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 가장 드문 월요일에 계룡산을 찾곤 한다. 계룡산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은 삼불봉이다. 삼불봉에 서서 한참 동안 주변 풍광을 살펴본다. 봄엔 생명의 기운이 돋아나고 여름엔 녹음으로 가득 차고 가을엔 형형색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겨울엔 헐벗은 가지에 눈 코드를 입는다.

계룡산의 매력은 많은 조망에 있다. 곳곳에 숨어 있는 바윗덩어리들은 험준한 산맥으로 시선을 확장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있다. 높은 바위에서 내려다볼 때 불쑥 솟아오른 굴곡진 능선, 주름치마 같은 산맥의 주름, 저수지를 둘러싼 황금 들판은 계절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게 만든다.

계룡산의 또 다른 매력은 계절감이다. 봄의 노란 생강나무꽃이, 여름의 푸른 소나무 솔잎이, 가을의 청량한 은선폭포 물소리가, 겨울의 하얀 운해의 관음봉이 산을 찾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산은 매일 조금씩 변해간다. 변화는 관심을 가지고 볼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산의 나무는 올해도 나이테를 하나 더 만들었다.

 

나는 산꾼이다

 

봉우리든, 나무든, 암석지든, 새들이든, 꽃이든 숲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애정을 갖는 사람이다.

자연은 언제나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좋아하는 숲은 가식적 포장이 없는 세월의 흐름을 몸소 보여준다.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암석,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울창한 나뭇가지, 비가 오면 큰 소리로 울어대는 폭포의 비명 등을 볼 수 있다. 누구나 똑같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보다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특이한 아름다움에 더 관심을 가진다.

숲속 작은 오솔길에 해가 비추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피며 해를 맞이한다. 바람 따라 흔들리는 수풀 사이로 기웃기웃 수줍게 해바라기 하는 구절초가 화들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숲속 바위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물의 흐름은 알지 못한다. 굽이굽이 흘러가면서 이끼들이 들러붙은 바위에 부딪힌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흩어졌다가 물은 다시 흐른다. 흐르는 물은 손으로 움켜쥘 수 없지만, 손바닥을 모으면 담을 수 있다. 한번 흘러간 물은 긴 흔적을 남기면서 빠르게 숲속으로 사라진다. 여전히 물은 흐른다.

 

들어서다

 

벌써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뛰어나게 아름다운 풍경보다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좋다. 조촐한 풍경 속에는 어딘가에 예술적 미학이 있다. 산이 양팔을 벌려 껴안듯 자리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늘이 하늘이고 산줄기가 산줄기이고 땅이 땅인 자리에서. 하늘과 산줄기와 땅이 경계처럼 구분되기보다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맞닿은 곳에서 소통하고 싶다.

자연의 품인 산을 난 자주 찾고 있다. 도시 생활에 피곤함을 느낄 때 아픈 상처를 치료하러 산에 들어선다. 세상이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업신여기고 외면해도 자연의 품인 산은 절대로 나를 외면하지 않는다. 오늘은 산에서 숨을 쉬고 상처를 치유한다.

처음엔 아는 만큼 보였지만 지금은 느끼려고 노력한 만큼 자세히 보인다.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우연히 과거의 산과 만나 하나의 완전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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