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와타즈미신사

 

 

이즈하라 - 히타카츠 종단버스 중간 기착지인 니이 버스정류장에서

신화의마을자연공원 캠핑장 방향으로 걸어서 30분정도 걸어오면 와타즈미신사를 만나게 됩니다.

와타즈미신사, 신화의마을자연공원캠핑장, 에보시다케전망대가 다 같은 방향이고 순서대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일본 헤이안(平 安)시대(794~1185)의 율령 세칙을 적은『엔기시키( 延喜式 )』의「진묘쵸( 神名帳 )」에

対馬国上県郡和多都美神社 」로 표기된 신사가 바로 이곳으로 아주 오랜 역사와 유서를 간직한 곳이 와타즈미신사입니다.

 

 

 

 

와타즈미신사에는

천신( 天神 )인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彦火火出見尊)와

해신( 海神 )인 도요타마히메노미코토(豊玉姬命)를 모신 해궁으로 이들에 얽힌 용궁전설이 남겨져 있는 곳입니다.

 

 

 

 

와타즈미신사 앞에는 스모장이 위치하며

그 옆으로 우물(정화수)이 있는 건물이 있습니다.

 

스모장에는 여자들은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요.

 

 

 

 

 

우물(정화수)은 먹는 물이 아니라

국자로 물을 떠서 왼손, 오른손, 입을 순서대로 씻는 정화수의 역할을 하는 장소입니다.

 

 

 

 

이 곳이 해신을 모신 본전입니다.

본전 앞에는 수호신이 코마이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먼 신화 시대에 해신인 도요타마히코노미코토(豊玉姬命)가

궁을 지어 와타즈미노미야(海宮)라 하였습니다.

 

어느날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가 잃어버린 낚시바늘을 찾기위해

이 궁으로 내려왔다가 도요타마히코노미코토의 딸 도요타마히메를 만나 결혼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본전 옆에는 각자의 소원을 적어 걸어두는 나무판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일본사람이 적은 글들이이고 몇개가 한국분이 써 놓은 글이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특히 아빠가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간절히 빕니다.

 

 - 수인 올림 -

 

 

 

 

본전 앞에서 바라본 5개의 토리이(鳥居) 중

2개는 바닷속에 세워져 있어 밀물과 썰물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하여

먼 옛날 신화시대를 연상할 수 있는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토리이(鳥居)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문이며 바다와 신사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즉, 신의 세상과 인간의 세상의 경계역할을 하는 문입니다.

또한, 이 다섯개의 토리이(鳥居)는 다섯개의 탐욕을 뜻한다고 합니다.

 

 

 

 

본전 정면의 다섯 개의 토리이(鳥居)중 바다 위에 서 있는 두 개의 토리이(鳥居)는

만조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뀌어 잔잔한 아소만과 어우러져 신화의 세계를 연상케합니다.

 

 

 

 

 

이곳 와타즈마신사는

역사적으로 각 시대별 번주나 국가의 원수들이 숭상한 곳이며

쓰시마 도민은 물론 일본 전국 각지에서도 많은 참배객들이 찾고 있는 곳입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와타즈마신사의 뒤에는 삼나무가 멋지게 우거진 숲이 있습니다.

 

 

 

 

그 우거진 삼나무 숲사이로 걷다보면 또 하나의 토리이(鳥居)가 볼 수 있습니다.

 

 

 

 

 

특별하게 보이지 않지만 여기가 바로 분묘가 있다고 합니다.

토리이(鳥居)를 지나 조금 걸어가면 고목아래에 바위가 보입니다.

 

이 바위를 부부바위라 부르며

천신의 아들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彦火火出見尊)와 용왕의 딸 도요타마히메노미코토(豊玉姬命)의 분묘가 있습니다.

 이 부부바위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분묘를 지나 삼나무숲길을 벗어나면 마지막 토리이(鳥居)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곳을 지나 숲길을 벗어나면 신화의마을자연공원 주차장이 나옵니다.

[대마도]만관교, 만제키바시(萬關橋)

 

 

아소베이파크 캠핑장에서 감성이 충만한 우중캠핑을 무사히 마치고
이른 아침 배낭을 꾸려 아소베이파크 인근에 위치한 만관교,만제키바시로 향했습니다.

 

 

 

 

아소베이파크에서 만제키바시까지는 도보로 대략 20분~25분 정도 걸립니다.

전날 이즈하라-히타카츠 종단버스를 타고 왔던 방향으로
즉 이즈하라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이정표를 만나게 됩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 어느 순간에 만제키바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만제키바시 앞에 위치한 메고시마는
해군의 함대를 통과시키기 위해 판 만제키세토에서
바위와 토사가 대량으로 버려져 바다를 매운 결과 이 곳이 생긴 것입니다.

