오후를 집에서 보냈다.

혼자 집에 있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좋다. 할 일이 있었고 방해받기 싫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때때로 라디오를 듣거나 낮잠을 잤다.

마당으로 나갔다.

자갈이 깔린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 지붕 위까지 올라간 감나무를 바라보았다. 이파리를 떨군 가지는 외로움이 가득 박혀 있었다. 오후였지만 마당은 그늘져 서늘했다.

 

 

도로의 밤은 환했다.

어두운 도로는 가로등이 밝혔다. 가로등은 왕복 8차선 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졌다. 도시에는 어둠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골목의 밤은 어두웠다.

어둠 속을 말 없이 천천히 걸었다. 굉음을 지르며 요란하게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바라봤다. 매캐한 경유 냄새가 골목까지 끼쳐왔다.

 

 

졸음이 몰려왔다.

오늘 하루의 일들이 아득히 멀어져갔다. 몸 안의 긴장감이 빠져나가고 몽롱함이 찾아왔다. 더는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넓은 방 한쪽 구석에 누웠다.

방 안에는 책상, 작은 옷장 2, 탁자 2, 40인치 텔레비전이 있었다. 미닫이 유리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탁자 위 조명을 껐다. 고요한 몸짓으로 어둠에 녹아들어 잠들었다.

이 모든 일이 수요일 하루에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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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미도에 왔다.

여행은 나에게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특히 섬 여행은 내가 유일하게 매력을 느끼는 취미 생활이 되고 있다. 새로운 생각을 위해서는 언제나 새로운 장소가 필요하다.

여행은 자유로워야 한다.

여행의 최대 장점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라고 생각하기 쉽다. 진정한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싶은 것을 안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바다누리호
두미도 북구항

 

두미도는 느낌이 있다.

섬의 모양으로 드러나는 겉모습이 아니라 섬에 숨어 있는 마을 터, 옛길 등에서 풍겨 나오는 임의로 할 수 없는 불변의 것에서 이끌림을 느낀다. 나는 이 이끌림 때문에 두미도를 다시 찾게 되었다.

섬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차를 타고 임도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면 이색적인 풍경은 볼 수 있어도 섬을 관찰할 수는 없다. 어떤 장소를 잠깐 지나치는 게 아니라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천황산에서 바라본 북구항
천황산에서 바라본 청석마을, 동뫼섬

 

두미도에는 마을이 산재해 있다.

북구 항에서 반시계방향으로 고운, 설풍, 덕리, 순천, 대판, 청석, 남구 항, 사동으로 이어진다. 섬은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다. 가구 수도 얼마 안 되고 없어진 마을도 있다.

섬은 시간여행을 준비 중이다.

자연스럽게 사라져가는 것들이 있으면 잿더미 속에서도 한줄기 생명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살고 싶은 섬, 두미도 가꾸기 사업의 하나로 작년 말부터 남구 항에서 사동, 북구 항, 고운, 설풍까지 옛길을 복원 중이다.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남구항
설풍마을에서 바라본 고운마을

 

섬 속에 옛길이 묻혀 있다.

섬은 옛길을 둘러싸고 옛길은 세월의 흐름에 잊혀 있었다. 콘크리트 임도의 편리함 때문에 옛길은 무시되었다. 삶을 되돌아볼 때 옛길은 소중한 삶의 흔적이며 추억이 된다.

마을은 옛길을 통해 이어진다.

옛길을 따라 삶의 공간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다. 보석의 아름다움이 사람들을 홀리듯 옛길의 복원이야말로 두미도 사람들과 두미도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게 할 것이다.

 

북구항에서 고운마을 가는 옛길

 

마을 사이의 거리는 시간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덤불을 걷어내고 무너진 돌담을 다시 쌓으면 옛길은 선의 흔적을 걷는 길로 드러낸다. 설풍에서 묵은 밭 사이로 난 좁은 돌담길을 따라 서남쪽으로 걸어가면 덕리를 만나게 된다. 무거운 돌절구를 지고 오갔던 옛길이다.

그 옛길을 찾아 헤매던 중 칡을 보았다.

칡의 굵기는 얼마나 될까? 바위 밑까지 뻗어 있는 칡은 이제까지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굵은 것이다. 칡의 즙은 쌉쌀하지만 건강한 맛이다. 칡을 보고 있으니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칡은 오랫동안 인적이 드문 장소에 있어서 이렇게 뻗어 나갈 수 있었다.

