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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요일

나만의 글쓰기/단편 글

by 배고픈한량 2022. 5. 2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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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뜨거운 열기가 몰려왔다.

오전의 햇빛이 냉장고 속 상추처럼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은 것이라면 오후의 햇빛은 젖은 수건을 골판지같이 딱딱하게 바싹 말린 것이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이 녹아내린 듯한 뜨거운 날씨였다.

나는 방 한쪽 벽에 기대어 앉았다.

주말이지만 밖에도 나가지 않고 텔레비전을 켰다. 프로야구 중계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캐스터와 해설자는 한화이글스가 9연패의 사슬을 끊고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떠들어 댔다. 텔레비전의 소음과 달리 집은 고요하고 모든 것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 햇볕을 쬐며 길을 걸었다.

여행이라도 온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계속 걸었다. 낯선 장소를 지나온 내 자취는 벌써 햇빛에 말라버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푸르렀던 하늘빛은 시간이 지나면서 엷은 주황색에서 짙은 보라색으로 물들어 갔다. 도로의 이팝나무는 바람에 흔들려 흰 꽃을 떨구는데 18개월을 길러온 내 머리카락은 전혀 흩날리지 않았다.

도로를 따라 인도를 걸었다.

길을 걸을 때마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냄새가 났다. 요란스럽게 질주하는 차량의 움직임과 함께 강력한 돌풍이 내 머리칼을 날려버렸다. 후텁지근하고 기름 냄새나는 바람이었다.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청년기를 지나 이제 막 장년기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처럼 오십 대가 되어도 여전히 혼자 여행을 다니려고 노력 중이다. 어제의 다음 날인 오늘은 내가 여행을 떠나려고 생각한 미지의 내일이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대도시를 벗어나 적당한 소음만이 존재하는 평화로운 장소이다. 그 장소가 농촌이든, 산이든, 섬이든 상관없다. 내가 늘 접하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 그런 곳에서는 호흡도, 걸음도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내 속에 감춰져 있던 본능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나는 일출보다 석양을 좋아한다.

새벽의 어둠이 밝으므로 변하는 시간보다 저녁의 어스름이 어둠으로 변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새벽은 모든 것이 잠들어 있어 고요하지만, 저녁은 모든 것에 생명력이 깃들어 있어 시끌벅적하다. 24시간이 지났다. 나는 일출과 석양을 같은 공간에서 맞이했다.

머무름은 완벽했다.

내가 머물렀던 자리에 내 몸 크기만큼의 여백이 생겼다. 그 여백에 내 흔적이 남아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려고 늘 노력 중이다. 오늘도 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낯선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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