 

지금도 이 지역의 지하에는 만제키의 토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해수면과 다리까지의 높이는 약 50m입니다.
현재 이 다리는 해상, 육상의 교통수단이 되고 있고 동시에 대마도의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고 있습니다.

 

 

 

 

1900년 일본해군이 함대의 통로로써

인공적으로 굴삭한 해협에 다리를 세웠으며
이는 현재 둘로 나뉘어진 쓰시마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습니다.

 

 

 

 

대마도가 원래는 하나의 섬이었으나
일본 해군함 출입을 위해 운하를 만들면서 두개의 섬으로 나뉘어진 것입니다.

 

 

 

 

이 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러일전쟁때 이 운하를 이용하여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무찔러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이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 일본이 자랑하는 일본해군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입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의 해전술을 깊이 연구하고 마음속 깊이 동경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순신은 해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독이며 이순신과 비교했을때 자신은 하사관도 못 된다." 라고 이순신을 아주 높이 평가하였다고 합니다.

 

 

 

 

초대 만제키바시(1900년 완성)

옛 일본해군에 의해 건설된 철교로 길이 100m, 폭 5.5m, 높이 약 36m입니다.

 

 

 

 

2대 만제키바시(1956년 완성)
낙도진흥법에 따라 완성된 아치형 철교입니다.
길이 약 81m, 폭 5.5m, 높이 약 30m로 이 다리의 완성으로 버스가 섬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습니다.

 

 

 

 

3대 만제키바시(1996년 완성)
전체 길이 210m, 폭 10m입니다.
섬 전체의 도로망도 정비되어 남북을 연결하는 심리적 거리도 가까워 졌습니다.

 

 

 

 

만조시의 조류는 여러 겹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인근의 만제키전망대에 올라서면
쓰시마의 두 섬을 잇는 만제키다리와 리아스식해안 아소만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만관교, 만제키바시(萬關橋) 인근에 위치한 공원에는
주차장, 화장실이 있으며 돌지붕으로 된 휴식공간이 있습니다.

 

 

 

 

 

돌지붕은 바람에 지붕이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생겨난 건축법입니다.

 

 

 

 

만제키바시 정류장에서

히타카츠-이즈하라 종단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대마도]히타카츠 - 야보텐야보텐(돈짱, 짬뽕 등)

 

 

3박 4일간의 대마도 백패킹을 마치고
미우다해수욕장 캠핑장에 히타카츠 시내로 온 후 88개소 지장보살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지도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서
대마도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식당이 히타카츠의 야보텐(野暮天)입니다.

 

 

 

 

대마도 히타카츠 조용한 도로가에 자리하고 있는 식당입니다.

 

사실, 야보텐은 한국인들에게 돈짱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돈짱은 쓰시마식 양념 돼지갈비로 전후 쓰시마에서 살았던 한국인의 양념갈비가 원조라고 합니다.

 

 

 


식당 입구에는 한글로 야보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점심메뉴로는 돈짱, 나가사키 짬뽕(런치예약제)만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오전 10시 30분 ~ 오후 3시까지 점심 영업을 시작합니다.
저녁 영업은 오후 5시 30분 ~ 오후 12시까지 입니다.

저녁시간은 주로 선술집으로 운영된다고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왼쪽편에 손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가 있습니다.
한참 매르스로 민감할때여서 야보텐에 들어서자마자 손부터 씻었습니다.

 

 

 

 

 

 

무질서하게 먼지가 잔뜩 묻어있는 진열된 술병들


난잡하게 탁자위에 놓여진 여러가지 물건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잡다한 액자와 달력들

거미줄이 가득한 천장의 조명들

깨끗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식탁의 모습들

 

전형적인 우리나라 시골식당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야보텐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명해진 것은
2013년 5월 3일 VJ특공대에 방송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집 세트메뉴 있어요. 돈짱과 짬뽕!! 맛있어요."

청결하지 못한 식당내부와 사뭇 다르게
야보텐 사장님은 위트가 철철 넘치는 사람입니다.


 

 

 

난잡한 탁자위에 물컵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것은 물컵의 크기가 작습니다.

안 그래도 작은데... 여자손님은 더 작은 컵에 물을 줍니다.
다른사람들은 세트메뉴를 시키는데 혼자라서 나가사키 짬뽕만을 주문했습니다.

 

내 탁자에도 물컵과 물수건이 놓여졌습니다.
야보텐을 찾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주문한지 20분만에 나가사키 짬뽕을 만날 수 있었다.

 

 

 

 

드디어 한국 방송에 나왔던 나가사키 짬뽕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비주얼은 그냥 그렇습니다.
생새우,생표고, 양배추, 양파, 청경채 등 채소류가 들어 있습니다.

 

 

 

 

국물을 먹어봤습니다.

육수에 돼지 뼈와 닭 뼈를 같이 넣어 끓이는 국물은 깊은 맛이 우러났습니다.

