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여행 경험의 여부에 따라 빈도가 달라진다. 그동안의 여행 경험은 자신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고 다음 여행에 꼭 필요한 새로운 동기를 부여했다. 여행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이며 여행이 없다면 진정한 삶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행은 삶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맛있는 음식과 같다. 여행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질병의 만병통치약이다.

새로운 구상은 일상의 공간을 벗어난 휴가지에서 일어난다. 휴가지에서는 내 인생이 새롭게 전개될 것이다. 휴가를 즐기는 동안 기분 좋고 부드러운 흥분을 경험하게 된다. 드넓은 바다와 석양이 만들어낸 빛의 오묘함을 보고 한낮의 구름 없는 새파란 하늘을 가만히 바라본다. 휴가는 인생의 살아 숨 쉬는 발자국이며 살아있음, 여유와 기쁨을 의미한다.

 

혼자 놀기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제주,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무작정 걷는다. 마음에 드는 한적한 장소에 텐트를 치고 나만의 공간을 구축한다. 여행은 예고도 없이 불쑥 새로운 장소에 나타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어둠이 사라지고 해가 뜨면 지난날의 발자취가 인적 없는 해변에 뒤섞여 있다. 속이 다 비칠 정도로 맑은 바다는 솔솔 부는 바람에 수줍어하며 잔잔한 파도를 만든다. 해변을 맨발로 걸으면 일렁이는 파도처럼 자신을 숨기려고 모래는 유난히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지른다.

나는 텐트 밖으로 액자 같은 구름을 보고 있다. 길고 넓게 펼쳐진 솜이불 같아서 그 위에 눕고 싶다. 구름을 보고 있으니 동심의 세계로 돌아온 것처럼 즐겁다. 이게 백패킹을 하는 이유이다.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 구름이 하늘을 자유롭게 떠다니듯 나도 그렇게 흘러가면서 이 시간을 즐기면 된다.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면서 느긋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외로움을 좋아하고 즐기는 법을 알고 있다. 꽃이 해를 향해 방향을 돌리는 것처럼 나는 원래 혼자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서 여행을 떠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쁜 일상을 보낸다.

 

가을 남자

 

해가 떠 있으면 더위를 못 견디어 그늘을 찾고 해가 지고 바람이 부채질을 하면 옷을 겹쳐 입게 된다. 긴 머리카락이 흩날리듯 바람은 흘려보내면 되는데 내 마음은 갈 곳 잃어 방황한다. 계절은 늘 바뀌는데 유독 가을을 타는 이유를 모르겠다. 바닷바람이 거세게 부니 이젠 몸마저 춥다.

나는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책에 나섰다. 붉게 타오르는 석양이 고요히 바다를 내리비추고 있다. 높은 곳에서 노을 진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무겁게 짓눌려 있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며 평온함이 찾아온다. 밝음이 사라지니 야심한 시각처럼 괴괴한 적막감이 흐른다. 저 멀리 어둠을 밝힌 불빛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밀려온다. 지금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욕망은 불꽃과 같이 뚜렷한 형태를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부는 날처럼 불꽃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크게 밝아지거나 커질 듯 사그라진다. 보드카에서 나는 술향기가 좋으니 어둠이 짙어갈수록 술향기도 짙어진다. 어디에서 부는 바람인지 모르지만 온종일 날아갈 듯 바람이 세다.

 

행복이 시간을 멈추게 하지는 않는다. 56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번 여행은 많은 흔적을 남겼다. 비박 지에서의 하루가 모여 제주 백패킹 여행이 되었다.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었다. 제주도의 자연은 어느새 가을옷으로 갈아입었다. 곧 추위가 시작되는 겨울도 찾아올 것이다. 늘 그렇지만 이번에도 난 대단한 일을 해냈다.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다짐하지만 나는 향수에 젖어 다시 제주 백패킹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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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잘 하는 게 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미지의 공간으로 불시착한 내 모습을 상상한다. 난 편안함 속에서 늘 새로운 장소를 갈망한다. 나는 원래 집에 있기를 좋아하지만, 그 시기에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려고 항상 장소를 물색 중이다. 내 인생에서 여행의 꿈은 늘 그렇게 자리한다.

