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푹 잤다. 잠들고 일어날 때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아직 퇴근하지 못한 능선 위쪽의 달을 올려다봤다. ‘우리를 지켜줘서 고마워. 근데 너 많이 외롭구나!’ 텐트에서 가부좌하고 명상을 했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났다.

텐트 밖으로 날이 밝기 시작했다. 하화도에서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배를 탈 시간이 밀물이 밀려오듯 빠르게 다가왔다. 서쪽 바다의 먹구름을 보고 조금 빠르게 야영지에서 철수할 준비를 했다. 아침의 바닷바람은 차가웠고 이따금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쏟아지지는 않았다.

배낭을 다 꾸리고 주변 정리까지 마친 후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봄과 가까운 겨울의 끝자락에서 섬과 섬의 공간은 더없이 가깝게 느껴졌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게 보이지만 현실은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었다. 상화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야영지를 벗어나자 하화도 선착장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영어회화를 들으며 걸어갔다. 구름 사이로 이따금 비추는 햇볕은 따뜻했지만, 여전히 바닷바람은 차가웠다. 선착장 벤치에 배낭을 내려놓고 선착장 주변을 걸어 다녔다. 배가 올 때까지 하릴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뱃고동이 울렸다. 상화도에서 출발한 배가 10분 먼저 도착했다. 하화도에 들어올 때와 반대로 개도 제도를 거쳐 백야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이틀 만에 다시 진남시장에 왔다. 점심은 먹고 헤어져야 할 것 같았다. 옛골집에서 내장국밥에 순대를 먹었다. 물론 나는 여수생막걸리도 먹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끝이 났다. 혼자보다 둘이라서 더 좋았던 순간이었다.

 

 

내가 하룻밤 거쳐야 할 곳이라 느껴지는 곳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찾아왔다. 자기가 마음 편하게 느낀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누가 이야기해준다고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언제나 나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는 중에 고난도 겪으면서 삶의 의미를 배우는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이렇게 또 한 계단에 올라섰다.

 

 

 

영하 4도였는데 춥지 않았다. 핸드폰 알람이 울리기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잤다. 텐트 밖으로 나왔을 때는 어제 아침과 같은 강풍은 불지 않았다. 세상은 하루 만에 평온을 되찾았다. 어두컴컴한 세상에 새벽 어스름이 깔린 바다는 적색 편광이 돌산도 위로 멋지게 퍼져나간다. 노지 야영의 가장 좋은 점은 온전한 자연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의 모습, 끊임없이 출렁거리는 파도의 생성과 소멸,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색채의 웅장한 변화를 어떤 장벽도 없이 관조할 수 있다.

갑자기 배가 아팠다. 자연에서 해결할 수 있는 지형이 아니라 잰걸음으로 백야 선착장 화장실까지 갔다. 어둠의 보자기에 싸여있던 고요한 마을이 새벽부터 소란스러웠다. 일단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백야도 여객선 대기실로 향했다. 환하게 불 밝힌 대기실 문을 열었을 때 따뜻한 공기가 나를 맞아주었다. 오늘은 배가 뜨는구나!

야영지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무엇보다도 배가 뜬다는 사실이 더 좋았다. 여유롭게 1155분 하화도행 두 번째 배를 타기로 했다. 야영지에서 철수하기 전에 물을 끓여 커피를 마셨다. 커피 한 잔의 여유, 그래 이 맛이지. 야영 후 마시는 커피가 가장 맛있다.

 

 

 

백야 선착장에 차를 주차하고 백호산으로 향했다. 백야도는 흰 섬이란 뜻이다. 섬의 주봉인 백호산 정상 바위들이 하얀색을 띠어서 섬이 하얗게 보인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등산로 1구간으로 백호산에 올라 등산로 2구간으로 하산하는 3.8km 구간을 이용하였다.

웅장한 삼나무 숲길을 지나니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급경사지를 한동안 오르다 보니 더위가 느껴졌다. 백야 선착장과 저 멀리 돌산도가 보이는 바위에서 잠시 쉬었다. 성두는 더웠는지 여러 겹 껴입은 옷을 벗었다. 잠깐의 휴식을 뒤로하고 다시 산을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계가 확 트인 바위가 나타났다. , 기분 좋다. 백야대교, 힛도, 그리고 어제 우리가 야영했던 장소도 눈에 들어왔다. 세상은 높은 곳에서 멀리 보아야 훨씬 아름답다.

1봉에 올랐더니 주변 바위에서 하화도가 가깝게 보였다. 3시간 후면 저곳에서 하루를 보낼 곳이기에 더 정감이 갔다. 그 뒤로 희미하게 나로도도 보였다. 능선 주변에는 어느새 진달래 꽃봉오리가 맺혔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봄은 우리 곁으로 한걸음 다가왔다. 능선을 따라 제2봉과 제3봉을 거쳐 등산로 2구간으로 하산을 했다.

 

 

매표를 마치고 하화도행 태평양 3호를 탔다. 16개월 전 개도에 갈 때 이 배를 탔었다. 그 당시 태풍의 영향으로 배가 뜨지 않아 우여곡절 끝에 사선을 타고 백야도 선착장으로 나왔었다. 이번에도 제도, 개도를 거쳐 하화도로 간다. 뱃길이 낯설지가 않았다. 배가 개도에 닿았을 때는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흐뭇했다. 배는 개도 북서쪽을 반시계방향으로 움직이며 출발한 지 40여 분 만에 하화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야생화 공원으로 이동했다. 다른 섬에 비해 이동 거리가 짧아서 좋았다.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공원 잔디밭에 야영지를 구축했다. 캔맥주 한잔의 여유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저녁은 섬 식당에서 사 먹기로 하고 점심을 간단히 해결했다. 그러는 동안 침낭과 우모 복을 따스한 햇볕에 널어놓았다.

