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의 전원을 켜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지금은 술친구가 된 K형의 전화였다. 벌써 32년 된 인연 사이에 긴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내일과 모레 일정이 어떻게 되나?”

특별한 것은 없는데요.”

그럼 울진 놀러 가자.”

좋아요.”

K형은 내가 저녁을 먹을 때쯤 전화를 종종 한다.

전화를 끊고 보니 부재중 전화가 이미 와 있었다. 늘 그렇지만 저녁을 먹느라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울진 일정은 이렇게 잡혔다.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아침 820, K형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은 비교적 선선했지만, 자전거를 20분 넘게 타고 온 나는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벌써 더위를 느끼면 안 되는데 예년보다 빨리 날씨가 더워지는 것 같았다.

우리에겐 루틴 같은 것이 있다.

내가 승용차에 가방을 넣어두면 K형은 편의점으로 나는 커피숍으로 간다. K형은 담배와 물을 사고 나는 샷이 추가된 아메리카노를 산다. 아메리카노는 기온에 따라 HOT 또는 ICE를 선택한다. 이번엔 당연히 ICE를 선택했다. 모든 것이 준비된 후 K형과 나는 승용차를 타고 울진을 향해 출발했다.

 

울진 두천리 모내기한 논

 

3시간 20분의 긴 이동이 시작되었다.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답답하고 에어컨을 켜면 약간 쌀쌀함을 느꼈다. 날씨만큼 목요일 아침의 고속도로는 꽉 막히지도 그렇다고 뻥 뚫리지도 않았다. 앞차의 속도에 맞춰 뒤차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울진은 경상북도에 있다.

울진에 올 때마다 강원도에 왔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제, 양양, 평창, 춘천, 화천 등 강원도를 가끔 돌아다니다 보니 울진도 당연히 강원도라 생각한 것이다. 고속도로 졸음쉼터에서 화장실을 다녀온 것 빼고는 쉬지 않고 계속 운전을 했다. 그러고 보니 1년 만에 다시 울진에 왔다.

 

하원2교
울진종합버스터미널

 

울진에서 짬뽕을 먹었다.

K형이 월요일에 가봤다는 기절초뽕에 들어갔다. 이름만큼 특별하지 않은 여느 중국집 실내여서 약간 실망했었다. K형이 추천한 짬뽕은 숙주나물이 고명으로 가득 올려진 짬뽕이었다. 면과 숙주를 같이 먹으면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국물은 빨갛지만 맵지 않고 깔끔하며 시원했다.

기절초뽕에 한 번 더 갔다.

울진 산야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일로 일정이 하루 늘어났다. 이튿날 저녁에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짬뽕과 탕수육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소맥을 말아 목구멍으로 넘겼다. 막소주만 고집하는 K형은 술이 고팠는지 구포식 소맥이라며 직접 소맥을 말아 나에게 건넸다. 단무지를 안주 삼아 한잔, 양파를 안주 삼아 또 한잔, 그렇게 4잔쯤 마셨을 때 짬뽕과 탕수육이 나왔다.

 

울진마집 - 기절초뽕

 

승용차는 불영계곡 도로를 달렸다.

몇 년 전에 왔었던 곳을 다시 찾은 것이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고 야속한 세월만 흘렀다. 나는 산을 바라보면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래서 무작정 산에 올랐다. 보통은 등산로를 따라 오르지만, 오늘은 차를 타고 임도를 따라 높은 곳에 올랐다.

처음 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풍경을 한 번이라도 구경해본 사람이라면 또다시 산을 찾게 된다. 풍경 사워, 아름다운 풍경이 온몸과 정신까지도 말게 씻어줬다. 눈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었다. 전후좌우에 드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바람이 와락 내게 안겼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 오랫동안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이런 포옹도 좋네라고 생각했다.

 

불영계곡 - 하원리, 아미사 입구
대흥리 임도

 

산을 하나 넘었을 뿐인데 세상이 갑자기 낯설고 이상해졌다.

지난겨울, 산불은 매일 번져 나갔다. 소방헬기로 물을 뿌리고, 소방차로 물을 뿌리고, 수많은 사람이 투입되어 잔불을 제거했다. 산불은 바람에 의해 퍼져서 그 면적을 넓혀 나갔고 오래도록 타다가 비에 의해 완전히 소멸하였다.

산불피해지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다.

산불이라는 화마를 만나 죽을 고비를 겪었을 뿐이다. 그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 예전 상태로 돌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 , , , 도로, 강 등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었다.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공허했다.

 

금강소나무숲길(보부상길 입구-두천리)
두천리 마을 산불피해지
두천리 산불발화지점
대형산불 실화자 찾는 현수막

 

봄이 되기까지 산불의 흔적은 처참했다.

울진의 산은 초록의 천위에 실수로 먹물을 부어 놓은 것 같았다. 산은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검게 탄 잿더미였다. 산불의 흉터는 먹색으로 남았지만 봄이 되면서 그 흉터는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큰 산불을 겪고도 산은 생명의 씨앗을 틔웠다.

상처가 흉터가 되고 새살이 돋듯 잿더미 속에서도 희망의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산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더디 간다는 것은 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때처럼 긴 하루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호월1리

 

어둠은 무언가에 쫓기듯 물러났다.

