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여행]담양호 여행



나는 불가지론자다.

신의 존재 자체를 인간이 인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계 종교는 크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로 구분할 수 있다.

나는 실제적으로 종교를 가져본 적은 없지만 모든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다.



주신



나는 아주 가끔 소주, 맥주, 소맥,막걸리, 포도주, 위스키, 럼 등의 주교를 믿는다.


적당히 즐기며 마시면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지만

과하면 다른 사람에게 추태를 부리게 만든다.


그것이 종교이든 술이든,

적당함은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결합시켜 준다.




담양군 용면 매산바위 뒤 숲길 조사



어제 아침 담양에 왔다.


담양호를 중심으로 추월산, 금성산성, 가마골 생태공원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걷는 길 최적의 노선을 조사중이다.


걷는 길에는 숲길, 도로, 농로, 임도 등이 포함된다.



담양군 용면 도림마을 부렁개



담양호둘레길은 분통마을, 월계마을, 도림마을이 거점마을로,

담양호와 담양호 국민관광단지가 거점지역이 될 것이다.


주변의 역사자원, 자연자원 등을

총체적으로 연결한 남도의 명품길이 될 예정이다.



담양호 전망바위



핸드폰 카메라의 성능이 우수해지면서

사진기보다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고 있다.


길이 없는 숲에서 걷는 길을 조사중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찍을때면 핸드폰 카메라의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내 삶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뿐이다.


우리는 언제 어느곳에서든지

인생샷도 찍고 표지모델도 될 수 있다.




담양 근현대사전시관



청명하던 하늘이 회색구름으로 덮이자 어느새 비가 내린다.

나는 차에서 내려 도로를 걸으면서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았다.


비를 맞으며 걸어 본적이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땅으로 떨어지는 비 소리를 듣고 있으면 항상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가 오면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처마 아래에 앉아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곤 했다.


지금은 골목이 많지 않아서 이런 추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차가 다니는 도로가 더 많은 요즘시대에는 비오는 날의 낭만은 없는 듯 하다.



사무실 책상



현장조사를 마치고

담양호둘레길 기본계획을 세워야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머리를 비우고 글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머릿속 자료는 넘쳐나는데

정리가 됮 않고 글로 잘 표현되지 않고 있다.


넘쳐 흐르지 않게 마셔 버리자!

비워야 또 채울 수 있으니까...



나의 영업시간



상점들은 영업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통은 아침에 문을 열고 저녁이 되면 문을 닫는다.


나는 내 뇌의 영업시간을 가지고 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활발하게 사용한다.

나머지 시간은 재충전의 시간으로 여기고 휴식을 취하게끔 한다.


멈추지 않고 사용하면 기계도 망가지는데 인간의 노는 어떻겠는가?


평생동안 뇌의 1%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 이상을 사용하면 인간은 아마도 미쳐버릴 것이다.


우리가 태양 중심적인 삶을 사는 이상은 욕심부리지 말자.

영업시간에는 나름의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남원여행]지리산 실상사



차가운 겨울 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는 아침입니다.

어제 내린 눈은 이미 농로길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겨울답지 겨울날씨로 따뜻하기만 했던 나날이 지나고

모처럼 눈같은 눈이 내려 새하얀 겨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인

등구재에서 바라본 산내면은 고향집같은 시골풍경입니다.





지리산 실상사는 지리산 자락이 감싸 안은 듯

평화롭고 풍요로운 고을 남원시 산내면 들판에 위치한 천년고찰입니다.


지리산 실상사는 문화재 관람료가 있습니다.

어른 1,500원, 청소년 1,200원, 어린이 800원





승용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할때는

기사님께 실상사에 간다고 하면 매표소 앞에 내려주십니다.


지리산 물줄기가 만들어낸 큰 하천인 만수천을 건너는

해탈교를 지나게 되면 바로 5분 거리에 실상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남원 실상사의 석장승은

해탈교를 건너기 전에 2기, 건너편에 다시 2기가 있습니다.


석장승 1기가 1936년 홍수로 소실되어 지금은 3기만 남았는데

그 소실된 석장승을 대신해 해탈교 입구 오른쪽에 이 작품을 뉘어 놓았습니다.


