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막국수와 필례계곡(7월 인제여행)

나만의 글쓰기/여행이야기

by 배고픈한량 2022. 7. 19. 00:01

본문

1년 전 이맘때에 인제를 갔었다.

어느 지역을 간다고 말하는 순간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나는 오늘 인제에 간다. 늘 만나던 노은동 약속장소에서 K형과 만났다. 이른 아침이라 단골 카페는 문을 열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선택된 곳이 파리바게뜨였다. 장거리 여행을 하기 전 승용차에 휘발유를 넣듯 커피는 우리에게 에너지를 제공한다.

월요일인데도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유성에서 출발하여 청주, 오창, 진천, 충주, 홍천을 거쳐 인제로 향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후텁지근하게 느껴지던 바깥 기온은 점점 내려갔다. 아침 하늘은 아이가 생떼를 부린 듯 흐렸다.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것처럼 엷은 먹색 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을 향해 입김을 세게 불면 엷은 먹색 구름이 흩어져 맑은 하늘이 나올 것 같았다.

 

통영 바닷가의 하늘

 

1년 만이다.

원통에 있는 다들림막국수에 왔다. 과속도 하지 않았는데 약속 시각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일행을 기다리며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입구에 간판이 없었더라면 그냥 시골의 여느 집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작년에 왔을 때도 이곳이 식당이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현관 앞에는 커다란 밤나무가 식당의 수호신처럼 자리하고 있다.

맛집이 없는 고장은 없다.

인제에 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막국수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인제에 오면 막국수를 먹고 있다. 막국수는 춘천이 아니라 인제에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제에는 막국수 맛집이 여러 군데 있는데 그중 합강막국수, 다들림막국수, 방동막국수, 옛날원대막국수를 추천하고 싶다. 식당마다 고유의 육수 제조법이 있어 막국수 맛이 다 다르다.

 

다들림막국수
식당내부

 

비빔 막국수 3, 물 막국수 1, 편육 주세요.

내가 인제에 올 때마다 물 막국수를 먹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 모닝커피를 마시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행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미리 주문했다. 점심시간 전이라 식당에는 우리만 있었지만 금방 모든 자리가 다 찰 것이다. 면을 뽑는 기계음이 들리고 주방의 분주한 움직임은 다양한 소리로 알 수 있었다.

모든 음식은 색감이 있다.

음식은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맛이 달리 표현된다. 맛으로 표현되는 음식은 주관적이지만 색감으로 표현하는 음식은 객관적이라 더 좋다. 두부는 노르스름하고, 수육은 밝은 회색을 띠고, 상추는 녹색이고, 김치는 빨간색이다. 막국수의 달걀은 하얗고, 오이는 밝은 연두색이고, 면은 옅은 자색이고, 김 가루는 까맣다.

 

두부
편육(15,000원)과 기본반찬
물막국수 7,000원
비빔막국수 8,000원

 

막국수를 먹으면 좋은 이유가 있다.

물 막국수는 시원하고 비빔 막국수는 매콤하다. 비빔 막국수를 먹다가 육수를 넣어 물 막국수로 먹을 수도 있다. 면은 탱탱하지만 부드럽고 얼린 살얼음 육수가 시원하다. 막국수를 먹으면 덤으로 편육(수육)까지 먹게 된다. 과식과 폭식을 해도 배가 더부룩하지 않다. 식후 금방 배가 꺼져 또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막국수를 먹으면 온몸이 서늘해진다.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개인적인 취향을 고려하여 식당마다 양념을 따로 준비해 두고 있다. 막국수에 설탕, 식초, 겨자, 들기름을 넣는 것에 대한 고민은 행복한 고민이다. 막국수를 먹는 순간만큼은 모든 일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막국수를 먹는 행위에 마음을 다하고 색감을 즐기며 먹으면 된다. 그냥 천천히 육수를 마시면 머릿속의 번잡함은 소리 없이 사라진다.

막국수를 먹은 뒤 카드로 계산을 했다.