 

설풍마을에서 덕리마을 가는 옛길 입구

 

덕리는 돌담만 남았다.

덕리는 산속 깊숙이 떨어진 외딴 마을이지만 돌구덕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칼로 두부를 잘라놓듯 돌담만 남은 옛 집터는 한때 반듯한 집들로 동네를 이루고 살던 곳임을 말해준다.

풍경을 바라보면 그림을 보는 것 같다.

해안 절벽과 돌구덕이 아무리 지척이라도 절대로 한걸음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돌구덕 풍경을 보고 파도와 바람 소리를 듣는데 사람마다 보고 듣는 것이 다 다르다. 각자가 지닌 마음속 세계의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덕리마을(겨울)
덕리마을(봄)
돌구덕
돌구덕 파노라마 사진

 

절벽 위에 길이 있다.

덕리에서 돌구덕을 발아래로 내려다보며 길을 걷는다. 낭떠러지 위 바위를 쪼아 만든 길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절벽 구간을 지나 동백숲에 다다르면 이내 임도와 만나게 된다.

임도가 옛길이다.

대판을 지나 청석까지는 옛길을 넓혀 임도로 만든 길이다. 따분하게 느껴지는 임도가 절대 아니다. 대판의 비탈은 고즈넉하고 청석의 들판은 평화롭다. 두미도 꼬리인 동뫼섬을 바라보며 임도를 걷는 즐거움이 있다

 

절벽 길
조망점
임도에서 바라본 동뫼섬

 

고갯길을 넘는다.

청석 임도에서 다시 대숲으로 들어선다. 대판과 청석 사람들이 남구 항을 가기 위해 넘어 다녔던 고갯길이다. 지금은 천왕봉 등산로와 인접하고 있다. 고개를 넘으면 남구 항이 한눈에 보인다.

사람마다 보고 듣는 것이 다르다.

들으려는 의지가 있기에 귀가 있고 보려는 욕망이 있기에 눈이 있는 것이다. 섬에서 생활이 외로울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것처럼 살아가는 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행복의 기준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남구항 동백 숲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았다.

몸과 마음의 안식을 위해 23일 동안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건물 앞에는 재활용품을 이용하여 만든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비닐하우스 같은 두미 쉼터에는 난로도 설치되어 있어 휴식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살고 싶은 섬은 두미도다.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은 한호수 사장님 부부가 운영 중이다. 캐나다에서 20여 년 동안 관광업을 하다 귀국한 후 두미도의 매력에 반해 이주하셨다. 두미도만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다.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
두미도 바다 펜션 (민박)
저녁식사
두미쉼터

 

섬의 밤은 먹색이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고 고기잡이배의 불빛만이 넓은 바다를 좁게 비추고 있다. 밤바다의 경외감에 빠져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점점 옅어진다.

섬의 새벽은 짙은 먹색 빛깔에서 엷은 안개 빛깔로 바뀌고 있다.

나의 육체, 어둠에서 나와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머릿속 생각의 끈을 마음껏 풀어 놓는다. 창의적인 사고는 늘 나를 성장시킨다.

오늘도 살고 싶은 섬, 두미도에서 불멸의 희망을 꿈꾼다.

 

북구항 조형물(두미도 바다 팬션)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을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청소기로 미세먼지를 흡입한 후 물걸레로 깨끗하게 닦아내고 싶다. 능선에서 도심의 아파트를 바라다본다. 한정된 토지를 공유하며 허공에 떠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소공포증은 없을 것이다. 공간을 찾아 늘어나는 회색의 도심 고층아파트보다 점점 줄어드는 너른 들녘의 휑함이 더 눈에 들어온다.

