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아침을 맞았다.
공기는 평소보다 빠르게 데워졌고 아침부터 빠르게 상상을 달구고 있었다. Billa에서 산 빵으로 늦은 아침을 먹고 호스텔을 나왔다. 오늘은 빈 1일 교통권을 끊어 빈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생각이다.
호스텔을 나오면 오른쪽에 지하철 입구가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와 교통권 판매기에서 1일권을 8유로에 끊었다. 빈은 지하철(U), 노면전차(숫자나 알파벳), 버스(숫자 뒤 A) 등의 대중교통이 있다. 지하철은 우리의 지하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타거나 내릴 때 버튼을 눌러서 직접 문을 열어야 한다는 점만은 확연히 달랐다.
지하철로 네 정거장인 Schwedenplatz 역으로 가서 노면전차로 갈아탔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예전 성벽이 있던 자리를 허물고 그 자리에 노면전차 노선을 만들었다. 1번, 2번 노면전차를 타고 한 바퀴 돌면 유명 관광지나 빈의 관공서 등을 짧은 시간 안에 둘러볼 수 있었다.
1번 노면전차를 타고 가다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에서 내렸다. 방송 촬영하는 장면을 우연히 발견해서 사진기로 찍었는데 갑자기 방송하던 여기자가 핸드폰으로 내 사진을 찍었다. 얼떨결에 서로를 쳐다보면 웃었다.
이곳에서 D번 노면전차를 탔다.
종점까지 노면전차를 타고 가서 Kahlenberg까지 걸어갈 생각이다. 한국인들이 전혀 찾지 않는 곳이고 외국인들도 잘 모르는 그런 곳이다. 노면전차 종점에는 베토벤 전원 교향곡 6번의 모티브가 된 베토벤 산책길이 있고 Kahlenberg는 빈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다. 마을길 같은 산책길을 마음을 활짝 열고 천천히 걸었다. 클래식에 무지한 나도 전원교향곡 6번은 들어봤다.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비록 나이가 들어 걸음은 느리지만 친구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은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평탄한 길에서 경사지로 접어들면 주변 풍경이 바꿨다. 주변이 온통 포도밭이었다. 이곳은 빈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 중 한 곳이다. 포도밭이 나오면서 그늘은 없지만, 포도밭 풍경과 어우러진 전원이 삶이 평화롭게 보였다. 걷다 보면 개와 함께 산책 중인 현지인들을 자주 만났다. 개도 더웠는지 계곡에 풍덩 뛰어들더니 기분이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갈림길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아침에 여기서 마시려고 일부러 사 온 오스트리아 캔맥주다. 포도밭과 빈시가지를 확 트인 공간에서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있는 호사로움을 잠시 누렸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이곳도 사람들이 운동을 많이 했다. 이곳은 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봐도 자전거 타기 정말로 좋은 장소였다.
어느덧 전망대에 도착했다.
도나우강과 빈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명소라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였다. 물론 38A 버스가 이곳까지 운행했지만 나는 일부러 걸으려고 버스를 타지 않았다. 결과론적으로 걷기를 선택한 것이 잘했다. 버스를 탔으면 내가 보고 느낀 자연을 전혀 몰랐을 테니까….
12시가 되어서 38A 버스를 탔다.
Heuriger라는 빈 전통음식을 먹기 위해 Zum Martin Sepp에 갔다. 이곳은 Martins라는 이름의 하우스 포도주와 Heuriger를 뷔페식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식당이고 한국인들도 가끔 찾아오는 곳이었다. Heuriger는 다양한 고기요리에 소시지, 감자, 배추절임 등이 제공되는 빈의 전통음식이다. Heuriger는 포도주와 함께 마시면 입맛 까다로운 사람도 무난하게 먹을 수 있었다.
나는 Martins 포도주 중 하나를 추천받았다. 드라이 화이트 포도주인데 고기를 먹고 마시면 입안을 개운하게 해 주었다. 뷔페라 나도 모르게 과식을 하게 되었다. 뷔페 가격은 14.9유로이고 포도주는 별도 계산해야 한다. 빈에 오면 다른 음식보다 Heuriger를 꼭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만드는 음식이었다. 포만감으로 행복해진 나는 노면전차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호스텔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
오후 5시가 넘어 다시 호스텔을 나왔다.
빈에 머물면서 안가면 후회할 것 같아 쇤브룬 궁에 갈 생각이다. 가는 도중에 시청사에 잠시 들렸다. 3천만 개의 벽돌로 지은 건축물이 성탑처럼 거대하고 웅장했다. 오늘도 빈 도심은 중세시대처럼 마차가 도로를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현대에서 과거의 삶 속으로 마차를 타고 들어가는 상상을 해 봤다.
우리나라에는 있고 빈에는 없는 비엔나커피, 유명한 카페를 앞에 두고 들어가지 않았다. 커피는 아침에 마셔야 제맛이지…. 갈증이 나 물을 샀다. 그러고 보니 물 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도심 중간에 식수대가 있었고 일반 가정에서는 그냥 수돗물을 마신다고 했다. 앞으로는 나도 식수대를 이용할 생각이다.
지하철 U4를 타고 쇤브룬 궁으로 갔다.
지도를 보니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짧은 시간에 어디를 어떻게 둘러보아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일단 정원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잔디에 물을 주는 기계가 작동되고 있었다. 나무터널에는 빛의 어우러짐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미로 속 나무터널이었다. 현지인들에게는 그냥 평범한 동네 공원이지만 나 같은 외국 관광객에게는 동경의 장소였다. 정원의 나무는 끊임없이 관리되고 있었다.
8시가 지나도 해는 지지 않았다.
쇤브룬 궁과 언덕 위 cafe Glorieffe 건물 사이가 환상적이라서 이곳을 오가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겼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여도 두 눈에 담은 풍경과 똑같은 아름다움을 담을 수는 없었다. 유유자적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도 아깝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왜 쇤브룬 궁을 맨 나중에 방문했는지 후회하며 호스텔로 돌아왔다.
오후 10시가 지나니 출출하여 호스텔 앞 식당에서 케밥을 샀다.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는 동안 부다페스트에서 산 토카이 포도주와 함께 먹었다. 빈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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