와쏘식당에 저녁 예약을 했다. 선착장에서부터 유유자적 꽃섬길을 걷기 시작했다. 계절상 꽃을 볼 수는 없었지만, 꽃 대신 주변 풍광을 눈에 담고 향기 대신 바닷내음을 품에 안았다. 꽃섬길을 따라 조성된 여러 조형물과 관목 조림지를 보고 가슴이 탁 막혔다. 특히 꽃섬다리(출렁다리)와 데크는 천혜의 자연자원에 대한 최악의 테러행위였다. 능선에서 바라본 섬섬옥수 같은 섬들의 아름다운 모습만이 위안이 되었다.

 

 

 

이른 저녁을 먹으러 예약한 와쏘식당에 들어섰다. 당연히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고 메뉴 선택에 대한 권한도 없었다. 주인장이 내어주신 서대회정식에 개도막걸리를 마셨다. 오후 7시가 막 지났을 뿐인데 섬의 밤은 더욱 짙은 어둠에 휩싸였다.

섬 밖으로 하늘이 어두워졌다. 밤이 점점 깊어갔다.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한 체 야영지로 돌아왔다. 섬에서의 밤은 또 다른 세계처럼 인식되었다.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가시거리에 있는 섬들도 깊은 잠자리에 들었다. 깨어있는 것은 섬마을에 설치된 조명시설뿐이었다.

섬은 도시의 모든 소음에서 벗어난 곳이다. 그래서 섬은 적막감이 감돌았지만 잠을 자야만 한다는 게 더 아쉬웠다. 그런 나를 섬 공기가 부드러운 감싸 안으며 보호해줬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많은지 별은 잘 보이지 않았다. 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내가 보는 세상은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늦은 밤까지 의자에 앉아 시간의 흐름에 항거했다.

어둠은 더욱 칠흑 같은 밤으로 변했다. 나는 텐트에 들어갔다. 텐트 밖의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어와 바람에 흔들리는 텐트에 명암을 드리웠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사위가 아직은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다. 온돌방이 뿜어내는 열기를 식히려고 창문을 조금 열었는데 찬 공기가 확 밀려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바람은 포악한 괴성을 질렀다. 어제와는 완전히 딴 세상이다.

오전 7시가 지나 아침을 먹으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이 온몸을 강타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게 아니라 몽둥이로 때리는 것 같았다. 정말 인정사정없이 불어댔다. 이렇게 바람을 맞다가는 온몸에 멍이 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어제와 달리 너무 추웠다.

오픈 시간 전이라 커피는 포기하고 모텔로 돌아왔다. 모텔 방의 온기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약속 시각까지 온돌방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일정대로 목적지에 못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It’s my life(중략).”

전화벨은 고요한 모텔 방의 정적을 깨웠다. 성두가 10분 후에 도착한다고 해서 배낭을 메고 모텔 입구로 나갔다. 2022 12월에 규슈여행을 함께 다녀오고 1 3개월 만이었다. 아침에 못 마신 커피를 사 들고 진남시장에 갔다. 점심때 먹을 회와 간식으로 먹을 토스트를 사서 차로 돌아왔다. 바람은 여전히 멈출 기미가 없었다. 차에서 토스트를 먹고 해안도로를 따라 백야항으로 향했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백야도 여객선 대기실은 굳게 닫혀 있었고 입구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A4용지에 적혀 있었다. ‘금일 기상악화로 인하여 입, 출항이 통제되었습니다. 061-686-6655 태평양해운.’ 이미 짐작했었기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때로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내가 처한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배가 뜨지 않는다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체 야영지를 찾아 백야도와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야영할 곳은 생각보다 많이 있을 테니 어떤 걱정도 들지 않았다. 우린 야영 전문가니까.

제일 먼저 백야등대로 향했다. 등대 아래 바닷가에 해양낚시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관광객이나 낚시꾼이 많이 찾는 장소였다. 다음으로 백호산 자락 남쪽 몽돌해변에 갔다. 상화도와 하화도가 한눈에 들어왔고 인적이 없어 한적하고 좋았다. 하지만 탁 트인 곳이라 바람을 막아주지 못했다. 그다음으로 화백해안길은 바다와 맞닿은 곳이었고 물결이 바람에 출렁거리며 연신 흰 물거품을 만들었다. 바람이 멈추길 기다리는 어선은 파도가 만들어낸 너울에 육중한 몸체가 좌우로 흔들렸다. 힛도는 마땅한 야영지를 찾을 수 없었다. 힛도에서 산을 넘어 삼섬으로 걸어가 봤지만 마을 공동양식장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안포리 해안가를 따라 안일초등학교까지 바닷가마을을 돌아다녔다.

