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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상(肖像)

나만의 글쓰기/단편 글

by 배고픈한량 2022. 1. 2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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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본다.

표정은 정직하다. 속마음은 항상 표정에 드러난다. 속마음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다. 땅의 이력은 겹겹이 쌓인 세월의 층으로 알 수 있고 사람의 이력은 얼굴로 드러난다. 얼굴을 보면 나를 알 수 있다.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면 깨닫게 된다. 지난날의 내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는 자기가 누군지 알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 내가 초상이란 제목의 글을 쓰는 이유는 나에게 정직하기 위해서 나를 글로 풀어보려는 것이다.

 

거울을 본다.

등뼈를 곳곳이 세우고 서서 고개를 좌측으로 돌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는 자태가 진지하고 엄숙하다. 운동화를 싣고 청바지와 흰색 오리털 재킷을 입은 모습이 단순하고 깔끔하다. 차림에서 벌써 성격이 드러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다가 길을 막으면 고이고 물길을 터주면 다시 흐른다. 나는 물처럼 순응하며 살 수 없다. 내 이름 속에는 나만의 성품이 숨어 살고 있다. 인생에서 견딜 수 없는 벽과 마주하게 되면 변화를 주어야 한다.

 

눈에 띈다.

말꼬리처럼 머리를 뒤로 묶은 단신의 남자는 이중섭 거리의 인파 속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퍼석하고 가는 머리카락을 빗질해 한 손으로 움켜쥐고 고무줄로 묶어놓았다. 묶이지 않은 앞 머리카락이 산들바람에 기분 좋게 흩날린다. 새치가 있는 갈색 곱슬머리다.

햇볕에 약간 그을렸지만, 여전히 맑은 얼굴빛을 안경과 마스크로 가리고 있다. 왼쪽 눈썹 끝이 말아 올라가는 눈썹을 가졌다. 안경 렌즈를 통해 보이는 두 눈은 쏘아보고 있는 듯한 강한 눈빛이다.

 

눈매는 부드럽다.

눈은 작은 타원형이고 쌍꺼풀이 없다. 흰 공막에 실핏줄이 군데군데 있지만, 홍채와 동공은 또렷하다. 강력한 눈빛에 비해 눈초리는 예리하게 처져 있다. 눈언저리에는 사선으로 금은 그은 듯 주름 자국이 있다.

작은 눈 사이로 콧마루가 길게 뻗어 있다.

곧게 내려오다 인중을 만난 콧날은 부드러운 곡선이다. 안경을 오래 껴서 그런지 콧등에 안경 자국이 있다. 안경을 벗으면 눈과 콧등이 살짝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입술은 가늘다.

입술 선은 또렷하고 입술 색은 붉은색이다. 지그시 다문 입술에서 굳은 다짐을 엿볼 수 있다. 입을 꼭 다문 가는 입술 주위로 가는 수염이 보인다. 한올 한올 따로 자라는 수염은 빽빽하지 않고 부드럽다.

귀는 눈보다 아래에 위치한다.

귀는 작고 귓불은 둥글다, 왼쪽 귓불에는 귀걸이가 걸려 있다. 광대뼈는 튀어나오지 않고 볼살은 탱탱하다.

 

얼굴은 갸름하다.

얼굴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는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너무 가까이 쳐다보면 시야가 매몰된다.

지적인 인상이다.

나의 매력은 단순히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다. 흘깃 쳐다보는 사람들 속에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의연함에서 흘러나왔다.

언제나 맑은 얼굴빛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얼굴에 삶이 녹아있다. 지나온 내 삶에 고난이 많다고 해서 내 삶이 아닌가? 내 얼굴에 지나온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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