 

대마도가 나가사키현에 포함되어 있어

대마도에서도 나가사키 짬봉이 먹거리중 하나입니다.


 

 

 

 

면은 양은 많지 않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면은 거친감이 조금 들지만 부드럽게 잘 잘라집니다.

돈짱+나가사키 짬뽕 2인분 = 2,000엔 입니다.
나가사키 짭뽕은 800엔 입니다.

 

혼자라서 돈짱을 먹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다음에 방문할때는 꼭 돈짱+나가사키 짬뽕의 세트메뉴를 먹어야 겠습니다.

 

혹시 대마도 히타카츠에서 야보텐을 방문할 경우에는

꼭 돈짱+나가사키 짬뽕의 세트메뉴를 주문해 드세요. 꼭요~!!!


 [대마도]대마도 백패킹 1일차 - 아소베이파크 캠핑장

 

 

아소만공원에 위치하여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아소베이파크 캠핑장을 나의 대마도 백패킹 첫날의 숙박지로 선정했습니다.

 

이즈하라에서 도보로 10분이내에 갈 수 있는

최익현선생순국비가 모셔진 수신사[슈젠지(修善寺)], 만송원[반쇼인(万松院)], 덕혜옹주결혼봉축기념비를 구경한 후

티아라몰에서 시마토쿠 통화 상품권을 이용하여 백패킹을 위한 장을 보았습니다.

(아소베이파크 인근에는 쇼핑을 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각종 맥주... 회... 도시락... 과자... 등

시마토쿠 통화 구입하기 --- 바로가기

 

제일 중요한 이소가스는 한쪽 유리테이블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뜨악~~ 우리나라의 두배 가격입니다. 세후 498엔(약 5,000원).

 

 

 

 

 

밸류마트는 이소가스가 없고 부탄가스만 있습니다.

필히, 어댑터를 준비해야 합니다.

 

 

 

 

아소만공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즈하라 티아라몰 버스정류장에서 이즈하라-히타카츠 종단버스를 타야 합니다.

 

1일 승차권(1,000엔)을 구매한 후

13:30에 출발하는 종단버스를 탔습니다.

 

 

 

 

이즈하라-히타카츠 종단버스를 타고

이누보에 입구(犬吠入口)정류장 하차 후 도보로 20분 정도 걸어와야 하지만

운전기사에게 아소베이파크에 간다고 말을 하니 아소베이파크 앞에서 내려주었습니다.

 

일본 대마도 운전기사분들 정말로 친절합니다.

** 티아라몰 버스정류장에서 40~50분정도 걸립니다. ** 

 

 

 

 

한글로 안내판이 있어서 찾기도 쉽습니다.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아소베이파크는 리아스식 해안인 아소만 일각에 있는 해변공원입니다.

 

봄에는 현해 진달래, 동백꽃, 여름에는 연꽃 공원의 수면 위로 연꽃을 볼 수 있으며,

가을에는 국화와 코스모스가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캠프장을 비롯해, 휴경지를 이용한 생태 공원, 퍼팅 골프장, 다목적 광장, 전망대, 산책로 등이 정비되어 있습니다.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아소베이파크 입구가 나옵니다.

 

뭐... 딱히 입구라고 표현하기 그렇지만...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입구를 폐쇄하여 차량이 통과할 수 없으니

차량을 이용하여 아소베이파크를 찾는 사람들은 주의해야 합니다.

 

[입구 차량통제시간]

4월~6월, 10월은 오후 6시

7월~9월은 오후 7시

11월~3월은 오후 6시

 

 

 

 

입구를 통과해서도 한참을 도로를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아소베이파크 안내도를 잘 보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오르락 내리락 걷다보니 저 멀리 관리사무소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관리사무소 뒤편으로는 넓은 잔디밭의 다목적광장이 있습니다.

 

 

 

 

 

일본 대마도의 캠핑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예약신청서를 작성하여 FAX로 보낸 후 예약확인 FAX를 받아야 합니다.

 

예약신청서 다운로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쓰시마부산사소(클릭) - 여행정보 - 캠핑장

 

시마토쿠 통화 상품권으로 캠핑장 이용료 1,000엔을 지불하고 오토캠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관리사무소에서 오토캠핑장까지 한참을 걸어야 합니다. 백패킹은 걷는 것이니까요.

관리사무소에 사람이 없을 경우애는 오토캠핑장으로 가서 사이트를 구축하면 알아서 찾아옵니다.

 

[아소베이파크 캠핑장 이용안내]

개장일 : 연중(1월 1일~12월 31일)

체크인 : 13시 ~ 16시 30분 (시간엄수)

 

 

 

 

 

관리사무소를 지나 도로를 내려가면 사슴과 말 사육시설인 후레아이 목장이 나타납니다.

