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이었다.

이미 해는 떴지만 안 뜬 것처럼 어두컴컴했다. 갈천약수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을 먹고 구룡령으로 향했다. 어제부터 강원도를 뒤덮은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황태해장국처럼 희뿌옇게 흐려졌다.

차창으로 보이는 달만이 막 떠오른 햇빛을 받아 뚜렷한 형태로 산을 넘고 있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지나간 것처럼 길이 구불구불하고 험했던 옛길은 어느새 아스팔트 포장길로 변해 있었다.

 

치래마을(갈천마을)
백두대간 구룡령 비석

 

나는 백두대간에 서 있었다.

뼛속까지 전해지는 강한 울림 때문에 우리나라 등줄기에 나 홀로 선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차가운 바람 속에 구불구불 이어진 구룡령 고갯길의 음침한 그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구룡령에서 갈전곡봉까지는 체 4km가 안 되었지만 나는 서둘러 길을 걸었다. 걷다가 능선 아래를 내려다보면 깎아지른 벼랑이 펼쳐졌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참나무 가지에 붙어 있는 겨우살이를 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바람은 시원하게 불었고 오늘 산행은 포근한 날씨 속에 이루어질 거라는 낙관적 마음이 스며들었다.

 

구룡령
등산로 입구
겨우살이

 

달은 높은 능선을 넘어 잠들었다.

동시에 태양은 능선 위로 솟구쳤다. 낮 동안의 햇빛 아래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깨달았다. 구룡령 옛길을 지나면서 적막함과 함께 외로움이 찾아왔다. 쓸쓸함을 느끼지 않도록 나는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를 부지런히 걸어 갈전곡봉에 1시간 만에 도착했다.

해발고도 1,204m인 갈전곡봉은 휑했다. 자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헐벗은 가지와 떨어진 낙엽만 보고 겨울이 코앞에 왔음을 확신하는 나에게 반감이 치솟았다. 나는 자연 편에 서서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지 않는 내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백두대간
구룡령 옛길 정상
갈전곡봉

 

2년 전

이맘때에 단목령에서 조침령까지 백두대간 등산로 정비를 위해 현장조사를 했었다. 4, 조침령에서 왕승골 삼거리까지 백두대간 등산로 정비를 위해 현장조사를 했었다. 이번에도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명확했다. 왕승골 삼거리에서 갈전곡봉까지 백두대간 등산로 정비를 위해 현장조사를 해야 했다.

오랫동안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에 숨겨진 자그마한 흔적이라도 찾아내려고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떴다. 이제 당분간 짙은 초록을 한껏 머금은 푸른 숲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날이 추워지면서 더 분명해졌다.

 

백두대간 등산로 조사
조침령방향 백두대간

 

자연은 아무 조건 없이 그 자체를 인간에게 내줬다.

인간이 자연에 저질렀던 것을 생각하면 자연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맡겼다. 나는 말도 없이 그저 능선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백두대간을 걸었다. 능선의 가파르고 좁은 길만이 내가 갈 길이었다. 봉우리에 올라 물 한 모금 마시고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둘러보았다.

바람에 감기는 몸으로부터, 내 몸이 하늘로 떠오를 수 있는 풍선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떠오르기만 하면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어디든 날아갈 수 있으리라.

 

백두대간 어디쯤... 점심식사
왕승골삼거리
왕승골로 하산
구룡령 쉼터에서

 

다음날

백두대간 트레일 6구간을 찾았다. 백두대간 트레일 6구간은 방태산을 기점으로 강원도 인제군과 홍천군의 3(월둔, 달둔, 살둔) 4가리(아침가리, 명지가리, 연가리, 적가리) 일대에 조성된 21km의 숲길이다.

둘레길은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도록 산의 둘레를 따라 조성한 길이며 트레일은 산줄기나 산자락에 길게 조성하여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지 않는 길을 말한다.(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 제22조의 2)

 

백두대간트레일
아침가리 전망대

 

하늘엔 여전히 미세먼지가 자욱하다.

대기의 먼지와 습기가 막을 이뤄 먼 거리일수록 사물의 윤곽을 흐리게 할 정도로 이 막들의 색채가 우세해졌다. 멀리 있는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는 앞에 펼쳐진 풍경에 비해 미세먼지 자욱한 색으로 변해버렸다.

숲길 입구의 자작나무 조림지와 박달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황철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만날 수 있고, 계곡과 숲을 교차해 지나며 감상할 수 있어 아름다운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자작나무

 

아침가리에 왔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국토의 63.7%가 산림인 우리나라에서 아침가리는 작은 계곡일 뿐이지만 자연 그대로 흐르고 있는 그 숨은 가치는 실로 거대하다. 아침가리 주변에는 자작나무 숲이 있다. 그곳에 서 있으면 북유럽 어느 숲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안구가 정화된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우듬지의 함성이 들리고, 구불구불한 계곡을 흐르는 물의 노래를 들으며 명상에 빠졌다. 인제를 몇 년 동안 자주 오게 되면서 맞이하게 된 소중한 추억이다. 참으로 괜찮은 경험이다.