어느덧 오후 2시가 지났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백야등대에 왔다. 이곳이 우리에겐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었다. 바람을 피해 전망대 한쪽에 아기자기한 자리를 마련했다. 양지바른 곳이라 따스한 햇볕이 내리쬈다. 소주가 아닌 위스키에 회를 먹기 시작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든든해지니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이미 마음속에 야영지를 정했기에 급할 이유가 없었다. 해가 지기 1시간 전에 그곳으로 이동했다. 서풍이 불어오고 성난 파도를 일으키며 포효하는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바다와 맞닿은 절벽 위의 옛 해안초소가 있던 자리를 야영지로 정했다. 야영준비를 거의 다 마쳤을 때 저 멀리 낭도 넘어 고흥반도 쪽으로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저녁을 먹고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어두워진 바다를 바라봤다.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위태롭게 서 있는 해송이 바람을 막아주었고 야영지 주변의 찔레 덩굴이 우리를 보호하듯 사주경계를 섰다. 바닥은 칡덩굴과 낙엽들이 깔려 푹신한 감촉이 포근함을 더해줬다. 무엇보다도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조용하고 아늑한 장소라 좋았다.

야영지의 텐트는 아늑한 요람처럼 작은 공간이지만 그 무엇보다 평온했다. 매트 위에 놓인 침낭 안에서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강풍이 만들어낸 성난 파도 소리와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도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의욕 없이 지내는 일상의 느린 흐름 속에 갑자기 큰 파도가 몰아쳤다. 야영하다 보면 현실 속에서 표류 중인 나를 일깨우며 삶의 방향을 잡고 더 적극적으로, 더 멀리, 더 깊이 있게 행동할 수 있게 만든다.

나는 야영을 통해 신체의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자연으로 들어가 내적 성숙을 확장하고 있다. 자연 속에 헐벗은 채 내동댕이쳐졌을 때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살기 위한 처절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된다.

과연 삶이란 무엇일까? 또 그 삶을 살아가는 나는 누구일까?

 

카톡이 온 것은 어제 오전 910분이었다. 2월도 오늘이 지나면 하루밖에 남지 않는다. 세월의 흐름이 연령대의 속력으로 흐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의식하면서도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서서히 곪아가는 종기 같은 내 마음을 한순간에 해방해준 카톡이 그런 순간에 온 것이다.

말보다는 행동이 빠른 나이기에 순식간에 모든 것을 결정했고 일정을 조율했다. 삼일절 연휴가 코앞이지만 어렵사리 왕복 기차표를 예매했고 내일 묵을 여수 숙소도 예약했다. 멈춘 것 같은 심장이 다시 요동치며 뛰기 시작했을 때의 쾌감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세심하게 계획된 여행도 좋지만, 때론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이 삶에 더 많은 활력소를 준다. 자 떠나자. 매화가 활짝 핀 남쪽 섬으로. 이제 남은 건 백패킹 배낭을 꾸리는 일만 남았다.

 

 

가슴이 설레는 아침이다. 이것저것 백패킹 장비를 찾느라 아침부터 분주히 집안을 돌아다녔다. 텐트, 침낭, 우모 복, 매트, 탁자, 의자, 버너, 코펠, 가스, 랜턴, 핫팩, 위스키, 견과류, 라면, 햇반, 김치, 고추 절임, 커피, 세면도구를 방에 늘어놓고 테트리스 오락게임을 하듯 배낭에 차곡차곡 넣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소일거리삼아 집에 필요한 식재료를 사기 위해 두 곳의 마트를 다녀왔다. 하늘은 점점 회색빛으로 변해가고 있었지만 비는 아직 내리지 않았다. 점심을 먹은 후 여수로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이런 짐이 하나 더 늘겠는걸.

큰 배낭을 메고 우산을 쓴다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평일 한가한 오후였지만 지하철은 이상하리만치 사람들로 북적였다. 집을 나온 지 40분 만에 서대전역에 도착했고 다시 40분을 기다리고 나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연휴 전날이라 기차는 만석이었다. 다행히도 어제 기차표를 급하게 예약할 때 앞 좌석을 선택할 수 있어 큰 배낭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서대전에서의 짧은 정차를 마친 여수행 무궁화호 1503은 소름 돋을 정도로 큰 쇳소리를 내면서 출발했다. 3시간 4분간의 긴 장편 영화를 보는 이제 막 보기 시작한 듯 창밖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점점 빠르게 사라지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바뀐 것은 구례구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기찻길 주변으로 매화가 봄을 알리듯 활짝 피어있었다.

 

 

여천역에서 내렸다. 비가 내려 해가 지기 전인데도 어스름이 깔린 분위기였다. 큰 배낭을 메고 우산을 쓴 채 빗속을 걸었다. 오늘 묵을 모텔은 여수시청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2km 남짓을 직진만 하면 된다. 버스를 탈 때 수반되는 기다림, 버스 내 공간확보, 도로정체를 겪는 것보다 육체적으로는 힘듦을 선택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체크인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진남시장으로 향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왔다식당으로 향했다. 뜨끈한 내장국밥에 여수생막걸리까지 배부르게 저녁을 먹었다.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는 비가 그친 상태였다. 어둠이 장악한 세상에 항거라도 하듯 여수 거리는 밝은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수시청 옆 골목의 밤 경치는 휘황찬란했다. 날씨는 온화했고 산책하듯 골목을 걷다 보면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가 선소유적지 안내판을 봤고 자연스레 발걸음이 가막만 최북단으로 향했다. 이곳은 고려 시대부터 선소마을을 형성하여 배를 만들었던 장소로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이순신 장군이 나대용 장군과 함께 거북선을 만든 곳이다. 또한, 뒤로는 병사들의 훈련장과 적의 동태를 살필 수 있는 망마산이 자리한 천혜의 요새이다. 밤이라 인적이 없어 더욱 쓸쓸한 선소유적지, 배를 매어두던 계선주가 있는 자리에서 바라본 야경이 아름다웠고 지금도 그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내가 다시 모텔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8시가 막 지난 시간이었다. 603호 문을 열었을 때 온몸으로 느껴지는 온기는 나를 둘러싼 모든 액운을 스르륵 녹여버렸다. 간단한 샤워 대신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고 몸을 담갔다. 하루의 피로를 푸는 순간이었다. 이보다 더 좋은 기분은 오늘 없었다. 모텔의 온돌방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요를 깔고 최후의 만찬을 즐기듯 몸을 지진다. 이때까지 몇 시간 후에 찾아올 기상변화를 짐작하지 못했다.