 

기차 여행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간다. 내가 탄 객실에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기차는 다른 객실의 사람들을 태우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시 출발한다. 아침 햇살에 밝게 빛나는 시골 풍경은 기차가 달릴수록 빠르게 사라졌다가 이내 느리게 나타나고 있다. 창밖 풍경은 온통 녹색으로 뒤덮인 시골 풍경이다. 기차 여행을 꿈꾸던 지난날의 젊은 시절이 꿈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옅은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날, 늦여름의 더운 숨결이 불어온다. 불국사의 석교나 석문은 고통과 전쟁, 행운과 번영 등 모든 것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하루의 시간대나 날씨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게 느껴진다. 나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지냈기에 그들의 소리 없는 몸짓에 더 시선을 기울인다. 고통과 슬픔을 이겨낸 그들은 말한다.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보면서 귀 기울여 내가 말하는 소리를 들어봐

나는 즐거운 떠돌이다. 낯섦을 음미하면서 즐겁게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나는 여행지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장소에서도 한걸음 뒤로 물러나 진지하게 즐거움을 만끽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자가 훌륭한 방랑자이다. 나에게 방랑은 가장 큰 즐거움이자 죽을 때까지 함께 하고 싶은 소중한 친구이다.

길은 장소를 이동할 수 있는 땅 위의 공간을 말한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걸어 다니는 공간에 나와 다른 사람들의 흔적이 뒤섞여 있다. 곧게 뻗고 시야가 뻥 뚫린 넓은 길을 걷는 것보다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아무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며 떠도는 것이 좋다. 골목길의 매력은 좌우로 조금씩 꿈틀거리며 나아간 길을 따라 무한정 옆길로 샐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름이 만들어낸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골목길은 우리의 숨은 명품 길이다.

 

밤의 야경

 

어둠의 그림자가 동궁과 월지 사이를 감돌고 있다. 나는 해가 지기 전에 월지 인근을 어슬렁어슬렁 거닐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 718, 동궁과 월지의 조명이 켜졌다. 더운 여름날 저녁 풍경으로 이보다 매력적인 아름다움은 없을 것이다. 월지에 빠진 동궁의 그림자는 참으로 신비스러운 풍광이다. 방금 이곳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저마다 사진을 찍으며 야경을 즐기고 있다. 야경을 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이곳의 모든 것은 어둠과 불빛이 융화된 듯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숱하게 많은 여행을 다녀도 결국 남는 건 여행의 추억뿐이다. 첨성대를 밝히는 조명을 제외하고 주변은 밤의 어둠에 장악되어 있다. 유구한 역사가 일곱 가지 색처럼 자연스럽게 내 앞에 흘러간다. 새로운 역사가 내 앞에 펼쳐져 있다. 새롭고 밝은 인생이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행복으로 가는 여행

 

나는 종종 시간에 대해 고민한다. 인생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시간여행을 의미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특별히 나를 위한 시간은 많지 않은데, 시간의 흐름이 너무 빨라지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떠나보낸 슬픔은 삶이 무한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세월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행복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즐거운 이야기가 생겨난다. 즐거운 이야기가 생겨나는 그 길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나만의 고민거리를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갑작스럽게 접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는 여행이다. 여행은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한 활동이다. 여행의 길은 세월의 길이만큼 길지 않지만, 시간에 대한 새로운 체험이다.

 

 

여행은 여행을 떠나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짐은 단출하지만, 실속 있고 가벼워야 한다. 여행은 낯선 장소의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어디를 갈지 정하지 않아도 늘 새로운 길과 만나게 된다. 여행의 가치는 여행에 저당 잡힌 시간만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여행자의 삶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더우면서 시원한 순간

 

장마철 하늘은 온종일 잿빛 구름이다. 요즘 날씨가 왜 그런지 궁금하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같이 두꺼운 잿빛 구름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새벽엔 비가 오고 낮에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다 소나기를 퍼붓는다. 여름 날씨는 내게 어리광을 부리는 듯하다. 소중한 것을 주머니 깊숙이 숨겨둔 어린아이처럼.

