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의 전원을 켜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지금은 술친구가 된 K형의 전화였다. 벌써 32년 된 인연 사이에 긴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내일과 모레 일정이 어떻게 되나?”

특별한 것은 없는데요.”

그럼 울진 놀러 가자.”

좋아요.”

K형은 내가 저녁을 먹을 때쯤 전화를 종종 한다.

전화를 끊고 보니 부재중 전화가 이미 와 있었다. 늘 그렇지만 저녁을 먹느라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울진 일정은 이렇게 잡혔다.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아침 820, K형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은 비교적 선선했지만, 자전거를 20분 넘게 타고 온 나는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벌써 더위를 느끼면 안 되는데 예년보다 빨리 날씨가 더워지는 것 같았다.

우리에겐 루틴 같은 것이 있다.

내가 승용차에 가방을 넣어두면 K형은 편의점으로 나는 커피숍으로 간다. K형은 담배와 물을 사고 나는 샷이 추가된 아메리카노를 산다. 아메리카노는 기온에 따라 HOT 또는 ICE를 선택한다. 이번엔 당연히 ICE를 선택했다. 모든 것이 준비된 후 K형과 나는 승용차를 타고 울진을 향해 출발했다.

 

울진 두천리 모내기한 논

 

3시간 20분의 긴 이동이 시작되었다.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답답하고 에어컨을 켜면 약간 쌀쌀함을 느꼈다. 날씨만큼 목요일 아침의 고속도로는 꽉 막히지도 그렇다고 뻥 뚫리지도 않았다. 앞차의 속도에 맞춰 뒤차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울진은 경상북도에 있다.

울진에 올 때마다 강원도에 왔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제, 양양, 평창, 춘천, 화천 등 강원도를 가끔 돌아다니다 보니 울진도 당연히 강원도라 생각한 것이다. 고속도로 졸음쉼터에서 화장실을 다녀온 것 빼고는 쉬지 않고 계속 운전을 했다. 그러고 보니 1년 만에 다시 울진에 왔다.

 

하원2교
울진종합버스터미널

 

울진에서 짬뽕을 먹었다.

K형이 월요일에 가봤다는 기절초뽕에 들어갔다. 이름만큼 특별하지 않은 여느 중국집 실내여서 약간 실망했었다. K형이 추천한 짬뽕은 숙주나물이 고명으로 가득 올려진 짬뽕이었다. 면과 숙주를 같이 먹으면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국물은 빨갛지만 맵지 않고 깔끔하며 시원했다.

기절초뽕에 한 번 더 갔다.

울진 산야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일로 일정이 하루 늘어났다. 이튿날 저녁에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짬뽕과 탕수육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소맥을 말아 목구멍으로 넘겼다. 막소주만 고집하는 K형은 술이 고팠는지 구포식 소맥이라며 직접 소맥을 말아 나에게 건넸다. 단무지를 안주 삼아 한잔, 양파를 안주 삼아 또 한잔, 그렇게 4잔쯤 마셨을 때 짬뽕과 탕수육이 나왔다.

 

울진마집 - 기절초뽕

 

승용차는 불영계곡 도로를 달렸다.

몇 년 전에 왔었던 곳을 다시 찾은 것이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고 야속한 세월만 흘렀다. 나는 산을 바라보면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래서 무작정 산에 올랐다. 보통은 등산로를 따라 오르지만, 오늘은 차를 타고 임도를 따라 높은 곳에 올랐다.

처음 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풍경을 한 번이라도 구경해본 사람이라면 또다시 산을 찾게 된다. 풍경 사워, 아름다운 풍경이 온몸과 정신까지도 말게 씻어줬다. 눈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었다. 전후좌우에 드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바람이 와락 내게 안겼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 오랫동안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이런 포옹도 좋네라고 생각했다.

 

불영계곡 - 하원리, 아미사 입구
대흥리 임도

 

산을 하나 넘었을 뿐인데 세상이 갑자기 낯설고 이상해졌다.