 

어젯밤 문자 한 통이 왔다. 늘 오는 스팸 문자겠지.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대학 동기의 모친상 부고 문자였다.

죽음. 50대인 나에게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하나의 사건이 되어버렸다. 잠들기 전에 수원행 기차표를 예약했다. 30년 전에 가본 수원은 내 기억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오후 126분 무궁화호 기차를 탔다. 기차는 만석이었고 각자의 목적지에서 내리고 새롭게 타는 사람들이 반복될 뿐이었다.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영어회화를 들으면서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 눈 쌓인 풍경에 가끔 눈을 돌렸다.

수원역을 벗어나자 정면으로 쭉 뻗은 도로가 펼쳐졌다. 버스를 타지 않고 양지바른 길을 따라 그냥 걸었다. 한파가 막바지라서 음지는 엄청 추웠고 점퍼가 아닌 외투를 걸친 나는 더 추위를 느꼈다. 20여 분을 걸었을 때 팔달문과 마주했고 아무 생각 없이 팔달산을 올랐다. 성벽을 따라 걷다가 서장대에서 수원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성벽을 따라 화서문과 장안문을 지나 화홍문까지 왔다. 성벽 길을 내려와 방화수류정을 감상하고 하천길을 따라 걸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430분이었다. 천천히 성빈센트병원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조의금 봉투를 쓰고 8호실로 향했다. 방명록에 서명하고 조의금을 조문함에 넣었다. 상주 자리에 상주가 없어 기다리다 조문객과 이야기 중인 상주를 발견했다. 어색하지만 조문객과 상주의 예를 갖추고 조문을 마쳤다. 저녁을 먹고 혼자 소주를 마시면서 빈소에 남아 있었다. 일가친척을 제외하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끔 두세 명의 지인들이 찾아왔다. 점심때 대학 동기 2명이 다녀간 것을 제외하고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어색한 것보다는 오랜 시간 뻘쭘하게 혼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싫었다.

인터넷의 발달은 조문 방식도 바꿔놓았다. 먼 거리이지만 마음을 내어 찾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는 이미 지난 것 같다. 요즘은 많은 사람이 계좌에 조의금을 이체하고 카톡으로 조의를 표하고 있다.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과연 인간관계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담배 피우러 나가자는 상주의 말에 밖으로 나왔다. 그때가 오후 730분이었다. 상주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무거웠다. 세상은 네온사인이 어두워진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거리의 인파를 지나 수원역까지 터벅터벅 걸었다. 낯선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쓸쓸한 기분을 음악으로 달래며 밤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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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새벽 5. 이불 밖을 벗어났을 뿐인데 온몸이 서늘하다. 비가 내렸고 그 비가 눈으로 변했다. 그리고서 겨울다운 한파가 찾아온 것이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던 보일러를 가동한다. 화장실 입구 왼쪽 벽면에 있는 전원을 어둠 속에 누른다. 문을 열고 화장실 불을 켠 후 보일러 스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길게 뻗은 연통이 용트림하듯 큰 소리를 내지며 보일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마치 뱃고동 소리처럼 새벽하늘에 우렁찬 외침으로 절규한다.

엄마 방으로 간다. 어둠 속에 텔레비전이 켜져 있고 이미 깨어 있는 엄마는 밀크커피를 마시고 있다. 방 안 공기에는 달곰한 커피 향이 자유롭게 떠다니는 듯 내 코를 자극한다. 포트에는 이미 끓은 물이 있다. 방 불을 켜고 나도 커피를 탄다. 잠자느라 당이 떨어졌는지 입에 대기도 전에 냄새에 푹 빠져버린다.

 

오늘은 일찍 집을 나선다. 크리스마스 때에 맹추위가 기성을 부리다 연말이 되면서 따듯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해가 바뀐다는 것은 50대에 들어선 나에게 죽음이 한 발짝 더 다가왔다는 의미이다. 삶 속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내 삶을 더 충만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육체가 움직일 수 있을 때 마음이 원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게 나이니까.

한파가 지나고 기온이 예년 기온을 회복한 것 같다. 아침을 먹고 배낭에 이것저것을 챙겨 넣는다. 오랜만에 계룡산을 갈 생각이다. 107번 버스를 타고 동학사정류장에 왔다. 주차장과 도로에는 눈이 쌓여 있다. 터벅터벅 도로를 걷는다. 오늘은 동학사로 가서 천정골로 하산할 생각이다. 구름이 점점 산을 집어삼키고 있다. 나는 점점 구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동학사를 지나 등산로 초입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쉼 없이 걷는다. 물도 먹지 않고 쉬지도 않고 정상까지 한 번에 올라간다. 주차장에서 관음봉 정상까지 정확히 1시간 30분이 걸렸다. 오랜만에 산행의 짜릿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구름에 휩싸인 산은 나를 지워버리고 있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 전에 하산을 시작한다.