 

 

아침가리

안개가 짙게 끼었다. 새벽 찬 기운을 만난 수증기가 희뿌연 연기처럼 아주 작은 물방울이 되어 세상을 조금씩 집어삼키고 있다. 어제까지 익숙했던 세상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오전 830, 어젯밤에 꾸려둔 배낭을 메고 등산화 가방은 손에 쥐고 집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 형님 안녕하세요.’

다 왔습니다.’

, 집 앞에 있어.’

흰색 SUV는 육중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도로를 달린다. 차창으로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는 풍경에 두 눈이 고정된 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후배와 이야기꽃을 피워본다.

 

안개 자욱한 날

 

출근길 왕복 6차선대로는 정체 중이다. 대로를 벗어나 토박이만이 아는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아뿔싸 유성 장날이었다. 시장 도로에서 골목으로 진입하려던 우회전 차량이 도로를 막고 서 있어서 신호대기도 없이 유성 나들목에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각양각색의 차량이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며 고속도로를 내달리고 있다. 흰색 SUV도 한풀이하듯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린다. 그렇게 5분의 시간이 지나고 흰색 SUV는 북대전나들목을 빠져나와 또 한 사람을 태우고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흰색  SUV

 

신탄진을 지나 죽암휴게소에 왔다. 오늘의 종착지는 양양에 있는 구룡령휴게소이지만 단양에 있는 황정산 자연휴양림에 들렀다 가야 한다. 이동 거리가 멀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여유롭게 아침부터 출발한 것이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TOM N TOMS에서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레모네이드를 샀다. 진한 커피 향기가 공기 중에 퍼져 안개에 스며든다. 멍멍한 정신을 차리기엔 커피 한 모금이면 충분했다. 내가 뜨거운 커피를 음미하는 동안 후배는 담배를 피우고 나서 흰색 SUV의 배도 채웠다.

소풍 가기에 딱 좋은 날씨다. 11월인데 봄 날씨처럼 포근하다. 주행 중 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갑지 않다. 유일한 흡연자인 후배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금왕휴게소에, 껴입은 옷을 벗기 위해 한 번 더 졸음쉼터에 들렀다.

 

죽암휴게소
금왕휴게소

 

정오 40분 전에 황정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계절은 가을인데 황정산은 이미 겨울의 문턱에 서 있다. 단풍은 거의 다 떨어졌고 낙엽은 바싹 말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거렸다. 낙엽에 갇혀 정체를 숨기고 있던 처녀치마의 잎만이 주위 환경과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후배만이 숲길 정비사업이 진행 중인 석화봉 등산로를 올랐다. 나와 또 한 사람은 휴양림을 돌아다니며 주변을 관찰했다. 햇빛이 비치는 양지는 따뜻한 느낌보다 더 뜨겁고 그늘로 들어서면 서늘함을 넘어 싸늘함이 느껴졌다.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2시간이 지난 뒤 후배가 산에서 내려왔다. 이미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우리의 배고픔은 극에 달했다.

 

황정산 자연휴양림

 

늦은 점심을 먹으러 대강면 장림산방에 왔다. 장림산방은 60년 전통, 3대째 향토 음식 계승자의 집이었다. 건물 위쪽에 단양마늘축제 곤드레가마솥밥 금상 수상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나는 첫 방문이고 후배와 또 한 사람은 두 번째 방문이다. 건물 내부는 천정이 높아서 식당임에도 음식 찌든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출입문 벽 상단에 음식으로 고치지 못한 병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한다라는 문구가 두 눈을 사로잡았다.

 

장림산방

 

우리는 능이버섯전골을 주문했다. 식사 조리시간은 20분 소요된다고 메뉴판에 적혀 있다. 물을 마시면서 핸드폰으로 뉴스 기사를 검색했다. 10분쯤 지났을 때 나물과 채소로 만든 9가지 반찬과 함께 능이, 싸리, 두부, 호박, , 콩나물 등이 들어간 능이버섯전골 나왔다.

내 인생의 첫 능이버섯전골은 아니다. 산을 다니면서 여러 번 먹어봐서 그 맛을 적확히 알고 있다. 버너 위에서 능이버섯전골은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다. 우리는 며칠을 굶은 게걸든 사람처럼 바닥이 보일 때까지 끊임없이 먹었다.

 

능이버섯전골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차량 네비게이션은 구룡령휴게소까지 250km라고 알려줬다. 적어도 2시간 30분은 소요될 것이다. 홍천을 지나면서 양양까지는 터널 구간이 많이 나온다. 터널에서 운전할 때마다 나는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은근히 걱정되었다.