새벽 5시가 넘으면 어느새 해가 떠올랐다. 모텔 창문으로 환해진 울진 시내를 내다봤다. 바람은 가로수를 마구잡이로 흔들고 있지만 시원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더위와 싸워야 하는 힘겨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오늘은 얼마나 걸어야 할까?

불영계곡 아미사에서 산에 들어섰다. 나는 가보지 않은 산을 돌아다닌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걷는 길을 기획하고 조사에 참여하는 일만으로도 희열을 만끽하고 있다.

능선을 따라 오르고 또 올랐다.

깊은 산속 이름 없는 고개의 소나무 그늘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었다. 청량함이 가득한 산골 바람은 더위를 식혀 주었다. 소나무 우듬지를 흔들리게 만드는 그 바람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바다에서 높이 물결치는 파도 소리 같은 허공의 바람 소리였다.

 

아미사 옆 숲길
초롱꽃
꼬리진달래
소나무
울진군 금남면 수곡리
울진군 금남면 수곡리

 

깊은 계곡 바위에 서 있었다.

여러 갈래로 흐르는 물처럼 내 마음도 여러 갈래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물이 흐르지 않아 속살을 드러낸 바닥은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듯 보였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맑고 투명했으며 수면 아래로 군데군데 두껍게 낙엽이 쌓여 있었다. 흐름이 느린 물줄기에는 사분음표 모양의 올챙이가 불안정한 상태로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계곡의 물은 아래로 흘러갔다.

비가 오지 않아 유량은 적었지만, 낙차 큰 암반 지형에선 파도처럼 걷잡을 수 없는 물이 쏟아져 내렸다. 하염없이 물이 불어나지도 않고 물살도 세지 않아서 장마철을 제외하면 계곡물을 이용하기엔 안전했다. 계곡을 건너고 또 건넜다. 일 년 중 가장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었다. 이태백이 술에 취하듯 나는 계곡에 취했다.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보부천길
울진군 하원면 소광리 보부천길
울진군 하원면 소광리 보부천길

 

맑았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후드득, 후드득.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은 이내 빗줄기로 변했다. 급한 대로 숲속 나무 밑으로 가서 넓은 잎사귀로 머리를 가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엷은 구름이 퍼져 있을 뿐 대체로 맑았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구나!’ 비는 곧 멈췄고 구름을 걷어낸 태양이 숲의 가지 틈새로 빛을 쏟아냈다.

들꽃처럼 희망의 꽃을 피우자.

화마가 덮친 후 예전 생활로 돌아오기까지는 꽤 시일은 걸릴 것이다. 화마가 덮친 후 새싹이 움트고 꽃을 피우기까지 들꽃은 시련을 견디어 꽃을 피웠다. 무수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비록 삶은 고되겠지만 상황은 호전될 것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하원리 불영계곡
하원리 불영계곡
하원리 불영계곡
백선
함박꽃나무
붓꽃

오후가 되자 뜨거운 열기가 몰려왔다.

오전의 햇빛이 냉장고 속 상추처럼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은 것이라면 오후의 햇빛은 젖은 수건을 골판지같이 딱딱하게 바싹 말린 것이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이 녹아내린 듯한 뜨거운 날씨였다.

나는 방 한쪽 벽에 기대어 앉았다.

주말이지만 밖에도 나가지 않고 텔레비전을 켰다. 프로야구 중계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캐스터와 해설자는 한화이글스가 9연패의 사슬을 끊고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떠들어 댔다. 텔레비전의 소음과 달리 집은 고요하고 모든 것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 햇볕을 쬐며 길을 걸었다.

여행이라도 온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계속 걸었다. 낯선 장소를 지나온 내 자취는 벌써 햇빛에 말라버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푸르렀던 하늘빛은 시간이 지나면서 엷은 주황색에서 짙은 보라색으로 물들어 갔다. 도로의 이팝나무는 바람에 흔들려 흰 꽃을 떨구는데 18개월을 길러온 내 머리카락은 전혀 흩날리지 않았다.

도로를 따라 인도를 걸었다.

길을 걸을 때마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냄새가 났다. 요란스럽게 질주하는 차량의 움직임과 함께 강력한 돌풍이 내 머리칼을 날려버렸다. 후텁지근하고 기름 냄새나는 바람이었다.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청년기를 지나 이제 막 장년기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처럼 오십 대가 되어도 여전히 혼자 여행을 다니려고 노력 중이다. 어제의 다음 날인 오늘은 내가 여행을 떠나려고 생각한 미지의 내일이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대도시를 벗어나 적당한 소음만이 존재하는 평화로운 장소이다. 그 장소가 농촌이든, 산이든, 섬이든 상관없다. 내가 늘 접하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 그런 곳에서는 호흡도, 걸음도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내 속에 감춰져 있던 본능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나는 일출보다 석양을 좋아한다.

새벽의 어둠이 밝으므로 변하는 시간보다 저녁의 어스름이 어둠으로 변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새벽은 모든 것이 잠들어 있어 고요하지만, 저녁은 모든 것에 생명력이 깃들어 있어 시끌벅적하다. 24시간이 지났다. 나는 일출과 석양을 같은 공간에서 맞이했다.

머무름은 완벽했다.

내가 머물렀던 자리에 내 몸 크기만큼의 여백이 생겼다. 그 여백에 내 흔적이 남아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려고 늘 노력 중이다. 오늘도 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낯선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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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가파도에 간 적이 있다.

