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욕망을 품지 않는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고 싶지도 않고, 이름만 들어도 귀가 솔깃한 자동차를 운전하고 싶지도 않고, 명품으로 겉모습을 한껏 치장하고 싶지도 않고,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고 싶지도 않다. 나의 욕망은 그들의 욕망은 다르다. 그래서 그들과 같이 달리지 않는다. 솔직히 그들의 욕망 중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거의 없다.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욕망의 굴레 속에 지지부진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진 물건중에 신제품은 거의 없다. 옷은 새 옷을 사본지가 10년도 넘었다. 실제로는 옷은 사지만 모두 중고 옷을 산다. 자세히 살펴보면 유일한 신제품은 등산화, 운동화가 전부인 것 같다. 불필요한 지출에 최대한 돈을 최대한 아낀다. 가장 좋아하는 여행을,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떠다닌다.
50여 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제주공항은 시끄러운 비행기 엔진 출력 소리만큼이나 거센 비가 워싱턴 야자수 앞 도로를 때리고 있다. 버스를 탔다. 빗속을 달리는 버스 중앙자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차창 밖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1년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제주, 그대로인 듯하지만, 왠지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터미널이 가까워지면서 빗줄기는 다소나마 가늘어지고 있다.
같은 제주지만 공항과 터미널은 다른 세계인 듯싶다. 터미널은 텔레비전의 잡다한 소음 소리와 분식집의 어묵 냄새가 선풍기 바람에 뒤섞여 구석구석에 퍼지고 있다. 시장 같은 터미널 풍경 속 구석진 자리에 배낭을 내려놓는다. 타야 할 버스는 곧 출발할 듯 엔진이 뜨거워지고 있다. ‘음, 다른 건 몰라도 이소가스는 꼭 사야 하는데….’
우산을 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는 거리를 물웅덩이를 피해 조심스럽게 마트까지 걷는다. 맥주 6캔, 여행용 소주 2병, 이소가스를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에코백에 물건을 담고 다시 터미널에 왔다. 배낭에 대충 물건들을 옮겨놓고 터미널 풍경을 바라본다. 버스 시간까지는 아직 45분이 남았다. 난 원래 계획적이고 급한 성격이지만 여행할 때만큼은 행동이 느긋해진다.
복잡한 도심을 버스가 부드럽게 비껴간다.
나는 버스 안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세상을 작은 창으로 바라본다. 40여 분 후, 버스가 인적 드문 정류장에 멈춰 서고 큰 버스에서 작은 사람이 우산을 펼치면서 나온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버스는 직선의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왼손으로 우산을 들고, 어깨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작은 사람이 교래자연휴양림 야영장으로 향한다.
체크인하는 동안 비는 더 거세게 내린다. 예약한 B17 오두막은 깊은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왼손으로 우산을 들고, 어깨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작은 사람이 또다시 걷는다. 잔디 야영장 옆 곡선 길을 걷다가 문득 멈춰선다. 길에 물이 고여있다. CROCS를 신은 발을 내려다보고 그대로 물이 가득한 도로를 첨벙첨벙 걷는다. 오두막 몇 개를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무가 우거진 공간에 오두막이 또 있다. 뚜벅뚜벅 그 길을 계속 걷다가 멈춰선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덩그러니 오두막 한 채가 있다.
곶자왈은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
어둠을 씻어내는 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밤의 풍경은 조금씩 변해간다. 나는 오두막에 갇힌 채 소주 1 : 맥주 2의 소맥을 탄 스테인리스 잔을 손에 쥐고 멍하니 어둠을 응시하고 있다. 술 한 모금을 마신다. 세상은 멈춘 것 같지만 실상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 번개가 치듯 어둠 속에 실오라기 빛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얼마후 천둥소리가 들려오고 비는 여전히 세상을 향해 감추었던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오두막 안에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본다. 라디오는 혼자 떠들고 있고 테이블에 술과 안주가 있는데 거의 마시질 않고 있다. 깜깜한 곶자왈에 랜턴을 비추고 퍼붓는 빗줄기만 하염없이 쳐다보다 의자로 돌아가 술을 마신다.
비는 멈출 생각이 없다. 호우경보 문자가 오고 비가 내릴수록 감성이 더해지니 우중 캠핑을 하러 제주까지 온 보람이 있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 노곤한 몸을 누인다. 두 귀는 라디오 소리에 집중하나 빗소리에 밀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안경을 벗고 무거워진 눈꺼풀을 닫는다. 세상의 소음은 점점 멀어지고 이내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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