 

아소만공원에는 캠프장을 비롯해, 휴경지를 이용한 생태 공원, 퍼팅 골프장, 다목적 광장, 전망대, 산책로 등

다양한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는데 그중에서 사슴 사육시설이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1회 50엔으로 건초를 말과 사슴에게 직접 줄 수 있는 체험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캠핑지로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아소베이파크 캠핑장입니다.

 

 

 

 

후레아이 목장을 지나 도로를 걷다보니

드디어 내 눈앞에 캠핑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냥 두 눈으로 봐도 상당히 아름답고 시설이 잘 갖춰진 듯 보입니다.

 

넓고 푸른 잔디밭의 캠핑장이며 각 사이트마다 개별 주차가 가능합니다.

각 캠핑 사이트마다 화덕이 있고, 밤이되면 불이 들어오는 조명시설도 되어 있습니다.

이 조명시설 기둥에는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콘센트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물론 일본은 110V라서 돼지코가 필요합니다.)

 

 

 

 

캠핑장 한쪽에는 카누 선착장을 뒤에 두고

우람하게 서 있는 큰 목조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1층에는 남녀 화장실과 샤워실이 위치합니다.

심지어... 샤워실은 뜨거운 물까지 나옵니다.

 

 

 

 

왼쪽부터 태울수 있는 쓰레기, 패트 병, 알류미늄 캔, 공병

건물 가운데 통로에는 재활용 쓰레기를 넣은 박스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층 계단으로 올라가면 대피소(휴게실)가 나옵니다.

문은 항상 개방되어 있으며 탁자, 담요, 조명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대마도가 섬이고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려서, 이런 대피소를 만든 것입니다.

실제로 저녁에 엄청난 폭우가 내려서 잠깐이나마 대피소를 이용하였습니다.

 

 

 

 

 

대피소 건물 왼쪽으로 취사장 건물이 있습니다.

 

비가 내려도 안심하고 요리를 할 수 있도록 화덕이 마련되어 있었고

4개의 수도꼭지와 개수대가 있었습니다. 물론... 수세미와 세제도 있습니다.

 

 

 

 

 

오늘 아소베이파크 캠핑장 사용자는 오직 나 혼자입니다.

 

세상을 다 갖은 자의 여유로운 시간을 아주 천천히 즐기면서 사이트를 구축했습니다.

한국 대전에서 이곳 대마도 아소베이파크 캠핑장까지 오는데... 엄청나게 분주했던 긴 하루였습니다.

 

 

 

 

 

캠핑장에 오기전

이즈하라 티하라몰에서 장을 본 회와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물론 시원한 맥주가 빠져서는 안되겠지요.

 

아주 편안한 자세로 회를 음미하며 먹었습니다.

맥주도 마셨습니다. 캬~!!! 죽입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산책로를 따라 산책도 하고 마지막으로 캬약 선착장을 찾았습니다.

 

 

 

 

 

협곡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육지의 침강에 의해 생성된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대한해협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굴곡미는 쓰시마 자연경관의 백미이며

수 많은 무인도와 잔잔한 수면에 비친 섬들의 모습은 일본 최고로 일컬어질 정도의 절경을 자랑합니다.

바닷물은 너무 맑고 깨끗하여 바닥까지 보입니다.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기 위해

샤워를 마치고 텐트안에서 꿀맛같은 낮시간의 단잠에 빠졌습니다.

 

저녁에 맛있는 요리를 해 먹는 꿈을 꾸면서

쿨쿨... 아주 잘 잤습니다.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자장가로 들렸으니까!!

 

 

 

 

비나 바람의 저항에 매우 강하고 안정성이 뛰어난

나의 마모트 라임라이트2P 텐트는 나의 피로를 풀어주는 피로회복제 역할을 했습니다.

자그마한 이 공간에서 기운을 차리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드니까??

 

 

 

 

점점 비 줄기는 거세지고

평소보다 빨리 찾아오는 어둠에 맞서 조명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입니다.

 

3박 4일동안 어둠에서 내 두눈을 밝혀준 마들렌랜턴!!!

텐트와 더불어 백패킹의 영원한 동반자입니다.

 

 

 

 

이런 날에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푹 자는게 상책입니다.

비가 그칠 줄 모르니 내 행동반경이 텐트안으로 한정되어 버렸습니다.

 

우중캠핑은

간담을 서늘하게 하거나 마음을 죌 정도로 아슬아슬한 느낌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너무 푹 자서 새벽녘에 나도 모르게 깨었습니다.

여전히 비줄기는 그칠줄 모릅니다. 오히려 더 거세진 듯 맹렬히 비줄기가 내립니다.

 

핸드드립 커피는 아니지만...

믹스커피 한잔이 생각나는 시간입니다.

 

비오는 날 캠핑... 우중캠핑...