 

숲 향기

 

오늘도 날렵한 산꾼처럼 장시간 길 없는 숲을 해치고 다닌다. 내가 걸어 들어온 숲에 자연이 숨죽이며 깨어나고 있다. 내 시선은 나뭇가지 사이의 허공을 향하고 있지만 내 평화로운 마음은 숲속을 향해 열려 있다. 마음으로 자연을 느껴본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연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

숲에는 나무 하늘엔 흰 구름,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날마다 새로워진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좋은 향기가 난다. , 낙엽, 나무 향기에 취한다. 속살을 다 드러낸 나무뿌리를 보고 마음이 상하기도하지만, 동물 발자국이나 분변을 보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벗을 본 것처럼 반갑기만 하다. 산에는 여러 존재가 다채롭게 서식하고 고유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정상에 서면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평온해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화를 시작한다. ‘대지가 너무 메말라 가는데 비를 내려 주시겠어요?’ 하늘이 대답한다. ‘비가 오면 추위가 찾아올 텐데 헐벗은 산이 감기라도 걸릴까 봐 걱정이야.’ 자연은 온몸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비를 피하려고 우산을 드는 건 사람밖에 없다.

 

들어서다

 

내가 지나간 자리, 눈에 잘 띄는 나뭇가지에 빨간 끈을 매어 놓는다. 구봉산 능선길을 놔두고 깎아지른 능선 암벽 밑으로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돌너덜 위에 썩지 않고 쌓인 낙엽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자니 여간해서 속도가 나지 않는다. 사람 발자국 없는 곳이지만 야생동물이 이동한 흔적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 흔적을 따라 걸어갈 때면 고마운 마음에 발을 살포시 올려놓게 된다. 그 옛날, 숲속을 지나간 흔적은 이내 길이 되기도 한다.

산은 그저 견딘다. 더워도 견디고 추워도 견딘다. 꽃이 져도 견디고 잎이 떨어져도 견딘다. 바람에 나무가 꺾이고 넘어져도 견디고 암벽이 갈라져 암석이 떨어져도 견딘다. 아무 말 없이 견디기만 하는 산이 안쓰러워 오늘도 산을 찾아 위로의 말을 전한다. 소나무 그늘에 홀로 붉게 물든 단풍이 있다. 산의 활엽수 나무는 대부분 잎을 다 떨구었는데 외로이 홀로 서서 하늘을 향해 일인시위 중이다.

나무가 나무를 때린다. 바람이 세게 불기라도 하면 큰 나무의 가지가 휘청거리며 작은 나무의 얼굴을 때린다.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바람결에 취해 자꾸 따귀를 때린다. 가끔은 큰 나무의 그런 행동을 말려도 보고 타일러도 본다. ‘같이 잘 지내야지라고 말은 하지만, 바람이 부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라 내 마음만 애가 탈 뿐이다. 세상을 사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바람이 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겨울이지만 바람을 맞고 싶을 정도로 더운 한낮이다. 바람이 불어오자 즐거운 세상 소식을 들은 것처럼 입꼬리가 올라가고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높이 올라야 더 멀리 볼 수 있기에 가파른 암벽 능선을 과감히 기어오른다. 솟구쳐 흐르는 땀 줄기가 식어 한기를 느낄 때까지 노루벌을 바라보며 서 있다. 산에 오면 언제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다가온 겨울이 부끄러워 홍조 띤 잎으로 어색하게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본다. 노루벌을 흐르는 물소리에서 힘겹게 한해를 살아온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섞여 있다. 차가워진 수온만큼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큰소리로 외쳐본다. ‘조금만 더 힘내자고요!’

 

 

더 많은 경험을 하려면 여행을 떠나는 것이 가장 좋다. 나중에 떠난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절대로 못 떠나게 된다. 생각했다면 무조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감정의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보이는 모든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돈은 경험을 사는 데 써야만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아무튼

 

공기가 차갑다. 해가 떠서 세상을 눈부시게 비추는데 바람이 불어와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하늘이 파랗다. 아무튼, 하늘이 파란 건 좋지만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을 갖는 건 싫다. 엄청 조용한 아침이다. 아침의 조용함은 자연 속에서밖에 있을 수 있는 조용함이다.

느슨해진 계절을 즐기는 가을이다. 가을 단풍의 색채는 눈을 만족하게 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새벽에 내린 안개비가 먼지를 뒤집어쓴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 버렸다. 아침 햇살이 자작나무숲을 비출 때 오랜만에 나는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 기분을 아는가? 신선한 공기를 오감으로 느꼈을 때 전해지는 감각의 떨림이 좋다. 자작나무숲을 바라보는데 어느 필터가 필요하겠는가? 순수한 아침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만이다.