지리산 실상사 석장승은

도강의 안전과 사찰의 경계를 표시하는 기능을 겸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으로는 천왕봉과 마주하면서 남쪽에는 반야봉,

서쪽은 심원 달궁, 북쪽은 덕유산맥의 수청산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채 천년 세월을 지내오고 있습니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사찰이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데 비해

지리산 자락의 실상사는 들판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것이 정말로 특이합니다.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라


기둥마다에 시구를 연하여 걸었다는 뜻에서

주련이라 부르는데 좋은 글귀를 얇은 판자에 새겨 걸었습니다.


가득함(충만)과 비움(무소유)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이 글귀는 실상사 노래에도 나오는 가사로 실상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표현한 것입니다.







천년사찰, 호국사찰로 잘 알려진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서기 828년) 증각대사 홍척(洪陟)이 당나라에 유학, 지장의 문하에서 선법(禪法)을 배운 뒤 귀국했다가

선정처(禪定處)를 찾아 2년동안 전국의 산을 다닌 끝에 현재의 자리에 발길을 멈추고 창건했습니다.







실상사는 사적, 국보, 보물, 지방유형문화재, 중요민속자료가 있습니다.


사적
제309호 실상사 일원


국보
제10호 백장암 삼층석탑 (신라말)

보물
제33호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신라말)
제34호 수철화상 능가보월탑비 (신라말)
제35호 실상사 석등 (신라말)
제36호 실상사 부도 (고려시대)
제37호 실상사삼층석탑(쌍탑) (신라말)
제38호 증각홍척국사 응료탑 (신라말)
제39호 증각홍척국사 응료탑비 (신라말)
제40호 백장암 석등 (신라말)
제41호 철조 여래좌상 (신라말)
제420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 (1584)
제421호 약수암 목조탱화 (1782


지방유형문화재

제45호 극락전 (1684)
제88호 위토개량성책 (조선시대토지대장)
제137호 보광전 범종 (1694)

중요민속자료
제15호 석장승 3기





봄이면 새싹이 돋아나는 들판 한 가운데에 서 있고

여름이면 초록빛의 벼들이 감싸안은 듯 서 있고

가을이면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서 있고

겨울이면 하얀 눈밭에 버려진 돌처럼 서 있습니다.


실상사는 언제나 산내면 들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북맛집]살래국수 - 들깨수제비, 버섯칼국수, 산나물국수, 오미자 비빔국수



해가 바뀐지도 벌써 한참이나 지났습니다.

나이가 들다보니 하루하루가 정말로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사무실 워크샵이 1박 2일동안

산내면 상황마을 등구재 인근 황토방팬션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대전을 출발하여 12시쯤 산내면에 도착을 했습니다.






겨울답지 겨울날씨로 따뜻하기만 했던 나날이 지나고

모처럼 눈다운 눈이 새하얗게 내릴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몹시 추운 겨울같은 겨울날에 점심을 먹기위해서 살래국수를 찾았습니다.


살래국수 주인장인 한승명씨하고는

지리산둘레길때문에 알게된 사이입니다.





겨울바람이 거세게 불더니만

이윽고 눈발이 매섭게 휘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눈입니다. 눈!!!


테이블 3개가 전부인 살래국수는

작다는 느낌보다는 아기자기하다라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차가운 공기를 데우느라

열심히 열을 내고 있는 전기난로옆 벽면에는

무수히 많은 사연들이 적힌 메모지가 붙어 있습니다.


살래국수를 찾았던 사람들의 발자취입니다.





살래국수는 다양한 음식메뉴는 없습니다.


여름에는 산나물국수와 오미자비빔국수,

여름철 별식으로 서리태콩국수와 메밀소바,

겨울에는 버섯칼국수와 들깨수제비,

산내 아이들의 간식거리로 오뎅, 떡볶이, 순대, 빵과 쥬스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전을 출발하면서

들깨수제비, 버섯칼국수 그리고 떡볶이, 순대까지

 이미 예약주문을 했습니다.


도착하는 순서대로

테이블에 자리했습니다.



전과 김치



살래국수의 반찬은

전과 김치뿐이지만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들깨수제비







버섯칼국수



들깨수제비와 버섯칼국수

음식의 재료를 일일이 소개하는 것보다

일단 한번 드셔보시면 그 맛이 건강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한 맛입니다.



떡볶이와 순대



산내 아이들의 간식거리인 떡볶이와 순대는 

객관적인 음식맛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입맛에 새로운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맛있습니다.







살래국수  이시백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신발도 버거울 때

그때 목이 탄다.

먼 발치에 김이 모락이는

마을이 보일때

갈증이 더욱 드러나는 순간

거기 살래국수가 있다.