청보리의 흔들림으로 바람이 내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알았다. 내가 어디에 서 있든 바람이 속삭였다. ‘네 인생을 나에게 맡겨볼래.’ 나는 단호하게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청보리는 자신의 짧은 인생을 바람에 맡겼다. 중심을 잡지 못하는 청보리 인생, 바람이 사라질 때까지 그 움직임을 멈출 수 없었다.

햇살이 넓은 청보리밭을 비췄다.

바람을 타고 청보리가 외치는 아우성이 들려왔다. 나는 아우성을 잘 들으려고 주의를 집중했다.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해야 했는데.’

 

제주 가파도

 

지금 모습이 초라하다고 결코 좌절해서는 안 된다.

남과 비교하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내 인생을 확신하게 되면 그 길로 가자는 결심을 할 수 있다.

나의 젊은 날을 회상하면 하루하루가 힘겹고 괴로운 일상이었다.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인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씁쓸한 일상이 토대가 되어 지금의 내 인생이 되었다. 마음의 응어리가 사라진 후에 어른이 되었고 비로소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인생은 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누구나 고민과 번뇌 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은 마음을 찾는 과정이다. 마음이 흔들리면 짧은 인생은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내가 걸어가야 할 인생은 내적 자신과의 진실한 교감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내가 진심으로 결정한 일은 그 누구도 좌지우지할 수 없어야 한다.

나는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인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스스로 생각한 것을 스스로 판단하여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지다. 자유의지로 이룬 것들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자유의지를 믿으며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내 인생의 설계자는 나이기 때문이다.

 

제주 함덕서우봉해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매달린다. 그런 순간의 행복 따위는 인생의 행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순간의 행복은 단지 쾌락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루를 소중히 여기면 인생이 소중해진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노력하면 최소한 후회는 하지 않는다. 잠에서 깨면 굳은 결심을 해 보자. 굳은 결심이 후회라는 적을 물리친다. 인생의 행복은 주거나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화천 딴산 자작나무

 

인간관계는 줄다리기다.

한쪽이 힘이 세서 일방적으로 끌거나 끌리기만 한다면 그 관계는 유지될 수 없다. 서로 밀고 당기는 과정이 유지되어야 인간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똑똑한 관계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관계는 내가 선택하고 상대가 선택한 인생의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크게 가치를 느끼는 것을 내줄 때 인간관계는 최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화천 딴산 출렁다리

 

매 순간의 선택이 내 인생을 좌우한다.

긴 인생의 여정에는 언제 닥칠지 모를 무수한 상황이 발생한다. 언제나 유연성을 가지고 과감한 궤도수정이 필요하다. 목표를 설정하고 실천 계획을 세워야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실망감을 느끼기보다는 소신껏 목표지점까지 걸어야 한다.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산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 마음의 평화로움이 행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곧 행복이다.

 

제주 위미 동백나무군락지

 

내가 좋아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그 누구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에 대해 늘 생각한다. 뭐든지 내가 편하고 좋아하면 그만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소신에 따라 당당하게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좋거나 싫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살아간다. 내 가치관은 내가 지켜야 한다. 감정표현을 두려워하면 자신의 삶을 지키지 못한다.

나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맞춰 살고 있다. 남을 의식하기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좋아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을 때만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지만 싫어하는 것은 일절 하지 않는다.

 

금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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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월요일 새벽이다.

내가 다시 인제에 온 것은 일요일 저녁이었다. 마침내 백두대간(조침령~구룡령)을 가기로 한 날이 되었다. 다섯 시에 잠에서 깨어나 샤워를 마치고 창문의 커튼을 열었다. 동이 뜨기 전이지만 오늘 날씨가 썩 좋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호텔을 나섰다.

나뭇가지를 흔들리게 만든 바람이 내 얼굴도 스치고 지나갔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바람은 여전히 밉살맞게 불었다. 아침을 먹는 동안 날이 밝았다. 차를 타고 인제에서 출발하여 조침령으로 향했다. 내린천 변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눈이 내리듯 흩날렸다. 바람은 찾아온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생떼를 부렸다.

 

인제 - 스카이락호텔

 

조침령에 도착했다.

바람은 인제에서보다 더 밉살스럽게 불었다. 가까이 있는 CCTV 스피커에서 연신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하늘에는 봄의 어떤 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다 탄 나무의 재처럼 그저 옅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환하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바람이 불면 쌀쌀했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더위를 느꼈다. 아침 기온은 높았지만 바람이 불어서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에어컨을 켠 차 안에서 얼음이 가득한 냉커피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백두대간 조침령

 

너는 가고 나는 본다.

우리는 조침령에서 서남쪽으로 나아갔다. 20m마다 측량을 하면서 백두대간을 걸었다. 네가 폴을 들고 20m를 걸어가면 나는 측량한 것을 기록한 후 너의 뒤를 쫓아갔다. 측량하는 동안 우리는 만날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의 행동을 쳐다만 볼 뿐이다.

너와 내가 떨어질 수 있는 최대 거리는 20m이다.

이름도 없는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를 걸어갔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네가 남기고 간 자취는 내 피부에 와 닿았다. 노면이 다 드러난 흙길 위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등산로 주변에는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 향기가 가득 차 있다.

 

숲길 측량

 

처음 뵙겠습니다.

