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어스름이 깔린 새벽이다
텐트에서 눈을 떴다. 나는 결코 불면의 밤을 보낸 것이 아니다.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을 뿐이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어디인지
나는 지금 어떻게 밤을 보내고 있는지
어둠이 뒤덮고 있는 바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늘에 총총한 별들은 무엇을 비추고 있는지…….
그런 게 궁금했을 뿐이다.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일상을 벗어나 나의 행위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그렇게 새벽을 맞았다.
새벽이슬이 내리고 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해풍이 찝찝하게 내 피부에 와 닿는다. 새벽에는 쌀쌀했다. 청명한 가을밤, 별이 이처럼 빛나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검은 어둠 위에 별이 총총한 밤하늘과 대비되어 텐트주위는 휑한 느낌이 들었다.
태초의 사람들은 하늘에 흩어져 있는 별들을 그냥 바라보지는 않는다. 북두칠성처럼 별과 별을 이어서 하나의 별자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모습 속에 견우직녀와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적어 넣었다. 말하자면 별을 만들어낸 것은 하늘이지만 별자리를 만들어낸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 이어령, 책 한 권에 담긴 뜻(2022, p18)
아침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다도해는 자욱한 물안개가 하얗게 퍼져 있다. 긴 어둠의 터널에서 겨우 빠져나왔을 때는 해는 이미 뒷산 능선에 걸려 있었다. 아침 8시가 지나 산을 넘어온 햇살의 손길이 미치자 텐트 표면의 이슬은 알전구에 불이 켜진 듯 빛을 발하고 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신 후 나는 길을 나섰다. 차가 지나갈 수 있는 비포장도로는 바퀴가 지난 자리를 제외하곤 이름 모를 풀로 뒤덮여 있었다. 아름다운 오솔길이 아니라 방치된 비포장도로 그 자체였다.
나무에 가려 바다는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바람을 타고 함께 날아온 공기에서 짠 내음만이 날 뿐이었다. 걷는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이기에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 싶었다. 오늘 날씨는 걷기에 덥지 않고 선선했다. 숲길을 벗어나니 무화과밭 사이로 몽돌해수욕장이 보였다.
공기의 고요 속에 잔잔한 파도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몽돌은 거의 다 사라지고 고장이 나고 방치된 어선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시선이 바다를 향한다.
손으로 흉터를 긁듯 그런 괴로움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 나타날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칡덩굴 사이의 좁은 흙길을 벗어나며 여태껏 보지 못한 바다의 생물들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작은 붉은 깃발처럼 숲과 바다를 가로질러 분주하게 이동하는 도둑게였다.
한참을 더 걸어 나는 도두마을에 도착했다. 담 너머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도로에 떨어졌다. 떨어진 감을 바라보며 나는 햇살이 골고루 비추는 마을의 공간 속으로 기어들었다. 농사일에 바쁜 마을 어르신들과 인사도 나누고 어망촌에서 지금은 폐허처럼 변한 황량한 염전을 바라보며 과거의 융성했던 염전 모습을 떠올려 봤다.
나의 상상 속에는 그 옛날 햇빛에 작열하는 반듯반듯한 염전의 반짝임을 볼 수 있었다.
이른 점심을 먹었다.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동명마을에 도착했다. 문득 점심은 사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도의 유일한 식당, 숙자네식당에서 단돈 9,000원에 사 먹는 시골밥상은 그 어떤 만찬보다 식욕을 돋웠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길 수 있는 야외에 자리했다. 밥 한 숟가락을 먹고, 반찬 한 젓가락을 먹고, 막걸리 한모금을 마셨다. 낯선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렇게 밥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가 이 순간과 잘 어울렸다.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바로 이런 것이다.
바다는 살아있다. 바다는 고요하고 움직임도 없는데 잔잔한 파도에 정박한 배가 움찔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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