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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유럽 2탄 - 2일차(5/28), 영국 런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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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의 질은 시간의 양하고 비례하지 않는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수면시간은 보통 하루 4시간이다. 자정을 넘기지 않고 잠이 들어서 오전 4시 전에 일어났다. 나에게 시차는 수면시간과는 무관한 듯하다.

고요한 침묵을 깨고 하루를 시작했다.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오전 5시에 밖에 나왔을 때는 이미 세상이 환했다. 지금 이곳은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저문다. 완벽한 아침형 아닌 새벽형 인간인 나, 이런 나에게 여름철 유럽여행은 하루를 아주 길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시기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었다. 이른 시각이라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오직 나만이 홀로 세상에 남겨진 기분을 즐기고 있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영국은 섬나라의 특성상 날씨가 변덕스럽다. 그런 런던의 짓궂은 날씨가 아이러니하게 신비스러운 날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런던의 흥미로운 장소는 우연히 걷게 되는 골목, 정원, 공원에서 발견하게 된다.

 

 

 

영국에서 거리 예술과 그래피티를 볼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장소인 쇼디치에 왔다. GD삐딱하게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소이다. 오전 6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유롭게 사진을 찍은 후 유대교 스타일의 베이글로 유명한 빵집에 갔다. 베이글을 사고 있던 현지인의 추천으로 같은 염장 소고기와 오이절임이 들어간 베이글을 주문했다. 영국에서의 첫 음식인데 양도 많고 맛도 좋았다. 특히 오이절임이 신의 한 수였다.

 

 

 

템스강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리는 차량과 출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에겐 이 모든 것들도 이국적일 수밖에 없다. 도로를 건너 런던탑을 지나니 타워 브리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타워 브리지를 걷다니.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비가 내려도 전혀 개의치 않고 이 순간을 마음속에 영원히 담아둘 것이다.

 

 

 

 

 

 

타워 브리지에서 웨스트민스터 다리까지 템스강을 따라 런던의 아침을 천천히 만끽했다. 템스강에 기대에 사는 새들의 모습, 템스강 주변에 늘어선 고층 빌딩,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화물선, 템스강을 따라 걷고 달리는 사람들의 일원이 된 것이 기분 좋았다.

그때 성두에게 보이스톡이 왔다. 어쩜 그리 타이밍도 좋을까. 런던 아이를 지나 다리를 건너 빅 벤까지 한달음에 왔다. 이정도만 해도 런던의 대표 상징물은 다 본 셈이다. 그 순간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나의 걷기 여정은 런던 북쪽에 있는 숙소를 기준으로 정확히 반이 끝났다. 시계의 시침이 12시에서 출발하여 6시까지 온 셈이다. 이제부터는 나머지 반을 향해 걸어야 한다. 세인트 제임시즈 공원을 지나니 버킹엄 궁전이 보였다.

주변 일대가 통제되고 비까지 점점 더 거세게 내리는 와중에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걸었다. 그린파크, 하이드파크, 켄싱턴 가든스를 거쳐 노팅힐까지 왔다. ‘She’ 노래를 들으며 영화 속 작은 책방과 휴 그랜트가 살던 파란 대문도 가보았다.

 

 

 

 

맥주와 바나나로 점심을 해결하고 또다시 대장정에 나섰다. 비가 계속 내리는데도 많은 사람이 우산도 쓰지 않고 그냥 거리를 걸었다. 이제부터는 박물관을 갈 생각이다. 먼 길을 걸어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내셔널갤러리, 영국박물관을 순서대로 구경할 생각이다.

 

 

 

보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이기 시작한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국제사회의 주인공이 된 영국은 유럽대륙에서 탄생한 문화가 가장 늦게 전달되었다. 문화적으로 뒤처졌다고 생각한 영국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박물관과 미술관을 대중에게 무료로 개방하였다. 내가 자라온 70~80년대의 우리나라는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여서 문화예술에 관심을 두기 어려웠고 그 기회도 전혀 없었다. 그러하기에 영국의 이런 점이 부럽기만 했다.

 

 

 

예술가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클래식과 더불어 미술도 나에겐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었다. 40대 후반, 내 인생 처음으로 미술관에 갔었다. 제주 여행을 하던 도중 서귀포의 이중섭 미술관을 방문했었고 전시된 그림을 감상하면서 인간 이중섭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여행 전에 읽은 책 때문이었다. 아마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미술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특히 거대한 돌기둥이 압도적인 영국박물관은 마치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같은 모습이라서 그리스, 로마 시대의 부활을 꿈꾸는 것 같았다. 입구에 들어서면 3,312장의 삼각형 유리패널로 구성된 로비 천장을 볼 수 있다. 노먼 포스트의 작품으로 자연채광을 받고 빗물로 세척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로제타스톤, 람세스 2세 흉상, 아시리아 부조, 파르테논 신전 엘긴마블 등 수천 년 전 과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전 5시부터 시작한 도보여행은 오후 4시가 되어 끝났다. 장장 11시간의 대장정이었다. 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지만 그만큼 얻은 것이 많은 하루였다.

 

 

 

작년부터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비로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걸어 다닐 때 일상의 작은 기쁨을 느낀다. 이국적인 골목, 장소, 건축물을 볼 때면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고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의 수많은 여행보다 더 유럽여행이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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