텐트속에서 비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모금의 여유는 나의 감성을 충분히 자극시키고 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모기 등... 날벌레와 숨바꼭질을 하는 동안 날이 밝아왔습니다.

밤새 억새게 퍼붓던 비줄기도 그치고... 그 흔적만이 남았습니다.

 

아무도없는 낯선 일본 대마도 넓고 넓은 아소베이파크 캠핑장에서

나 홀로 밤을 지샌 백패킹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벌써 자리잡고 있습니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하기 힘든...

나의 가슴속에서만 그 실체를 알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인 것입니다.

 

 

 

 

서둘러 텐트를 정리하여 대피소에 왔습니다.

텐트의 물기를 제거하는 동안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습니다.

 

이제는 다시 배낭을 꾸릴 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오토캠핑장에서 어제와 반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관리사무소를 지나 입구까지 아쉬움을 가득 간직한 채 걸어 왔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도 입구는 폐쇄되어 차량통행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일본 대마도에서의 백패킹 이틀째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마도 백패킹 2일차를 기대해 주세요.

[대마도]이즈하라 - 이사리비공원

 

 

이즈하라항에서 도보로 15분~20분 거리에 위치한 이사리비공원(漁火公園)은

관광객들에게는 잘 안 알려진 곳으로 무료로 족욕이 가능한 시설이 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지도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사리비공원을 가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 길이 있습니다.

이즈하라항에서 관광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 수선사에서 올라가는 길,맛집 센료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입니다.

 

 

 

 

나는 맛집 센료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서 수선사 방향으로 하산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어서 걷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습니다.

골목을 벗어나 관광도로인 큰 도로에 만나면 그나마 차들이 조금 다니기 시작합니다.

 

 

 

 

가로수가 심어져 있는 한적한 인도를 따라

쓰시마 대아호텔 방향으로 올라가면 이사리비공원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차장이 있는 공원입구로 안 가고

사진에서 보이는 오른쪽 길로 들어갑니다.(바로 위가 공원입구입니다.)

 

 

 

 

이사리비공원 전망소에서 바라보는

대아호텔과 이사리비공원의 만남의 광장 모습입니다.

 

 

 

 

바닷가쪽 완만한 능선부에 헬기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넓고 넓은 잔디밭에 놓여진 평의자에서 바라보는 탁트인 바닷가 풍경은 실로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천천히 발걸음을 전망소로 향했습니다.

 

 

 

 

해가 지고 나면

평화로운 바다에 떠 있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이 아름다고 합니다.

 

시원하게도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닷바람이 소금끼가 있어 찝찝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이곳 바람은 정말로 깔끔한 바람입니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만 봤습니다.

막혀있던 무언가가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기분이 아주 짱입니다.

 

이젠 족욕을 하러 가야겠습니다.

 

 

 

 

전망대에서 다시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늘 길목에는 알 수 없는 조형물이 있는데 놀이기구인지는 분간을 할 수 없습니다.

 

주차장에는 화장실이 있고

일본 대마도 어떤곳에서도 빠지면 서운한 자판기도 있습니다.

 

 

 

 

족욕시설은 정자형태의 목조건물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입구를 통해 뜨거운 온천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붕안쪽에는 온천물의 성분표시가 되어 있는 안내판도 비치되어 있습니다.

 

족욕시간은 아침 10시에서 오후 8시까지 입니다.

 

 

 

 

 

오늘은 대마도 백패킹 둘째날 오전입니다.

어제도 많이 걸었지만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많이 걸었습니다.

그리서 나에겐 족욕이 최고의 휴식이 된 셈입니다.

 

 

 

 

 

이사리비공원 온천물은 신경통, 관절통, 만성소화병에 좋다고 합니다.

 

뜨꺼운 온천물이 콸콸 쏟아지는 입구에 발을 대어보기도 하고

편안하게 두 다리를 쭉 뻗어 온천물에 그냥 담가보기도 했습니다.

 

 

 

 

내 고향 유성온천을 어릴적부터 많이 이용해서 그런지

뜨거운 물인데도 왜 시원하다고 말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시원합니다. 아침인데도 맥주가 절로 생각났습니다.

 

편안하게 족욕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오늘 점심은 이즈하라 핫쵸식당에서 맛있는 회정식을 사 먹을 에정입니다.

 

 

 

 

이즈하라의 다른 관광지보다 난 이곳이 제일 좋았습니다.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에 오시면

탁트인 바다풍경과 함께 족욕도 할 수 있는 이사리비공원을 방문해 보십시요.

