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새벽 4시.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알람도 울리기 전인데 눈이 떠진 것이다. 열린 창문의 방충망 뒤편은 여전히 어두웠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처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은 비였다. 두두두두. 빗소리는 커다란 소음을 일으키며 대야에 떨어졌다. 첨벙첨벙. 순식간에 그 소리가 변했다. 벌써 대야에 물이 차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 고추에 물은 안 줘도 되겠네.’
도시는 비에 흠뻑 젖었다.
비가 내리면서 어둠살이 깔린 거리엔 왠지 모를 우울함이 바람과 함께 나부끼기 시작했다. 아침이지만 거리의 가로등과 상점들은 다양한 색깔의 빛으로 어둠을 밀어내는 몸짓을 시작했다. 그들만의 빛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빛의 현란함 속에서도 도시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엔 우산을 받쳐 든 사람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폭우 속에 나와 K가 있었다.
내가 커피를 사고 K가 물과 담배를 샀다. 우리들의 루틴은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루틴을 마치자 나와 K는 폭우를 뚫고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비는 액체이지만 차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고체처럼 선명하게 앞 유리에 부딪혔다. 유성을 출발하여 진천터널을 지날 때쯤에서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무겁게 깔린 먹구름은 흰 구름으로 대체되었다.
대관령면에 도착했다.
올해만 4번째 방문이고 평소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3월과 5월에는 하루, 6월에는 3일을 체류했다. 7월에는 5일을 체류할 예정이었지만 비가 와서 4일째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3월은 폭설이 내렸고 5월은 비가 왔고 6월과 7월은 흐렸다. 6월의 낮은 서늘했고 7월의 낮은 해발고도만큼 해가 비치는 곳만 뜨거웠다.
다른 지역보다 여름이 시원하다는 것은 대관령면에 오고 나서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훑어보기]
1. 대관령면
대관령면은 대부분이 산악지대이다.
강원도 평창군의 북쪽에 위치하며 강릉시에 인접하고 있다. 북쪽에는 황병산, 동쪽에는 백두대간 선자령 · 능경봉 · 고루포기산이 있고, 남쪽에는 발왕산이 있고 서쪽에는 매산 · 장군바위산이 둘러싸고 있다. 높은 고산으로 둘러싸인 고위 평탄 분지 같은 모습이다. 한우연구소, 가금연구소, 양떼목장 등 이국적 풍광의 초원이 대관령면 전역에 산재해 있다.
기후는 변화무쌍하다.
해가 뜨는 듯하다가 안개 같은 구름이 순식간에 뒤덮어 버린다.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다. 여름 기온은 평지보다 4℃ 정도 낮다.
2. 대관령
대관령은 큰 고개다.
높은 고개를 뜻하는 관(關)에 령(嶺)까지 붙었으니 높고 험준한 고개였음을 알 수 있다. 대관령은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관문으로 평창과 강릉의 경계에 있다.
4번 대관령에 왔다.
내가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강릉 방향, 위 주차장)을 찾은 것은 6월에 한 번, 7월에 세 번이다. 이곳에 올 때마다 변화무쌍한 기후에 놀라곤 했다. 뜨겁게 햇볕이 내리쬐다가도 순식간에 구름에 뒤덮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시내는 맑은데 이곳은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구름이 낮게 드리워지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주차장은 드넓었다.
현재 이곳은 신재생에너지전시관, 평창대관령수소충전소, 대관령숲길안내센터, 대관령유아숲체험관, 공중화장실이 자리하고 있다. 6월말에서 9월말까지를 제외하고는 드넓은 주차장은 한산하다.
서늘함이 느껴졌다.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낮다고 내 마음마저 서늘해지진 않는다. 이곳은 6월 말부터 캠핑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은 허가된 야영장이 아니다. ‘야영 · 취사 · 쓰레기 투기 금지’라는 현수막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질서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휴식을 취하거나 음식물을 먹고 있었다.
주차공간이 없었다.