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으려나

후배와 또 한 사람이 식곤증에 잠을 동안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운전을 했다. 잠든 이의 평화로움과 고요함을 한순간에 깬 것은 후배의 전화벨 소리였다. 공적인 용무의 전화는 후배의 단잠을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강원도 어느 들녘

 

원주휴게소에 왔다. 이번에는 ANGELINUS에서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레모네이드를 샀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후배는 담배를 피웠다. 잠이 확 깬 후배가 운전대를 잡았다. 내가 계속 운전을 했더라도 홍천휴게소에서 후배와 교대할 생각이었다. 좌우지간 내가 터널 운전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홍천에 가까워지면서 고속도로 공사 구간이 반복되었고 조금씩 지체되었다. 동홍천을 지나면서는 터널의 연속이었다. 반복되는 터널 구간에 피로를 느낀 후배가 내린천휴게소로 들어갔다. 차량에서 내리자 강한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차가운 정도가 사뭇 달랐다. 후배의 입과 코로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가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원주휴게소
내린천휴게소

 

구룡령휴게소까지는 40km 정도 남았다. 5시가 다 되어가니 사위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터널을 지나고 또 지나 우리나라 최장터널에 진입했다. 작년에 통과해 본 적이 있는 인제양양터널로 길이가 10,965m이다. 일반 터널과 비교하면 조명도 밝고 갓길도 있어 도로 폭이 넓다. 물론 터널이 구간단속구간이라 속도를 높일 수 없어 한결 안전하게 느껴진다.

 

인제양양터널

 

고속도로를 벗어나 인적없는 도로를 달려 구룡령휴게소에 왔다. 아침에 출발하여 9시간만인 해 질 무렵에 갈천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갈천마을은 구룡령 아래 첫 마을로 칡이 많아서 비롯된 이름이고 치래마을은 갈천을 우리나라 말로 풀어쓴 명칭이다.

예약한 펜션에 여장을 풀고 서둘러 갈천약수식당에서 오리고기로 긴 여정의 회포를 풀었다. 오후 7, 펜션으로 돌아오는데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산속의 밤은 어둡고 길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다.

내일은 구룡령으로 go go~.

 

구룡령휴게소
황토펜션
갈천약수식당

9월의 첫 주말이다.

한주만 더 지나면 추석이다. 명절을 앞두고 즐거워야 할 세상은 구겨진 종잇조각처럼 뒤숭숭하다. 경기침체도 침체지만 여름내 조용했던 태풍이 명절을 앞두고 북상을 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힌남노이다. 각가지 뉴스매체는 연신 역대 최고의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추라고 당부하고 있다. 또한, 제주 서귀포로 진입할 태풍 힌남노의 경로는 여수, 통영 등 남해안을 통과한 후 경주, 포항, 울산 등을 거쳐 울릉도 인근 동해안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자마자 집을 나왔다. 내일이면 우리나라가 직접적인 태풍 영향권에 들어서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고 싶었다. 걷는 것보다는 자전거를 타는 게 더 멀리까지 가볼 수 있다. 페달을 힘차게 밟으니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층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주변 녹음이 한층 더 짙어진 하천 변 자전거길을 통해 이동한다. 도심지를 벗어나니 공기의 냄새가 평소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공기에 물비린내가 짙게 묻어있다. 세상은 고요하고 하천의 물 흐르는 소리는 오늘따라 더욱 애달프게 들린다. 자전거를 타고 30여 분만에 계룡산 수통골에 도착한다.

 

 

서서히 잿빛 구름이 몰려든다.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서 옷은 이미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수통골 주차장은 만차다. 등산객과 인근 식당 이용객들이 많다 보니 주차장은 언제나 차산차해를 이룰 수밖에 없다. 태풍이 오기 전 조금이라도 여가를 더 보내려는 사람들로 수통골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수통골까지 온 김에 빈계산, 금수봉, 도덕봉 종주는 시간관계상 안 되고 가까운 빈계산만 올라갔다가 오려고 생각 중이다. 자전거를 주차장 한쪽에 세우려 하는데 잘 안된다. 공공자전거라 전용구역 외에 반납처리가 되지 않았다.

 

 

자전거를 재대여하다.

복잡한 수통골을 벗어나 한밭대 정문에서 공공자전거를 반납하고 바로 재대여한다. 대전 공공자전거 타슈는 1시간 이내에 반납하면 무료로 다시 재대여할 수 있다. 작년까지는 매해 1년 회원권(30,000)을 구매하여 이용했었다. 올해부터 앱도 바뀌고 자전거도 바뀌어서 더욱 편리하게 이용 가능해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전거가 예전과 비교해 턱없이 적다는 점이다. 다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이적까지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로 다니며 1시간 동안 자전거를 알차게 타려고 한다.

 

 

광수사에 왔다.

수통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대한불교 천태종 힐링 행복 도량이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보다는 불교가 조금 더 친숙하다. 세계와 나를 따로 구분하는 이원론보다는 세계와 나는 하나인 일원론을 더 믿는다.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一切唯心造).

포대화상은 대 자유인이다.

