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월요일 새벽이다.
내가 다시 인제에 온 것은 일요일 저녁이었다. 마침내 백두대간(조침령~구룡령)을 가기로 한 날이 되었다. 다섯 시에 잠에서 깨어나 샤워를 마치고 창문의 커튼을 열었다. 동이 뜨기 전이지만 오늘 날씨가 썩 좋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호텔을 나섰다.
나뭇가지를 흔들리게 만든 바람이 내 얼굴도 스치고 지나갔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바람은 여전히 밉살맞게 불었다. 아침을 먹는 동안 날이 밝았다. 차를 타고 인제에서 출발하여 조침령으로 향했다. 내린천 변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눈이 내리듯 흩날렸다. 바람은 찾아온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생떼를 부렸다.
조침령에 도착했다.
바람은 인제에서보다 더 밉살스럽게 불었다. 가까이 있는 CCTV 스피커에서 연신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하늘에는 봄의 어떤 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다 탄 나무의 재처럼 그저 옅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환하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바람이 불면 쌀쌀했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더위를 느꼈다. 아침 기온은 높았지만 바람이 불어서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에어컨을 켠 차 안에서 얼음이 가득한 냉커피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는 가고 나는 본다.
우리는 조침령에서 서남쪽으로 나아갔다. 20m마다 측량을 하면서 백두대간을 걸었다. 네가 폴을 들고 20m를 걸어가면 나는 측량한 것을 기록한 후 너의 뒤를 쫓아갔다. 측량하는 동안 우리는 만날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의 행동을 쳐다만 볼 뿐이다.
너와 내가 떨어질 수 있는 최대 거리는 20m이다.
이름도 없는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를 걸어갔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네가 남기고 간 자취는 내 피부에 와 닿았다. 노면이 다 드러난 흙길 위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등산로 주변에는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 향기가 가득 차 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내가 노루귀를 발견한 것은 오전 열한 시였다. 백두대간 갈림길에서 길의 흔적을 찾아 우거진 조릿대 숲을 걷고 있었다. 어깨까지 올라온 조릿대를 손으로 밀어낸 순간 그곳에 노루귀가 있었다. 별다른 특징이 있는 노루귀는 아니었다. 봄이면 산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노루귀였다.
낙엽 속에 숨어있었다.
내가 얼레지를 발견한 것은 오후 한 시였다. 낙엽 속에 있어 오히려 그 존재가 눈에 띄었다. 분홍색 꽃잎이 뒤로 말린체 도도하게 서 있었다. 녹색의 잎은 흙탕물이 튄 것처럼 군데군데 자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얼레지는 무방비한 구석이 있다. 등산로에 자란 엘레지를 실수로 밟게 되어 나를 당황케 했다. 언제나 미안하다.
시간을 들인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산에 온 목적에 맞게 백두대간을 걸었다. 20m마다 측량을 하면서 걷다 보니 오늘 하루 4.8km밖에 못 왔다. 속도는 느렸지만, 그만큼 산에 더 많은 애정을 품은 시간이었다. 내일 다시 이곳에서부터 측량을 시작해야 한다. 해가 지기 전에 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숲은 평온함에 빠져 있었다.
산불통제 기간이라 허가 없이는 백두대간(조침령~구룡령)을 다닐 수 없다. 인적없는 숲에는 야생화, 계곡, 폭포 등 극적인 요소들이 언제나 숨어있었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미줄처럼 치밀할 정도로 잘 짜여 있었다. 내일 다시 이곳을 지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형이상적인 봄의 화원을 소리 없이 걸었다. 아주 길고 넓은 꽃밭으로, 그곳에는 얼레지, 바람꽃, 제비꽃, 현호색, 괭이눈, 노루귀 등의 다양한 야생화가 파도치고 있었다. 꽃냄새와 더불어 물 냄새가 났다. 바위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졌다 속삭이고 있었다.
계곡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건조한 대기의 냄새가 났다. 나무의 잎사귀는 햇빛을 한껏 받았지만 메마름보다 촉촉함이 느껴졌다. 땀이 흐를 정도로 더웠다. 나는 바위 사이에 다리를 딛고 허리를 숙여 세수했다. 두 손을 오므려 계곡물을 담아 얼굴로 가져갔다. 몇 번이나 그렇게 했다. 어느새 땀은 물로 대체되었다.