바람은 구름을 뚫고 갑사에서 불어와 산릉을 넘어 동학사로 향한다. 올해의 온갖 사연들이 바람에 실려 와 상고대가 피어있는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내 마음을 세차게 때린다. 시계가 없어 삼불봉을 오르지 않고 남매탑으로 내려간다. 허기진 배를 전투식량으로 채우고 천정골로 하산을 한다.

 

요즘 하루가 신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여행준비를 마치려고 한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로 유럽여행을 갈 계획이다. 아직 5개월도 더 남았지만, 하루하루가 설레는 기분이다. 일정을 계획하고 세부적인 것들을 알아보는 과정이 재미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뭔가에 애정을 쏟는다는 것은 삶의 활력을 준다. 그 뭔가가 난 여행이니까 더 좋다.

이제 하루 남았다. 정확히 12시간 30분 남았다.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 건가? 스스로가 분주해진다. 내년도 계획도 세우고 올 한해를 정리해야 한다. 할 일이 많은데 머리는 쇠망치에 맞은 듯 띵하다. 차분차분 한가지씩 저리를 해야 하는데. 내년에는 화려한 한량이란 신조로 현실의 비루한 한량을 벗어나 보자.

 

비가 내린다. 2023년의 마지막 날이라 구슬피 우는 건가? 아니면 묵을 때를 씻어버리고 싶은 마음인가? 세상은 고요한 적막이 어둠과 함께 찾아왔다. 가로등 불빛이 대로에 띄엄띄엄 희망의 빛을 발산할 때 그곳에서 한줄기 비가 불빛을 가른다. 오늘은 저무는 해를, 내일은 떠오르는 해를 기다릴 테지. 그게 인생이다.

 

Good Bye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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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설쳤다. 새벽까지 마신 술 때문인지 잠이 깊게 들지 않았다. 4시간이지만 '자다 깨다'를 수없이 반복한 것 같다. 오늘도 어김없이 여명이 밝아오기 전에 조식을 먹으러 갔다. 무열 형, 진호 형, 내가 맥주 3병을 커피잔에 나눠마시며 고수를 잔뜩 넣은 쌀국수와 베이컨으로 해장을 한다. ‘겨우 2.3%인데.’ 우리에게 맥주는 더이상 술이 아니다.

 

오늘이 여강(리장)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리장 다부객잔에서 편안하게 이틀을 보냈다. 오전 8, 짐 정리를 한 후 체크아웃을 한다. 아침이라 기온도 낮고 바람이 스산하게 분다. 나도 모르게 옷깃을 세우고 있다. 버스를 타고 흑룡담공원(黑龙潭公园)으로 향한다. 도로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탄 오토바이와 승용차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흑룡담은 옥룡설산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물이 옥수채를 거쳐 이곳에서 호수를 이룬다. 수정같이 맑은 물에 비친 옥룡설산의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호수 주변으로 버드나무, 고염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심겨 있다. 오전이라 해가 들지 않는 곳이 많아 쌀쌀했다. 공원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여강(리장)은 티베트로 향하는 차마고도의 시작이다. 옥룡설산 등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여강(리장)은 한눈에 봐도 분지이다. 오른쪽 차창으로 옥룡설산의 모습을 보며 흑룡담에서 버스로 1시간 20여 분을 왔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호도협으로 향한다. 호도협 호랑이 동상 오른쪽으로 금사강이 흐른다. 금사강은 황금색 모래가 있는 강을 뜻한다. 버스로 5분을 더 가면 호도협 입구에 도착한다. 우리는 유료로 이용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씩씩하게 계단으로 내려갔다. 옥룡설산도 다녀왔는데 이 정도는 우습다.

 

 

 

협곡에 한걸음 가까워질수록 금사강은 포효하듯 울부짖고 있다. 호도협(虎跳峡)은 포수에게 쫓기던 호랑이 한 마리가 강물 한가운데 바위를 디딤돌로 삼아 단숨에 강을 건넜다 하여 불리게 되었다. 거대한 호랑이 동상이 금사강과 바위를 배경으로 설치되어 있다. 걸음을 멈추고 호도협을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굉음 속에서도 이상하리만큼 편안함을 느낀다.

협곡을 뒤로하고 계단을 오른다. 호도협은 옥룡설산(운남)과 하바설산(예전 티벳)을 사이의 거대한 협곡이다. 그 산세가 험해서 설산의 비취색 물이 가파르게 굽이치는 곳이 많아 역동적이며 박진감 넘친다. 물은 아래로 흘러 양쯔강을 흘러간다. 협곡의 전체 길이는 23km이다. 호도협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 차마고도의 일부이다. 

 

이제 차마고도로 가자.

