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영향으로 개도에서 오후 5시에 사선(개인 소유의 선박)을 타고 백야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처음 계획은 백야도에서 개도, 개도에서 금오도, 금오도에서 돌산도의 여정이었으나 일정이 어긋난 이 시점에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 아쉬웠다. 오늘 밤 백야도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한 시간 후면 날이 저문다. 그전에 백야도에서 야영지를 찾아야 한다. 이틀 전 여수에서 버스를 타고 백야도에 도착했을 때 우연히 본 정자가 생각났다. 아침부터 모든 배가 결항이라 백야항에는 문을 연 식당과 슈퍼가 없었다.

 

정자에서 바라본 백야항

 

큰일이데, 물이라도 구해야 하는데.’

버스정류장에 배낭을 놓고 버스가 백야항으로 들어오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200m 정도 걸어갔을 때 불 켜진 특산물 상점을 발견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주인분이 평상에서 지인과 술을 들고 계셨다.

야호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서둘러 시원한 물과 캔맥주를 사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저녁 어스름과 드문드문 불이 켜지기 시작한 백야도가 묘하게 어울려 운치 있는 밤이 시작되고 있다.

고즈넉한 골목을 걸어 정자에 왔다. 텐트를 쳐놓고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어둠은 소리를 내지 않고 순식간에 주위를 집어삼켰다. 랜턴을 켜 놓고 정자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나의 시선은 백야항 야경에 고정되어 있었다.

 

백야도 비박지
백야항 야경

 

어린아이가 심술을 부리듯 바람은 변덕스럽고 차가웠다. 백야항의 밤을 지키는 건 군데군데 켜있는 가로등뿐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조용히 배낭을 꾸렸다. 먼동이 뜨기 바로 전이 가장 어두웠다. 어둠은 안개처럼 바닥까지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정자야, 잘 쉬다 간다.’

 

백야항

 

백야항 버스정류장에서 새벽 540분에 첫 버스를 탔다. 여수로 향하면서 마주한 첫차 타는 사람들의 분주함을 잊을 수 없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깨어 활동하고 있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백야항 버스정류장
28번 버스

 

여천역에서 기차를 타기 전, 진남시장 왔다식당에서 국밥을 먹었다. 이른 시간이라 시장에 문을 연 식당이 이곳밖에 없었다. 모듬국밥에 여수생막걸리는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뚜벅이에게 주어진 최고의 아침 만찬이었다.

 

진남시장 왔다식당
모듬국밥

 

여행의 참맛은 돌발상황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있다.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굳이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겠는가? 이번 개도 백패킹도 나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주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개도 백패킹 중, 개도 갯마을식당 앞에서

음력 819, 내 생일이다.

푹 자고 일어나니 새벽 350분이다. 새벽에 내가 바라던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백야도와 금오도 사이 다도해에 떠 있는 섬, 나는 그 섬의 청석해수욕장 암반 위에 있다. 조용히 하늘을 바라본다.

요즘은 도통 별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예전에 본 별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거나 기억 못 하거나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현재 내가 보는 별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혼자서 별을 만끽하는 이런 순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단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영혼이 정화된다는 말로는 부족함이 있다. 하늘을 날아서 달과 별 사이를 내 멋대로 여행을 다니는 공상에 빠져든다. 새벽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먹태를 안주 삼아 생일 술로 맥주를 마신다. 나에게 행복은 이런 것이다.

 

개도 청석포해수욕장 암반위 텐트
개도 밤하늘에 뜬 별
생일술

 

나는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백패킹을 할 수 있기에 행복하다.

마음만 먹고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먹으면 바로 실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백패킹은 간결하고 소박하다. 최소한의 생존 도구를 가지고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흔적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방식이 나만의 신성한 백패킹이다.

내 인생은 멋지게 전개되고 있다.

자아를 찾아 멀리 세상을 떠도는 것은 익숙한 곳에서의 평온함보다 낯선 곳에 있을 때의 서먹서먹함을 더 느끼려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하룻밤 거쳐야 할 곳이라 느껴지는 곳에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찾아간다. 자기가 마음 편하게 느낀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더 나이 먹기 전에 알았으면 좋겠다.