내 한때 꿈꾸던 빨치산

뱀사골을 타고 내려오면

단아한 치마로 받아주던 그녀

그녀는 지금 파출소 앞에 당당하게

골짜기 바람을 맞이한다.

들녘의 채소들 달래서는

순한 양념으로 만들고 있다.

난 술래가 되어 순례를 한다.

술래는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아야 술래이다.

살래국수는 사람을 살린다.





살래국수의 주인장인 한승명씨는

살래 게스트하우스와 지리산 살래국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산내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그녀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자연에게서 마음을 치유받고

이웃에게서 평안을 찾고

내 안에서 가벼움을 느낀다면

행복이라 할만 하겠지요?

 

산내(살래)에서 이런 행복을 꿈꾸어 봅니다.

 내가 이롭게 쓰일수 있는 일을 찾아 그 첫걸음이 살래국수입니다.

[전주여행]도란도란 옥류마을 벽화갤러리



자만마을과 인접한 옥류마을은 옥류천(玉流川)이라는 샘에서 유래합니다.





한옥마을 주변의

한벽루, 오목대, 이목대를

잇는 위치에 옥류마을 있습니다.





역사와 마을주민들의 훈훈한 정을 오랜시간 간직하고 있으며

이를 옛 주민들의 삶과 풍경 등의 테마로 각각의 골목길에 갤러리 벽화를 조성한 것입니다.






자만마을에서 옥류마을로 가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기린대로를 따라 자만마을에서 옥류마을로 가는 방법과

자만마을에서 위사진의 집으로 통과를 통해 옥류마을로 가는 방법입니다.





많이 당황스럽지만...

저는 집으로 통과하여 옥류마을에 왔습니다.

저멀리 보이던 옥류쉼터 간판이 이제는 눈앞에 있습니다.ㅋㅋ





본격적으로 옥류 벽화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습니다.

자만마을의 벽화에 비해서는 그리 볼 것이 많지는 않습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앙증맞은 개 한마리가 쫓아왔습니다.

아니... 으르렁~~~ 짖으면서 나를 위협했습니다.ㅋㅋ





그 곳에는 나무전봇대가 서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적엔 나무전봇대가 많았습니다.


나무전봇대는 1920년에서 1970년대까지 사용되고

그 후에는 콘크리트 전봇대로 교체되었습니다.


나무전봇대는 전나무를 벌목해서

굵고 곧은 나무를 바닷물에 수년을 담갔다가

음지에서 건조한 후 삶아내어 건조 후 사용하였습니다.







나무전봇대 인근 벽에는

비상소화 장치함을 이용한 그림과 수돗물 그림이 있습니다.

불이 나면 비상소화장치를 사용하여 불을 꺼야 합니다.ㅋㅋ







자만마을보다 옥류마을에서는

전주향교와 전주천이 더 가깝게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5분여의 짧은

옥류마을 벽화갤러리가 끝나는 지점입니다.






선비에게 길을 묻다.


전주한옥마을에는 선비들이 살았습니다.

효를 위해 입신양면을 버린 월당 최담부터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불리는 간재 전우와 그의 제자인 삼재(금재, 유재, 고재)까지...

특히 일제강점기 이곳 한옥마을은 선비들의 집합소였습니다. 역사의 순간마다 삶의 참모습을 보여준 이들의 이야기가 전주에는 있습니다.

[전주여행]자만벽화마을 - 잊혀져가는 나와 우리를 찾아가는 마을



자만마을은 전주시의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자립적으로 유지해 나가야되는 마을입니다.





오목대에서 오목교를 건너 자만마을로 향했습니다.


전주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마을골목을 따라 삼삼오오 자만마을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자만마을로 들어서자 바로 보이는 건물입니다.


놀다가는 곳

가맥

방에서 커피, 라면 먹고 갈래?


자만마을 가게를 이용하면

수익금의 일부가 벽화 및 문화행사 등으로

자만마을에 재투자 되어졌고 되어질 계획입니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관광객들 사이로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아주머니를 보게되었습니다.


우리에겐 관광지에 불과하지만

아주머니에겐 이곳은 삶의 현장인 것입니다.






골목 벽화를 감상하며 걷다보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느 골목들이 그렇듯이... 외길이라...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걸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골목을 걷다보면 카페를 만나게 됩니다.

전주향교와 전주천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카페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깨끗하지는 않지만, 마을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이런 장소를 더 좋아합니다.

