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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유럽 - 22일차(6/28), 이탈리아 로마
배고픈한량 2023. 7. 25. 00:01열대야에 잠을 설쳤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시원하지 않았다. 도저히 침대에서 잘 수 없어서 대리석 바닥에 수건을 깔고 누웠다. 대리석의 차가운 표면이 등에 닿을 때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밤을 버텨냈다. 알람이 울렸고 정신을 차리려고 세수를 했다. 이번 유럽여행의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다.
수도원 밖으로 나왔다. 이른 아침의 로마 거리는 자줏빛 꽃나무의 화사함만큼이나 생기가 넘쳐났다. 이틀밖에 안 되었지만 익숙한 공원을 지나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한두 명 모습을 보일 뿐 콜로세움 주변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온 콜로세움처럼 평화스러운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짧은 시간이지만 내 마음껏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른 새벽에 콜로세움처럼 인파로 북적이는 관광지를 조용히 둘러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이틀 동안 여러 번 이곳을 왔을 때는 전혀 몰랐었다. 한적함 속에 버스정류장에서 식수대를 발견했다.
짧은 아침 산책을 마치고 수도원으로 돌아와 조식을 먹었다. 오전 10시가 되기 전에 체크아웃했다. 수도원에 배낭을 맡겨두고 로마 거리를 걸었다. 웬만한 유명 관광지는 거의 다 돌아본 듯했다. 남은 시간 동안 아직 안 가본 곳을 천천히 둘러볼 생각이다. 테르미니역에서 무작정 그늘을 따라 도로를 건너 걷기 시작했다.
이제 막 문을 열기 시작한 상점들을 구경했다. 상점 내부는 티끌 하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청소하면서 상점 앞은 지저분한 상태로 그냥 놔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퀴리날리 궁전 앞 공원 의자에 앉았다. 나무 그늘이 있고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한가롭게 쉬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궁전 광장은 넓었는데 인적이 드물어 조용했고 로마 건축물의 지붕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인근의 트레비 분수는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다. 분수를 보는 건지 사람을 구경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거리를 걷다가 어느 건물 안에 들어섰다. 천장은 유리와 철골로만 된 지붕이었고 사방 벽면에는 화려한 프레스코화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동심의 세계에 빠져 기묘한 동작으로 셀카를 찍었다. 내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섰고 그들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스페인 계단이 있는 광장도 사람들로 넘쳐났다. 직선으로 뻗은 거리를 걸어 포폴로 광장까지 갔다. 이곳은 로마 북쪽 관문이 있던 곳이다.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오벨리스크가 광장 가운데 서 있었다.
광장을 가로질러 핀초언덕으로 올라갔다. 포폴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핀초언덕은 200개가 넘는 유명인사의 흉상과 정원이 있는 공원이었다. 사람들은 전동차나 자전거를 빌려 여유롭게 공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공원을 벗어났다.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에 나온 베네토 거리를 지났다. 한낮의 거리는 불가마에 들어온 듯 숨이 막히게 뜨거웠다. 물의 정령, 용, 말, 바다 괴물 조각상이 있는 나이아드 분수를 바라보며 조금이나마 열기를 식혔다.
오후 1시가 되었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한식을 선택했다. 테르미니역 인근의 아리랑 식당으로 향했다.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니 살 것 같았다. 제육 덮밥에 맥주를 주문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두 번째로 먹은 한식이었다. 찰기가 없는 밥이라 살짝 아쉬움이 남았지만 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밖보다는 훨씬 시원한 수도원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맡겨놓은 배낭을 찾았다. 이제는 정말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테르미니역에서 피우미치노 공항행 직행 기차를 탔다.
이번 여정은 체코(프라하, 체스키크룸로프), 헝가리(부다페스트), 오스트리아(빈, 잘츠부르크, 할슈타트), 슬로바키아(브라티슬라바), 스위스(취리히, 인터라켄, 그린델발트, 루체른, 체르마트), 이탈리아(밀라노, 베네치아, 베로나, 로마) 6개국 16개 도시를 다녔고 독일을 기차를 타고 잠시 스쳐 지나갔다.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을 많이 느낀 여행이었다. ‘진작에 왔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온 것은 아니었는지….’라는 말보다는 ‘지금이라도 왔으니 이젠 괜찮아’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될지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하지만 또다시 새로운 여행을 계획할 것이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게 내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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