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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유럽 - 18일차(6/24), 이탈리아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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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테라스에서 아침식사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파티로 인해 중간에 잠깐 깨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을 잠잔 적은 없었다. 숨소리만 이따금 들리는 조용한 객실을 나와 로비로 내려갔다. 광란의 밤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야외 테라스는 엉망진창이었다. 호스텔 직원들이 분주하게 전날의 흔적을 하나둘 치우기 시작했다. 깨끗하게 치워진 야외 테라스에서 샐러드에 요구르트를 부어 아침을 먹었다.

 

 

 

 

기차표 발권
베네치아 본섬

 

 

 

 

무더위를 피하려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역으로 가는 건널목 신호등 앞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도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 본섬으로 가는 것 같았다. 베네치아 본섬까지 기차요금은 1.45유로였다. 매표창구가 아닌 키오스크 기계로 표를 구매했다.

기차를 타고 아드리아해와 지중해로 이어지는 바다를 건너 베네치아 본섬까지 15분 만에 도착했다. 22개의 플랫폼이 있는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은 각 기차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순식간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베네치아 본섬(산타루치아역 앞 운하)

 

이곳이 말로만 듣던 베네치아란 말인가?

어제 밀라노에서 느낀 이탈리아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거리의 부랑자들이 많았고, 대부분 운전자가 과격하게 차량을 운전했으며, 거리에는 치우지 않는 쓰레기가 널려있고, 골목 구석마다 소변 냄새 등 악취가 심하게 났다. 오늘 베네치아에서도 그 느낌은 똑같았다.

. 바다의 색깔이 너무 탁하고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떠다녔다. 수많은 수상 버스, 수상 택시, 곤돌라, 화물선 등이 뒤섞여 좁은 폭의 운하를 왕래하고 있었다. 베네치아를 일컬어 물의 도시라고 말한다. ‘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지?’ 내가 막상 베네치아에 와보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국적인 베네치아 풍경

 

인파가 적은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소운하 사이는 대부분 아치형 작은 다리로 연결되었고 그 운하를 작은 배들이 오갔다. 나와 같은 외국인의 시선에는 모든 것들이 색다른 풍경이었다. 바라보는 모든 풍경이 신기하고 이국적이기에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한적한 외곽으로 들어서니 소운하를 중심으로 좌우에 이층집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고요하면서도 평화롭게 아침을 맞고 있는 이곳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런 곳이라면 현지인들이 삶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아침 산책중인 노부부

 

똑같은 베네치아 본섬인데 이곳은 딴 세상처럼 느껴졌다. 하루를 시작하는 현지인들의 생활이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산책 중인 노부부의 뒤를 따라 아주 천천히 걸었다. 내가 보기에도 고령인 노부부였다. 마치 오늘 아침이 생의 마지막 아침인 것처럼 서로에게 의지한 체 한 걸음씩 걸으며 조용한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주택가 골목

 

베네치아에는 운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건축물 사이의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막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도는 길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골목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현지인들의 삶이 녹아 있었다. 이런 골목을 걷는 나 자신이 좋았다.

 

 

 

 

 

어느새 도르소두로(DORSODURO)를 지났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열린 창문 창살 틈으로 실내를 바라봤다. 누군가 온 힘을 기울여 피아노를 쳤다. 무슨 곡인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에 와닿았다. 피아노 연주가 끝날 때까지 난 그렇게 서 있었다.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아주 멋진 음악회를 봤다.

 

아카데미 다리에서 바라본 대운하

 

관광객으로 붐비지 않는 베네치아 외곽은 내가 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곳이 많았다. 낡고 오래된 집이지만 각자의 개성이 가득한 실내장식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난 조용한 베네치아 골목을 걸으며 아침을 즐겼다. 한참이 지난 후에 대운하를 건넜다. 아카데미 다리를 지나 산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나 스스로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곤돌라

 

소운하는 곤돌라가 쉴 새 없이 지나갔다. 방송에서 보던 그런 멋진 장면은 전혀 아니었다. 현실은 그늘이 전혀 없는 뜨거운 햇살 아래 곤돌라를 타야 했고 혼탁한 바닷물에 냄새까지 났다. 심지어는 좁은 운하에 여러 대의 곤돌라가 뒤섞여 난장판이 되었다. 곤돌라를 탄 사람들이 부럽기보다는 오히려 안쓰러워 보였다.

여행 버킷리스트처럼 일생에 한 번뿐이고 베네치아에 왔으니 꼭 타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과감히 제외해도 될 그런 경험이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곤돌라는 타는 사람보다 곤돌라는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즐거워했다.

 

산마르코 대성당
탄식의 다리
두칼레 궁전입구
리알토 다리

 

조금만 움직여도 사람끼리 부딪치게 되는 산마르코 광장은 도떼기시장처럼 북적였다.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라도 그렇지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있었다. 산마르코 대성당, 두칼레궁전, 탄식의 다리를 지나면서 사진만 대충 찍고 그곳을 벗어났다. 리알토 다리에 왔다. 유명한 다리라 그곳도 건너기가 쉽지 않았다. 다리 난간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한참을 멈춰 있어야 했다.

 

베네치아 골목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

 

난 북적임이 싫다. 여행지라도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있어야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리를 건너서 골목에 들어섰다. 골목을 돌아다니면 이런 곳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정오가 지나면서 뜨거운 햇살이 거리에 내리쬐었다. 건물 사이의 골목 그늘을 걸어 산타루치아역 맞은편 성당 계단에 앉았다. 바닷바람이 불어왔고 무엇보다도 그늘이라 시원했다.

 

산타루치아역 맞은편 성당 계단

 

COOP에서 산 맥주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 막 도착한 관광객들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었다. 나만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강렬한 햇빛을 피해 다양한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들도 맥주를 마시거나 간단한 음식을 먹었다. 한낮에 베네치아를 걸어 다닌다는 것은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다.

 

한낮의 베네치아
소식당 ( 小食堂 )

 

한 시간이 지났다.

안 가본 골목길을 조금 더 돌아본 후 기차를 타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주변 식당을 검색하다가 소식당(小食堂)에 갔다. 베네치아 메스트레에는 중국식당이 많았다. 어제와는 다른 중국식당이지만 음식은 비슷했다. 한국어 메뉴판에 짬뽕이 있어 공깃밥과 함께 주문했다.

 

중국식 짬뽕

 

홍합과 조개가 들어갔다고 해서 짬뽕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맛이 났다. 맛이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아시아 음식이고 매콤한 면 요리라서 빵류보다는 좋았다. 칭다오 맥주를 마시며 다음에는 다른 중국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계꽃
야외 테라스에서 맥주한잔

 

어젯밤 파티가 열렸던 공원에 시계꽃이 반발했다.

시간이 유수와 같이 흐른다더니 시계꽃을 보니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여행을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나라에 와 있다. 내일 베로나를 다녀오면 모레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로마로 가야 한다.

오늘도 파티가 열렸다. 주말이면 늘 이런 파티가 열리는 것 같았다. 내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함께 이 밤을 지새울 테지만 그렇게 하기엔 너무 나이가 먹었다. 음악의 진동을 자장가 삼아 젊은 사람들보다 일찍 침대에 머리를 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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