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걷다보니 유럽 2탄 - 5일차(5/31),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여행

본문

 

시차 적응이 끝났다. 어제 오후 1145분에 잠들었다가 오전 4시가 지나서 일어났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 신선한 아침 공기가 스며든다. 세상은 어둠의 공포를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의 날을 활짝 열고 있다.

오늘도 변함없이 노트북을 들고 로비에 나왔다. 어제 일들을 재빠르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사무실에서 카톡이 왔다. 보이스톡으로 통화를 하면서 어제 미처 해결하지 못한 것을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때가 한국은 오후 2, 이곳 런던은 오전 6시가 되기 전이었다.

 

 

 

오늘처럼 느긋하게 움직인 날은 여행 중 처음이다. 샤워하고 닷새 동안 늘어놓은 짐을 하나둘씩 종류별로 모았다. 객실이 좁다 보니 2층 침대에서 짐과의 악전고투 끝에 여행용 가방에 넣을 수 있었다.

구름은 화가 난 듯 찌푸렸고 하늘에서 이따금 비가 내렸다. 런던에서는 외출할 때에 우산을 꼭 챙겨야 한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오늘 같은 날에는 코트보다는 경량 점퍼를 입어서야 했는데.

 

 

 

가야 할 목적지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발길이 닿는 대로 대로와 골목을 걸었다. 거리는 그동안 봤던 출근 시간보다 한결 한적했다. 오늘처럼 쌀쌀한 날씨에는 따뜻한 커피가 절로 생각난다. 영국의 다국적 커피 회사인 Costa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사서 소호로 향했다. 그러던 중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리버티 백화점과 마주했을 때 이곳이 백화점인 줄 미처 몰랐었다.

 

 

 

 

 

 

소호는 지금 축제 준비로 분주하다. 리버티 백화점 인근부터 피커딜리 서커스 인근까지의 리젠트 거리를 통제하고 있다. 런던 시각으로 61일 오후 8시이고 우리나라 시각으로 62일 오전 4시에 독일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가 경합하는 2024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아쉽게도 오늘 오후에 파리로 떠나 축제의 열기를 몸으로 느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런던의 예측 불가한 날씨를 몸소 체험하며 차이나타운을 지나 코번트 가든까지 걸었다. 광장에서 벌어진 서커스 공연도 보고 상점을 돌아다니며 구경도 했다. 그러던 중 지하 식당가의 클래식 음악회를 감상할 기회가 생겼다.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제자리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작은 울림을 주는 그런 연주였다.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에 좁은 골목에서 Pho S82 식당을 발견했다. 오늘같이 쌀쌀한 날에는 뜨거운 국물이 생각나는 건 당연지사다. 짧은 시간 동안 소고기 쌀국수를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지금까지 내가 여행 다닌 나라에서 먹은 쌀국수를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해보니 가격대가 다양했다. 최저는 베트남에서 2,000원이었고 최고는 영국에서 22,000원이었다.

 

 

 

오후 1시에 호스텔로 돌아왔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맡겨두었던 짐을 찾았다. 한 시간 정도 로비에 앉아 인터넷 서핑을 했고 오후 2시가 지나 해리포터 역을 잠시 들러보고 세인트 판크라스(St. Pancras) 기차역으로 향했다.

항공기를 타는 것 같은 보안 절차를 마쳤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뒤섞여 있는데 앉을 의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운 좋게도 빈자리에 앉게 되었다. 내가 타는 파리행 유로스타 플랫폼 번호가 나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편안하게 쉬었다. 출발 20분을 남기고 8번 플랫폼에서 탑승이 시작되었다. ‘Goodbye~ 런던, Goodbye~ 영국

 

 

 

예약한 좌석은 테이블 좌석이었고 3명의 가족과 함께 사용했다. 기차가 출발하자 아이는 핸드폰으로 오락을 하고 부부는 맥주를 꺼내놓고 마셨다. 여행용 가방에서 소주와 김부각이라도 꺼내야 하나? 마음속으로 아주 잠시 고민했다.

여행용 가방의 비밀번호를 돌려 열었는데 안 열렸다. 포맷이라도 된 듯 비밀번호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은 처음인데 솔직히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지갑에서 신용카드 번호도 확인해보고 떠오르는 여러 숫자도 확인해 봤지만 허사였다. 맙소사,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잠시 숨을 고르고 원시적인 방법을 시도했다. 세 자리 숫자 중 첫 숫자를 고정한 후 나머지 두 개의 숫자를 돌렸다. 그렇게 몇 분이 더 흐르고 첫 숫자를 3에 놓았을 때 비밀번호가 기억났다. 나의 이런 소동을 무심히 지켜보던 호주 가족도 여행용 가방이 열렸을 때 함께 기뻐했다.

서로 통성명을 한 후 소주와 맥주를 마시며 김부각과 초콜릿을 안주로 삼아 많은 대화를 나눴다. 놀랍게도 Jess가 나보다 1살 어렸다. 지루할 수 있었던 3시간여의 유로스타 기차여행이 흥미로운 추억으로 남았다. 파리 북역에서 헤어지기 전 컵라면과 볶음 김치 캔을 선물로 줬고 서로 페이스북 친구로 등록했다. 여행은 만났다 헤어짐의 연속인 것이다.

 

 

 

여행용 가방을 밀며 비 내리는 파리 거리를 걸었다. 호스텔까지 15분 정도 걸렸고 금방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파리 올림픽 때문에 숙박료가 많이 올랐다. 내가 예약한 객실은 8인실로 1박에 7만원 정도에 예약했었는데 숙박 당시에는 10만원을 훨씬 웃돌고 있었다. 영국에 비하면 객실도 훨씬 넓고 침대도 컸다. 주방시설이 없어 햇반과 컵라면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하루라도 빨리 부피를 줄여야 하는데.

 

 

 

짐을 꺼내놓고 샤워까지 했더니 오후 9시가 되었다. 파리에서의 나의 패션은 반바지와 민소매다. 비는 그쳤지만 언제 또 내릴지 몰라 우산을 챙겨서 호스텔을 나섰다. 생마르탱 운하를 따라 파리에서의 첫 일정이 시작되었다.

강물은 그 색깔만큼 지저분한 냄새가 났고 다리 아래 좁은 공간은 노숙자들의 텐트가 여러 개 있었다. 올림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운하 주변으로 무료로 이용 가능한 간이 화장실도 설치되어 있었다. 강기슭에 앉아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5시간 전까지만 해도 영어만 들렸는데 이곳은 내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불어만 들린다. 감미로운 불어의 어감이 내가 파리에 왔다는 것을 더 실감하게 했다.

 

 

 

해가 쉽사리 지지 않았다. 오후 1030분쯤 호스텔로 돌아왔다. 오늘이 불타는 금요일이라 그런지 객실은 텅 비어 있었다.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핑계 같지만, 국경선을 넘었기에 몸도 피곤했고 시차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서 졸음이 밀려왔다. 물론 내일도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찍 일어나겠지만.

내일이 더 기대되는 파리에서의 첫날밤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