내가 노루귀를 발견한 것은 오전 열한 시였다. 백두대간 갈림길에서 길의 흔적을 찾아 우거진 조릿대 숲을 걷고 있었다. 어깨까지 올라온 조릿대를 손으로 밀어낸 순간 그곳에 노루귀가 있었다. 별다른 특징이 있는 노루귀는 아니었다. 봄이면 산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노루귀였다.

낙엽 속에 숨어있었다.

내가 얼레지를 발견한 것은 오후 한 시였다. 낙엽 속에 있어 오히려 그 존재가 눈에 띄었다. 분홍색 꽃잎이 뒤로 말린체 도도하게 서 있었다. 녹색의 잎은 흙탕물이 튄 것처럼 군데군데 자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얼레지는 무방비한 구석이 있다. 등산로에 자란 엘레지를 실수로 밟게 되어 나를 당황케 했다. 언제나 미안하다.

 

노루귀
얼레지

 

시간을 들인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산에 온 목적에 맞게 백두대간을 걸었다. 20m마다 측량을 하면서 걷다 보니 오늘 하루 4.8km밖에 못 왔다. 속도는 느렸지만, 그만큼 산에 더 많은 애정을 품은 시간이었다. 내일 다시 이곳에서부터 측량을 시작해야 한다. 해가 지기 전에 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숲은 평온함에 빠져 있었다.

산불통제 기간이라 허가 없이는 백두대간(조침령~구룡령)을 다닐 수 없다. 인적없는 숲에는 야생화, 계곡, 폭포 등 극적인 요소들이 언제나 숨어있었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미줄처럼 치밀할 정도로 잘 짜여 있었다. 내일 다시 이곳을 지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형이상적인 봄의 화원을 소리 없이 걸었다. 아주 길고 넓은 꽃밭으로, 그곳에는 얼레지, 바람꽃, 제비꽃, 현호색, 괭이눈, 노루귀 등의 다양한 야생화가 파도치고 있었다. 꽃냄새와 더불어 물 냄새가 났다. 바위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졌다 속삭이고 있었다.

계곡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건조한 대기의 냄새가 났다. 나무의 잎사귀는 햇빛을 한껏 받았지만 메마름보다 촉촉함이 느껴졌다. 땀이 흐를 정도로 더웠다. 나는 바위 사이에 다리를 딛고 허리를 숙여 세수했다. 두 손을 오므려 계곡물을 담아 얼굴로 가져갔다. 몇 번이나 그렇게 했다. 어느새 땀은 물로 대체되었다.

 

바람꽃
얼레지
현호색
고비
괭이눈
처녀치마
연영초

 

봄의 어느 맑은 오후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기온이 쑥쑥 올라갔다.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에서 노란 꽃이 완벽하게 핀 한계령풀을 발견했다. 봄만큼 화사한 한계령풀이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누런 낙엽 사이에서 초록빛 풀 사이에서. 노란 꽃은 초록의 잎과 줄기에 대비되어 더 멋져 보였다. 한계령풀은 순도 100%의 황금색 꽃을 가졌다.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계령풀을 본 적이 있는가? . 있다. 작년 이맘때 곰배령에서 한계령풀을 처음 보았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의 비옥한 토양이었다. 한계령풀은 환경부에서 희귀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한계령풀

 

나는 몇 번이나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안이 찾아온 시력이지만 초점을 정확히 잡으려고 안경을 콧등 끝에 걸쳤다.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며 한계령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두 개만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800m 이상 등산로 주변에 자생하고 있었다. 천상의 화원이 이런 것이었다. 한계령풀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심장박동 수는 점점 빨라졌고 발걸음은 현저히 느려졌다. 실수로 밟지는 않을까 가슴이 조마조마해졌지만, 사진을 찍는 손놀림만큼은 번개처럼 빨랐다.

 

한계령풀 군락지
산바다, 지리산고무신 - 박무열

 

천상의 화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백두대간의 변덕스러운 바람에 한계령풀 씨앗이 주변으로 운반되었다. 해가 지날수록 그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씨앗이 떨어진 거리에서 각자의 생존을 위해 꽃을 피우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바람의 흔적은 말했다.

백두대간에서 양양 앞바다를 건너온 바닷바람을 맞았다. 백두대간을 스쳐 간 바람의 흔적, 그 모든 것이 바다의 냄새였다. 시계가 트였을 때 양양 앞바다가 몇 킬로미터쯤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오늘은 양양에서 하룻밤 묵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박새와 현호색
바람꽃
미천골자연휴양림 방향

 

하산은 선택의 문제였다.

다른 사람들은 연가리 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했고 나만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선택의 중심에 항상 내가 있었다. 산악가이드인 내가 차량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태우러 가야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발길을 잡았던 천상의 화원은 나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헐떡거리면서도 연신 오르막을 뛰다시피 올랐다.

시간은 뒤로 돌아가진 않는다.

오늘은 근심 없이 감각적으로 야생화를 보고 즐겼다. 해가 지기 전에 양양 낙산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드넓은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니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저녁을 먹으면서 저녁노을을 바라봤다. 동쪽에 와서 서쪽의 노을을 바라보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해물두부전골
모듬생선구이

 

또 하루가 지났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아는가? 난 그 질문의 답을 석양을 보려고라고 말했다. 달마는 해가 제일 먼저 뜨는 동쪽에서 해가 지는 서쪽을 그리워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내 마음이 어제 그랬다. 사람은 변하는 게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육신의 고통을 느낀 후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

어제 하산했던 장소로 가기 위해 갈천으로 왔다. 백두대간 왕승골삼거리로 올라오는 등산로는 내 육신에 고통을 주기에 매우 가팔랐다. 두껍게 쌓여 있는 낙엽 때문에 연신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가벼웠는데 배낭의 무게가 삶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바람은 좀처럼 불지 않았다.