긴 막대기에 포댓자루 하나 둘러메고 뚱뚱한 몸집에 항상 웃는 얼굴로 세속 모든 이들과 분별없이 어울리며 불법을 전하고 탁발한 모든 것을 어려운 중생에게 나누어주며 무애(無碍)의 삶을 살았다. 자연과 함께 행()하고 자연으로 돌아간 걸림 없는 대 자유인이다.

 

 

거리를 누비다.

자전거는 도로를 건너고 새로 구획정리가 된 주거지구의 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대부분 비슷한 형태의 건물들이지만 간혹 한옥도 있고 특이한 모양의 건물도 있고 넓은 자연공원도 있다. 간판을 대충 눈으로 훑어보다 특이한 이름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보물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들녘은 아직 푸르다.

하천의 제방길을 따라간다. 왼쪽은 하천이 흐르고 오른쪽은 드넓은 들녘이 펼쳐진다. 밭도 있고, 논도 있고, 과수원도 있다. 들녘에는 아직 익지 않은 초록의 벼가 물결치듯 출렁거린다. 자전거를 멈추고 논에 가까이 가본다. 낱알은 아직 여물지 않았지만 벼는 벌써 고개를 숙이려고 한다.

 

 

세상은 변한다.

제방길은 어느새 좁은 마을 길로 이어진다. 재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여러 가구 수가 살았던 곳인데 지금은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내 키보다 두 배나 높은 담벼락은 세상의 모든 아픔을 다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얗던 담벼락은 거무칙칙한 그을음으로 얼룩져 있고 그 아래의 하수도에 매캐한 시궁창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나무만이 그대로 서 있다.

모두가 떠나고 황폐해지어 버린 그곳에는 여전히 나무가 서 있다. 보여줄 사람도 없는데 한층 더 성장해 잎을 피웠고 한낮의 태양을 가려 그늘을 마련해주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오늘처럼 구슬프게 들리는 건 왜일까? 이번 태풍에도 부러지거나 뽑히지 않고 잘 버텨주기를 간절히 빈다.

 

 

비가 내린다.

주말은 어찌어찌 버텨내더니만 결국 월요일이 되어서 비가 내린다. 아직은 간접적이긴 하지만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서고 있다는 증거다. 대전은 중부지방이고 내륙이다 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 태풍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 같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분주하다.

물에 불린 쌀을 빻아다 냉장고에서 숙성을 시킨 후 반죽을 시작한다. 요즘 집에서 송편 빚는 집이 있을까? 우리 집은 명절날이면 아직도 떡을 직접 빚는다. 시중에 파는 떡은 별로 안 좋아하셔서 번거로워도 집에서 직접 빚는다. 나는 떡을 잘 안 먹는데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떡을 다 좋아하신다. 솔잎과 함께 쪄진 송편이 오늘따라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어둠이 찾아왔다.

열린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낙숫물이 처마를 타고 대야에 폭포수처럼 떨어지고 있다. 비 오기 전의 후텁지근함은 어느새 싸늘함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따금 들려오는 바람의 커다란 고함을 들으며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아침을 기다린다.

새벽 5.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습관적으로 알람을 끄고 불을 켠다. 날이 밝으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간밤에 발생한 일들이 궁금하여 텔레비전 전원을 켠다. 매체는 연신 태풍 속보를 방송하고 있다. 예상했던 태풍의 위력보다는 약해졌다지만 태풍이 동반한 강풍의 위력은 대단했다. 남쪽 해안가보다 동풍이 발생한 경주 포항의 피해가 훨씬 더 컸다. 태풍 힌남노는 오전 7시를 지나 동해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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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지났다.

돌풍이 바람의 방향을 순식간에 변화시키듯 계절은 여름을 지나 겨울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직 8월 하순이지만 아침저녁의 체감온도는 이미 가을로 접어들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창문을 활짝 열고 선풍기를 켜놓고 잤었는데 지금은 창문을 닫고 얇은 이불로 배를 덮고 잔다.

 

새벽 5.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2주 전에 바꾼 핸드폰 알람 소리가 익숙하지 않지만, 몸에 밴 습관은 나를 깨우기 충분하다. 확실히 어둠은 색이 더 짙어졌고 길어졌다. 커피포트의 전원을 켜놓고 밖으로 나온다. 아직 뽑지 않은 고추와 새로 파종한 씨앗에 물을 준다. 여름만큼 충분히 물을 주지 않아도 촉촉하게 대지가 젖어 든다.

 

커피를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믹스를 큰 머그잔에 타 먹는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김에서 달콤한 향이 코를 찌른다. 뜨거움을 조금이라도 식히려고 호호불어가며 머그잔에 입을 대었다 떼기를 반복한다. 나른한 몸을 일순간에 깨우는 달콤함이 혈관을 타고 흘러 구석구석 퍼져나간다.

 

벌초 날이다.

아침의 느긋함은 해가 뜨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뭇국에 밥을 말아 먹고 낫 2, 갈고리, 소주, 담배, 육포, , 음료수, 빵 등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한다. 어제 오후에 녹슨 낫을 열심히 숫돌에 갈아 두었다.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등산화를 신으면 벌초 준비는 끝이 난다.