지난겨울, 산불은 매일 번져 나갔다. 소방헬기로 물을 뿌리고, 소방차로 물을 뿌리고, 수많은 사람이 투입되어 잔불을 제거했다. 산불은 바람에 의해 퍼져서 그 면적을 넓혀 나갔고 오래도록 타다가 비에 의해 완전히 소멸하였다.

산불피해지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다.

산불이라는 화마를 만나 죽을 고비를 겪었을 뿐이다. 그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 예전 상태로 돌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 , , , 도로, 강 등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었다.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공허했다.

 

금강소나무숲길(보부상길 입구-두천리)
두천리 마을 산불피해지
두천리 산불발화지점
대형산불 실화자 찾는 현수막

 

봄이 되기까지 산불의 흔적은 처참했다.

울진의 산은 초록의 천위에 실수로 먹물을 부어 놓은 것 같았다. 산은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검게 탄 잿더미였다. 산불의 흉터는 먹색으로 남았지만 봄이 되면서 그 흉터는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큰 산불을 겪고도 산은 생명의 씨앗을 틔웠다.

상처가 흉터가 되고 새살이 돋듯 잿더미 속에서도 희망의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산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더디 간다는 것은 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때처럼 긴 하루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호월1리

 

어둠은 무언가에 쫓기듯 물러났다.

새벽 5시가 넘으면 어느새 해가 떠올랐다. 모텔 창문으로 환해진 울진 시내를 내다봤다. 바람은 가로수를 마구잡이로 흔들고 있지만 시원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더위와 싸워야 하는 힘겨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오늘은 얼마나 걸어야 할까?

불영계곡 아미사에서 산에 들어섰다. 나는 가보지 않은 산을 돌아다닌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걷는 길을 기획하고 조사에 참여하는 일만으로도 희열을 만끽하고 있다.

능선을 따라 오르고 또 올랐다.

깊은 산속 이름 없는 고개의 소나무 그늘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었다. 청량함이 가득한 산골 바람은 더위를 식혀 주었다. 소나무 우듬지를 흔들리게 만드는 그 바람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바다에서 높이 물결치는 파도 소리 같은 허공의 바람 소리였다.

 

아미사 옆 숲길
초롱꽃
꼬리진달래
소나무
울진군 금남면 수곡리
울진군 금남면 수곡리

 

깊은 계곡 바위에 서 있었다.

여러 갈래로 흐르는 물처럼 내 마음도 여러 갈래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물이 흐르지 않아 속살을 드러낸 바닥은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듯 보였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맑고 투명했으며 수면 아래로 군데군데 두껍게 낙엽이 쌓여 있었다. 흐름이 느린 물줄기에는 사분음표 모양의 올챙이가 불안정한 상태로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계곡의 물은 아래로 흘러갔다.

비가 오지 않아 유량은 적었지만, 낙차 큰 암반 지형에선 파도처럼 걷잡을 수 없는 물이 쏟아져 내렸다. 하염없이 물이 불어나지도 않고 물살도 세지 않아서 장마철을 제외하면 계곡물을 이용하기엔 안전했다. 계곡을 건너고 또 건넜다. 일 년 중 가장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었다. 이태백이 술에 취하듯 나는 계곡에 취했다.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보부천길
울진군 하원면 소광리 보부천길
울진군 하원면 소광리 보부천길

 

맑았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후드득, 후드득.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은 이내 빗줄기로 변했다. 급한 대로 숲속 나무 밑으로 가서 넓은 잎사귀로 머리를 가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엷은 구름이 퍼져 있을 뿐 대체로 맑았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구나!’ 비는 곧 멈췄고 구름을 걷어낸 태양이 숲의 가지 틈새로 빛을 쏟아냈다.

들꽃처럼 희망의 꽃을 피우자.

화마가 덮친 후 예전 생활로 돌아오기까지는 꽤 시일은 걸릴 것이다. 화마가 덮친 후 새싹이 움트고 꽃을 피우기까지 들꽃은 시련을 견디어 꽃을 피웠다. 무수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비록 삶은 고되겠지만 상황은 호전될 것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하원리 불영계곡
하원리 불영계곡
하원리 불영계곡
백선
함박꽃나무
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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