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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유럽 2탄 - 1일차(5/27), 한국~영국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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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긴 터널을 말없이 걸었다. 비가 그친 새벽은 몽환적인 어둠과 물 내음이 묘하게 섞여 있다. 침묵을 깨는 건 여행용 가방이 만들어낸 바퀴 굴러가는 소리뿐이다. 소리의 형태가 콘크리트, 아스팔트, 보도블록 등에서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오전 340분 공항버스를 탔다. 조명이 꺼지고 안내방송마저 끝나자 공항버스는 사람 눈같이 생긴 전조등 불빛에 의지한 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달린다. 버스는 침묵만이 존재하는 공간 같았다. 잠이 들것 같지 않아서 뜬눈으로 일출을 기다린다. 어느새 사위가 밝아지고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집과 점점 멀어질수록 내 가슴은 더 크게 설레기 시작한다. 차장에 비친 들뜬 내 모습에 설레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새벽의 수줍은 풍경에 설렌다.

 

 

 

이번 여행을 처음 생각한 것은 작년 62123일 동안 유럽여행을 다녀온 직후이다. 작년 11월쯤 여행일정을 계획하고, 12월 초에 항공권을 구매하고, 올 초에 숙소와 나라별 교통편을 예약하는 모든 과정이 설렜다. 매년 떠나는 해외여행은 그 준비과정부터 설렌다.

나를 속박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무작정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오래전 상인들이 자신의 물건을 내다 팔 새로운 시장을 찾아 떠났을 때처럼 낯설지만 새롭고 진기한 문화를 만나고 싶을 뿐이다. 여행에 진심인 나, 정말로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용 가방을 부치고 나니 깃털처럼 가벼운 몸이 되어 하늘을 날 것 같았다. 거의 1년 만에 14시간이 훨씬 넘는 장거리 비행기를 탄다. 아스팔트 도로와 콘크리트 건물에 둘러싸인 일상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다보고 드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

내 유일한 영국인 친구 ‘Adley!’ 오늘 친구의 나라 영국 런던에 간다. 2000년도에 인도 오리사주에 있는 ‘Gram Vikas’라는 NGO 단체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해외 자원봉사자로서 일과가 끝나면 함께 블랙 럼을 마시고 공휴일이나 휴가 때는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다녔었다. 지금도 그 친구의 독특한 영국식 영어 발음은 콜카타 공항에서 인도식 영어 발음을 처음 들었던 순간만큼 충격적이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의 연락처를 모른다. 아무튼, 작년에 이어 또다시 시작된 유럽여행, ‘걷다 보니 유럽 2024’ 내가 학수고대하던 그 날이 바로 오늘이다. ‘Let’s go’

 

 

 

시간이 지나 히스로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얼굴에 미소를 띠고 안도하는 마음으로 안녕이라고 말했다. 영국 런던은 이미 세상 모든 것이 젖어 있다. 먹구름은 사라졌고 옅은 회색 구름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여행용 가방을 찾아 우리나라 버스터미널 같은 출국장으로 나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느리게 지하철을 타러 이동했다. 원래 타려던 노선이 일시로 운행 중단되어 엘리자베스 라인을 타고 패링턴까지 왔다. 구글맵을 한번 보고 호스텔까지 걸었다. 이곳에 천천히 스며들기 위해 거리를 걸으며 낯선 세상을 끊임없이 맴돌기로 다짐한다. 이번 여행은 지금 막 시작되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호스텔 클링크 261의 체크인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조금 필요했을 뿐이다. 체크인 키오스크 화면이 너무 작아 노안이 심한 내가 사용하기에는 불편했을 뿐이다. GOKI 앱으로 호스텔 키(비번)를 받았다. 내가 예약한 것은 6인실인데 배정된 객실은 4인실이고 위쪽 벙커 침대였다. 객실 공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좁았지만 내 나름의 방법을 금세 찾았다. 런던 물가를 생각한다면 3만 원대의 가성비 좋은 숙소이다.

 

 

 

 

코트를 입고 밖에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프림로즈 힐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세인트판크라스역을 지나 캠던단지까지 한달음에 걸었다. 대부분 상점은 문을 닫았고 마트와 술집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런던에서 조용하고 비싼 주거지역을 지나서 30분 만에 프림로즈 힐에 도착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노을은 볼 수 없었지만, 런던의 야경을 감상하기엔 좋은 장소였다. 그렇게 높지 않은 구릉이라 접근성도 쉬웠다. 친구, 연인, 가족 등과 술과 음식을 준비해서 삼삼오오 모여 노을과 런던의 야경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평화로움 그 자체였고 낭만적이었다. 나도 짧지만 강렬하게 그 순간을 즐겼다.

 

 

 

걸어갔던 그 거리를 다시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장거리 비행과 시차로 인해 피곤함이 밀물처럼 밀려왔지만, 그냥 잠잘 수 없어 지하 주방 공간에서 조촐하게 소주 파티를 열었다. 이렇게 조금 많이 긴 하루를 여행의 첫날로 보냈다. 오늘부터 내가 다녀온 여행을 기억하기 위해 그 과정을 기록하기로 했다. 매일 쓰는 일기를 대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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