여행이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틈을 만나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마도]이즈하라 - 만송원, 반쇼인(万松院)

 

 

19대 대마도주 소오 요시토시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국과의 국교회복을 위해 전력을 다하여 조선통신사 초청을 성사시킨 인물입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지도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만송원, 반쇼인(万松院)은 20대 대마도주 소오 요시나리가 아버지 요시토시의 명복을 빌며

1615년에 창건한 쇼온지(松音寺)를 1622년 요시토시의 법호를 따라 반쇼인으로 개칭한 곳으로,

이곳에 역대 쓰시마번주와 그 일족이 모셔져 있습니다.

 

 

 

 

만송원, 반쇼인(万松院)은 종합쇼핑센터 티아라몰에서

덕혜옹주결혼기념비 가는 방면으로 직진해서 5~10분 거리에 위치합니다.

 

 

 

 

만송원, 반쇼인(万松院)은 에도시대 쓰시마번의 관청이 위치해 있었던

이즈하라의 서쪽 아리아케(有明)의 산기슭에 위치해 있습니다.

 

낙엽수림이 뒤덮힌 일대를 포함해

「쓰시마번주 소가묘소」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일본 3대 묘지 중 한 곳입니다.

 

본당은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여러 차례 중건되었습니다.

현존하는 절문은 쓰시마에서 가장 오래된 모모야마(桃山:1568∼1600)양식으로 창건 당시 그대로입니다.

 

 

 

 

만송원, 반쇼인(万松院) 본당문 왼쪽으로 매표소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송원, 반쇼인(万松院)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삼나무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입장료는 성인기준 300엔입니다.

개관시간은 09:30~18:00, 연중무휴입니다.

** +81-920-52-0984(문의는 일본어로만 가능) **

 

무거운 배낭을 잠시 매표소에 맡겨두고 한글로 된 팜플렛을 꼼꼼하게 읽어 봤습니다.

이젠 아주 편안한 자세로 만송원, 반쇼인(万松院)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매표소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비파나무 열매를 구경하면서

30여m 걷다보면 만송원, 반쇼인(万松院) 본당이 모습을 보입니다.

 

 

 

 

이곳은 도쿠가와(德川) 역대 장군들의 위패 및 조선통신사 관련유물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2대 장군 히데타다부터 13대 장군 이에사다와

그 자손들의 것을 합쳐 모두 16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초대 이에야스의 위패는 없지만 초상화가 비장되어 있습니다.

 

이들 위패는 만송원, 반쇼인(万松院)의 남쪽에 있는 권현당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을 이관한 것인데

조선통신사는 이 권현당에 참배하고나서 만송원, 반쇼인(万松院)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위패가 모셔진 한쪽 벽면에는 조선국왕에서 받은 하사품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 하사품의 이름을 미쯔구소쿠[삼구족(三具足)]이라 하는데

불당에 공양을 드릴때 사용하는 향로, 꽃병, 촛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묘지는 햐쿠간기(百雁木)로 불리는 132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마련되어 있습니다.

 

 

 

 

돌계단 양쪽에는 촟불을 밝힐 수 있는 석등이 있습니다.

 

 

 

 

 

아주 천천히 햐쿠간기(百雁木)로 불리는 돌계단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이즈하라에 처음으로 관청을 둔 宗가 제10대 사다쿠니와

요시토시 이하 32대까지의 번주와 그 가족의 묘가 울창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상단에는 요시토시 이래의 번주와 그 정부인,

중단에는 측실과 아동,

하단에는 일족 및 소가(宗家)에서 출가한 사람 등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 조선무역이 활발하였던 시기의 번주 요시나리(義成)와 요시자네의 묘는

다른 묘에 비해 훨씬 커 쓰시마와 조선의 무역이 얼마나 활발하였던가를 짐작케 합니다.

 

 

 

 

햐쿠간키(돌계단)를 오르면 석단과 묘지 옆에

하늘을 찌를 듯한 3그루의 삼나무가 서 있습니다.

 

원래는 20그루 이상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3그루의 삼나무가 깊고 한적한 숲속을 제압하고 있습니다.

 

 

 

 

나무 둘레는 약 5.2m~7m, 높이는 35m~40m에 달합니다.

1966년에 나가사키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수령은 분명하지 않지만

1,600년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섬 전체에서 최고령인 삼나무입니다.

 

 

 

 

만송원, 반쇼인(万松院)] 절문 오른쪽에 위치한

운치있는 풍경을 가득지닌 아치 돌다리는 묘지 입구의 문으로 연결되며 평상시에는 닫혀 있습니다.

 

 

 

 

 

1년에 딱 한번만 열리는데

매년 8월 첫째주 주말에 행해지는 만송원, 반쇼인(万松院) 마쯔리때 무료개방이 됩니다.

그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표소를 통해 입장료를 내고 입장해야 합니다.

[대마도]이즈하라 - 핫쵸(향토요리, 튀김요리 전문)

 

 

대마도 백패킹 둘째날입니다.

또한, 이즈하라에서 보내는 둘째날이자 마지막 날이기도 합니다.

