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영향으로 개도에서 오후 5시에 사선(개인 소유의 선박)을 타고 백야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처음 계획은 백야도에서 개도, 개도에서 금오도, 금오도에서 돌산도의 여정이었으나 일정이 어긋난 이 시점에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 아쉬웠다. 오늘 밤 백야도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한 시간 후면 날이 저문다. 그전에 백야도에서 야영지를 찾아야 한다. 이틀 전 여수에서 버스를 타고 백야도에 도착했을 때 우연히 본 정자가 생각났다. 아침부터 모든 배가 결항이라 백야항에는 문을 연 식당과 슈퍼가 없었다.
‘큰일이데, 물이라도 구해야 하는데….’
버스정류장에 배낭을 놓고 버스가 백야항으로 들어오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200m 정도 걸어갔을 때 불 켜진 특산물 상점을 발견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주인분이 평상에서 지인과 술을 들고 계셨다.
‘야호’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서둘러 시원한 물과 캔맥주를 사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저녁 어스름과 드문드문 불이 켜지기 시작한 백야도가 묘하게 어울려 운치 있는 밤이 시작되고 있다.
고즈넉한 골목을 걸어 정자에 왔다. 텐트를 쳐놓고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어둠은 소리를 내지 않고 순식간에 주위를 집어삼켰다. 랜턴을 켜 놓고 정자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나의 시선은 백야항 야경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린아이가 심술을 부리듯 바람은 변덕스럽고 차가웠다. 백야항의 밤을 지키는 건 군데군데 켜있는 가로등뿐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조용히 배낭을 꾸렸다. 먼동이 뜨기 바로 전이 가장 어두웠다. 어둠은 안개처럼 바닥까지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정자야, 잘 쉬다 간다.’
백야항 버스정류장에서 새벽 5시 40분에 첫 버스를 탔다. 여수로 향하면서 마주한 첫차 타는 사람들의 분주함을 잊을 수 없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깨어 활동하고 있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여천역에서 기차를 타기 전, 진남시장 왔다식당에서 국밥을 먹었다. 이른 시간이라 시장에 문을 연 식당이 이곳밖에 없었다. 모듬국밥에 여수생막걸리는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뚜벅이에게 주어진 최고의 아침 만찬이었다.
여행의 참맛은 돌발상황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있다.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굳이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겠는가? 이번 개도 백패킹도 나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주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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