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호치민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조식은 늘 먹던 것으로 접시나 대접에 푸짐하게 담아 도시풍경을 바라보며 먹었다. 혹자는 왜 이렇게 많이 먹냐고 하겠지만 이렇게 먹어도 조금만 돌아다니면 금방 배가 꺼졌다.

 

 

 

다시 한번 체크아웃 시간을 확인하고 오전 8시가 지나 호텔을 나섰다. 공원을 지나고 도심 거리를 걸어 최대한 단거리로 사이공 중앙우체국에 도착했다.

 

 

 

어제 이미 경험했다고 나의 행동에 막힘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엽서를 골라 산 후 가져간 검은색 볼펜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우표를 산 후 풀을 묻혀 편지봉투에 붙였다. 그리고 우편물을 담는 파란색 바구니에 넣었다.

 

 

 

1230일 오후 230, 이 글은 쓰는 이 순간까지도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연말이라도 벌써 11일이 지났는데 왜? ? ?

 

다행히 사진을 찍어두었다. 깜짝 선물로 편지를 쓴 것인데 이렇게 내용을 전하게 되어 미안하다.

 

---------------------------------------------

To 성두

이미 눈치챘을 거로 생각하지만 외국에서 친필 편지를 받아 본 적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 끄적끄적 몇 자 적어봄세.

오늘따라 유독 태양 빛이 강해 호텔에서 우체국까지 걸어오는데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되었지. 나의 이런 노력을 잊지는 말게나.

내가 외국을 처음 나갔을 때가 199771일이었는데 그곳이 바로 베트남이었네. 물론 남부의 호치민이 아니라 북부의 하노이에서 한 달을 지냈지.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거든.

이번이 네 번째 베트남 방문인데 이들 삶이 내겐 오래전부터 익숙해서 크게 생경하거나 하지는 않다네. 물론 음식도 잘 먹고 해서.

주요 관광지보다는 끊임없이 걸어 다니며 골목골목에서의 그들 삶을 관찰하며 다닌다네. 이것이 남과는 다른 낭의 여행 스타일이거든. 이미 알고 있겠지만.

넓어 보이던 여백도 어느덧 글로 채워지는 걸 보니 내가 글 쓰는 데는 예나 지금이나 소질은 없어도 노력은 잘 하는 것 같아. 예전에 주로 편지로 서신을 교환했는데 지금은 이메일도 거의 안 쓰고 거의 앱이나 SNS로 소통을 하다 보니 이런 정겨움을 못 느낄 거야. 느림의 미학을.

예전에는 외국 나갈 때마다 편지나 엽서를 보냈는데, 나도 오랜만에 다시 이런 과정을 겪는다는 게 너무 좋고 행복한 시간이었어.

내년 아이슬란드 여행을 기다리며 이만 줄일게.

새해 복 많이 받고 가정의 평화가 깃들길.

From 성식 in 호치민

---------------------------------------------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객실 청소하시는 분께 팁을 주고 싶은데 수중에 잔돈이 없어서 하노이 캔맥주를 사 먹고 잔돈을 만들었다. 호텔로 돌아와 샤워한 후 차분하게 여행용 가방을 꾸렸다. 객실을 나오면서 청소하시는 분께 팁을 드리고 오전 1030분쯤 체크아웃을 했다.

 

 

 

짐을 호텔에 맡겨두고 밖에 나왔지만 찌는듯한 불볕더위에 거리를 걷는 것이 고통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에 땀이 흘렀고 옷은 금세 땀에 젖었다.

 

길을 걷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따가운 뙤약볕까지 이어진 줄을 보고 무엇을 파는지 궁금했는데 간판에 적힌 반미 후인호야(Bánh Mì Huynh Hoa)를 보고 금세 알아차렸다. 어느 순간 나도 계산을 마치고 그 줄에 서 있었고 10여 분을 더 기다린 끝에 반미가 든 봉지를 받았다.