메마른 대지에 미세먼지가 자욱했다. 아무 생각 없이 어제 하산했던 장소로 이동했다. 굵은 땀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평평한 곳에 앉아 두 눈을 감았다. 우듬지에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색한 침묵의 순간처럼 내 몸의 열기는 오랫동안 식지 않았다.

아무도 지나간 적 없는 길은 없다.

시간이 흘러 그 흔적이 사라졌을 뿐이다. 백두대간을 측량하며 다시 왕승골삼거리 돌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흘 동안의 백두대간 조사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갈천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산작약
숲길 측량

 

내 시선이 닿는 곳에 피나물과 금낭화가 있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숲은 출렁거렸다. 멈춘 것처럼 보였던 모든 것들이 분주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를 지각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다. 눈으로 본 것 때문에 가슴이 설레고 흥분되었다. 순간이 이처럼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백두대간은 나름의 소리도 머금고 있었다.

바람 소리, 나무 소리, 새소리, 계곡물 소리 등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 소리가 들렸다. 백두대간의 매력에 한 번 사로잡히니 헤어나오기 쉽지 않았다. 백두대간은 서두르며 지나는 그런 길이 아니다. 자연과 시선을 맞추며 천천히 걸어야 백두대간의 진가를 제대로 볼 수 있다.

 

피나물
금낭화
귀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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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4월이다.

갑천 변 벚꽃은 이미 꽃을 피워 벚꽃 터널을 만들었다. 제방에 심어진 샛노란 개나리꽃과 어우러져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새벽 공기는 차갑지 않았다.

식목일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이 되었다. 밤새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다 온몸이 찌뿌드드한 상태로 일어났다. 냉수로 세수를 하고 계절과 어울리는 봄옷을 입었다. 오늘 난 머리털 나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섬으로 출발했다.

 

 

지난 10년 동안 강진, 해남, 완도를 갈 때마다 수없이 지나갔던 그 길이었다.

유성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정읍IC로 빠져나왔다. ‘띵띵 띵띵내비게이션은 광주까지 가라며 한동안 경고음을 울렸다. 그런 울림을 완전히 무시하고 한갓진 시골길을 달렸다. 어느새 내비게이션도 경로 재탐색을 통해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10여 분 후 선운산IC를 통과하여 서해안 고속도로에 다시 진입했다.

2시간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에게 그다지 특별할 것도 유별날 것도 없는 그런 길이었다. 목포IC를 벗어나 압해대교를 건너 신안군으로 들어섰다. 도로변 불 켜진 커피숍에 들어갔다. 분위기 좋고 경치도 좋았지만 한가하게 앉아 커피를 마실 시간은 없었다.

 

 

송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910분이었다.

차량에 앉아 해무 낀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지금 나는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로 갈 생각이다. 매표소에 들어가 왕복 배편을 예매했다. 소악도 선착장에 내린 후, 진섬, 딴섬, 소악도, 소기점도, 대기점도로 이동할 예정이다.

여객선은 검은 매연을 내뿜기 시작했다.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해무로 인해 시계는 좋지 않았다. 천사대교의 형태가 아주 흐릿하게 보였다.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선실에 들어왔다. 배는 당사도를 거쳐 40분 만에 소악도 선착장이 있는 진섬에 도착했다.

 

 

나는 배에서 내렸다.

해무인지 미세먼지인지 구별할 수 없지만, 바닷가 특유의 짭짤함이 공기에 묻어 있었다. 썰물 때라 갯벌 바닥은 그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섬이라고 바다와 갯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천장굴산, 개바우산, 앞산, 범바우산, 큰잔동산 등 구릉지 같은 산도 있었다.

선착장 옆 숲에는 철탑 가는 길이 있었다.

나는 그 길로 들어섰다. 굴착기로 무지막지하게 숲을 밀어버렸다. 4m 정도의 길이 능선을 타고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자연훼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이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황량함이 느껴지는 숲에도 자줏빛 붉은 꽃, 진달래꽃이 피어 있었다. 벌써 꽃을 피우다니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달래꽃을 보고 길 복원에 대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시몬의 집이 있었다.

기점·소악도는 순례자의 섬이라고 불린다. 순례자의 섬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졌다. 12 사도 이름을 따서 지은 작은 예배당이 노두길로 연결된 5개의 섬에 산재해 있다. 순례자의 섬을 찾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기점 선착장에서 하선한다. 섬과 섬을 연결한 노두길을 걸어 12 사도 예배당을 돌아본 후 소악도 선착장에서 다시 승선한다.

예배당은 바닷가, 갯벌, 호수, 언덕 등에 자리하고 있다.

1. 베드로의 집 2. 안드레아의 집 3. 야고보의 집 4. 요한의 집 5. 필립의 집 6. 바르톨로메오의 집 7. 토마스의 집 8. 마태오의 집 9. 작은 야고보의 집 10. 유다 타대오의 집 11. 시몬의 집 12. 가롯 유다의 집이다.