오후엔 신화의마을자연공원 캠핑장으로 종단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아소베이파크 캠핑장에서 첫날을 캠핑으로 보내고

이른 아침에 만제키바시를 구경한 후 이즈하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지도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티아라몰에 위치한 (주)대마교통에 배낭을 맡겨두고

이사리비공원을 다녀온 후 점심을 먹기 위해 핫쵸식당에 갔습니다.

 

 

 

 

이즈하라에는 많은 유명한 맛집 식당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곳은 핫쵸식당입니다.

 

내가 핫쵸식당을 선택한 이유는 신선한 해산물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회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연한 선택입니다.

 

 

 

 

입구에는 한국어로 된 안내시설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한국사람들이 찾아오면 대마도 곳곳에

특히 이즈하라, 히타카츠의 식당 등에는 한국어로 표기가 되어있습니다.

(일본어를 못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름처럼 8자가 붙는 날이 핫쵸DAY 입니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 ~ 호후 2시 / 오후 4시 ~ 오후 10시

 

비정기적인 휴무를 갖습니다.

아마도 쉬는날은 주인장 맘대로 결정할 겁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홀의 식탁과 방때문에 첫인상이 아주 좋았습니다.

 

 

 

 

식당내부에 들어서니 이미 한 무리의 한국 관광객들이 방에서 카츠동(돈까스덮밥)을 점심으로 먹고 있었습니다.

카츠동(돈까스덮밥)은 미소시루(일본 된장국)와 간단한 반찬(단무지와 우엉채)이 함께 나오는데 가격은 700엔(약 6,500원)입니다.

 

 

 

 

홀의 식탁 위쪽에는 일본화폐를 액자로 전시해 놓았는데

자국의 화폐를 액자에 담아 걸어두었다는게 나로서는 신기하게 여겨졌습니다.

 

 

 

 

사실... 방에 들어가 앉으려고 했는데

주인장으로 보이는 분이 홀의 탁자에 앉으라고 해서 앉았습니다.

 

주인장으로 보이는 이분.

약 70세 정도로 보였는데 굉장히 친절하셨습니다.

 

 

 

 

메뉴판이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메뉴는 한글로도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가격은 한국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아주 비싸지도 않고 한국수준과 비슷하거나 조금 비싼 정도입니다.

 

저녁식사라면 생선 이리야키를 주문을 했겠지만

지금은 점심식사라서 1,600엔(약14,600원)하는 회정식을 주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사히 생맥주도 주문을 했습니다.

 

 

 

 

주문을 한 후 홀 식탁에 있는 수저통에서 젓가락을 꺼냈습니다.

 

이상하게 오늘 핫쵸식당의 젓가락에 꽃혔습니다.

대마도 백패킹 여행을 하는데 젓가락이 준비 못했습니다.

그래서 핫쵸식당에서 젓가락을 3개를 가져갔습니다.

 

 

 

 

주문을 마치고 난 뒤에 물과 물수건이 나왔습니다.

 

물컵은 왜이리 작고 물은 왜 이리 조금 담는지에 대해서는

한국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잠시 후

아사히 생맥주가 나왔습니다.

가격(500엔 - 약4,500원)대비 양이 굉장히 적었지만 맛은 아주 좋았습니다.

 

 

 

 

맥주 한모금 들이키고 있었더니

회정식에 나올 회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숙성시킨 다양한 종류의 회를 두툼하게 썰어서 접시에 담습니다.

어떤 종류의 회는 토치에 불을 붙혀 살짝 겉을 익힌 후 접시에 담습니다.

 

일본말을 전혀 할 줄 몰라서

어떤 회인지 알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보기만해도 먹음직스럽습니다.

 

 

 

 

한국에서 먹는 회는

바로 회를 떠서 먹는 경우가 많아 신선하지만 깊은 맛이 없는 반면

 

일본에서 먹는 회는

숙성을 시킨 회를 두툼하게 썰어 와사비를 넣은 간장소스에 찍어 먹으면 회의 식감이 쫄깃하고 맛에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깔끔한 큰 접시에 담겨진 4종류의 두툼한 회, 미역, 와사비, 간장

큰 그릇에 담겨진 쌀밥과 미소시루(된장국), 작은 접시에 담겨진 단무지, 우엉채

 

드디어, 내가 앉은 홀의 식탁에 회정식이 세팅되었습니다.

 

다음에 또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를 오게 된다면

저녁시간에 꼭 핫쵸식당을 다시 방문해서 생선 이리야키를 먹어야 겠습니다.

[대마도]이즈하라 - 덕혜옹주결혼봉축기념비

 

 

조선왕조 26대 고종의 왕녀 덕혜옹주는 1931년 5월 쓰시마 번주 소 타케유키(宗 武志)백작과 결혼하였습니다.