 

 

고속도로를 달린다.

집에서 불과 1시간의 거리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고속도로는 정체가 시작된다. 지금은 용담댐으로 수몰되어 마을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지만, 선조의 혼이 서린 지역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금산에서 용담댐 수문을 지나면 한적한 도로가 계속된다. 작년의 홍수피해로 방류를 많이 했는지 댐의 수위가 한결 낮다는 느낌이 든다. 봄에는 벚꽃이 만발하는 곳이라 지금도 그 여운이 남아있다. 창을 여니 자취를 감춘 봄의 벚꽃 냄새가 살며시 다가오는 듯하다. 오늘의 집결지인 월계교가 눈앞에 보인다.

 

칡덩굴을 뚫고 나가야 한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올해는 유독 칡덩굴이 무성하다. 낫으로 칡덩굴을 끊어가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칡덩굴에 가려져 있던 찔레나 초피나무 가시가 피부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칡덩굴을 낫으로 끊는 순간 내 등을 강렬한 무엇인가가 찌르기 시작한다. ‘아 따가워.’

 

벌침을 맞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칡덩굴 사이 어딘가에 벌집이 있다. 제트기가 굉음을 내며 하늘로 치솟듯 갑자기 벌떼가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도망가라는 짧은 비명과 함께 우리는 달리고 달려 다행히도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벌에 쏘이지 않았다. 길로 나와서 벌에 쏘인 곳을 확인한 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월계교 옆 수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간 후 댐수위 위쪽으로 우회한다.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 산소에 도착한다. 예년과 비교하면 봉분의 피해는 상당히 적어 다행이다. 벌초한 후 성묘를 마치고 할아버지 산소로 이동한다. 다니던 능선길이 아닌 계곡 부로 질러간다. 청미래덩굴과 초피나무를 제외하곤 이동하는 데 방해물이 없어 손쉽게 도착한다. 성묘를 먼저 한 후 다시 30여 분간의 벌초를 한다. 잡풀로 무성했던 산소가 깨끗하니 내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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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연구용역 보고서를 쓰고 있다.

‘00000 지역 활성화 전략수립이라는 제목이 막막해서 참고문헌을 많이 준비했지만, 현장자료가 부실하다. 일주일 동안 보고서를 끝내보려고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할 것 없이, 자료를 토대로 현황을 분석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글을 쓰고 있다. 처음 노트북 모니터를 마주했을 때 막막하기만 했다. 기승전결을 어떻게 펼쳐나가야 할지 생각은 넘쳐나는데 뒤섞여 있어서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판을 두드리는 손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시간은 폭포처럼 흘렀지만 글쓰기는 민달팽이가 움직이는 속도만큼 더뎠다.

조급히 쓸 수 있는 보고서가 아니기에 끈기를 가지고 노트북 앞에 진득이 앉아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분량을 조금씩 쓰면서 글발이 생겼고 언제 끝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갖지 않게 되었다. 낮에는 백색소음에 시달리고 깊은 밤에는 풀벌레의 구슬픈 속삭임을 들으며 새벽 2시쯤 보고서를 끝냈다. 일주일이 걸렸다. 아직 완성도가 높은 보고서가 아니라서 회의를 통해 수정·보완해 나가야 한다.

 

글쓰기에 집중하다 보니 정신이 자주 멍해졌다.

보고서는 자유로운 글쓰기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온 정신을 장기간 집중해서 쓴 것에 만족한다. 짧은 글을 매일 쓰고 있지만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매일 글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표한다. 홀가분하게 책을 읽거나 메모지에 글을 끄적거리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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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석양이 질 무렵,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남쪽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한층 더 짙은 먹색이 되었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2시간이 지났을 때 공기에서 생선 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통영에 왔다.

월요일 오전 651, 첫배를 타고 두미도에 가야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 번째 방문이다. 통영여객터미널 인근에 숙소를 정했다. 밤늦은 시간이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불 켜진 식당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었다. 낼 아침 또한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원조설렁탕, 수육 - 통영맛집

 

월요일 새벽 5.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나는 일어났다. 간단히 세안하고 짐을 꾸려 숙소를 나왔다. 이른 새벽이지만 서호시장은 활기찼다. 불 켜진 식당에서 복국을 먹었다. 어두웠던 새벽은 어느새 사라지고 해가 떠올랐다. 새롭게 단장한 통영항여객터미널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바다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배를 타면 비로소 바다가 보이는데 출발한 항구는 보이지 않았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본 사람은 바다는 넓고 육지는 좁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육지가 좁아서 바다로 나아가면 바다는 더 넓어지고 거기서 또 작은 섬을 만나게 된다.

 

부일식당, 복국 - 통영 서호시장 맛집
통영 바다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두미도

 

두미도는 살아 숨 쉬는 섬이다.