마을 주민분과 대화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커피, 소주, 막걸리, 음료수, 생수물, 라면

매직으로 삐뚤빼뚤 써 내려간 메뉴판이지만 사람냄새나는 이곳이 더 좋습니다.





장사를 안 하고 계셔서

아무것도 사 먹을 수는 없었지만

벽에 붙어있는 거울을 보면서 셀카를 찍었습니다.


저 왔다가유~!!! 다음번에 다시 들릴게유~!!!








슬레이트 지붕, 난로의 연통, 좁은 골목


자만마을 주민들의 삶이 더해져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골목길 벽화는

마을주민들의 사비로 힘들게 그려진 벽화들입니다.






눈앞에 꼬지따뽕 카페가 들어왔습니다.


세상에서 꼬지고... 후지고... 빈티나기로... 최고인 카페!!

그래서 꼬지따~~~뽕!!

그곳에서 자만마을에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본다.

뭐냐? 자몽에이드, 커피, 수제 브리또, 햄버거도 있응께

좀 먹어주고 그려~~~





꼬지따뽕 카페를 좌회전해서 골목을 따라 내려오면

골목 삼거리에 미르미소네 가게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얼음물

어린이 썬글라스, 성인 썬글라스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추억의 뽑기가 최고입니다.


단돈 1,000원

꽝 없음

뭐라도 드림~~~ㅋㅋㅋ


한참을 꼬마와 아버지를 지켜봤습니다.

꼬마의 집념아래... 계속된 뽑기... 아마도 아버님은 만원을 넘게 쓰신 듯 합니다. ㅋㅋㅋ





자만동금표(滋滿洞禁標)


이목대가 위치하고 있는 자만동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선조인 목조 이안사가 살았던 곳입니다.





고종은 조선 왕조 선대들의 삶의 더전이었던

자만동을 보호하고 성역화하기 위해 금표를 세워 출입을 통제하였습니다.





조선말기인 190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왕조의 정신을 읽어내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우모내모(나를 찾아가는 지도)


여행자들의 영혼에 쉼표!!

내 자신과 나의 사람들 그리고

세상에 대해 마음으로 글로

산책하는 누추한 달동네 옥상쉼터


채움에 여행객만 오세요.

배설에 여행객은 사절합니다.






효봉길


가장 친숙하고

우리민족에 얼이담긴 '한글'

'한글'을 벽에 입혀본다.





어린시절

집뜰에서 놀던 꿈이 깨지 않았는데

이렇게 떠나가고 잊혀져 가던 자만마을을 방문을 끝마쳤습니다.

[전주여행]한지포토문화공간 '지숨(ZISU:M)'



전주한옥마을은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전주한옥마을에

한지포토 문화공간 갤러리 ‘지숨(ZISU:M)’이 2013년 11월 1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지숨(ZISU:M)’은

종이가 숨 쉰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보여줄수있는

최대의

감동은

한결같음이

아닐까?


넘어져도 괜찮다.

느려도 괜찮다.

멈추는게 아니라

잠시 쉬는거라면

괜찮다.

포기하고

뒤돌아가지만

않으면

괜찮다.


희망은

보이지 않는것을 보고

만질수 없는것을

만지며

불가능한것을

성취합니다.





오랜동안의 끝없는 노력으로

전통한지에 어떠한 첨가물도 섞지 않고 사진 인쇄 기술을 접목해 이루어낸 성과물을 보여주는 공간이

한지포토문화공간 '지숨(ZISU:M)'인 것입니다.





제가 지숨에 들어섰을때,

내 느낌이 참으로 "이쁘다" 였는데

너군다나 한지에 쓴 "난 참 이쁘다"가 눈에 띄었습니다.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우리 전통 한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된 종이에 글이 입혀지고 나니

고유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일반인들은 한지사진인화 서비스를

위의 적절한 가격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책갈피, 감성엽서, 명화엽서의

매끄럽지 않은 표면을 살짝 만져보면

손끝으로 느껴지는 질감이 참으로 독특했습니다.





원래는

한지에 물이나 잉크가 닿으면 쉽게 변하는데

어찌 변하지 않는걸까요??


최첨단 디지털방식의

사진 인쇄기술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아주 천천히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사람들사이에 섞여 구경을 했습니다.





한지의 독특한 질감에서 나오는 부드러움이

인화지에서 표현할 수 없는 우아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 사진인데 그림처럼 보이는 것이

그 어떤 인쇄물도 따라할 수 없는

우리 고유의 따뜻한 마음까지 선사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부터

한지포토문화공간 '지숨(ZISU:M)'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감상하겠습니다.