녹음이 한층 더 짙어진 메타세퀘이어 길을 걷는다. 무성한 가지가 만들어낸 그늘은 도시의 활화산 같은 열기를 차단해주고 있다. 맴맴 맴맴 당차고 길게 매미가 울어댄다. 천적을 피해 오랜 세월 숨어 있던 매미가 딱딱한 껍데기를 깨고 자유의 함성을 쉼 없이 내지른다. 내 가슴속에도 뜨거운 피가 휘도는 느낌이다.

자연은 누군가를 더 좋아하지 않고 세상 만물을 공평하게 대한다. 햇빛이 구석구석 빠짐없이 비추는 것도 누군가를 더 좋아하거나, 누군가를 더 싫어하는 차별은 없는 것이다. 자연은 안락함과 편안함을 제공하는데 사람만이 자기 분수에 만족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의 무게

 

비 내리는 숲에는 물을 머금은 이끼가 있다. 이끼는 무질서하게 얽혀 있고 나름의 기하학적 무늬를 이루고 있다. 세월이 만들어낸 이끼의 진한 초록색이 돌에 달라붙어 넓은 초원을 이루고 있다. 초원에 자리를 잡은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허공에 떠다니는 듯하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분다. 습도는 점점 높아만 간다. 낮의 햇살은 먹장구름에 갇히고 곧 비가 쏟아질 듯 후텁지근하다. 얼굴에 땀 줄기가 흐르면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 시원한 곳을 찾아 피서를 떠난다. 하늘은 폭포수처럼 비를 쏟아내고 있다.

비가 들이친 자리에 빗방울이 맺혔다. 빗방울이 더해지는 순간 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빗방울처럼 오래된 기억들도 어느 순간 맺혔다가 스르륵 사라진다. 빗방울처럼 기억은 층층이 쌓여 흔적만 남겨 놓고 사라지고 추억을 가슴에 새길 뿐이다.

최대한 숨을 크게 들이쉬려고 노력했다. 공기는 생각보다 훨씬 비릿한 냄새가 난다. 땅에서 불쑥 솟아오른 듯, 형제바위 사이로 보이는 세상은 호수의 물안개처럼 잔잔하게 얼어붙은 안개를 하늘로 빨아들이고 있다. 비가 내리면서 햇빛조차 비치지 않는 푸른 숲은 이른 아침의 호수를 연상케 하고 있다.

 

걷고, 보고, 찍고, 사색하기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을 견뎌내면 소나기가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듯 삶의 쉼표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비록 짧은 국내 여행이지만 낯선 장소에서 만나게 될 모든 것이 색다른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다. 걷고, 보고, 찍고, 사색하는 동안 여행지를 명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방랑벽인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여전히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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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은 즐겁다. 목적지까지의 이동 시간이 길더라도 여행 일부이기에 순간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주로 숲으로 여행을 떠난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만족감보다 오르는 과정에서 특별한 매력을 느낀다. 산 정상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산속을 걸으며 주변을 살펴보는 것에 더 매력을 느낀다.

 

다시 찾은 계룡산

 

마음 내키는 대로 슬슬 걸었다. 자연은 그 자체가 가장 아름다워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다. 울창한 숲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천정골 계곡에서 신선이 되어 유유자적 노닐고 있다.

숲에는 물이 있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처럼 바위로 떨어져 산산이 흩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짙어지듯 그 물소리가 더 짙어진다.

숲속을 걸어 다니면 많은 소리가 들린다. 메마른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의 청량함을,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가지의 시원함을,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의 멋짐을, 최고의 시간이고 최고의 순간이다. 나비는 오늘 아침 정말 상쾌하지 않니? 이리저리 풀 위를 날아다니는 게 너무 근사한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갓난아기의 천진난만함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 것 같은 시간이다.