바다는 다정하게 섬을 껴안아 주고 있었다. 섬은 봄비와 봄볕에 숲이 부풀고 땅에 생명의 기운이 돌았다. 나무는 꽃을 통해 대기의 수분을 흡수했고, 초록의 잎을 통해 봄볕을 간직했다. 하늘도 아기 돌보듯 섬을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미도 북구항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건물 앞 조형물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1월에 다녀가고 3개월도 안 지났다. 만남이란 언제나 반가운 것이다. 짐을 놓아두고 두미도 옛길을 걸었다.

 

두미도의 봄
두미도 바다펜션 - 북구항

 

두미도 옛길은 발칵 뒤집혔다.

봄날의 두미도 옛길은 깊은숨을 쉬었고 더욱 견고해졌다. 봄비가 내려 풀과 야생화가 뒤섞여 자랐고 흙이 부풀기 시작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길 위에 그림자도 흔들렸다. 나무가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벚꽃길에 들어섰다.

벚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려서 연분홍빛 벚꽃잎이 길 위에 떨어졌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에서 빛이 들어와 땅에 닿았다. 떨어진 벚꽃잎은 빛을 받아 반짝이며 뒤섞였다. 육지는 벚꽃이 만개했는데 두미도는 벌써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두미도 옛길
홀아비꽃대

 

둥글레
남산제비꽃
꽃깔제비꽃
고은마을 벚꽃길 - 두미도 옛길

 

나는 천황산을 다시 찾았다.

숲의 나무 색깔이 바뀌었다. 만개한 진달래꽃, 벚꽃이 봄볕을 받아 그 색깔이 숲으로 퍼져나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숲의 색깔이 파도쳤다. 섬을 찾는 사람들과 섬사람들은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두미도 옛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숲속은 더 짙은 녹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숲의 색깔은 나무 우듬지 위를 굽이쳐 파도를 일으키듯 바다로 흘러갔다. 산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졌다.

 

천황산 등산로 조망점
진달래

 

산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드넓은 바다가 보이는 순간 나는 돌출된 바위에 두 다리로 섰다. 두 다리가 바위에 닿았을 때 닿는 느낌으로 바위가 단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남구항 선착장 공사는 마무리단계에 들어섰고 어선이 흰 거품 자국을 남기며 바다를 스쳐 갔다. 욕지도가 보이는 바다는 아득하니 멀었다.

계절이 바뀌었다.

핏빛처럼 붉게 핀 진달래는 바람에 흔들거렸다. 산은 각양각색의 색깔로 물들었고 새 생명이 움트는 나무에선 아기 젖내 같은 냄새가 났다. 바닷바람이 땀으로 젖은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등산을 시작한 지 4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두미도 남구항
청석마을과 동뫼섬
천황산 숲속
천황봉

 

안 가본 길을 갔다.

나는 투구봉 등산로는 가본 적이 없었다. 천왕산 정상에서 암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마치 바다가 하늘처럼 보이는 북구항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큰 바위와 그 바위에 붙어있는 바위솔, 숲을 뒤덮고 있는 현호색 군락지는 내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등산로는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등산로라고 생각했다. 등산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도 멀었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지만 걷고 또 걸어 임도에 도착했다.

 

현호색
투구봉
북구항
임도

 

섬의 밤은 고요했다.

낮의 선착장 공사 소음은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자리돔 회, 돼지고기 볶음, 데친 나물들(두릅, 방풍나물, 꾸지뽕잎), 달래, 돌나물 등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특별히 할 것도 할 일도 없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섬은 밤은 생각보다 길었다.

새벽부터 안개가 짙었다.

바닷가에 안개가 끼면 바다는 무언가에 놀란 듯 창백해져 수면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았다. 바다의 표면을 타고 배가 왔는데 바다의 배는 보이지 않고 뱃고동 소리만 들렸다. 안개 속에 배 엔진 소리만 가득했다. 바다엔 안개뿐이었다. 안개 때문에 배는 보이지 않았다. 안개 속에서 배에 탔다. 배 위에서 안개를 마시고 바람을 마셨다. 배는 천천히 두미도를 떠났다.

 

저녁식사
안개
안개낀 북구항에 접안중인 바다누리호

꽃피는 4월이다.

갑천 변 벚꽃은 이미 꽃을 피워 벚꽃 터널을 만들었다. 제방에 심어진 샛노란 개나리꽃과 어우러져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새벽 공기는 차갑지 않았다.

식목일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이 되었다. 밤새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다 온몸이 찌뿌드드한 상태로 일어났다. 냉수로 세수를 하고 계절과 어울리는 봄옷을 입었다. 오늘 난 머리털 나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섬으로 출발했다.

 

 

지난 10년 동안 강진, 해남, 완도를 갈 때마다 수없이 지나갔던 그 길이었다.

유성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정읍IC로 빠져나왔다. ‘띵띵 띵띵내비게이션은 광주까지 가라며 한동안 경고음을 울렸다. 그런 울림을 완전히 무시하고 한갓진 시골길을 달렸다. 어느새 내비게이션도 경로 재탐색을 통해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10여 분 후 선운산IC를 통과하여 서해안 고속도로에 다시 진입했다.

