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6박 7일간의 제주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예정이다.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했다. 유성온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석역에서 하차했다. 6번 출구로 나가 오송행 B1 버스를 탔다. 세종 도심을 관통하여 40여 분 만에 오송역에 도착했다.
공항행 버스를 기다렸다.
배낭은 벤치에 올려놓았다. 가는 곳이 다른 버스가 들어왔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분주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내고 나서 청주공항행 버스를 탔다. 버스 창문 틈으로 생기있는 봄바람이 불어왔다. 버스는 바람을 가르며 공항에 도착했다.
김장비닐 안에 배낭을 넣었다.
온라인 체크인을 이미 했기에 수화물로 배낭을 맡겼다. 평소 배낭 무게보다 4kg이나 적은 8kg이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캠핑장비만을 가져왔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보안 절차를 받으러 갔다.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보조배터리, 랜턴, 라디오, 물은 에코백에 담겨 있었다. 1분도 지나기 전에 보안 절차가 끝났다. 탑승장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데 연착 없이 바로 탑승이 시작되었다. 탑승권을 확인하는 기계의 ‘띵’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는 탑승구로 느지막하게 향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탑승은 이미 끝났다. 짐을 선반에 넣는다고 길게 줄 서게 되는 일도 없었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진에어 승무원의 움직임이 활기찼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항상 웃고 있는 표정이란 걸 눈동자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비행기가 움직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몸이 흔들거렸다. 승무원들은 안내방송을 진행되고 있었다.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엔진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28년 전에 군 복무했던 활주로를 행하여 비행기가 이동 중이었다.
벨 소리가 울렸다.
띵, 띵, 띵. 이어서 승문원의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하겠습니다. 안전을 위해 좌석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동체는 흔들림이 없었다.
굉음과 함께 앞으로 달려가던 비행기는 바퀴가 활주로를 벗어났다. 이 순간 엔진 소리를 제외한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양력을 받아 상승만 하던 비행기는 이내 수평을 유지했다.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진 후 기내의 공기는 소음과 함께 안정을 되찾았다.
햇살이 눈에 부셨다.
경량 재킷을 입고 있기엔 더웠다. 청명한 하늘은 아니지만, 햇살이 창을 통해 기내로 들어왔다. 비행기는 780km/h로 허공을 가르며 움직였다. 도시, 산, 하늘, 섬, 바다, 구름, 나는 창밖의 풍경변화를 보고 그 속도를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35C 선반 번호를 확인했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오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멈춰섰을 때 내 좌석은 아기 의자처럼 보였다. 3열 좌석 가운데에 앉은 그는 체격이 우람했다. 엉덩이는 좌석에 꽉 꼈고 무릎은 앞 좌석에 닿았다. 그는 한 치의 여유 공간도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는 창밖만을 바라봤다.
그는 좌석의 불편함을 참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가끔 몸을 좌우로 움직였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야 했다.
마침내 비행기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바로 좌석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서자 그는 한결 편안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비행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즐거운 제주여행 되시길.
눈치채지 못했다.
수화물을 맡기고 보안 절차를 통과한 후 탑승을 기다렸다. 탑승이 시작됨과 동시에 탑승구에 긴 줄이 생겼다. 나는 줄 서는 걸 싫어한다. 평소처럼 계속 의자에 앉아 있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통로좌석을 선택하는 건 조금이라도 늦게 타기 위한 나만의 선택이었다.
탑승구로 향했다.
손에 들고 있는 검정 가방을 제외하고는 흰 모자, 흰 마스크, 흰옷, 흰 신발이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떤 잘못도, 어떤 거리낄 일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35C, 나는 선반의 번호를 확인하자마자 좌석에 앉았다. 그녀가 나를 지나쳐갔다. 후, 나도 모르게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안전띠를 매려고 몸을 움직이다가 좌석 틈으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내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과연 우연일까?
마침내 비행기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나는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렸다. 근데 내가 왜 그래야 했지.
비행이 끝났다.
“우리 비행기는 곧 제주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중략)”승무원의 안내방송을 시작으로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회전하는 동안 제주 시가지가 점점 크게 보였다. 이륙할 때와 비슷한 굉음을 내며 비행기는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제주에 발을 디뎠다.
올해 첫걸음이었다. 해마다 3~4번 왔지만, 올해는 몇 번이나 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수화물로 보낸 배낭을 찾았다.
이제 어디로 갈까?
정해진 곳은 없었다. 10분여 벤치에 앉아 있다가 무작정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탔다. 이 버스 가는 곳 중 한 곳이 내가 머물 비박지가 될 것이다. 제주 비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