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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유럽 - 12일차(6/18), 스위스 취리히, 그린델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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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중앙역
취리히행 기차 안과 밖의 풍경

 

뜨거운 햇살이 객실의 통창으로 침입했다.

어제저녁에 미리 짐을 챙겨놔서 아침에는 전혀 부산스럽지 않았다. 여느 때보다 여유롭게 샤워를 했고 오전 7시가 지났을 때 3일간 머물렀던 호스텔을 나와 잘츠부르크 중앙역에 왔다. 오늘은 오스트리아에서 스위스로 가는 날이다.

커피와 빵을 샀고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플랫폼 의자에 앉아 먹었다. 4분 연착된 기차를 탔을 때는 많은 사람이 피곤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독일 풍경

 

그렇게 10분이 지났을 뿐인데 기차는 독일을 지나고 있었다. 로밍 문자가 아니었다면 오스트리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새 한 시간가량을 독일을 지나 다시 오스트리아로 들어섰다. 기차는 중간 정차역에서 잠시 멈출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내달렸다.

 

인스부르크
점심식사

 

 

 

 

인스브루크역에 도착할 때쯤 2,334m의 하펠레카르산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사실, 전날의 여행기를 쓰느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어느새 정오가 다된 시각이라 또 빵으로 간단히 한 끼를 해결했다. 기차 안 사람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리히텐슈타인

 

 

 

 

그러는 사이에 기차는 오스트리아 국경을 벗어나 리히텐슈타인에 들어섰다.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유럽의 작은 주권 공국이다. 조금만 더 가면 스위스에 들어서게 된다.

 

 

 

 

포도와 납작복숭아

 

다리를 건너기 전부터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동영상 촬영을 하는 동안 스위스 Buchs에 도착했다. 기차는 이곳에서 7분여를 머물렀다. 스위스 역무원들이 여권 검사를 했고 여행지, 여행 기간 등을 간단히 물어봤다. 이제부터 기차는 스위스를 지나게 된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토록 와보고 싶던 곳이기에 그런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포도와 납작 복숭아를 먹으면서 한껏 흥분된 기분을 가라앉혔다.

 

wallen  호수
추리히 호수
취리히 중앙역

 

기차는 wallen 호수와 취리히 호수를 지났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이색적인 호수 풍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봤다. 기차의 출발은 연착이었지만 정시에 취리히 중앙역에 도착했다. ‘야호, 여기가 취리히다.’

인터라켄 동역행 기차 플랫폼을 확인한 뒤 린덴호프(Lindenhof)로 향했다. 취리히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40분이었다. 시간상 충분히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데도 발걸음이 빨라졌다.

 

반호프 (Bahnhof)
린덴호프

 

 

 

 

반호프(Bahnhof) 거리를 걷다가 린덴호프로 들어섰다.

이곳은 작은 공원으로 리마트강과 구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였다. 기원전 로마 시대에 세관 자리가 요새화되면서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로 더 알려져 있었다.

외국인 부부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찍어주고 나도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이번 여행 동안 다른 사람이 나를 찍어준 첫 번째 사진이 되었다. 10여 분을 그렇게 성벽에 앉아 있었다. 그로스 뮌스터 사원도 보이고 취리히 중앙도서관도 보였다. 관광객들과 달리 현지인들은 공원 한쪽 모퉁이에서 체스를 두며 일요일 한낮을 보내고 있었다. 작은 공원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린데호프 골목
프라우 뮌스터
그로스 뮌스터
취리히 거리의 사람들
린덴호프
리마트강

 

 

 

 

골목을 계속 걸었다. 프라우 뮌스터 앞 작은 분수에서 귀여운 꼬마가 물놀이하고 있었다. 그로스 뮌스터를 바라보며 뮌스터 다리를 건넜다. 리마트강은 에메랄드빛이었다. 구시가지는 세계의 모든 사람이 모인 듯 들려오는 단어들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말도, 의상도, 너무 다른데 모두가 어느새 조화롭게 도시에 스며들었다. 기차 출발시각보다 일찍 취리히 중앙역으로 돌아왔다. 이제 인터라켄 동역으로 가는 기차만 타면 된다.

 

취리히 중앙역
튠 호수에서 설산을 보다

 

 

 

 

2SBB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이등석 객차의 문이 열리고 나는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스위스는 기차표를 사면 좌석은 아무 곳이나 앉으면 된다. 한마디로 선착순인 셈이다. 항상 고수하는 정방향 좌석에 앉았다. 햇살이 차창으로 들어와 내 살갗에 닿았다. 큰 진동도 없이 기차는 출발했고 스위스 수도인 베른을 지나 튠(Thun)에 도착했을 때 설산을 볼 수 있었다.

 

튠 호수

 

기차는 한 폭의 그림 같은 고산 호수인 튠 호수를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스피츠(Spiez)에 도착했다. 빙하가 녹아 미네랄이 풍부한 튠 호수에서 사람들은 수영도 하고 일광욕도 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인터라켄에 가까워지면서 기차는 속도를 줄였다.

 

인터라켄 동역

 

 

 

 

그린델발트 터미널

 

아레강을 따라 인터라켄 서역에서 동역까지 기차는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나는 지체 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그린델발트행 기차로 갈아타야 했다. 7번 플랫폼에서 내린 나는 2번 플랫폼까지 쉼 없이 잰걸음을 걸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무거운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달렸다.

기차는 그린델발트를 향해 굴곡진 철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영상으로만 보던 그 장면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신기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30여 분이 지난 후 기차는 그린델발트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이 있는 건물에는 아이거 익스프레스(Eiger Express) 탑승장과 COOP이 있었다.

 

아이거 북벽
아이거 롯지
같은 객실의 일본인과 술한잔
맥주와 아이거 북벽
토카이 포도주와 아이거 북벽

 

아이거 롯지(Eiger Lodge)는 생각보다 큰 규모였다. 물론 장단점은 있지만, 최고는 롯지에서 아이거 북벽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오후 7시까지만 문을 여는 COOP에 가서 맥주를 샀다. 샤워를 먼저하고 같은 객실의 일본인과 함께 야외 테라스에 앉아 아이거 북벽을 바라보며 술을 마셨다.

둘의 대화는 원활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여행이라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다. 서로의 사진을 보여주고 번역기까지 동원해서 느리지만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우리는 부다페스트에서 산 토카이 포도주까지 마시며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이거 롯지
아이거 북벽

 

 

 

 

생각보다 밤은 빨리 오지 않았다.

오후 10시가 지나도 세상은 환했다. 객실로 들어가 짐정리를 한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어두워진 밤하늘에 별이 보였다. 꿈에 그리던 이 장소에 내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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