 덕혜옹주결혼봉축기념비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뜻으로 쓰시마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 의해 2001년 11월에 복원된 것입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지도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덕혜옹주결혼봉축기념비는 대마역사민속자료관 뒷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마역사자료관에서 아리아케 등산로 가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

종합쇼핑센터 티아라몰에서 만송원, 반쇼인(万松院) 가는 방향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종합쇼핑센터 티아라몰에서

만송원, 반쇼인(万松院) 가는 방면의 중간에 위치하며 도보로 2~5분 거리입니다.

 

 

 

 

 

가네이시 성터를 지나 가네이시성 정원으로 향해서 걸어 들어가면 됩니다.

 

 

 

 

도중에 조그마한 사각기둥의 비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비석에는 조선통신사 접우의 땅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곳이... 그럼 우리땅인가요?? 대마도는 우리땅!!!

 

 

 

 

조선통신사 접우의 땅이라고 적혀 있는

비석 뒤편 정원에 덕혜옹주결혼봉축기념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기념비 하단에는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기부한 사람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습니다.

 

 

 

 

덕혜옹주는 1912년 5월 25일 조선 제26대 왕(황제) 회갑을 맞은

고종()과 궁녀인 복녕당() 양귀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측실이었기 때문에 옹주()라고 호칭했습니다.

양씨는 덕혜옹주를 낳고 복녕당이라는 당호를 하사받았습니다.

덕혜옹주는 고종의 고명딸로, 세심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고종에게는 모두 4명의 딸이 있었지만 모두 1살이 채되지 못해 사망하였기 때문에 덕혜옹주가 외동딸이었습니다.

1916년 준명당에 유치원을 개설하였고 덕혜옹주는 이곳을 다녔습니다.


덕혜옹주는 서녀()였다는 이유로 일본총독부에 의해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여섯 살 때인 1917년 정식으로 황적에 입적하였습니다.

고종은 앞서 왕세자 이은처럼 일본에 강제로 데려가거나, 일본인과 결혼을 피하려고 하였습니다.

1919년 일제에게 딸을 빼앗기기 싫었던 고종에 의해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 약혼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고

시종 김황진은 덕수궁 출입을 금지당했으며 그해 1월 21일 고종은 갑자기 승하하였습니다.


1921년 덕혜옹주는 서울에서 히노데 소학교에 다녔습니다.

당시 히노데 소학교는 일본인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였으며 조선인은 고관의 자재 일부가 다녔던 학교였습니다.

그동안 복녕당 아기씨로 불렸다가 이무렵에 덕혜()라는 호를 내려받았습니다.

1925년 3월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일제의 요구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갔습니다.

 

3월 28일 오전 10시 경성발 열차를 타고 부산을 거쳐

시모노세키[]까지 선박으로 갔으며 도쿄까지는 열차로 이동하였습니다.

3월 30일 오전 8시 도쿄에 도착하자 이방자 여사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1925년 4월 아오야마에 있는 여자학습원을 다녔는데, 항상 말이없고 급우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1926년 순종이 위독하자 오빠 이은과 함께 귀국하였다가

4월 25일 순종이 사망하자 국장에 참석하지 못하고 5월 10일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당시 일제는 덕혜옹주가 국장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1927년 1주기 때에 참석이 허락되었습니다.

1929년 5월 30일 생모인 양귀인(귀인양씨)이 유방암으로 영면하였으며 덕혜옹주는 귀국하였지만 복상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갔습니다.

1930년 봄부터 몽유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영친왕()의 거처로 옮겨 치료를 받았습니다.

증세는 조발성치매증(조현증)으로 진단되었고, 이듬해 병세는 좋아졌습니다.

 

1931년 5월 쓰시마섬[] 도주의 후예인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하였고

다음해인 1932년 8월 14일 딸 정혜(:일본명 마사에)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 덕혜옹주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으며

남편과 주변사람들의 간호에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1946년 마츠자와 도립 정신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결국 1955년 다케유키와 결혼생활을 더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성을 따라 양덕혜()로 일본호적을 만들었으며 약 15년 동안 마츠자와 정신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덕혜옹주와 소 다케유키의 이혼시기에 대해서는 1951년, 1953년 설이 있지만 이방자 여사<흘러가는 데로> 의하면 1955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외동딸이었던 정혜가 1956년에 결혼하였지만 이혼하였고 3개월 뒤 유서를 남기고 일본 남알프스 산악지대에서 실종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현해탄에서 투신하여 자살한 것으로 오해되고 있습니다.

 

덕혜옹주는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승만의 정치적 입지에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여 귀국이 거부되었습니다.

마침내 1962년 1월 26일 귀국하였지만 귀국 20년이 지나서 1982년에 호적이 만들어졌고,

결국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년 4월 21일 낙선재에서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유릉()에 묻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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