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텔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메스트레

 

로마로 떠나는 날이다.

오후 기차라서 체크아웃까지 느긋하게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전 10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호스텔 로비에서 여행기를 썼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정오쯤 호스텔을 나와 베네치아 메스트레역에 왔다. 기차를 타기 전, 플랫폼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빵을 먹었다. 빵과 맥주 생각보다 괜찮은 조합이었다.

 

로마행 기차
포도밭
로마 테르미니 (Roma Termini) 역

 

로마행 기차를 탔다.

다음 정거장인 파도바(Padova)까지는 기차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후 종점이 나폴리인 기차는 정거장을 지나칠 때마다 많은 사람이 내리고 타기를 반복했다. 차창으로 펼쳐지는 끝없는 포도밭 풍경을 바라보느라 4시간의 기차여행이 지루하지 않았다. 포도주의 나라답게 주변이 온통 포도밭이었다. 10여 분이 연착되어 로마 테르미니(Roma Termini)역에 도착했다.

 

로마거리

 

밀라노에서 그랬던 것처럼 첫인상은 비교적 유쾌하지 않았다. 치근덕대는 호객행위, 쓰레기로 뒤덮인 더러운 길거리, 구걸하는 부랑자들 등 로마라는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었다. 여행 전, 내가 이탈리아에 대해 너무 좋은 선입관을 가졌던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되었다 로마는 베네치아보다 훨씬 더 더웠다. 뜨거운 햇살이 거리를 걷는 나를 지치게 했다.

 

Casa S. Giuseppe di Clunny

 

마침내 수도원에 도착하여 벨을 눌렀다. 10초쯤 지났을 때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내부는 밖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시원했고 계단을 올라 리셉션에서 체크인했다. 배정받은 방은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싱글룸인데 남향이라 그런지 후끈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도 없었다. 대충 짐을 풀어놓고 찬물로 샤워한 후 밖으로 나갔다.

이번엔 실내보다 실외가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Fontana Antica(공원)

 

 

 

 

콜로세움

 

수도원 인근의 공원에 들어섰다.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거대한 원형건물이 형체를 조금씩 드러냈다. 로마 시대에 검투 경기를 했던 3층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이 그곳에 있었다. 그 주변은 이미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포진하고 있었다. 햇살은 서쪽 하늘에서 아직도 맹렬한 기세로 열기를 내뿜고 있었지만,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물론 나도 사진을 찍었다.

 

대전차 경기장
진실의 입

 

 

 

 

영화 벤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지났고 팔라티노 언덕이 보이는 대전차 경기장에 서 있었다. 이곳은 전차 경기를 보러온 로마인 2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전차 경기장 인근에는 진실의 입도 있었다. 진실의 입은 고대의 맨홀 뚜껑에 사람 얼굴을 새긴 것으로 뚜껑과 관련된 신화가 있다. 우리에게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손을 넣는 장면으로 유명한 곳이다. 막상 와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진실의 입에서 오렌지 정원 가는 길
오렌지 정원
오렌지 정원에서 바라본 풍경
몰타 기사단의 정원을 통해 성베드로성당의 중앙탑

 

미친 듯이 도로를 달리는 차량을 피해 도로를 건너 오렌지 정원에 들어섰다.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에 식수대가 놓여 있었다. 목을 축이고 사람들이 운집한 전망대로 갔다. 그곳에서 성베드로성당의 중앙탑이 바라다보였다.

오렌지 정원을 지나 마을로 더 올라갔다. 뜬금없이 긴 줄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사람들은 조그만 열쇠 구멍에 눈을 대고 몰타 기사단의 정원을 통해 성베드로성당의 중앙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 줄에 섰다. 15분이 지나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열쇠 구멍에 눈을 댔다. 눈으로는 잘 보였지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몇 번을 시도해도 초점을 잘 잡을 수가 없었다. 내뒤에 줄을 선 사람들을 생각해 그쯤에서 포기하고 물러섰다.

 

콜로세움 인근의 골목
필라티노 언덕 입구에서 바라본 콜로세움
콜로세움과 달

 

오후 8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후텁지근했다.

마트에 들러 맥주와 과자를 샀다. 로마의 골목은 주차된 차량과 좁은 인도를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골목을 돌다 수도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콜로세움으로 왔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 달이 떠 있었다. 콜로세움 위에 떠 있는 달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오후 10시가 지나야 야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각 피자와 맥주

 

그러고 보니 오늘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

문을 닫기 전에 겨우 조각 피자를 살 수 있었다. 낮 동안 태양의 은총을 가득 받은 내 방은 여전히 더웠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샤워를 했다. 찬물이 내 몸을 샅샅이 훑고 지나가니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처럼 이동하는 날은 언제나 피곤했다. 열대야를 느끼지만 모처럼 혼자 쓰는 방에서 편안하게 잠들고 싶었다. 로마에서의 첫날은 설렘보다는 무더위에 지쳤고, 거리의 지저분함에 내 마음이 찜찜한 하루였다. 부디 오늘 밤에는 열대야로 잠을 설치지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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