 

공기의 움직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뭇가지의 흔들림으로 공기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비록 장벽이 있더라도 공기는 구부러져 흐른다. 공기는 꼭 직선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공기가 지나간 자리에 엄청난 고요가 찾아온다. 숨소리가 그렇게 큰 소음일 줄 미처 몰랐다. 공기의 움직임을 우리는 바람이라 부른다. 센 바람과 마주하지 않으면 공기의 흐름이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없다.

하늘은 왜 파랗게 보이는 걸까? 공기 알갱이들이 태양에서 오는 모든 빛 중에서 파장이 짧은 파란빛을 가장 많이 산란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기가 없는 달은 하늘이 검게 보인다.

같은 산이라도 해도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산의 모습은 달라진다. 계절에 따라 방향을 달리하여 바라보면 계절이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언제나 맑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좋은 곳이 된다.

구름은 왜 하얗게 보이는 걸까? 구름은 크고 작은 물방울로 이루어졌고 모든 색깔은 빛을 발산시킨다. 구름에 반사된 모든 빛이 섞여 하얗게 보인다.

능선을 타고 넘는 골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땀에 젖은 온몸의 세포를 일깨우기 충분할 정도로 계곡의 시원함과 능선의 뜨거움이 함께 노란 생명의 꽃향기를 실어왔다. 꽃이 피어 단 하루밖에 가지 않는다는 원추리. 마른 땅 위에 무릎을 꿇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계룡산에서 원추리를 볼 수 있어 더없이 기쁘다.

 

내 맘대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변하고 더욱 단단해졌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명상하고, 공부하고, 운동한다. 모든 행동이 다르게 보이지만 똑같은 목표를 위해 힘쓰고 있다. 나의 성장을 위해 나의 미래를 위해서 오늘도 내 맘대로 노력 중이다.

절실하게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절실함이 더해질수록 희망이 커져 더 고통스럽다. 절실함에 걸맞은 노력이 필요하다. 한 발짝 한 발짝 노력이 더해지면 소복소복 눈이 쌓이듯 내가 희망하는 곳까지 닿을 수 있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조급하게 행동하지 마라. 절실함에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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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 마음을 헤아리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며 사는 삶이다.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사리사욕을 버리고 선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은 사계절이 변화하듯 때가 되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을 말한다. 자연은 세상 모든 것의 고향이다.

 

여름이다

 

며칠을 세종시 외곽을 헤매고 다니고 있다. 둘레길 노선을 찾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땀구멍으로 노폐물이 빠진다. 시원한 것, 입맛 당기는 것, 고단한 육신을 사르르 녹게 만드는 것을 먹고 싶다. 몸이 알코올을 탐한다. 술은 짧은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다. 입안에 가득 찬 맥주의 첫 한 모금이 짜릿하다.

낮이 밤보다 길다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다. 활활 불타는 장작의 불꽃처럼 긴 낮은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윙윙거리며 쫓아다니는 산모기처럼 한낮의 공기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숨이 막힌다. 소나무, 참나무, 밤나무, 생강나무, 철쭉과 주변의 덩굴식물이 숲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숲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위로 스며든다. 바람은 계곡을 타고 흘러와 능선에서 나를 맞아준다. 숲에서 바람과 내가 서로 뒤엉겨 있는 순간이 좋다.

 

아름다운 고갯길에 산다는 것이 참 좋다

 

여름 햇살이 콘크리트 농로를 비출 때 옛날 마을에서 마을로 걸어 다녔던 고개를 넘었다. 저 멀리 나발터 마을이 보이고 오른편으로 호박들이 점령군처럼 밭을 자치하고 있다. 짙은 초록색 이파리가 한낮의 빛과 잘 어울린다. 그렇게 높지 않은 고갯길이지만 배 과수원이 대부분인 이 길에 호박은 그런대로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호박이 들어간 된장국과 살짝 데친 호박잎으로 점심 한 끼 먹고 싶은 날이다.