한지에 표현된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의 풍경과 인물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언제 한지를 써 봤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한지의 특징을 높이 평가한 유럽은

중요한 문서를 기록할 때 한지를 사용해 보존을 한다고 들었는데...


한지포토문화공간 '지숨(ZISU:M)'을 나오면서 자조섞인 말을 곱씹게 되었습니다.

[전주여행]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은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 사업(문전성시)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일치기 전주여행을 하다보면

전주 한옥마을 주변의 새로운 명소인 남부시장과 청년몰을 만나게 됩니다.

 

전주 남부시장의 좌판에는

언제나 제철 농산물과 해산물 등이 한가득 쌓여있습니다.

 

 

 

 

우리네 아버지! 우리네 어머니!

그들 삶의 희노애락이 깃든 곳이며, 사람냄새 가득한 곳

전주 남부 전통시장입니다.

 

전통시장을 두루 구경하면서 걷다보면

청년몰 가는길이라는 간판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남부시장 내 1, 2번 출입구를 통해서도

2층의 청년몰을 쉽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파란 메뚜기!!!

청년몰을 상징하는 마스코트가 입구에 서 있습니다.

 

 

 게으르게 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젊은 상인들의 삶이 행복할 수 있도록,

그 행복을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잘 살자는 뜻입니다.

 

 

 

 

 

2012년 5월에 12개 상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사업이 마무리된 2013년 이후에도 시장 상인들의 노력으로 현재 32개 상점이 있습니다.

 

 

 

 

2층 공간도 참으로 독특합니다.

 

1층 상가를 오고 갈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건물들이

잘 보이지 않는 2층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때문입니다.

 

 

 

 

2층 청년몰에서는 다양한 글귀를 볼 수 있습니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살자

청년몰 슬로건입니다.

 

현재의 제 삶을

그대로 표현하는 글귀라서 더 눈에 들었습니다.

 

 

 

 

또 다른 글귀는 위험을 알리는 말입니다.

 

올라서서 뜬구름 잡으려다 뜬구름 됩니다.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가는 뜬구름 같은 것

청년몰에 자리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의 재치와 유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천천히 시계방향으로

청년몰을 한바퀴 돌아봤습니다.

 

 

 

 

제가 방문한 날이 월요일이었습니다.

 

월요일이라 쉬는 가게들이 많았지만

아니 식당을 제외하고는 전부 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비상소화전에 붙어있는

미쓰허 문방구 간판입니다.

 

문방구...

지금은 그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추억의 단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었다 갈 수 있게 만든 벤치에도

청년들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엿보입니다.

 

 

 

 

식당, 공방, 찻집, 카페 등

청년몰의 상점은 저마다 개성이 가득합니다.

 

 

 

 

모든 걸 먹어볼 순 없지만 시도는 해보자.

전주여행은 먹방이니까.

 

 

 

 

청춘식당

니들은 참말로 열심히다.

 

낮술환영

술은 역시 낮술이 최고입니다.

제가 그래서 낮술을 잘 마십니다. ㅋㅋ

 

 

 

 

 

빠라빠라빠라밤~~~ 오빠 달려~~~

 

Take Out

Drive Thru

 

 

 

 

진정한 주당이라면...

낮술은 이정도는 마셔야 되겠지요??

 

 

 

 

천천히 돌아봐야 청년몰의 즐길거리를 알 수 있습니다.

 

청년몰이 문을 여는 시각은 오전 11시입니다.

칵테일 바 '차가운새벽'이 제일 늦게(오후 3시) 문을 엽니다.

문 닫는 시각도 오후 6~10시로 일정하지 않습니다.

 

청년몰은 전주 남부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활력소로 자리자고 있습니다.

[전주여행]경기전

 

 

경기전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전주 한옥마을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문화재를 말합니다.

 

 

 

 

 

 

전주한옥마을 일대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경기전을 비롯하여 많은 역사 유적과 유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본래 경기전은 옛 전주부성 동남쪽에 광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많은 부속 건물을 거느린 웅장한 규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절반의 땅을 잃고 부속 건물은 철거되었습니다.

 

 

 

 

 

경기전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관람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경기전 관람시간은

하절기와 동절기의 관람시간이 다르며

평일 오전 9시 ~ 오후 7시까지 입니다.