 

 

 

그늘이 드리워진 공원 의자에 앉아 반미를 먹으며 맥주를 마셨다. 다들 그늘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데 유독 한 여성이 뙤약볕에 앉아 뭔가를 먹고 있었다. 햇볕을 쬐는 것이 비타민 D의 결핍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지만 안 덥나? 보기만 해도 난 덥다. 지금까지 맥주 3캔을 마셨더니 얼굴에 알코올 기운이 올라왔다.

 

 

 

공원 그늘에서 쉬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재래시장 노점에서 느억미아(nuoc-mia, 사탕수수에서 즙을 짜내어 만든 베트남 음료)를 샀다. 먹어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물보다도 더 갈증 해소에 좋았다.

 

 

 

더는 돌아다닐 곳도 없고 돌아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한낮의 더위는 내 의욕을 꺾어 놓았다. 서둘러 호텔로 돌아갔고 그늘진 야외 테이블에 앉아 사이공 병맥주를 마셨다. ~ 시원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유롭게 앉아 있으니 한 병만 마시려고 했던 것이 어느새 두 병째 마시고 있었다. 술에 취하면 안 되니까 그 이상은 마시지 않았다.

 

 

 

오후 4시가 지나 맡겨둔 짐을 찾은 후 양치질을 했다. Grab 앱으로 공항까지 택시를 호출했는데 1분도 안 되어서 잡혔다.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탔는데 도로의 교통체증이 심했다. 지리를 잘 아는 운전사가 골목 골목을 이동하면서 정체 구간을 벗어났고 40분 만에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 탑승까지 6시간이 남았지만, 일찍 공항에 온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긴 휴식 끝에 탑승 절차를 마치고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남은 베트남 돈으로 캔맥주라도 사 먹으려고 했는데 시중 가격에 5배였다. 이거 실화야?

 

창가 의자에 앉아 어두워진 활주로를 멍하니 응시했다. 오후 10시가 지나 거대한 대한항공 여객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널 보기 위해 일찍부터 이곳에 있었다. 반갑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졸음이 몰려왔다. 통로좌석을 선택한 나는 신발을 벗고 제공된 일회용 흰색 슬리퍼로 갈아신고 나니 발이 한결 편했다. 다행히 항공기 출입문이 닫힐 때까지 가운데 좌석에 사람이 타지 않았다.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영화를 튼 후 담요를 목까지 덮었다. 긴소매 옷을 입고 있었는데도 몸 상태가 안 좋은 건지 에어컨 냉기에 추위가 느껴졌다. 눈꺼풀이 무거워서 영화가 시작되었는데도 볼 수는 없었고 이어폰으로 소리만 듣고 있었다. 정시한 이륙한 항공기가 안정 고도에 이르자 나누어준 음료를 마셨고 불이 꺼지자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시 불이 켜졌을 때는 세 시간이 지났고 기내식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눈을 떴지만 피곤함에 몸이 맥을 못 추었는데 그래도 기내식을 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안간힘을 쏟아 정신을 차렸다. 한국 시각으로 오전 4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비행도 채 두 시간이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매일 아침을 먹는 나에게는 몇 시에 아침을 먹느냐도 무엇을 먹느냐도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다만 어떤 음식이든 먹었다는 것 자체가 제일 중요한 문제였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여전히 어스름이 남아 있었고 항공기에서 내리자 가장 가까운 화장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30도를 넘나드는 따뜻한 나라에서 순식간에 영하의 기온을 체감하는 순간 몸이 움츠려졌다. 입국심사를 끝내고 수화물을 기다리는 곳에서 여행용 가방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앱으로 버스를 예약했다. 여행용 가방을 찾은 후 입국장을 벗어나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아래로 내려왔다. 지방행 버스 타는 곳으로 갔고 40여 분 남은 시간 동안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TV 화면에 눈을 응시했다. 830분 유성행 버스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고 한 번도 쉬지 않은 버스는 3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 유성시외버스터미널에 나를 내려줬다. 1113일간의 캄보디아, 베트남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