어제보다 더 오늘이 더운 여름날이다. 바람도 불지 않아 거대한 나무의 잎사귀들도 숨을 죽이고 있다. 등과 배의 땀이 폭포수처럼 흐른다. 손바닥에도 땀이 맺혀 끈적거린다. 소형배낭의 등받이가 땀에 젖어 하얗게 염분을 만들었다. 내일보다 더 오늘이 더운 여름날이다.

 

한낮의 땡볕이 뜨겁다

 

아미산을 내려와 마을을 지나면 한적한 농로를 걷게 된다. 빨갛게 익어가는 복숭아가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아직 먹을 수 없지만, 복숭아나무를 보면서 걷는 길이 마음에 든다. 복숭아에 싫증이 날 때쯤 샛노랗게 익어가는 살구를 보게 된다. 짧은 흙길이 서서히 끝나가는 지점이다. 시간은 정지해 있지 않고 흘러가지만, 도란도란 이야기꽃은 길 위에 서려 있다.

길옆에 나타난 생명체를 내려다본다. 바닥에 온몸을 붙이고 아주 느린 속도로 전력을 다해 이동하는 달팽이를 발견한 것이다. 귀엽다. 휴대전화를 꺼내 눈을 떼지 않고 동영상을 찍었다. 남들은 흥미가 없어 보이지만 난 달팽이에게 흥미를 느낀 것이다. 긴 머리가 살랑살랑 바람에 날린다. 꾸물꾸물한 움직임에 빠져 잠깐 몰입한 순간이다.

부어오른 눈두덩, 언제 다쳤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새 눈곱마저 생겨 속눈썹에 엉겨있다. 그 누구도 가지 않은 숲속을 헤매다 나뭇가지에 뺨을 맞고, 가시에 온몸이 긁혀도 좋은 숲길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햇빛도 바람도 차단된 울창한 숲속에서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지 푸석거리는 소리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난다. 익숙해질 것 같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숲길 노선 찾기는 자연인의 삶과 컴퓨터 게임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이어지는 순간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은 나에게 세상의 아름다움과 흉함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계절은 어느덧 홀연히 흘러간다. 만물이 타들어 갈 듯 더운 여름이 한 걸음 더 가을로 다가서는 중이다. 자연이란 신비한 이름 앞에 언제나 겸손함을 잊지 말고 보호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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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병이 도졌다. 여행 병이 도져서 통영 여행 중에 제주여행을 위한 항공권을 예약했다. 남들은 여행을 떠날 여유가 없어 늘 아쉬워하는데 난 병이 도지면 여행이 최우선이 되고 나머지는 그다음으로 밀린다. 경제적인 이유를 우선 생각했다면 나는 여행을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수입은 줄겠지만,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이 훨씬 많다. 나에게 여행은 생각날 때 계획하고 결정하면 그만이다. 그게 나의 지병이다.

살아있기에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이기 위해 여행을 다닌다. 여행을 다니는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생존본능이다. 낯선 곳의 정겨움과 아름다움에 끌려 답답한 도시의 삶에 당당히 맞서게 된다. 여행은 나만의 피신처가 되어준다.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해마다 제주를 3번 이상 찾고 있다. 3월 말 4월 초는 봄바람이 솔솔 부는 오름에서 명상하는 것이 좋다. 5월 말 6월 초와 9월 말 10월 초는 자연의 푸르름 속에 텐트를 치고 누워있는 것이 좋다. 11월 말 12월 초는 제철 생선인 방어를 먹기 위해 모슬포를 방문하는 것이 좋다. 여행을 못 간다고 투정 부릴 이유는 없다. 그냥 훌쩍 떠나면 된다.

 

제주 백패킹

 

백패킹이 좋은 이유는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좋다는 점이다. 책을 읽거나, 명상하거나, 의자에 앉아 멍을 때리기를 하면 된다. 느릿느릿 주변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시간에 틈이 많아 시간의 자유를 느끼며 일상을 보낼 수 있다.

