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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하다(구룡령~왕승골 삼거리, 백두대간 트레일, 아침가리)

나만의 글쓰기/여행이야기

by 배고픈한량 2022. 11. 2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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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이었다.

이미 해는 떴지만 안 뜬 것처럼 어두컴컴했다. 갈천약수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을 먹고 구룡령으로 향했다. 어제부터 강원도를 뒤덮은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황태해장국처럼 희뿌옇게 흐려졌다.

차창으로 보이는 달만이 막 떠오른 햇빛을 받아 뚜렷한 형태로 산을 넘고 있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지나간 것처럼 길이 구불구불하고 험했던 옛길은 어느새 아스팔트 포장길로 변해 있었다.

 

치래마을(갈천마을)
백두대간 구룡령 비석

 

나는 백두대간에 서 있었다.

뼛속까지 전해지는 강한 울림 때문에 우리나라 등줄기에 나 홀로 선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차가운 바람 속에 구불구불 이어진 구룡령 고갯길의 음침한 그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구룡령에서 갈전곡봉까지는 체 4km가 안 되었지만 나는 서둘러 길을 걸었다. 걷다가 능선 아래를 내려다보면 깎아지른 벼랑이 펼쳐졌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참나무 가지에 붙어 있는 겨우살이를 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바람은 시원하게 불었고 오늘 산행은 포근한 날씨 속에 이루어질 거라는 낙관적 마음이 스며들었다.

 

구룡령
등산로 입구
겨우살이

 

달은 높은 능선을 넘어 잠들었다.

동시에 태양은 능선 위로 솟구쳤다. 낮 동안의 햇빛 아래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깨달았다. 구룡령 옛길을 지나면서 적막함과 함께 외로움이 찾아왔다. 쓸쓸함을 느끼지 않도록 나는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를 부지런히 걸어 갈전곡봉에 1시간 만에 도착했다.

해발고도 1,204m인 갈전곡봉은 휑했다. 자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헐벗은 가지와 떨어진 낙엽만 보고 겨울이 코앞에 왔음을 확신하는 나에게 반감이 치솟았다. 나는 자연 편에 서서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지 않는 내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백두대간
구룡령 옛길 정상
갈전곡봉

 

2년 전

이맘때에 단목령에서 조침령까지 백두대간 등산로 정비를 위해 현장조사를 했었다. 4, 조침령에서 왕승골 삼거리까지 백두대간 등산로 정비를 위해 현장조사를 했었다. 이번에도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명확했다. 왕승골 삼거리에서 갈전곡봉까지 백두대간 등산로 정비를 위해 현장조사를 해야 했다.

오랫동안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에 숨겨진 자그마한 흔적이라도 찾아내려고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떴다. 이제 당분간 짙은 초록을 한껏 머금은 푸른 숲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날이 추워지면서 더 분명해졌다.

 

백두대간 등산로 조사
조침령방향 백두대간

 

자연은 아무 조건 없이 그 자체를 인간에게 내줬다.

인간이 자연에 저질렀던 것을 생각하면 자연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맡겼다. 나는 말도 없이 그저 능선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백두대간을 걸었다. 능선의 가파르고 좁은 길만이 내가 갈 길이었다. 봉우리에 올라 물 한 모금 마시고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둘러보았다.

바람에 감기는 몸으로부터, 내 몸이 하늘로 떠오를 수 있는 풍선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떠오르기만 하면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어디든 날아갈 수 있으리라.

 

백두대간 어디쯤... 점심식사
왕승골삼거리
왕승골로 하산
구룡령 쉼터에서

 

다음날

백두대간 트레일 6구간을 찾았다. 백두대간 트레일 6구간은 방태산을 기점으로 강원도 인제군과 홍천군의 3(월둔, 달둔, 살둔) 4가리(아침가리, 명지가리, 연가리, 적가리) 일대에 조성된 21km의 숲길이다.

둘레길은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도록 산의 둘레를 따라 조성한 길이며 트레일은 산줄기나 산자락에 길게 조성하여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지 않는 길을 말한다.(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 제22조의 2)

 

백두대간트레일
아침가리 전망대

 

하늘엔 여전히 미세먼지가 자욱하다.

대기의 먼지와 습기가 막을 이뤄 먼 거리일수록 사물의 윤곽을 흐리게 할 정도로 이 막들의 색채가 우세해졌다. 멀리 있는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는 앞에 펼쳐진 풍경에 비해 미세먼지 자욱한 색으로 변해버렸다.

숲길 입구의 자작나무 조림지와 박달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황철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만날 수 있고, 계곡과 숲을 교차해 지나며 감상할 수 있어 아름다운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자작나무

 

아침가리에 왔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국토의 63.7%가 산림인 우리나라에서 아침가리는 작은 계곡일 뿐이지만 자연 그대로 흐르고 있는 그 숨은 가치는 실로 거대하다. 아침가리 주변에는 자작나무 숲이 있다. 그곳에 서 있으면 북유럽 어느 숲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안구가 정화된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우듬지의 함성이 들리고, 구불구불한 계곡을 흐르는 물의 노래를 들으며 명상에 빠졌다. 인제를 몇 년 동안 자주 오게 되면서 맞이하게 된 소중한 추억이다. 참으로 괜찮은 경험이다.

 

 

아침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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