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텔의 아침은 조용했다.
시끌벅적한 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고요하고 차분한 아침이었다. 낮에는 당연히 덥겠지만 아침 공기는 상쾌하면서도 쌀쌀했다. 숙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5번 버스를 탔다. 어젯밤에 산 잘츠부르크 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안 가본 동네를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이미 들떠 있었다. 종점인 운터베르그 정류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7시 43분이었다.
첫 케이블카를 타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쪽저쪽을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말없이 주변을 거닐었다. 조그만 천이 흐르는 마을 사이로 운터베르그가 조망되었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늘도 물소리와 새소리는 싱그러운 아침을 맞게 하는 동반자였다.
잘츠부르크 카드를 이용하여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정확히 오전 8시 30분에 케이블카는 출발했다. 고도를 높이며 올라가는 속도는 일정하지 않았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내려다보이는 모든 것들은 케이블카가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졌다.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의 10분 10초를 동영상으로 찍었다. 허공에 뜬 기분이 어떤 느낌인 줄 다들 아실 것이다. 그런 느낌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후자다.
맑은 하늘에 흰 구름이 둥둥 떠다녔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고 입김을 불면 흩어질 것 같이 가깝게 느껴졌다. 부순 돌 같은 자갈이 깔린 길을 걸었다. 운터베르그는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등산 코스가 여러 개 있었다. 어깨에 에코백을 메고, 반바지와 민소매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한 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올라가는 나를 나중에 본 현지인들이 ‘저 녀석은 뭐야!’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웃음 띤 얼굴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내가 한국에서 등산 전문가라는 것을 그들은 모를 테니까.
설산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는 Hochterthron 정상에서 멀리 2,000m~3,000m의 만년설의 알프스산맥들이 보였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내 몸의 열기를 식혀 주었다. 정상 인근의 의자에 앉아 알프스산맥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모든 게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지천에 핀 담자리꽃나무, 용담 등 희고, 노랗고, 자줏빛 야생화가 바람에 흔들거리며 나에게 속삭였다. ‘어서 와! 이런 곳은 처음이지.’ ‘잠시라도 즐겁게 쉬었다 가.’ 20여 분을 말없이 즐겼다.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을 때는 너무 아쉬웠다.
나는 해발 1,853m Hochterthron 정상까지만 다녀왔다. 왕복 1시간 거리를 오를 때 15분, 하산할 때 10분 걸렸다. 편안하게 등산을 하고 싶었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너무 아쉬웠다. 언젠가 또다시 잘츠부르크에 오게 되면 꼭 등산할 생각이다. 오를 때와는 달리 두 사람과 개 한 마리, 진행요원 그리고 나만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다.
25번 버스를 타고 헬브룬궁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 노란색 벽면이 눈에 들어왔다. 헬브룬궁은 400년전 마르쿠스 시티쿠스 대주교의 속임수 분수로 유명한 곳이다. 헬브룬궁은 성이 아니라 쾌락을 위한 궁전이다. 매표소에서 잘츠부르크 카드로 표를 끊고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예상치 못한 게임의 세계에 참여하게 되었다. 오디오 가이드는 물 기계, 동굴, 분수 등으로 나를 안내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듣느라 게임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낯선 이방인들이 함께 모여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게임이 끝나고 정원으로 나왔다. 나무 그늘 의자에 앉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평온하고 좋은 장소였다.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내가 얼마나 분주하고 정신없는 세계에서 살아왔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각자의 삶 속에 여유와 휴식, 이 두 개는 꽃 챙겨가며 살았으면 하는 게 내 작은 바람이다.
다시 25번 버스를 타고 잘츠부르크 구시가지로 왔다.
베트남 음식점 야외 테라스에서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며 닭고기 쌀국수, 새우 롤을 먹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국물 요리에 고수도 추가하여 먹었다. 매콤함이 당겨 닭고기를 먹을 때는 칠리소스에 찍어 먹었다. 내가 먹는 모습이 맛있게 보였는지 외국 사람들이 하나둘 주변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여주인이 ‘Are you Japanese?’ 묻길래, ‘No, I’m Korean’이라고 말했더니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뜨거운 국물과 매콤함이 몸에 들어가니 한결 몸이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푸니쿨라를 타기 위해 호엔찰츠부르크 성으로 향했다. 잘츠부르크 카드를 사용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맨 아래쪽에 탑승하여 출발을 기다렸다. 약간의 흔들림이 출발을 의미했고 48초 만에 성에 도착했다. 구시가지에서 바라볼 때의 성벽처럼 성벽 자체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한 번도 침략을 당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성에서 잘츠부르크를 내려다봤다. 잘자흐강과 중세시대의 건축물 그리고 주변 산들이 조화를 이루며 배치되어 있었다. 박물관 등 성의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혼잡하고 이동이 쉽지 않았다. 남쪽 전망대에서 아침에 다녀온 운터베르그 주변 풍경을 조망할 수 있었다.
도심 거리를 걸었다. 딱히 모차르트 탄생지를 가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지금은 하우스 박물관으로 꾸며진 곳을 잘츠부르크 카드를 이용하여 들어갔다. 이곳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나처럼 음악에 관심 없어도 많은 사람이 그 명성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
오늘은 모차르트 마라톤 대회가 열렸고 잘자흐 강변에는 뜨거운 햇살 아래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주말이 시작된 것이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에는 날짜 관념은 뚜렷하고 요일 관념이 무뎌진다. 어쩐지 도심 거리가 인파로 더욱 북적거렸다.
호스텔로 돌아와 샤워하고 짐 정리를 시작했다. 내일 아침이면 스위스로 출발해야 한다. 편하게 휴식을 취하다 오후 6시가 되었을 때 Augustiner Braustubl로 갔다. 굳이 한국말로 표현하면 양조장 주점이다. 이곳은 1621년부터 시작된 오스트리아 최대의 맥주 휴양지다. 주말이라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찼다.
맥주를 사는 방법은 간단하다. 줄을 서서 1L 맥주를 산다. 영수증을 들고 줄을 서서 가다가 진열된 곳에서 1L 맥주잔을 들고 씻은 다음 영수증과 함께 맥주잔을 내밀었다. 장인이 참나무통에서 잔 가득 술을 채워 내어준다. 다시 잔을 들고 아무 테이블이나 가서 마시면 된다.
야외에서 마시려다 자리가 없어 실내로 들어갔다. 안주로 감자 칩과 슈니첼을 샀다. 오스트리아에서 마지막 저녁이었다. 혼자지만 주변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맥주를 마셨다. 나는 감자 칩에 맥주 한 모금, 슈니첼 한 조각을 썰어 맥주 한 모금을 반복적으로 마셨다.
주말 밤은 평일보다 더해가 늦게 지는 것 같다.
아쉬움 가득한 시선으로 주변을 걸어 호스텔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의 절반이 이렇게 지났다. 이젠 스위스와 이탈리아 여행만이 남았다. 남은 여행도 활기차고 즐겁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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