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이 남아있는 곶자왈 아침

외곽 길을 따라 활기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이름 모를 풀벌레가 아침을 알리듯 큰 소리로 울어댄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길은 꼬불꼬불 길게 이어져 있고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가 길가에 널브러져 있다. 길 좌우가 숲으로 둘러싸여 길 자체는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야영장 입구로 들어선다. 구름이 집어삼킨 곶자왈 숲을 보며 뚜벅뚜벅 걷는다. 비 때문에 더욱 짙어진 잔디밭과 대조적으로 하늘은 흐릿한 회색 색깔이 펼쳐져 있다. 돌담길을 걷는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길에 달팽이가 우아한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다. ‘산딸나무 열매를 다 먹으려면 하루는 더 걸릴 듯.’

 

비가 그쳤다.

제주의 가을을 만끽하러 버스를 타고 표선해수욕장에 왔다. 검푸른 바다가 보이는 해변을 차분히 걷는다. 빠져들 듯이 바다를 응시하다 정자 한쪽 구석에 앉는다. 하늘은 파란 도화지에 흰 밀가루를 뿌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시간을 가만히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풍향이 바뀌고 있다. 정면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측면에서 불어온다. 비가 그쳐 따가워진 가을 햇살 속으로 바람을 맞으며 걸어 들어간다. 한참을 걸어 마트에 도착한다. 오늘 밤에 먹을 음식물을 산 후 버스를 타고 다시 야영장으로 돌아간다.

 

어제 비가 너무 내렸나?

야영장 원두막에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혼자만의 세상, 너무 좋다. 혼자라서 가장 제정신이 들 때니까 쓸쓸하지 않다. 소맥을 마시며 이른 저녁을 먹는다. 고요함을 깨뜨리는 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음뿐이다. 라디오를 끄고 멍하니 주변을 바라본다. 어둠이 살며시 세상을 덮기 시작한다.

인공 빛에 의지한 체 의자에 앉아 있다. 어둠 속의 낯선 곳이라 몸이 떨린다. 그때 노루의 울음소리가 스산하게 들린다.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노루의 울음소리를 따라 외친다. 몇 번이나 울리던 노루의 울음소리가 잠잠해지고 인공 빛 아래 나는 다시 소맥을 마신다. 어둠, 동물 소리, , 나무, 바람, 돌 등 더는 나를 거스르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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