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린 날이었다. 이미 해는 떴지만 안 뜬 것처럼 어두컴컴했다. 갈천약수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을 먹고 구룡령으로 향했다. 어제부터 강원도를 뒤덮은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황태해장국처럼 희뿌옇게 흐려졌다. 차창으로 보이는 달만이 막 떠오른 햇빛을 받아 뚜렷한 형태로 산을 넘고 있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지나간 것처럼 길이 구불구불하고 험했던 옛길은 어느새 아스팔트 포장길로 변해 있었다. 나는 백두대간에 서 있었다. 뼛속까지 전해지는 강한 울림 때문에 우리나라 등줄기에 나 홀로 선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차가운 바람 속에 구불구불 이어진 구룡령 고갯길의 음침한 그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구룡령에서 갈전곡봉까지는 체 4km가 안 되었지만 나는 서둘러 길을 걸었다. 걷다가 능선 아래를 내려다보면 ..

안개가 짙게 끼었다. 새벽 찬 기운을 만난 수증기가 희뿌연 연기처럼 아주 작은 물방울이 되어 세상을 조금씩 집어삼키고 있다. 어제까지 익숙했던 세상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오전 8시 30분, 어젯밤에 꾸려둔 배낭을 메고 등산화 가방은 손에 쥐고 집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네, 형님 안녕하세요.’ ‘응’ ‘다 왔습니다.’ ‘응, 집 앞에 있어.’ 흰색 SUV는 육중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도로를 달린다. 차창으로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는 풍경에 두 눈이 고정된 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후배와 이야기꽃을 피워본다. 출근길 왕복 6차선대로는 정체 중이다. 대로를 벗어나 토박이만이 아는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아뿔싸 유성 장날이었다. 시장 도로에서 골목으로 진입하려던 우회전 차량이 도..

9월의 첫 주말이다. 한주만 더 지나면 추석이다. 명절을 앞두고 즐거워야 할 세상은 구겨진 종잇조각처럼 뒤숭숭하다. 경기침체도 침체지만 여름내 조용했던 태풍이 명절을 앞두고 북상을 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힌남노이다. 각가지 뉴스매체는 연신 역대 최고의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추라고 당부하고 있다. 또한, 제주 서귀포로 진입할 태풍 힌남노의 경로는 여수, 통영 등 남해안을 통과한 후 경주, 포항, 울산 등을 거쳐 울릉도 인근 동해안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자마자 집을 나왔다. 내일이면 우리나라가 직접적인 태풍 영향권에 들어서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고 싶었다. 걷는 것보다는 자전거를 타는 게 더 멀리까지 가볼 수 있다. 페달을 힘차게 밟으니 무겁..

처서가 지났다. 돌풍이 바람의 방향을 순식간에 변화시키듯 계절은 여름을 지나 겨울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직 8월 하순이지만 아침저녁의 체감온도는 이미 가을로 접어들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창문을 활짝 열고 선풍기를 켜놓고 잤었는데 지금은 창문을 닫고 얇은 이불로 배를 덮고 잔다. 새벽 5시.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2주 전에 바꾼 핸드폰 알람 소리가 익숙하지 않지만, 몸에 밴 습관은 나를 깨우기 충분하다. 확실히 어둠은 색이 더 짙어졌고 길어졌다. 커피포트의 전원을 켜놓고 밖으로 나온다. 아직 뽑지 않은 고추와 새로 파종한 씨앗에 물을 준다. 여름만큼 충분히 물을 주지 않아도 촉촉하게 대지가 젖어 든다. 커피를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믹스를 큰 머그잔에 타 먹는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

나는 지금 연구용역 보고서를 쓰고 있다. ‘00000 지역 활성화 전략수립’이라는 제목이 막막해서 참고문헌을 많이 준비했지만, 현장자료가 부실하다. 일주일 동안 보고서를 끝내보려고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할 것 없이, 자료를 토대로 현황을 분석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글을 쓰고 있다. 처음 노트북 모니터를 마주했을 때 막막하기만 했다. 기승전결을 어떻게 펼쳐나가야 할지 생각은 넘쳐나는데 뒤섞여 있어서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판을 두드리는 손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시간은 폭포처럼 흘렀지만 글쓰기는 민달팽이가 움직이는 속도만큼 더뎠다. 조급히 쓸 수 있는 보고서가 아니기에 끈기를 가지고 노트북 앞에 진득이 앉아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분량을 조금씩 쓰..

4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석양이 질 무렵,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남쪽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한층 더 짙은 먹색이 되었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2시간이 지났을 때 공기에서 생선 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통영에 왔다. 월요일 오전 6시 51분, 첫배를 타고 두미도에 가야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 번째 방문이다. 통영여객터미널 인근에 숙소를 정했다. 밤늦은 시간이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불 켜진 식당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었다. 낼 아침 또한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월요일 새벽 5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나는 일어났다. 간단히 세안하고 짐을 꾸려 숙소를 나왔다. 이른 새벽이지만 서호시장은 활기찼다. 불 켜진 식당에서 복국을 먹었다. 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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