 

 

 

 

 

호도협에서 차마객잔까지는 승용차를 이용한다. 차량은 호도협을 출발하여 가파른 비탈길을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코너를 돌 때마다 먼발치에서 자연이 만들어낸 장엄한 협곡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20여 분이 지난 뒤 작은 마을에 들어선다. 가파른 설산에 기대어 사는 소수민족 마을이다. 앞에는 기암괴석이 거대한 산맥을 이루는 옥룡설산이 펼쳐지고 뒤로는 하바설산 끝자락에 기대어 선 자그마한 객잔 차마객잔(茶馬客栈)’이 나를 반긴다.

 

차마객잔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전망대로 올라간다.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거대한 산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평지보다는 하늘과 가까운 곳이라 가볍게 내리쬐는 햇살도 한여름 직사광선보다 더 뜨겁다. 탁 트인 시야에 끝없이 펼쳐진 협곡, 협곡 사이 벼랑에는 좁은 길의 흔적이 실타래를 늘어놓은 듯 길게 이어져 있다.

어떤 시설도 필요치 않다. 그저 편안하게 앉아 사위를 둘러볼 수 있는 의자 하나면 충분하다. 화려하진 않지만, 암벽의 웅장함이 있는 풍경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흐르는 시간을 붙들고 싶다. 우리는 샹그릴라에서 생산된 블랙야크 맥주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각자의 방법으로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차마객잔의 매력은 전망만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한국 사람들의 흔적은 음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토종 닭백숙, 돼지고기 김치 볶음, 마파두부, 오이 등 그 어떤 음식을 내와도 우리 입맛에 맞았다. 맥주를 마시면서 토종닭 다리를 손에 쥐고 뜯어먹는다. 토종닭이라 약간 질기지만 한국에서 먹었던 그 맛이다.

객잔 내부에 가득한 한글로 쓴 낙서의 흔적들. 지금은 사라진 종로 피맛골 어느 주점의 정겨움이 이곳에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마파두부에 밥을 비벼 먹었다. 식당을 나오기 전 옥룡설산이 내다보이는 유리창에 네임펜으로 흔적을 남긴다.

 

하늘그린 차마고도를 오다.

가을비 내리는 날 다시 올게요.

2023. 11. 24.

 

 

 

 

차마객잔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또다시 맥주를 마시며 의자에 앉아 옥룡설산을 바라본다.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유쾌한 시간은 없는 듯하다. 떠나는 아쉬움을 단체 사진으로 마무리하고 차마고도로 향한다. 마당 한쪽에 부겐빌레아가 차마고도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말해주는 듯 빨갛게 꽃을 피우고 있다.

 

 

 

차마고도(茶馬古道)는 티베트와 인접한 쓰촨과 윈난 지역의 차()를 티베트고원의 말()과 물물교환하던 오랜 옛길(古道)을 말한다.

이젠 누구나 경험할 수 있지만 아무나 갈 수는 없는 차마고도를 걷는다. 차마객잔에서 중도객잔까지 천천히 걸으면 약 2시간이 걸린다. 소수민족 마을을 지나고 설산의 벼랑의 좁은 길을 걷는다. 옥룡설산과 하바설산이 만든 신비한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두 눈에 담아둔다. 차마고도를 걷고 있는 이 순간, 깊고 험준한 협곡이 만들어낸 길에서 삶의 처절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길의 음지는 봄, 가을의 서늘함이 있고 길의 양지는 뜨거운 여름의 기운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늘에 닿을 듯한 옥룡설산 위로 더운 한낮의 태양이 마지막 빛을 발산한다. 셔츠를 벗어 머리에 뒤집어쓰고 메리야스만 입은 채 걷는다. 그때 척박한 이곳에 핀 이름 모를 야생화를 발견한다. 생명이 있는 곳이라면 어떻게든 살려고 애쓰는 모습이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감동적이다.

길은 종단구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완만하다. 어느 모퉁이를 돌았을 때 작은 천막이 눈에 들어온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소수민족 할머니가 차, 음료, 맥주 등을 팔고 있다. 모른 척 지나갈 수 없어 캔맥주를 샀다. 냉장고가 없는데도 손에 쥔 맥주는 차갑다. 한 모금씩 나눠마시고 계곡으로 이어진 길을 계속 걷는다. 어느새 중도객잔이 있는 마을에 들어섰다.

 

한 번쯤 걸어보고 싶었던 그 길을 이렇게 걸었다.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를 탄다. 꼬불꼬불 경사진 벼랑길을 빠르게 내려간다. 운전에도 등급이 있다면 운전사는 최소 4단 이상일 것이다. 호도협을 지나쳐 버스로 왔다.

 

 

 

버스를 타고 여강(리장) 시내로 향한다. 아침에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젠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속하고진까지 2시간이 걸렸다. 이곳은 리장고성과 같은 모습이지만, 사뭇 다른 느낌이다. 리장 고성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졌다. 속하고진은 높은 봉우리 아래 위치한 마을이란 뜻이다.

윈난 원두커피를 찾아 인적 드문 골목을 재빠르게 걷는다. 주어진 시간은 40분이지만 커피를 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나는 해외여행을 다닐 때마다 그 나라, 그 지역의 커피나 차는 꼭 사 온다.

 

 

 

순식간에 서쪽 하늘 아래로 해가 사라졌다. 순식간에 찾아온 짙은 어둠은 상점의 불빛에 희석되어 엷어지고 있다. 저녁을 먹으러 한식당 백운정(白雲亭)에 왔다.