은행 계좌에 존재하는 돈이지만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돈을 사용했다. 존재하지만 사용할 때는 없는 돈을 쓴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무엇을 먹고 다니든지 나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의 총량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옛날원대막국수
곰취수육 20,000원
곱배기 막국수 10,000원

 

한계령을 넘었다.

내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도시 생활로 찌든 내 안의 번뇌를 깨끗하게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내 모든 발걸음에 선명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걸어온 발자국이 아쉽지 않게.

도로에 한여름 냄새가 난다.

한낮의 불볕더위가 공기를 뜨겁게 달궈 시큼한 냄새가 난다. 살아 있는 식물은 메말라 앙상해지고 그림자의 그늘은 점점 좁아진다. 햇빛의 딱딱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원통에서 한계령을 넘어 필례약수에 왔다.

이곳에 인제 천리길이 있다. 길에도 목적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인데 목적 없이 만들어진 길이라면 쓸모없는 길이 되고 만다. 더군다나 걷는 사람에게 허무감을 주기 쉽다.

 

한계령
한계령휴게소
점봉산 자락(오색방향)

 

지난주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불볕더위라 낮에 햇빛을 받으면 그늘을 찾게 된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 천둥소리와 함께 먹장구름이 산릉선을 넘어와 순식간에 폭우가 쏟아졌다. 눈앞의 사물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내렸다. 리모컨을 눌러 텔레비전을 끄듯 리모컨으로 비를 멈추게 하고 싶었다.

인제에서의 밤은 길었다.

여느 때처럼 저녁을 먹고 술자리가 이어졌다. 늘 보는 사람들이지만 마치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처럼 밤늦게까지 왁자지껄했다. 밤이 길었던 만큼 아침은 금방 찾아왔다. 산을 감싸고 있는 안개 같은 흰 구름이 산들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아침 기온은 높았으나 체감온도는 훨씬 낮게 느껴졌다.

 

인제 전통시장

 

인제의 산은 푸르다.

푸른 숲, 내가 찾아간 필례약수의 주변 숲도 푸르렀다. 불볕더위를 이겨낸 찰피나무와 까치박달 나무가 열매를 흐드러지게 맺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필례약수를 가다 보면 찰피나무 가지 틈으로 맑은 하늘이 숨어 있다. 구름을 뚫고 빛이 대지에 닿으면 음지가 사라지고 양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양지는 음지를 없애버린다. 마치 음지는 가짜이고 양지가 진짜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낮의 따가운 햇볕이 도로 위로 쏟아졌다.

햇빛이 장맛비처럼 강렬하게 내비친다. 햇빛을 머리에 이고 걷자니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떨어진다. 아지랑이가 꿈틀거리는 필례계곡에는 사람들이 나무 그늘서 삼삼오오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필례계곡
필례약수
찰피나무
까치박달나무

 

숲속에 앉아 계곡을 흘러가는 물을 바라봤다.

굳었던 몸이 이완되면서 마음마저 차분해진다. 내 호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내 안의 계곡 속에 빠져들었다. 세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편안함이 나에게 찾아들었다. 맑은 물처럼 내 의식도 점점 맑아지고 있다.

이곳만큼 숨쉬기 좋은 장소도 없다.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숲을 이뤄 우거져 있고 맑은 계곡이 사시사철 흐른다. 무심코 쉬는 숨이 아니라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복식호흡을 해야 한다. 호흡에 집중하면 마음과 몸이 편안해진다.

 

5단 폭포

 

숲길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숲길 조사가 고되고 힘들수록 숲길을 더 놓은 길이 될 수 있다. 숲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숲 안을 들여다보면 밖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난공불락의 요새 같이 지형이 험한 숲에 숲길 조사자의 열정이 더해지면 불가능할 것 같은 숲길 노선에 서광이 비치며 온기로 채워진다.

덤불 숲, 흔들리는 이끼긴 돌, 무더위,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 갈증, 산모기의 공격. 느릿느릿 움직이는 뱀, 모든 역격을 이겨내고 지금 내가 내딛는 걸음이 좋은 숲길이 된다면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

 

필례약수에서 바라본 귀둔리 야산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