백패킹은 자신을 성찰하면서 내면을 돌아보게 된다. 내면에는 외부 사람에게 표현할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갈등이 있다. 자연과 즐겁게 놀이하듯 내면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자연의 소리와 함께 내면이 소리를 내고 내 몸 깊은 곳까지 소리의 울림이 머물게 된다. 나만의 빛으로 다시 반짝이게 되는 순간이다. 마침내 나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내가 여기에 있어 참 좋다.

나무가 만들어낸 그늘을 찾아 나무 주변을 맴돌고 있다. 장렬하게 내리쬐는 한낮의 햇빛과 마주하는 것은 무리한 것이다. 백패킹을 즐기는 나에게는 해, 달, 들판, 바다 등 모든 자연이 친구가 되어준다.

지구가 만들어낸 공기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낀다. 여름이 찾아오면 선풍기, 에어컨의 인공바람보다 자연 바람의 시원함을 느끼고 싶어진다. 나무 그늘에서 갓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 더위도 사라지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진다. 자연 바람은 은은한 시원함을 느끼게 해 준다. 자연 바람이 알아서 온도를 조절해 준다. 오늘도 자연 바람을 맞으며 한량처럼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숲에서는 새소리를 실은 바람 소리가 바다에서는 바람의 출렁임을 실은 파도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수평선에서 시작된 붉은 빛이 바다와 하늘을 점점 붉은 빛으로 물들였다.

밤에는 어둠이 세상을 지배한다. 도시의 밤은 어둠을 그대로 두지 않고 불을 밝힌다. 도시의 불빛은 하늘에 빛나는 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껏 밤하늘의 별을 못 보고 지내고 있다. 별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불타오른다. 도시의 불빛이 별을 숨기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 도시의 불빛보다 별빛이 더 아름답게 세상을 비춘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진실을 숨기는 것이다.

백패킹을 할 때 인위적으로 만든 야영장을 이용하면 하수이다. 진정한 고수는 자연을 벗으로 삼아 조용히 야영한다.

 

여행과 자유

 

여행을 혼자 다닌다고 외로울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누군가와 꼭 감정을 공유해야만 즐거운 여행이 되는 건 아니다.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면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더 좋아지게 된다. 더 좋아지게 되면 점점 즐거워지고 자주 혼자 여행을 다니게 된다. 문득 도시에서 도망치고 싶어질 때 절대로 망설이지 않는다. 누구도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드넓은 자연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혼자 하는 여행이다.

여행을 계획하면 진정한 자유가 없다. 계획의 그물을 벗어나야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된다. 여행은 나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여행 중에 만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통해 내면의 자아를 만나게 된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냄으로써 자아가 성장한다. 여행을 통해 자아와 교감을 나누고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된다. 자아를 만나기 위한 여행은 언제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주거지 인근에서 휴식은 진정한 휴식이 아니다. 낯선 장소의 아름다움이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제공한다. 훼손된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고 재충전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여행도 삶처럼 몰아치듯 한다면 금세 지치게 된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삶의 고뇌는 힘을 뺀 채로 여유를 가져야 놓아버릴 수 있다. 성난 파도의 포효보다 잔잔히 흐르는 유연한 파도의 부드러움이 여행에서 더 필요하다. 몸의 힘을 빼고 마음은 가볍게 할 때 여행은 더 편안한 일상으로 다가온다.

 

미조항 조도호

 

탄산음료의 거품처럼 보글거리는 소리는 배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는 파도로 점철된다. 아무 데도 안 가보고, 아무것도 안 하면 알 수 없다. 여행 중에 경험하게 되는 생소한 분위기와 냄새가 부드러운 바닷바람처럼 좋다.

삶은 여행과 같은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설레고 흥분되어 잠도 이루지 못하지만, 여행길의 험난함과 마주치게 되면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게 된다. 미지의 세상으로 언제든 떠날 수밖에 없는 삶은 여행과 같아서 더 애틋한 마음이 든다.