2시간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에게 그다지 특별할 것도 유별날 것도 없는 그런 길이었다. 목포IC를 벗어나 압해대교를 건너 신안군으로 들어섰다. 도로변 불 켜진 커피숍에 들어갔다. 분위기 좋고 경치도 좋았지만 한가하게 앉아 커피를 마실 시간은 없었다.

 

 

송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910분이었다.

차량에 앉아 해무 낀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지금 나는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로 갈 생각이다. 매표소에 들어가 왕복 배편을 예매했다. 소악도 선착장에 내린 후, 진섬, 딴섬, 소악도, 소기점도, 대기점도로 이동할 예정이다.

여객선은 검은 매연을 내뿜기 시작했다.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해무로 인해 시계는 좋지 않았다. 천사대교의 형태가 아주 흐릿하게 보였다.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선실에 들어왔다. 배는 당사도를 거쳐 40분 만에 소악도 선착장이 있는 진섬에 도착했다.

 

 

나는 배에서 내렸다.

해무인지 미세먼지인지 구별할 수 없지만, 바닷가 특유의 짭짤함이 공기에 묻어 있었다. 썰물 때라 갯벌 바닥은 그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섬이라고 바다와 갯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천장굴산, 개바우산, 앞산, 범바우산, 큰잔동산 등 구릉지 같은 산도 있었다.

선착장 옆 숲에는 철탑 가는 길이 있었다.

나는 그 길로 들어섰다. 굴착기로 무지막지하게 숲을 밀어버렸다. 4m 정도의 길이 능선을 타고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자연훼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이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황량함이 느껴지는 숲에도 자줏빛 붉은 꽃, 진달래꽃이 피어 있었다. 벌써 꽃을 피우다니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달래꽃을 보고 길 복원에 대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시몬의 집이 있었다.

기점·소악도는 순례자의 섬이라고 불린다. 순례자의 섬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졌다. 12 사도 이름을 따서 지은 작은 예배당이 노두길로 연결된 5개의 섬에 산재해 있다. 순례자의 섬을 찾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기점 선착장에서 하선한다. 섬과 섬을 연결한 노두길을 걸어 12 사도 예배당을 돌아본 후 소악도 선착장에서 다시 승선한다.

예배당은 바닷가, 갯벌, 호수, 언덕 등에 자리하고 있다.

1. 베드로의 집 2. 안드레아의 집 3. 야고보의 집 4. 요한의 집 5. 필립의 집 6. 바르톨로메오의 집 7. 토마스의 집 8. 마태오의 집 9. 작은 야고보의 집 10. 유다 타대오의 집 11. 시몬의 집 12. 가롯 유다의 집이다.

 

시몬의 집
가롯유다의 집
유다 타대오의 집
작은야고보의 집
마태오의 집
토마스의 집
바르톨로메오의 집
필립의 집
베드로의 집

 

순례자의 섬에는 섬과 섬을 잇는 4개의 노두길이 있다.

노두는 밑물 때는 사라지고 썰물 때에 모습을 드러낸다. 노두는 광맥·암석·지층·석탄층 따위가 땅거죽에 드러난 부분을 말한다. 지금은 노두를 시멘트로 포장해 놓아 차량도 이동할 수 있다.

조심! 밀물 때 통행금지

노두길은 밑물이 되면 물에 잠긴다. 물이 찰랑거려서 길이 보인다고 할지라도 물살이 세고 파래 등으로 매우 미끄럽다. 물이 차면 차량은 물론 사람도 절대로 건너가면 안 된다. 3~4시간이 지나면 썰물이 된다.

 

 

아쉬움이 남는다.

길을 만든다고 굴착기로 무지막지하게 숲을 밀어버려 자연을 훼손했다. 산자고, 보춘화 등 섬 야생화 보호와 훼손된 숲의 복원이 시급했다. 자연 그대로인 노두가 아닌 시멘트로 포장된 노두길이라 감흥이 덜했다. 밀물이 되어 바다에 잠기는 노두길과 그 위의 예배당(8. 마테오의 집)을 보지 못했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다.

노두길을 따라 만나게 되는 12개의 예배당은 조용히 묵상하기 좋을 정도의 공간이다. 나에게는 푸른 바다와 마주 보며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만들어진 길은 없다.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는 종교를 떠나서 섬의 자연과 더불어 편안하게 명상하며 걷는 그런 길이다.

 

산자고
보춘화

 

순례자의 섬을 다 돌아봤다.

물론 모든 예배당을 다 가본 것은 아니다. 안드레의 집과 야고보의 집은 가지 않았다. 나는 숲길과 노두길을 중심으로 섬을 걸었다. 대기점 선착장에 있는 베드로의 집에서 배를 기다렸다. 오후 432분 다시 배를 탔다.

배고픔이 극에 달했다.