바람은 한쪽으로만 불지 않는다. 바람결에 자작나무의 몸짓이 만든 청량한 소리가 들려온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똑같은 소리는 하나도 없다. 소리의 파동이 미세하지만, 차이가 있다. 감각이 무뎌져 가는 요즘, 받아들려고 노력하니 다시 거짓말처럼 감각이 살아났다. 영롱한 햇빛이 지면을 내리쬐고 있다. 눈을 뜨니 눈부시다. 너무도 강렬한 빛이라 태양과 맞서길 거부한다. 고개를 숙여 항복을 선언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아주 가끔 그런 순간이 나를 압도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 그렇다. 강렬한 햇빛을 받은 자작나무 흰 나무껍질이 거울처럼 빚을 반사하여 내 몸을 비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무대 위 가수처럼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방향을 잃은 여행자처럼 한동안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루아침에

 

계절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어제까지는 녹음이 짙은 나뭇잎에 불과했는데 하루아침에 빨간 사과처럼 발그레하게 단풍이 들었다. 그 모습에 얼마나 놀랐던지. 기쁨은 찰나의 순간에 느끼게 된다. 내가 단풍을 갈망하기에 진정으로 자유롭게 갈망하기에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숲을 물들인 것이다. 나무가 만든 단풍은 세월의 흐름과 같이 조금씩 변화하는 삶의 예술 작품이다.

나는 바다만큼 산도 좋아한다. 여름밤 모래 해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앉아 파도가 만들어낸 물의 속삭임을 듣곤 한다. 가을 낮 단풍든 우듬지 나뭇잎이 바람과 함께 산중 춤판을 벌이면 나무 아래에서 하염없이 혼자 서 있곤 한다. 파도와 같이 나무도 귓속말로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누가 더 좋은데.’바다에는 모래와 파도가 있고, 산에는 야생화와 나무가 있다. 바다에서도 산에서도 언제나 일상을 벗어난 느낌이 든다. 일상을 벗어나는 것은 언제나 멋진 일이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 좁은 곳에서 살았다. 세상에 나가기 위해 나는 지금의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드넓은 세상에 내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심신의 역량을 최대치로 키울 보다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여행은 적어도 넓은 세상으로 가는 하나의 통로임에는 틀림이 없다. 가을은 짐을 꾸리고 여행을 떠나기에 아주 좋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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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가장 드문 월요일에 계룡산을 찾곤 한다. 계룡산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은 삼불봉이다. 삼불봉에 서서 한참 동안 주변 풍광을 살펴본다. 봄엔 생명의 기운이 돋아나고 여름엔 녹음으로 가득 차고 가을엔 형형색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겨울엔 헐벗은 가지에 눈 코드를 입는다.

계룡산의 매력은 많은 조망에 있다. 곳곳에 숨어 있는 바윗덩어리들은 험준한 산맥으로 시선을 확장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있다. 높은 바위에서 내려다볼 때 불쑥 솟아오른 굴곡진 능선, 주름치마 같은 산맥의 주름, 저수지를 둘러싼 황금 들판은 계절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게 만든다.

계룡산의 또 다른 매력은 계절감이다. 봄의 노란 생강나무꽃이, 여름의 푸른 소나무 솔잎이, 가을의 청량한 은선폭포 물소리가, 겨울의 하얀 운해의 관음봉이 산을 찾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산은 매일 조금씩 변해간다. 변화는 관심을 가지고 볼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산의 나무는 올해도 나이테를 하나 더 만들었다.

 

나는 산꾼이다

 

봉우리든, 나무든, 암석지든, 새들이든, 꽃이든 숲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애정을 갖는 사람이다.

자연은 언제나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좋아하는 숲은 가식적 포장이 없는 세월의 흐름을 몸소 보여준다.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암석,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울창한 나뭇가지, 비가 오면 큰 소리로 울어대는 폭포의 비명 등을 볼 수 있다. 누구나 똑같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보다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특이한 아름다움에 더 관심을 가진다.

숲속 작은 오솔길에 해가 비추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피며 해를 맞이한다. 바람 따라 흔들리는 수풀 사이로 기웃기웃 수줍게 해바라기 하는 구절초가 화들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숲속 바위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물의 흐름은 알지 못한다. 굽이굽이 흘러가면서 이끼들이 들러붙은 바위에 부딪힌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흩어졌다가 물은 다시 흐른다. 흐르는 물은 손으로 움켜쥘 수 없지만, 손바닥을 모으면 담을 수 있다. 한번 흘러간 물은 긴 흔적을 남기면서 빠르게 숲속으로 사라진다. 여전히 물은 흐른다.