 

살고 싶은 섬, 호도

 

360도 주위를 살피며 섬 냄새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 다채로운 식생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호도의 야생화와 더불어 나무는 다른 나무와 똑같이 닮지는 않는다. 훈훈한 초록빛이라도 그 색깔이 다 다르다. 계절은 나무의 변화와 같다. 나는 변화하는 숲속에서 흘러가는 계절을 파악하려 애쓴다. 나는 자연과 유기적으로 얽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충만하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속에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존재들이 있다. 자연은 늘 같은 모습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그 모습이 시시각각 변한다.

갯바위에 앉아 조도와 두미도를 바라보는 한적함이 좋다. 바다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에 호흡을 맡긴다. 이 순간이 여행자로서 가장 좋아하는 명상과 사색의 시간이다. 세상살이에 빠져있을 때는 마음이 흐트러진다. 본래 타고난 밝은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옳고 깨끗한 생각을 하려면 마음을 차분하고 안정되게 해야 한다. 자연과 마주할 때는 언제나 명상에 빠져든다.

생각을 소유하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흘려보낸다. 그래야 집착을 버릴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는 여행지에서 자연에 몸을 맡긴 채 망중한을 즐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명상에 전념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가꿔나가면 얼마든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

 

호도 여행의 화두(話頭)

 

바람이 부는 데로 떠다니는 구름은 신기하게도 풍경화 속 양 떼의 그림처럼 예쁘게 떠 있다.

새벽에 내린 비는 호도를 적시고 바다로 흘러갔다. 물은 물에서 나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이란 근원은 똑같지만 불리는 이름의 형태만 다를 뿐이다. 똑같은 물을 바라보면서 그 물이 다르다는 착각을 하고 세상을 살고 있다. 모든 자연은 궁극적으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갯바위에 서 있는 낚시꾼의 위태로운 상황만큼 수평선으로 점점 기울어져 가는 햇빛에 비친 바다의 윤슬은 그 어떤 빛보다 휘황찬란하다.

나에게 여행의 가장 큰 화두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찰나의 영원함

 

여행지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접하게 되면 처음 의도와는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한 걸음씩 걸어 다닌 길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흥미진진한 여행이 되는 것이다. 여행은 내가 서 있는 장소에 대해 찰나의 영원함을 매 순간 느끼는 것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싶다. 나는 언제나 미지의 장소를 보러 떠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지난주 월요일, 남해 호도에 들었다. 이른 아침 미조항에서 막 배에 오르려는데 등에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배에서 내린다. 배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사는 곳, 조도에 사는 아이들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호도는 미조항의 지척에 산다.

조그마한 포구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해안 절애와 그래서 더 애틋한 기린초와 해국이 첫 마중을 한다. 섬에 들면 늘 마주하는 포구에 목멘 어선 한 척 없는 조그만 항에는 낚시꾼들 몇 명이 바쁘게 캐스팅을 해대고 있었다. 마을 쪽을 향해 난 콘크리트포장 길을 따라 길을 잡았다. 처음부터 가파른 비탈은 길을 이리저리 갈지자로 끌고 다니고, 두어 번의 모퉁이를 지나 마을 당산을 만났다.

 

마을에서 만난 첫 번째 사내에게 저간의 마을 사정과 숲에 있을 법한 옛길과 지명 등에 대한 질문을 두서없이 해댔다. 그는 끝없는 친절을 콘크리트 바닥과 허공에 마구 토해냈다. 더 물을 것이 없을 정도로 질문한 이상의 정보들을 얼굴이 벌게지도록 쏟아내고 있었다. 섬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들 친절할까! 순박해서라고, 외로워서라고 말하지 말자. 그냥 그들과의 인연을 섬여행의 첫걸음으로 삼으면 족할 것이다.