아침은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셨다. 점심에는 캔맥주를 마시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막 배를 타고 기점·소악도에서 송공항으로 나왔다. 대전을 가려면 목포를 지나가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목포에 올 때마다 꼭 들리는 유달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선경준치회집에 갔다. 아귀탕과 갈치구이를 주문했다. 꼭 아귀탕과 갈치구이를 먹어봐야 한다. 일단 한번 잡숴봐!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대기점선착장
목포 맛집 - 선경준치회집, 갈치구이(4미 이상)
목포 맛집 - 선경준치회집, 아귀탕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67일간의 제주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예정이다.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했다. 유성온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석역에서 하차했다. 6번 출구로 나가 오송행 B1 버스를 탔다. 세종 도심을 관통하여 40여 분 만에 오송역에 도착했다.

공항행 버스를 기다렸다.

배낭은 벤치에 올려놓았다. 가는 곳이 다른 버스가 들어왔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분주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내고 나서 청주공항행 버스를 탔다. 버스 창문 틈으로 생기있는 봄바람이 불어왔다. 버스는 바람을 가르며 공항에 도착했다.

 

 

김장비닐 안에 배낭을 넣었다.

온라인 체크인을 이미 했기에 수화물로 배낭을 맡겼다. 평소 배낭 무게보다 4kg이나 적은 8kg이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캠핑장비만을 가져왔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보안 절차를 받으러 갔다.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보조배터리, 랜턴, 라디오, 물은 에코백에 담겨 있었다. 1분도 지나기 전에 보안 절차가 끝났다. 탑승장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데 연착 없이 바로 탑승이 시작되었다. 탑승권을 확인하는 기계의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는 탑승구로 느지막하게 향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탑승은 이미 끝났다. 짐을 선반에 넣는다고 길게 줄 서게 되는 일도 없었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진에어 승무원의 움직임이 활기찼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항상 웃고 있는 표정이란 걸 눈동자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비행기가 움직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몸이 흔들거렸다. 승무원들은 안내방송을 진행되고 있었다.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엔진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28년 전에 군 복무했던 활주로를 행하여 비행기가 이동 중이었다.

벨 소리가 울렸다.

, , . 이어서 승문원의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하겠습니다. 안전을 위해 좌석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동체는 흔들림이 없었다.

굉음과 함께 앞으로 달려가던 비행기는 바퀴가 활주로를 벗어났다. 이 순간 엔진 소리를 제외한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양력을 받아 상승만 하던 비행기는 이내 수평을 유지했다.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진 후 기내의 공기는 소음과 함께 안정을 되찾았다.

햇살이 눈에 부셨다.

경량 재킷을 입고 있기엔 더웠다. 청명한 하늘은 아니지만, 햇살이 창을 통해 기내로 들어왔다. 비행기는 780km/h로 허공을 가르며 움직였다. 도시, , 하늘, , 바다, 구름, 나는 창밖의 풍경변화를 보고 그 속도를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35C 선반 번호를 확인했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오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멈춰섰을 때 내 좌석은 아기 의자처럼 보였다. 3열 좌석 가운데에 앉은 그는 체격이 우람했다. 엉덩이는 좌석에 꽉 꼈고 무릎은 앞 좌석에 닿았다. 그는 한 치의 여유 공간도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는 창밖만을 바라봤다.

그는 좌석의 불편함을 참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가끔 몸을 좌우로 움직였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야 했다.

마침내 비행기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바로 좌석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서자 그는 한결 편안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비행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즐거운 제주여행 되시길.

 

 

눈치채지 못했다.

수화물을 맡기고 보안 절차를 통과한 후 탑승을 기다렸다. 탑승이 시작됨과 동시에 탑승구에 긴 줄이 생겼다. 나는 줄 서는 걸 싫어한다. 평소처럼 계속 의자에 앉아 있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통로좌석을 선택하는 건 조금이라도 늦게 타기 위한 나만의 선택이었다.

탑승구로 향했다.

손에 들고 있는 검정 가방을 제외하고는 흰 모자, 흰 마스크, 흰옷, 흰 신발이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떤 잘못도, 어떤 거리낄 일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35C, 나는 선반의 번호를 확인하자마자 좌석에 앉았다. 그녀가 나를 지나쳐갔다. , 나도 모르게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안전띠를 매려고 몸을 움직이다가 좌석 틈으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내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과연 우연일까?

마침내 비행기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나는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렸다. 근데 내가 왜 그래야 했지.

 

 

비행이 끝났다.

우리 비행기는 곧 제주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중략)”승무원의 안내방송을 시작으로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회전하는 동안 제주 시가지가 점점 크게 보였다. 이륙할 때와 비슷한 굉음을 내며 비행기는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제주에 발을 디뎠다.

올해 첫걸음이었다. 해마다 3~4번 왔지만, 올해는 몇 번이나 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수화물로 보낸 배낭을 찾았다.

이제 어디로 갈까?

정해진 곳은 없었다. 10분여 벤치에 앉아 있다가 무작정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탔다. 이 버스 가는 곳 중 한 곳이 내가 머물 비박지가 될 것이다. 제주 비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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