 

들어서다

 

벌써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뛰어나게 아름다운 풍경보다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좋다. 조촐한 풍경 속에는 어딘가에 예술적 미학이 있다. 산이 양팔을 벌려 껴안듯 자리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늘이 하늘이고 산줄기가 산줄기이고 땅이 땅인 자리에서. 하늘과 산줄기와 땅이 경계처럼 구분되기보다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맞닿은 곳에서 소통하고 싶다.

자연의 품인 산을 난 자주 찾고 있다. 도시 생활에 피곤함을 느낄 때 아픈 상처를 치료하러 산에 들어선다. 세상이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업신여기고 외면해도 자연의 품인 산은 절대로 나를 외면하지 않는다. 오늘은 산에서 숨을 쉬고 상처를 치유한다.

처음엔 아는 만큼 보였지만 지금은 느끼려고 노력한 만큼 자세히 보인다.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우연히 과거의 산과 만나 하나의 완전체가 되었다.

 

여름이 지나면 어김없이 가을이 온다. 당연한 자연의 순리다. 조석으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추석을 보내고 다시 서대산을 찾았다. 여름이 그려 놓은 짙은 녹음 위로 가을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늘로 뻗은 가지에는 생명의 기운을 가득 담은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눈으로 보는 세상은 차갑고 단편적인 모습이지만 마음으로 보는 세상은 따듯하고 휘황찬란한 모습이다.

 

10월의 진달래꽃

 

하룻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시간은 타임머신을 타고 흐른 듯 여름이 초겨울로 바뀌어 있었다. 여름에서 겨울로, 순식간에 세월을 잡아먹을 것 같은 수상한 10월 중순이다. 새벽만큼 기온은 내려가지 않는다. 움츠렸던 세상도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능선을 타고 오르는 발걸음이 무겁다. 나뭇가지를 흔들며 불어오는 찬 바람 속에 희미한 봄의 꽃향기가 느껴진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핀다. 진달래꽃이다. 진달래꽃이 피었으니 곧 여름이 시작된다는 건가? 추위가 물러가고 더위가 온다는 의미인가?

나는 서대산 암벽 밑에 우두커니 서 있다. 옛길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결국 옛길은 흔적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오소리 등이 다닌 동물 길만이 급경사 사면에 완만하게 이어져 있다. 그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깊은 산 속 계곡의 암반 위로 투명한 액체가 줄지어 쏟아진다. 음침한 분위기 속에 흐르는 폭포수의 소음이 낙엽 썩은 냄새를 잊게 만든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 숨을 깊게 들이쉰다. 참 이상한 현상이다. 암벽으로 둘러싸인 곳인데 곳곳에 암벽을 타고 폭포수가 흐르고 있다. 눈앞의 암벽은 나를 움츠러들게 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암벽 앞에서는 차가운 바람만큼 내 마음도 냉랭해지고 만다.

 

산속을 헤매는 이유

 

언젠가부터 숲은 생명을 잉태한다. 호흡은 거칠어지고 가시에 찔려 피가 나기도 한다. 부지런히 숲속을 헤매는 것에도 가속이 붙는다. , 열매, 녹음, 단풍, 버섯, 폭포 등 형태는 다 제각각이지만 생명력을 가진 모든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숲이 품고 있는 생명을 보고 있노라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나는 늘 책과 더불어 산을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다. 겨울과 봄에는 산으로 여행을 다니고, 여름과 가을은 주로 책을 읽는다. 계절이 바뀌어 세상이 흥분의 도가니에 젖어 있을 때마다 나를 성장시키는 일에 전념했다. 내가 산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소중한 생명의 예쁜 몸짓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계절의 변화는 하늘의 뜻이지만 너무도 일찍 겨울이 찾아오는 것이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처음부터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없다. 경험을 통해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많이 안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이 많은 것이다. 경험이 중요한 것은 스스로 겪은 체험이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것이 아니다. 경험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이다. 앎의 활용은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잘하느냐, 잘못하느냐를 결정한다. 앎의 활용을 잘하는 쪽으로 힘쓰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경험의 축적은 언제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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