 

시몬의 집
가롯유다의 집
유다 타대오의 집
작은야고보의 집
마태오의 집
토마스의 집
바르톨로메오의 집
필립의 집
베드로의 집

 

순례자의 섬에는 섬과 섬을 잇는 4개의 노두길이 있다.

노두는 밑물 때는 사라지고 썰물 때에 모습을 드러낸다. 노두는 광맥·암석·지층·석탄층 따위가 땅거죽에 드러난 부분을 말한다. 지금은 노두를 시멘트로 포장해 놓아 차량도 이동할 수 있다.

조심! 밀물 때 통행금지

노두길은 밑물이 되면 물에 잠긴다. 물이 찰랑거려서 길이 보인다고 할지라도 물살이 세고 파래 등으로 매우 미끄럽다. 물이 차면 차량은 물론 사람도 절대로 건너가면 안 된다. 3~4시간이 지나면 썰물이 된다.

 

 

아쉬움이 남는다.

길을 만든다고 굴착기로 무지막지하게 숲을 밀어버려 자연을 훼손했다. 산자고, 보춘화 등 섬 야생화 보호와 훼손된 숲의 복원이 시급했다. 자연 그대로인 노두가 아닌 시멘트로 포장된 노두길이라 감흥이 덜했다. 밀물이 되어 바다에 잠기는 노두길과 그 위의 예배당(8. 마테오의 집)을 보지 못했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다.

노두길을 따라 만나게 되는 12개의 예배당은 조용히 묵상하기 좋을 정도의 공간이다. 나에게는 푸른 바다와 마주 보며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만들어진 길은 없다.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는 종교를 떠나서 섬의 자연과 더불어 편안하게 명상하며 걷는 그런 길이다.

 

산자고
보춘화

 

순례자의 섬을 다 돌아봤다.

물론 모든 예배당을 다 가본 것은 아니다. 안드레의 집과 야고보의 집은 가지 않았다. 나는 숲길과 노두길을 중심으로 섬을 걸었다. 대기점 선착장에 있는 베드로의 집에서 배를 기다렸다. 오후 432분 다시 배를 탔다.

배고픔이 극에 달했다.

아침은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셨다. 점심에는 캔맥주를 마시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막 배를 타고 기점·소악도에서 송공항으로 나왔다. 대전을 가려면 목포를 지나가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목포에 올 때마다 꼭 들리는 유달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선경준치회집에 갔다. 아귀탕과 갈치구이를 주문했다. 꼭 아귀탕과 갈치구이를 먹어봐야 한다. 일단 한번 잡숴봐!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대기점선착장
목포 맛집 - 선경준치회집, 갈치구이(4미 이상)
목포 맛집 - 선경준치회집, 아귀탕

올해만 두 번째 방문이다.

오후 340, 보름 만에 다시 단양을 향해 출발했다. 맑은 하늘 아래를 달리던 차는 어느새 비구름 속에 갇히고 말았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이 대지를 때린 듯 하늘의 수문이 열렸다.

오늘의 맑음은 어제의 비로 대체되었다.

비는 창문 표면으로 한두 방울씩 떨어졌고 와이퍼를 느린 속도로 작동시켰다. 제천을 지날 때는 많은 비가 내렸다. 비의 양에 비례해 와이퍼 속도를 빠르게 또는 느리게 조절했다. 와이퍼는 비를 닦고 되돌아오면서 창문을 조금씩 흐리게 만들었다. 2시간 후,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북단양IC를 지나쳤다.

 

 

비는 내리고 또 내렸다.

단양에 도착했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봄비는 겨울 가뭄에 바싹 메말라 죽어가던 대지를 촉촉이 적셨다. 대지는 봄비로 인해 생명수를 얻은 셈이다. 단양에 올 때마다 숙박하던 그라다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빗속을 뚫고 찾아온 벗이 반가웠나 보다. 단양에 사는 지인과 삼겹살에 술잔을 마주 잡았다. 계산 없는 즐거움이 술자리에 가득 찼다. 비 오는 밤이라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밤은 점점 깊어졌다.

비로 인해 어둠이 더욱 까맣게 변했다. 남한강과 소백산과 하늘의 경계가 없어졌다. 남한강을 비추던 조명은 어둠 속에서 한층 더 선명해졌다. 비는 조명에 취한 듯 멋진 야경을 부러워하며 남한강으로 떨어졌다. 남한강도 이내 조명에 불타고 말았다.

 

 

흰 구름이 소백산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오전 7, 아침을 먹으려고 모텔을 나왔다. 상상의 거리에서 남한강 건너 소백산을 바라봤다. 어제 보았던 소백산의 풍경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고요함을 배우고 한가로움을 훔쳤다.

내 마음에 틈이 있어야 빛이 스며들 수 있다. 내 마음이 넓어지니 구름 덮인 산을 보고도 그 매력을 빠져 고요함을 즐기게 되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이 나의 한가로움이 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아침을 먹으려고 단양시장 내 충청도순대에 갔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 나왔던 식당이다. 그동안 단양에 올 때마다 각기 다른 음식을 먹었다. 아침에는 주로 황태해장국을, 점심에는 자장면을, 저녁에는 마늘 소고기, 마늘 떡갈비, 장어, 삼겹살, 쏘가리 매운탕을 먹었다.

편의점 커피를 마신 후 차에 탑승했다.