얼마나 많은 삼겹살을 구웠는지 식당 바닥이 기름기로 미끈거린다. 우리도 이에 질세라 뜨거워진 불판에 삼겹살을 굽는다. 고기 굽는 냄새에 몸이 반응한다. 소맥 한잔 마시고 고기를 가득 넣은 쌈을 먹는다. 물론 공깃밥, 김치찌개, 된장찌개도 덤으로 먹는다. 이번 여행 중 식사 중 이렇게 화기애애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특히 볶음밥은 신의 한 수였다.

 

승남아~ 잘 볶았다.’

 

 

 

여강(리장)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버스를 타고 서둘러 여강 산이공항으로 향한다. 오후 1025분 청두(성도)행 비행기의 탑승수속을 마치고 현지가이드와 이별을 했다. 이후 일정은 특별한 것이 전혀 없었다. 자정에 도착한 청두(성도)에서 첫날 숙박했던 천부국제호텔에서 잠깐 잠만 잔 후, 오전 6시에 청두 텐푸공항에 가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어느덧 여행을 다녀온 지 2주가 지났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확실해지는 기억보다 더 정확하게 내 삶을 기록하기 위해 언제나 여행기를 쓴다. 이번 여행기를 쓰는 동안 여행을 되새김질하다 보니 감회가 새롭다. 사람은 삶을 보는 관점과 삶을 사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함께하면서 큰소리로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있었기에 그 순간이 행복했다. 언제나 함께 웃었던 그 순간의 기억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벽의 어스름이 찾아오기 전 어둠에 휩싸인 리장고성은 적막하다. 터벅터벅, 현대를 벗어나 오래전에 존재했던 마을로 들어서면 낯선 땅이 주는 신선함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조용한 골목을 걷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눈에 익은 별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에게로 쏟아지는 별빛. 별을 본지도 무척 오랜만이라 그저 멍하니 하늘을 응시한다. 아주 오래도록.

 

조식을 먹기 전에 커피를 마신다. 텅 빈 위장에 쓴 액체가 흘러 들어가면 잠자고 있던 위액이 기지개를 켠다. 이때의 짜릿함이 너무 좋다. 여행을 왔다고 아침을 먹는 것은 아니다. 아침 식사는 오래된 나의 습관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고수와 파를 잔뜩 넣은 쌀국수를 먹는다. 역시 해장엔 쌀국수만 한 음식은 없는 듯하다. 한국에서 수육을 막국수와 함께 먹는 것처럼 베이컨을 쌀국수와 함께 먹었다.

 

어허. 맛있는데!’

한 그릇 더 먹어야지

 

 

 

버스를 타고 옥룡설산(玉龍雪山)으로 향한다. 차 안에는 고산증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결국, 현지가이드를 통해 고산증약과 산소통을 구매한다. 산소통은 이해하는데 고산증약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4,000m급 산을 여러 번 다녀본 내 경험상 고산증은 약이 없다. 적응의 문제인 것이다. 그냥 재빠르게 하산하면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내 눈은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광경을 쉽게 포착한다. 옥룡설산은 여강(리장)에서 20km 떨어진 서북부 웅장하게 서 있다. 아침 해가 떠오르며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옥룡설산의 고혹적인 자태에 순식간에 매료된다. 이는 지금까지 내가 본 네팔 히말라야산맥의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스위스 체르마트의 마터호른과도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부실만큼 찬란하고 화려하다.

 

 

 

여강(리장)시내를 출발한 버스는 공원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해발 3,000m가 넘는 곳이라 다들 고산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여기서 친환경 공원 버스로 갈아타고 빙천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이동을 한다. 버스가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는 동안 벌써부터 산소통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케이블카 탑승장은 해발 3,356m이다.

 

 

 

 

케이블카를 타면 눈앞에 아찔한 풍경이 펼쳐진다. 함께 탄 사람들이 고소공포증 때문에 안절부절 어찌할 줄 모른다. 상대적으로 난 평온하다. 베트남 사파의 판시팡,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운터베르그, 스위스 루체른의 리기 등 지금까지 타본 케이블카(로프웨이) 중에서 가장 편안했다. 10분 만에 해발 1,150m를 단숨에 올라온다. 케이블카가 도착한 빙천공원은 해발 4,506m이다. 오랜만에 높은 곳에 갑자기 올라왔더니 머리가 어지럽고 띵해진다. 이곳에서 무산소로 해발고도를 174m 더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라 시계가 좋았다. 옥룡설산은 13개의 봉우리가 이루어졌고 최고봉인 샨지두(扇子陡)봉은 해발 5,596m이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은빛 용이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는다. 전망대에 서서 주변 풍광도 바라보며 짧지만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4,680m 전망대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나에게도 고소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쉽게 닿을 수 없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겠다는 일념으로 모두들 고산증을 이겨내며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발을 디딘다. 데크는 오르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다. 많은 사람이 고산증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아 산소통으로 산소를 마시고 있다. 그렇게 걷다 쉬기를 반복하며 목적지에 다다른다. 빠르고 느림의 차이는 있었지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올라왔다. 모두가 같은 공간에 선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혼자서 하산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운무가 빠르게 밀려오고 있다. 경험상 조만간 이곳은 운무에 휩싸이게 된다. 해가 운무에 가려지기 시작한다. 아침보다 훨씬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체하지 않고 홀로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을 시작했다. 겸손함을 느끼게 만드는 웅장한 대자연의 신비는 운무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 머리로 이해한 것을 가슴으로 공감하는 순간이고 아는 만큼 느낄 수 있었던 날이다.