 

 

 

 

 

각 요일별 저정시간에 문화해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월요일 오후에 경기전을 방문하여 문화해설을 들었습니다.

 

 

 

 

경기전 정전은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관하는 곳으로 태종 10년(1410)에 세워졌습니다.

 

점차 복원하여 옛 모습의 일부나마 되찾은 경기전 경내에는

조선 예종대왕의 태를 묻어두었던 태실과 그것을 기념하는 비석,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가 있습니다.

 

 

 

 

태조의 초상화를 보관하는 건물은

원래 개성, 영흥, 전주, 경주, 평양 등 다섯 곳에 있었는데

경기전 정전을 제외한 나머지는 임진왜란(1592)때 모두 불에 타 버렸습니다.

 

 

 

 

경기전 정전도 정유재란(1597)때 불탔으나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세웠으며 회랑을 두어 최고의 사당임을 나타내었습니다.

 

 

 

 

 

경기전 입구에는 말에서 내리는 속임을 표시한 하마비,

붉은 색칠을 한 홍살문, 내삼문, 외삼문 그리고 초상화를 모신 전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전의 한 가운데 감실을 두고 여기에 태조어진을 모셔놓고 있습니다.

 

 

 

 

 

청룡포를 입고 잇는 전신상 어진으로 건국자의 위엄이 서려 있습니다.

 

고종 9년(1872)에 새로 모사한 어진이며

구본은 초상을 물에 씻어내고 백자항아리에 담아 진전 북쪽에 묻었습니다.

 

 

 

 

 

태조어진을 봉안한 감실 안에는

습기와 냄새를 제거하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부용향을 담은 붉은색의 향주머니를 넣어 두었습니다.

 

감실 앞쪽에 어진을 호위하는 운검 한 쌍을 세워두었으며

정전 좌우편으로는 용선, 봉선, 홍개, 청개 등 의장물을 배치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춘추관과 예문관을 상설하고 사관을 두어 날마다 시정을 기록하였으며

임금이 전왕시대의 역사를 편찬하여 이를 실록이라 하고 특별히 설치한 사고에 봉안하여 왔었습니다.

 

 

 

 

선조25(1592) 임진왜란때 충추관, 충주, 성주의 3사고의 실록은

 모두 소실되고 오직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병화를 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손흥록, 안의 등이 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에 이안, 사수하였기 때문입니다.

전주사고에는 실록 784권 614책 47궤, 기타 전적이 64종 556책 15궤가 봉안되어 있었습니다.

 

 

 

 

월요일 휴관이라 어진박물관 내부를 볼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전주 경기전에 봉안된 태조어진은 현존하는 유일본이며

태조어진을 봉안한 국내 유일의 박물관이 바로 어진박물관입니다.

 

 

 

 

경기전 부속건물 용실은

제사에 사용할 음식을 만드는 방앗간입니다.

디딜방아와 절구를 두고 경기전 제례에 사용되는 음식을 만드는 곳입니다.

 

 

 

 

경기전 부속건물 조병청은

떡이나 유밀과, 다식 등의 제사 음식을 만들고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경기전 부속건물 전사청은

국가의 제사에 쓸 제수 준비와 제사상 차리는 일을 담당하는 전사관이 사무를 행하면서 제사 준비를 하는 곳입니다.

 

 

 

 

경기전 부속건물 어정은

임금의 음식을 만들거나 임금이 마실 물을 기르는 우물을 말합니다.

 

그리고 종묘, 사직단 등에서 임금이 참여하는 제례에 사용하는 우물도 어정이라고 합니다.

 

 

 

 

경기전 부속건물 제기고는

제향 때 사용하는 각종 그릇, 기구 등을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대개 제기고와 같은 건물은 바닥을 마루바닥으로 만듭니다.

마루바닥은 지면과 분리되어 있어 습기가 차지 않아 기물을 보관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경기전 부속건물 서재와 동재는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어진 집으로 재각이라고도 하며

제향을 맡은 관원들의 재계의식을 하기 위한 곳입니다.

 

 

 

 

경기전 부속건물 마청은

경기전의 의식이나 관청, 관리의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내려온 말을 두는 곳입니다.

 

 

 

 

경기전 부속건물 수문장청(경덕헌)은

경기전을 지키는 수문장이 일을 맡아보는 곳입니다.

 

 

 

 

경기전 부속건물 수복청은

경기전의 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낮은 직급의 벼슬아치들이 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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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역사의 숨결 전주 경기전을 방문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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