황정산 자연휴양림으로 목적지를 설정했다. 차는 단양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대강면을 지나 황정리에 들어섰다. 대흥사를 지나 구불구불한 숲속 도로를 천천히 운전 중이었다.

 

 

눈으로 확인된 것은 두 마리였다.

머리는 검은색이고 가슴 주변으로 금빛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한 마리는 산 경사지의 콘크리트 축대벽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도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멸종위기 야생동물 급인 담비였다.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량 소리에 놀랐던지 단비는 혼비백산하여 숲으로 달아났다. 나는 지금까지 단비를 5번 정도 목격했다. 모두 다 깊은 산속 인적이 드문 장소였다. 도로변에서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비를 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의 흥분된 감정은 내 머릿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단비를 두 눈으로 봤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운아인 셈이다.

 

 

황정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단비의 흔적을 뒤로 한 체 석화봉으로 향했다. 휴양림에서 석화봉까지는 길이 나 있다. 세 군데이고 모두 등산로이다. 나는 C 코스로 접어들었다. 이 등산로는 찾기가 쉬웠다. 계곡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등산로는 점점 넓어지고 경사는 완만해졌다.

때죽나무, 신갈나무도 있지만, 대부분은 굴참나무였다. 굴참나무는 굵고 곧게 뻗어 있었다. 말라 비틀어진 숲에도 노란 꽃을 피우며 존재를 과시하는 나무가 있었다. 굴참나무 아래로 샛노란 연둣빛 꽃을 피운 생강나무였다. 아직 만개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올해 처음 생강나무꽃을 본 것이다.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다채로운 꽃과 열매를 맺는 존재들이 있기 마련이다.

 

 

숲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낙엽은 먼지처럼 숲에 쌓여있다. 생명력을 읽은 나뭇잎들이 낙엽이 되어 오랫동안 켜켜이 숲에 쌓인 것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부스럭부스럭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리느라 분주했다. 나는 그 소리가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색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부추겨 줄 뿐이었다.

낙엽은 그냥 버려진 것이 아니다.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 자궁 같은 곳이다. 두껍게 쌓인 낙엽 속에서 땅은 양분과 수분을 흡수하고 추운 겨울 동안 씨앗은 얼지 않고 땅속에서 견딜 수 있다.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점점 깊은 계곡으로 들어갔다.

등산로는 계곡 끝에서 능선과 연결되었다. 그 지점에서 하얗게 말라버린 투구꽃 열매를 발견했다. 화려한 꽃만 보다가 이런 모습을 보고 매우 당황스러웠다. 능선은 가팔랐다. 굴참나무가 주를 이루는 계곡과 달리 소나무가 점점 많아졌다. 등산로 주변으로 사방오리도 몇 그루 자생하고 있었다.

처녀치마를 발견했다.

처녀치마는 낙엽에 덮여 있었다. 얼핏 봐서는 처녀치마인지 아닌지조차 구별할 수 없었다. 손으로 낙엽을 치우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고 녹색의 잎만이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한껏 부풀어 오른 꽃망울이 꽃의 아름다움을 말해주고 있었다.

 

 

숲이 노래했다.

양지바른 곳에는 햇빛이 노래했고 가파른 능선에선 바람이 노래했다. 바람의 노래에 화답하듯 소나무 우듬지가 부드럽게 춤을 추었다.

일종의 풍경놀이를 시작했다.

그저 말없이 정상에 올라 숲의 기묘한 형태를 바라봤다. 맑은 하늘,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각양각색의 구름, 아직 겨울이라고 말하고 있는 눈 덮인 소백산 연화봉 정상,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산맥들과 그 속의 기암괴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시간 풍파를 견뎌낸 소나무가 서 있다. 척박한 곳에서도 숲의 포용력과 충만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숲은 아름다움과 끔찍함을 동시에 끌어안고 있다. 숲은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나는 숲을 관찰하지만, 숲은 나를 관찰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숲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것이다. 오늘 난 석화봉을 오르내리면서 숲이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을 간직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황정산 자연휴양림 - 석화봉]

 

편의점 커피를 마신 후 차에 탑승했다.

황정산 자연휴양림으로 목적지를 설정했다. 차는 단양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대강면을 지나 황정리에 들어섰다. 대흥사를 지나 구불구불한 숲속 도로를 천천히 운전 중이었다.

 

눈으로 확인된 것은 두 마리였다.

머리는 검은색이고 가슴 주변으로 금빛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한 마리는 산 경사지의 콘크리트 축대벽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도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멸종위기 야생동물 급인 담비였다.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량 소리에 놀랐던지 단비는 혼비백산하여 숲으로 달아났다. 나는 지금까지 단비를 5번 정도 목격했다. 모두 다 깊은 산속 인적이 드문 장소였다. 도로변에서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비를 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의 흥분된 감정은 내 머릿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단비를 두 눈으로 봤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운아인 셈이다.

 

 

황정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단비의 흔적을 뒤로 한 체 석화봉으로 향했다. 휴양림에서 석화봉까지는 길이 나 있다. 세 군데이고 모두 등산로이다. 나는 C 코스로 접어들었다. 이 등산로는 찾기가 쉬웠다. 계곡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등산로는 점점 넓어지고 경사는 완만해졌다.