백두대간이나 대관령 숲길을 찾아온 사람들은 주차할 공간을 찾을 수 없었다. 캠핑카, 텐트 등 주차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차량이 70대가 넘었다. 이런 행태는 야간이나 주말에는 100대가 훌쩍 넘는다고 한다. 대부분은 한달이상 장박을 한다고 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취사의 위험성, 소음, 쓰레기 투기, 화장실 사용문제 등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었다. 불법을 자행하는 사람들이 이런 불편을 호소하며 오히려 악성 민원을 넣고 있는 게 현실이다.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라고 생각된다.
주차료를 받는 휴게소가 있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횡계 방향, 아래 주차장)은 올 초부터 주차료를 받기 시작했다. 최근에 ‘주차료 받는 희한한 휴게소’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중앙일보 박진호 기자(7/17, 7/19).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다. 단지, 아래 주차장처럼 위 주차장도 주차요금을 받는다면 캠핑족의 이런 행태는 확 줄었을 것이다.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원만한 해결책을 관계기관에서 하루빨리 찾길 바랄 뿐이다.
3. 대관령 국가숲길
대관령에는 국가숲길이 있다.
국가숲길은 산림·생태적,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아 체계적인 운영·관리가 필요한 숲길을 정부에서 지정·고시하고 관리하는 정책이다. 그간 최초 지정된 지리산둘레길, 백두대간트레일, DMZ편치볼둘레길, 대관령숲길과 추가 지정된 내포문화숲길, 울진금강소나무숲길 총 6개소가 국가숲길로 지정되었다.
대관령 국가숲길은 12개 노선으로 약 103km이다.
숲길은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성산면에 걸쳐 있다. 개별노선으로 관리되던 숲길을 대관령의 자연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4개의 주제 순환 숲길(목장코스, 소나무코스, 옛길코스, 구름코스)로 새롭게 구획했다.
4. 국민의 숲
국민의 숲은 인공조림지다.
대관령 국가숲길 중 개별 숲길에 포함된 국민의 숲은 전나무, 낙엽송(일본잎갈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독일가문비 등이 조림되어 있다. 숲 옆에는 양묘장이 있다. 침엽수가 주종을 이뤄 강력한 살균물질인 피톤치드를 즐기며 걷기에 편안한 숲길이다.
야생화도 다양하다.
은대난초, 동자꽃, 좁쌀풀, 쥐오줌풀, 노루오줌, 은방울꽃, 개쉬땅나무꽃, 고광나무꽃, 산사나무 열매 등 잘 정리된 숲길 주변으로 계절에 따라 야생화가 피고 진다.
숲에 벌레가 없다.
7월 한낮, 무더위에도 숲은 시원하며 모기 등 벌레가 거의 없었다. 국가대표 등 운동선수들의 훈련장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5. 등산안내
선자령
백두대간 중심부에 있는 봉우리로 해발고도는 1,157m이다. 강릉시가지와 푸른 동해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초원 위의 풍력발전단지도 장관이다.
능경봉
백두대간에 있는 고산으로 해발고도는 1,123m이다.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겨울에는 무릎이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이는 곳이다.
고루포기산
백두대간에 있는 고산으로 해발고도는 1,238m이다. 울창한 숲, 초원지대, 야생화가 조화를 이루어 풍경이 아름답다.
발왕산
대관령면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우뚝 솟아 있고 해발고도는 1,458m이다. 사계절 휴양리조트인 용평리조트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이다. 정상에는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의 수백년 묵은 주목 군락과 철쭉이 장관을 이루는 산이다.
장군바위산
칼산, 투구봉과 함께 횡계의 고원지대를 지탱하면서 명성을 지키고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140m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신선바위, 코끼리바위 등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 특히, 맑은 물이 흐르는 백일평 계곡을 끼고 있어 청청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칼산
횡계리를 기점으로 하여 차항리와 용산리 사이의 산으로 해발고도는 941m이다. 참나무숲 사이로 스키점프장과 알펜시아스키장이 보이고 정상에서는 이국적인 풍력발전소와 드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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