사내와 헤어져 마을 길을 따라 10분여 남짓 걸었을까! 마을 길이 끝났다. 저만큼 아래에 검푸른 바다가 혹하고 다가온다. 아직은 호도의 바다를 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급히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숲길로 접어든다. 남녘의 숲들은 늘 새로움으로 이방인을 맞는다. 흔히 보는 예덕나무며 광나무며 마삭줄 등속이 오늘도 반겨준다. 그런데 이 녀석은 뭘까? ‘! 모람이로구나!’ 오랜만에 보는 모람과 더불어 우묵사스레피나무, 섬노린재나무, 돈나무 등이 연속해서 우리를 맞는다. 반갑다.

그렇게 이어진 발걸음이 닫는 호도의 지명들이 예사롭지 않다. 보리마당, 스닷뽀닷, 청늘, 개발매밑, 코밧, 목넘, 진담, 뫼사니홈, 작은홈, 뜨뿌영, 기민장 그리고 서담늘홈 등등. 그 뜻을 알 수 없는 지명들이 연이어 다가온다. 아직은 공부할 것이 많다는 뜻이니 한편 기쁜 일이기도 하다.

 

이미 조성된 탐방로를 벗어나 본격적인 섬 탐사를 시작했다. 먼저 마을 당산 앞에 있는 골짜기를 따라 한달음에 능선에 올랐다. 그리고 작은홈으로 이어졌을 옛 바래길을 찾기 시작했다. 첫 번부터 만만치 않다. 우거진 숲과 가시덤불이 앞을 막는다. 그래도 쉽게 지치지 않는 내 미련스러운 고집에 오늘도 숲은 길을 내주었다.

작은홈에는 시원한 바람이 산다. 덤불과 싸우느라 흥건했던 땀들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등골이 오싹할 만큼 작은홈의 바람은 거칠게 온몸을 덮치고 들었다. 한참을 쉬었다. 지친 몸 하나 의탁하기도 힘든 급경사지에서 그렇게 한참을 쉬며 호도의 첫 속살인 작은홈과 교감하였다.

다시 길을 나섰다. 옛길의 흔적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늘 그렇지만 반복하는 만큼의 호기심이 거친 걸음을 앞으로 이끌고, 기어이는 숲을 벗어나는 길들을 찾게 된다. 뜨뿌영, 기민장을 지나 서담늘홈을 거쳐 다시 출발점인 마을 당산에 도착했다. 숲길을 걷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안도감에 잠시 다리쉼을 한다.

 

얼마쯤 쉬었을까! 다시 능선 삼거리에 올랐다. 이번에는 산봉우리를 따라 능선으로 길을 잡았다. 마을 사람들은 얼만큼이나 숲에 걸음 하지 않았던 걸까. 능선에는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럴 때는 지도와 감각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거친 바람의 친구인 섬의 능선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커다란 상수리 고목과 너럭바위의 부처손 군락지 등을 지나, 기어이 옛 초소가 있던 가물여 앞에 다다랐다. 기암괴석과 바닷가의 연못과 바닷속 동굴과 거친 파도가 함께 사는 곳, 진담과 목넘으로 이어지는 가물여 앞바다는 단연 호도의 절경이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옛 초병들의 흔적을 따라 목넘 골짜기에 다다를 무렵 길을 잃었다. 억지로 올라서면 밭 가생이로 올라설 수 있겠지만, 길이 아니었다. 그때, 마치 짱가라로 되는 양, 저만치 마을 길 위에서 어르신 한 분이 소리를 친다. 힘에 부치시는지 어르신의 목소리는 외마디 비명처럼 골짜기를 맴돌았다. “이리. 빠꾸. 건너.” “일리요? 계곡을 건너야 돼유? 식아, 너 내려오란다.” 어르신의 외마디와 몸짓에 위탁하여 길을 잡았다. 결국, 꼭 맞는 옛길을 따라 마을 길에 도착했다.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전에 어르신은 벌써 돌아서서 잰걸음을 옮겼다. 호도에 사는 강아지들도 이방인에게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꼬리를 흔들거나 살그머니 다가와 바라볼 뿐이다. ‘범섬이라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은 뜻도 모를 삶터와 가물여의 절경과 투박한 친절이 몸에 앉은 사람들이 사는 곳, 호도에 다시 와 볼 일이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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