 

때죽나무, 신갈나무도 있지만, 대부분은 굴참나무였다. 굴참나무는 굵고 곧게 뻗어 있었다. 말라 비틀어진 숲에도 노란 꽃을 피우며 존재를 과시하는 나무가 있었다. 굴참나무 아래로 샛노란 연둣빛 꽃을 피운 생강나무였다. 아직 만개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올해 처음 생강나무꽃을 본 것이다.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다채로운 꽃과 열매를 맺는 존재들이 있기 마련이다.

 

 

숲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낙엽은 먼지처럼 숲에 쌓여있다. 생명력을 읽은 나뭇잎들이 낙엽이 되어 오랫동안 켜켜이 숲에 쌓인 것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부스럭부스럭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리느라 분주했다. 나는 그 소리가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색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부추겨 줄 뿐이었다.

 

낙엽은 그냥 버려진 것이 아니다.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 자궁 같은 곳이다. 두껍게 쌓인 낙엽 속에서 땅은 양분과 수분을 흡수하고 추운 겨울 동안 씨앗은 얼지 않고 땅속에서 견딜 수 있다.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투구꽃

 

점점 깊은 계곡으로 들어갔다.

등산로는 계곡 끝에서 능선과 연결되었다. 그 지점에서 하얗게 말라버린 투구꽃 열매를 발견했다. 화려한 꽃만 보다가 이런 모습을 보고 매우 당황스러웠다. 능선은 가팔랐다. 굴참나무가 주를 이루는 계곡과 달리 소나무가 점점 많아졌다. 등산로 주변으로 사방오리도 몇 그루 자생하고 있었다.

처녀치마를 발견했다.

처녀치마는 낙엽에 덮여 있었다. 얼핏 봐서는 처녀치마인지 아닌지조차 구별할 수 없었다. 손으로 낙엽을 치우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고 녹색의 잎만이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한껏 부풀어 오른 꽃망울이 꽃의 아름다움을 말해주고 있었다.

 

처녀치마

 

숲이 노래했다.

양지바른 곳에는 햇빛이 노래했고 가파른 능선에선 바람이 노래했다. 바람의 노래에 화답하듯 소나무 우듬지가 부드럽게 춤을 추었다.

 

일종의 풍경놀이를 시작했다.

그저 말없이 정상에 올라 숲의 기묘한 형태를 바라봤다. 맑은 하늘,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각양각색의 구름, 아직 겨울이라고 말하고 있는 눈 덮인 소백산 연화봉 정상,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산맥들과 그 속의 기암괴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석화봉

 

항상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시간 풍파를 견뎌낸 소나무가 서 있다. 척박한 곳에서도 숲의 포용력과 충만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숲은 아름다움과 끔찍함을 동시에 끌어안고 있다. 숲은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나는 숲을 관찰하지만, 숲은 나를 관찰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숲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것이다. 오늘 난 석화봉을 오르내리면서 숲이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을 간직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단양에서의 하룻밤]

 

올해만 두 번째 방문이다.

오후 340, 보름 만에 다시 단양을 향해 출발했다. 맑은 하늘 아래를 달리던 차는 어느새 비구름 속에 갇히고 말았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이 대지를 때린 듯 하늘의 수문이 열렸다.

오늘의 맑음은 어제의 비로 대체되었다.

비는 창문 표면으로 한두 방울씩 떨어졌고 와이퍼를 느린 속도로 작동시켰다. 제천을 지날 때는 많은 비가 내렸다. 비의 양에 비례해 와이퍼 속도를 빠르게 또는 느리게 조절했다. 와이퍼는 비를 닦고 되돌아오면서 창문을 조금씩 흐리게 만들었다. 2시간 후,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북단양IC를 지나쳤다.

 

 

비는 내리고 또 내렸다.

단양에 도착했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봄비는 겨울 가뭄에 바싹 메말라 죽어가던 대지를 촉촉이 적셨다. 대지는 봄비로 인해 생명수를 얻은 셈이다. 단양에 올 때마다 숙박하던 그러다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빗속을 뚫고 찾아온 벗이 반가웠나 보다. 단양에 사는 지인과 삼겹살에 술잔을 마주 잡았다. 계산 없는 즐거움이 술자리에 가득 찼다. 비 오는 밤이라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밤은 점점 깊어졌다.

비로 인해 어둠이 더욱 까맣게 변했다. 남한강과 소백산과 하늘의 경계가 없어졌다. 남한강을 비추던 조명은 어둠 속에서 한층 더 선명해졌다. 비는 조명에 취한 듯 멋진 야경을 부러워하며 남한강으로 떨어졌다. 남한강도 이내 조명에 불타고 말았다.

 

 

흰 구름이 소백산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오전 7, 아침을 먹으려고 모텔을 나왔다. 상상의 거리에서 남한강 건너 소백산을 바라봤다. 어제 보았던 소백산의 풍경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고요함을 배우고 한가로움을 훔쳤다.

내 마음에 틈이 있어야 빛이 스며들 수 있다. 내 마음이 넓어지니 구름 덮인 산을 보고도 그 매력을 빠져 고요함을 즐기게 되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이 나의 한가로움이 되었다.

 

 

가는 날이 단양 장날이었다.

아침을 먹으려고 단양시장 내 충청도순대에 갔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 나왔던 식당이다. 그동안 단양에 올 때마다 각기 다른 음식을 먹었다. 아침에는 주로 황태해장국을, 점심에는 자장면을, 저녁에는 마늘 소고기, 마늘 떡갈비, 장어, 삼겹살, 쏘가리 매운탕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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