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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유럽 - 19일차(6/25), 이탈리아 베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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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xbus  정류장

 

여유로운 아침을 맞았다.

워낙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오전 9시까지도 한참이 남아 있었다. 야외 테라스에서 어제 여행기를 쓰면서 시간을 보낸 뒤 호스텔을 나섰다. 베로나행 Flixbus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요일인데 일요일 같지 않았다. 내가 여행 중이라 그런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모르겠지만 막 도착한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내가 버스에 탔을 때도 이미 많은 사람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3A는 내가 예약한 창가 좌석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앉아 있었다.

 

이탈리아 고속도로
포도밭

 

‘Excuse me, This is my seat.’ 자다 깬 듯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일은 여행 중에 흔하게 발생했다. 유럽은 교통편을 예약할 때 좌석을 예약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좌석 예약에도 추가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빈자리를 찾아 앉는 사람들이 많았다.

버스는 이탈리아 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렸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오토바이도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라 정체는 전혀 없었다. 베로나 외곽까지 오는데 1시간 25분이 걸렸다.

 

베로나 기차역
공원

 

구글 지도를 한번 확인한 후 거리를 걸었다.

횡단보도를 건넜더니 우측에 베로나 기차역이 있었다. 기차역에서 정면으로 도로를 따라 걸으면 베로나 아레나가 있는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베로나는 베네치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체코 프라하에 도착한 다음 날 체스키크룸로프를 다녀왔을 때의 느낌과 같았다. 현대에서 중세로 순간 이동한 느낌이었다.

아침인데 햇살이 강렬했다. 오랜만에 선크림까지 발랐는데도 견딜 수가 없어 모자를 뒤집어썼다. 역을 지난 뒤 햇살을 피해 공원으로 들어섰다. 익숙한 나무들, 잔디밭, 예전 동물원 흔적, 여유롭게 일요일 오전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석조 방어문 (Porta Nuova) 앞 도로
카페나 식당 등의 야외 테라스가 있는 인도를 걷다

 

베로나 남쪽 출입구였던 16세기 초의 석조 방어문(Porta Nuova)을 지나면 곧게 뻗은 도로가 나타났다. 건축물과 도로 사이 인도에는 큰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인도를 따라 걸어가면 카페나 식당 등의 야외 테라스가 줄지어 있었다. 우리와 다른 문화는 이런 것이었다. 햇볕이 뜨겁고 자동차 매연과 먼지가 일어나는 야외에서 굳이 음식을 먹으면서 앉아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심지어 야외 테라스 자리는 자릿세도 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베로나의 남쪽 관문
카스텔베키오 성

 

도시와 시골을 연결하는 베로나의 남쪽 관문이 보였다. 저 관문을 지나면 광장이 나오고 보수공사 중인 베로나 아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관문을 통과한 후 좌회전을 했고 카스텔베키오 성으로 향했다. 베로나를 서쪽에서부터 한 바퀴 돌아 베로나 아레나로 갈 생각이다.

성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박물관은 유료였고 고딕,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은 전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거대한 장벽 같은 웅장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카스텔베키오 다리

 

성을 나와 카스텔베키오 다리로 향했다. 성보다는 다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다리에서는 성을 배경으로, 때론 아디제강을 배경으로 사진찍기 좋은 장소였다. 다리는 14세기에 대리석과 벽돌로만 지어진 아치 모양이었다. 지금 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재건된 것이었다.

 

아디제강
베로나 골목
산타마리아 대성당
산타마리아 대성당 도서관

 

다리를 건너 우회전을 했다.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걷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다시 우회전한 후 조각상이 있는 다리를 건넜다. 또다시 좌회전해서 큰 플라타너스가 서 있는 아디제강 인도를 걸었다. 나무 그늘은 시원했고 뜨겁게 달궈진 몸뚱어리는 천천히 식어갔다. 더운 여름철에는 새벽부터 오전까지, 그늘을 중심으로 골목과 길을 걸어 다니는 여행이 최고로 좋은 방법이었다. 어느덧 산타마리아 대성당까지 왔다. 엄숙한 분위기를 한방에 깨트리는 일요일 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성당에 들어가지 않고 성당 옆 도서관을 구경했다.

 

피에트라 다리
피에트라 성
피에트라 성에서 바라본 베로나 도심

 

 

 

 

기원전 100년에 완공된 로마 시대의 아치형 다리를 건넜다. 다리에서 언덕 계단을 올라 피에트라 성에 도착했다. 나무 그늘도 있었고 시원하게 강바람도 불어왔다. 성벽에서 베로나 도심을 내려다봤다. 오래된 건축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늘어서 있었다. 만약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베로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구경하지 못했을 것이다.

 

포카체리아 (FOCACCERIA), 피자

 

성을 내려온 후 점심을 먹었다. 다양한 조각 피자를 파는 포카체리아(FOCACCERIA)에 들어갔다. 이곳은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피자 맛집이었다. 사람들은 취향에 따라 피자를 차갑게 먹기도 하고 뜨겁게 먹기도 했다. 나는 피자를 고른 후 전자레인지에 피자를 데워달라고 했다. 평소에 마시지 않는 콜라를 마시며 피자를 먹었다. 특별할 것 없는 피자 맛이었다.

 

스칼리 체리 가문의 방주(장례 무덤)
시뇨리 광장, 단테 동상

 

단테의 동상이 있는 시뇨리 광장에 왔다. 광장마다 사람들이 몰려있기 때문에 주변이 어수선했다. 단체 관광 안내자가 스칼리 체리 가문의 방주(장례 무덤)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 영어도 아니고 독일어도 아닌데.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람베르트 기념탑
에르베 광장
줄리엣의 집

 

에르베 광장에 긴 줄이 있었다. 나는 베로나에서 가장 높은 중세 탑인 람베르트 기념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꼭 봐야 하냐? 줄이 이렇게 긴데,’ 줄리엣의 집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줄이었다. 진짜 줄리엣의 집은 아니었다. 셰익스피어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 영향을 준 석조 난간이 있는 집이었다. 결국, 나도 줄을 섰고 인파에 떠밀려 들어갔다가 사진만 빨리 찍고 나와버렸다.

 

베로나 아레나

 

그늘진 골목을 걸었다. 유명 관광지만 벗어나면 한적하고 여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골목길을 돌아 베로나 아레나에 도착했다. 운이 좋게 앉은 광장의 의자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베로나 아레나만을 쳐다봤다. 물론 맥주를 마셨고, 인적이 드물 때 사진도 찍었다. 그냥 그렇게 있는 게 줄곧 좋았다.

 

그늘진 골목, 식수대
12oz  카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가본 주변 골목을 돌다가 베로나 기차역으로 향했다. 12oz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 화장실을 돈(보통 1유로)을 내고 사용하는 것보다 이런 방법이 더 합리적이었다. 또한, 무척이나 더웠기에 버스 시간까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냈다. 베네치아행 버스는 비첸차(Vicenza)를 거쳤고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 

 

동방 (東方), 김치찌개

 

호스텔에서 샤워한 후 오후 9시경에 동방(東方)에 갔다. 베네치아에서 세 번째로 방문하는 중국식당이었다. 김치찌개, 볶음밥, 칭다오 맥주를 주문했다. 이 식당을 선택한 이유는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중국식 김치찌개였지만 이번 여행 중 처음 먹는 김치인지라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해가 진 밤거리가 낯설었다.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밤인데 그냥 잘 수 없었다. 야외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불야성을 이루는 파티 현장을 흘끗 쳐다봤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 로마로 떠난다. 파티 음악은 오늘도 건물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다. ‘안녕,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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