봄의 어느 맑은 오후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기온이 쑥쑥 올라갔다.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에서 노란 꽃이 완벽하게 핀 한계령풀을 발견했다. 봄만큼 화사한 한계령풀이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누런 낙엽 사이에서 초록빛 풀 사이에서. 노란 꽃은 초록의 잎과 줄기에 대비되어 더 멋져 보였다. 한계령풀은 순도 100%의 황금색 꽃을 가졌다.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계령풀을 본 적이 있는가? 응. 있다. 작년 이맘때 곰배령에서 한계령풀을 처음 보았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의 비옥한 토양이었다. 한계령풀은 환경부에서 희귀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나는 몇 번이나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안이 찾아온 시력이지만 초점을 정확히 잡으려고 안경을 콧등 끝에 걸쳤다.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며 한계령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두 개만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800m 이상 등산로 주변에 자생하고 있었다. 천상의 화원이 이런 것이었다. 한계령풀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심장박동 수는 점점 빨라졌고 발걸음은 현저히 느려졌다. 실수로 밟지는 않을까 가슴이 조마조마해졌지만, 사진을 찍는 손놀림만큼은 번개처럼 빨랐다.
천상의 화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백두대간의 변덕스러운 바람에 한계령풀 씨앗이 주변으로 운반되었다. 해가 지날수록 그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씨앗이 떨어진 거리에서 각자의 생존을 위해 꽃을 피우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바람의 흔적은 말했다.
백두대간에서 양양 앞바다를 건너온 바닷바람을 맞았다. 백두대간을 스쳐 간 바람의 흔적, 그 모든 것이 바다의 냄새였다. 시계가 트였을 때 양양 앞바다가 몇 킬로미터쯤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오늘은 양양에서 하룻밤 묵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산은 선택의 문제였다.
다른 사람들은 연가리 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했고 나만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선택의 중심에 항상 내가 있었다. 산악가이드인 내가 차량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태우러 가야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발길을 잡았던 천상의 화원은 나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헐떡거리면서도 연신 오르막을 뛰다시피 올랐다.
시간은 뒤로 돌아가진 않는다.
오늘은 근심 없이 감각적으로 야생화를 보고 즐겼다. 해가 지기 전에 양양 낙산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드넓은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니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저녁을 먹으면서 저녁노을을 바라봤다. 동쪽에 와서 서쪽의 노을을 바라보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또 하루가 지났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아는가? 난 그 질문의 답을 ‘석양을 보려고’라고 말했다. 달마는 해가 제일 먼저 뜨는 동쪽에서 해가 지는 서쪽을 그리워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내 마음이 어제 그랬다. 사람은 변하는 게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육신의 고통을 느낀 후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
어제 하산했던 장소로 가기 위해 갈천으로 왔다. 백두대간 왕승골삼거리로 올라오는 등산로는 내 육신에 고통을 주기에 매우 가팔랐다. 두껍게 쌓여 있는 낙엽 때문에 연신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가벼웠는데 배낭의 무게가 삶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바람은 좀처럼 불지 않았다.
메마른 대지에 미세먼지가 자욱했다. 아무 생각 없이 어제 하산했던 장소로 이동했다. 굵은 땀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평평한 곳에 앉아 두 눈을 감았다. 우듬지에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색한 침묵의 순간처럼 내 몸의 열기는 오랫동안 식지 않았다.
아무도 지나간 적 없는 길은 없다.
시간이 흘러 그 흔적이 사라졌을 뿐이다. 백두대간을 측량하며 다시 왕승골삼거리 돌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흘 동안의 백두대간 조사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갈천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내 시선이 닿는 곳에 피나물과 금낭화가 있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숲은 출렁거렸다. 멈춘 것처럼 보였던 모든 것들이 분주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를 지각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다. 눈으로 본 것 때문에 가슴이 설레고 흥분되었다. 순간이 이처럼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백두대간은 나름의 소리도 머금고 있었다.
바람 소리, 나무 소리, 새소리, 계곡물 소리 등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 소리가 들렸다. 백두대간의 매력에 한 번 사로잡히니 헤어나오기 쉽지 않았다. 백두대간은 서두르며 지나는 그런 길이 아니다. 자연과 시선을 맞추며 천천히 걸어야 백두대간의 진가를 제대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