 

인생은 짧은데 오늘은 유독 긴 시간 속에 사는 것 같다.

 

 

 

다시 공원 버스를 타고 두 번째 정거장에 내렸다. 이곳은 옥룡설산의 눈이 녹아 흐르는 계곡이다. 계곡물에 비친 달빛이 푸르다 하여 람월곡(蓝月谷, Blue Moon Valley)이라 불린다. 대자연이 만들어낸 에메랄드빛 호수를 배경으로 많은 사람이 결혼사진을 찍고 있었다. 공원 버스에서 내려 계곡 사이의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계곡물은 옥빛인데 계단식 인공구조물이 그 빛의 아름다움을 퇴색시키는 것 같다.

 

속이 헛헛하다. 배가 고픈 거 보니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짧은 람월곡 산책을 마치고 공원 버스를 탄다. 다시 공원 버스 터미널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옥룡설산을 바라보니 먹구름이 자욱하다. ‘비가 내리겠는데.’

대부분 사람이 미세하게 느끼는 고산병 증세와 입에 맞지 않는 중국 음식으로 표정이 좋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추장을 가져온 것이다. 내가 맥주를 마시며 중국 음식을 먹는 동안 밥에 고추장을 비벼 맛있게 먹는다.

 

 

 

비가 내린다. 처음엔 우박도 떨어졌다. 오후 1시부터 시작하는 인상여강쇼를 보기 위해 우비를 챙겨 입고 자리에 앉는다. 내리는 비는 아랑곳없는 듯이 공연은 시작된다. 차마고도를 오갔던 나시족을 비롯한 마방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상여강쇼는 세계적인 감독 장예모가 리장에서 탄생시킨 작품이다.

 

2006년부터 옥룡설산 일대 500여명 주민이 직접 참여한 공연으로 차마고도 소수민족의 애환과 설화를 담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깎아지른 벼랑과 설산을 오갔을 것이다. 역동적인 춤을 보고 있자니 그 당시 마방들의 기개가 전해지는 듯하다. 목숨을 걸고 차마고도로 떠나는 남자들과 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인들의 일상 등이 전개된다.

이런 장엄한 공연을 실로 오랜만에 본다. 언어가 달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배우들의 행동으로 모든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공연의 끝에는 나시족의 축복을 받는 순서가 있었다. 소망의 손길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골짜기를 가진 옥룡설산으로 향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자기 마음속의 해와 달, 샹그릴라를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이상향, 도원경(桃源境). 유토피아, 샹그릴라를 찾아 떠나자

 

 

 

 

 

비가 그쳤다. 버스를 타고 여강(리장) 시내 방향으로 이동을 한다. 해발고도가 낮아지니 다들 표정이 한결 밝아진다. 나시족을 대표하는 만신을 모시고 있는 동파만신원과 옥과 같은 물이 흐르는 곳인 옥수채를 차례로 방문한다. 동파만신원에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나시족의 상형문자가 벽화로 곳곳에 새겨져 있다. 옥수채는 동파 문화가 시작된 곳이며 여강(리장) 시내로 흘러드는 식수의 발원지이다. 옥룡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옥수채에서 흑룡담을 거쳐 시내로 흘러간다.

 

오늘 하루도 길게 느껴진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보려고 하다 보니 그만큼 일정이 많고 고되다. 저녁을 먹기 전에 90분 동안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 특히 발 마사지가 피로를 풀어준 특효약이 되었다. 한결 가벼워진 몸을 향기 가득한 자연산 버섯 샤브샤브를 먹어 몸의 영양을 보충했다.

 

국물이 끝내주네!’

 

 

 

빔에 리장고성을 걷는다. 리장고성은 송나라 때부터 건설되어 약 1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나시족의 도시이다. 1996년 발생한 진도 7 지진에도 훼손되지 않은 견고한 목조건축물이 즐비하다.

검은 천막으로 둘러싸인 밤하늘의 별빛보다 더 강렬한 빛이 빛나고 있다. 하늘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검고 리장고성의 거리는 샛노란 색 빛으로 출렁인다.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긴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아를의 밤의 카페그림처럼 불타오르는 노랑을 표현한 듯하다.

 

사쿠라 카페에 들어섰다. 이곳은 라이브카페이다. 중앙무대에선 노래가 한창이고 목재로 만들어진 독특한 실내장식이 눈에 띈다. 실내에서 음악도 들으며 술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아름다운 고성거리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중국에서 먹어본 최고의 맥주가 있어 더욱 좋았다.

 

Panda Wushi

맛있어요!’

 

 

 

리장고성은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따라 거스르지 않는 물처럼 산다. 강물, 돌다리, 오래된 거리와 건물, 초록의 나무가 어우러져 동화 같은 풍경이다. 낮의 차분함과 밤의 화려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곳이다. 카메라의 셔터를 멈출 수가 없었다.

 

패키지 공식일정은 끝이 났지만, 우리의 일정은 새벽까지 끝나지 않는다. 어젯밤과 똑같이 야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치 어제의 모습을 Ctrl + C 해서 Ctrl + V를 한 것 같다. 오늘 하루는 평소보다 이야기가 가득한 하루였다. 새벽까지 무열 형, 승남이와 술잔을 기울이며 각자의 생각을 디자인했다.

 

전통에 녹아내린 현대적인 감성이 리장고성의 매력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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