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더웠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았고 조그만 선풍기만이 문 앞에서 헐떡이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샤워하는데 찬물이 머리카락을 통해 온몸으로 미끄러져 갈 때의 짜릿함이 더위를 가시게 했다.
기차 시간까지 특별한 일이 없기에 어제의 여행기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인적이 없던 거리는 오전 6시가 지나면서 이따금 사람들의 발걸음이 보였다. 호스텔 통창으로 바라본 거리는 분주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9시가 지났을 때 빈 중앙역에 왔다.
다들 어디를 가는지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나만이 느긋하게 사람들을 구경하며 서 있었다. 이미 OBB 앱으로 확인했지만, 기차역 전광판을 통해 탑승 플랫폼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오스트리아에서 기차 타는 방법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차는 출발시각보다 15분 일찍 플랫폼에 들어왔다. 내 좌석에 앉아 아침에 산 빵을 먹었다. 뭐…, 이젠 빵에도 적응이 끝난 것 같았다.
정시에 기차는 출발했고 좌석은 텅 비었다.
좌석 간격이 좁아 앞에 사람이 탑승할 경우 매우 비좁은데 잘츠부르크까지 아무도 타지 않았다. 이제는 어떤 감흥조차 일어나지 않는 창밖 풍경을 안주로 삼아 맥주를 마셨다. 딱히 입에 잘 맞는 맥주는 아니지만, 노란색 캔에 괜스레 끌려 집어 든 것이다. 기차는 2시간 50여 분을 달려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역 밖으로 막 나왔을 때의 느낌은 ‘너무 시골스러운데….’였다.
호스텔의 체크인은 오후 3시였다.
일찍 도착한 나는 리셉션의 도움으로 옷 세탁을 먼저 시작했다. 세탁하고 건조까지 거의 2시간이 걸렸다. 요금은 세탁 4.5유로, 건조 4유로로 총 8.5유로를 카드로 결제했다. 이번 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 빨래하는 날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더 이상의 빨래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빨래를 마치니 체크인 시간이 되었다.
배정받은 객실은 탁 트인 통창이 있는 넓은 객실이었다. 내부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있는 그야말로 웬만한 시설은 다 갖춘 좋은 객실이었다.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다른 투숙객이 들어왔다. 그는 한국인이었다. 여행 중 처음으로 한국인과 함께 객실을 이용하게 되었다.
호스텔을 나왔다.
루틴처럼 지리를 익히려고 미라벨 정원으로 향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인 미라벨 정원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았다. 계단 위에서 바라본 페가수스 청동상, 미라벨 정원, 호엔찰츠부르크 성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그게 전부였다. 빈에서 쇤브룬 궁을 다녀온 후부터는 다른 왕실의 정원은 내 성에 차지 않았다.
잘차흐강이 흐르는 마르코 파인골트 다리를 지났다. 강변은 다리, 중세건물, 호엔잘츠부르크 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야경명소였다. 유람선이 출발하려고 헤사 다리 위에서 동영상을 찍었다. 다리 난간에는 자물쇠가 가득 매달려 있다. 세계 어느 곳이든 비슷한 것은 있었다.
간판이 아름다운 Getreidegasse를 걸었다. 중세시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간판을 만들었다고 한다. Getreidegasse를 지나 모차르트 광장에 도착했다. 중세마차가 관광객을 태우고 좁은 골목을 돌아다녔다. 나는 현재를 살고 있는데 이곳 거리는 마치 중세시대 거리처럼 인식되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에 오르는 푸니쿨라 탑승장을 지나 모차르트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아직 잘츠부르크 카드를 사지 않은 나는 지금은 입장할 수 없었다.
홨던 길을 거슬러 호스텔로 돌아왔다.
Getreidegasse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객실 동료와 호스텔 야외 테라스에서 각자 준비한 맥주를 마시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침묵하고 지내다가 한국어로 대화를 하니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다. 9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아 우리의 이야기는 해가 진 10시까지 계속되었다. 내일 아침에 할슈타트를 가는 나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 객실, 새 침대에서 잘츠부르크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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