 

신성한 백패킹
성난파도

 

태풍으로 배가 결항되다.

오늘만 결항이 아니라 내일까지도 심하면 모레까지도 결항 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개도에서 탈출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선(개인 소유의 선박)을 탈 수밖에 없다. 사선의 출항시간이 오후 5시다. 배낭을 꾸려 개도 여객매표소에 놓고 섬의 안 가본 곳을 둘러보며 시간을 소일한다. 오후가 되니 아침나절과 비교하면 파도도 더 높아지고 바람도 강풍이다. ‘날씨가 더 안 좋아지면 안 되는데.’

사선을 타고 사선을 넘는다.

정각 오후 5시에 사선을 탄다. 6명인데 나만이 여행객이다. 사선으로 개도에서 백야도까지는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사선은 바다의 표면을 미끄러지듯 내달리다가 파도와 부딪치며 요동을 치곤 한다. 이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친다. 백야도 선착장에 도착한 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우여곡절이 많은 개도 백패킹을 마무리한다.

 

태풍영향으로 배가 결항되다
여석마을
갯마을식당
갯마을식당에서 사선을 기다리며
사선을 타다

 

세상이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잡아내자.

백패킹은 내가 시도해온 여행 중에 가장 흥미진진한 경험이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면 과감하게 미지의 장소로 떠나야 한다. 속세의 편안함을 버리고 불편을 감수함으로써 어떤 깨달음과 자신의 정체성을 얻게 된다. 자연 속에 머물면서 몸과 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면 숨겨진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나는 많은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다. 나를 크게 혹은 작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오직 내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백야항
백야항의 새벽

내가 미쳤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오늘 이러고 있나? 나도 모르게 나온 소리다. 장거리 이동에 산행까지 그야말로 강행군이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몸을 이끌고 개도 구릉지의 도로를 걷고 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바라보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이온 음료를 마신다. 그리고 걷고 또 걷는다.

이곳이 개도주조장이다.

개인적으로 주조장보다는 술도가라는 단어가 더 좋다.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을 것 같은 이곳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도 없으면 안 되는데.’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 안쪽에 어머님이 보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나의 출현으로 당황하시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이 마주치자 어머니 막걸리 주세요.’를 외친다.

 

개도 들녘
개도주조장

 

감로수가 따로 없다.

몇 병 줄까요?’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3병 주세요라고 말한다. 밤도 길고 하니 혼자서 3병 정도는 마실 수 있을 것이다. ‘3병에 5,000이라고 말하면서 냉장고에서 꺼내주신다. 막걸리를 맛보라고 따라주신 한 대접이 산행 후라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파김치 한쪽도 손으로 집어 먹는다. 그 후 차가운 물 한 대접을 더 얻어 마시니 얼굴에 화색까지 돈다.

갈 길이 구만리다.

텐트가 있는 청석포해수욕장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한다. 개도 생막걸리가 든 에코백을 들고 부리나케 길을 걷는다. 신흥마을 입구에 공공화장실이 있다. 세수하고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구석구석 닦는다. 땀의 끈적거림이 사라지니 기분이 좋아진다.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하루다. 다시 텐트에 돌아온 시각이 오후 6시다.

 

개도생막걸리
개도의 오후
청석포해수욕장

 

석양이 질 무렵.

간단히 저녁을 먹는 동안 막걸리를 반주로 마셨다. 흰 구름은 그대로인데 배경이 빠르게 먹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다도해 어느 곳보다 이곳은 황량하다. 남쪽을 향해 V자로 펼쳐진 암반을 광막한 바다 위로 신비롭게 드러내고 있다. 그 암반에 서 있는 나는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친다. 무섭게 다가오는 어둠의 공포를 침착하게 맞을 준비를 한다.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인다.

이곳은 자연이 만든 천혜의 온돌이다. 텐트는 후텁지근함을 넘어 후끈후끈하다. 낮의 햇빛을 가득 머금은 암반은 그 열기를 밤이 되어 그대로 내뿜는다. 온돌침대의 효과가 너무 좋아 텐트에 머무를 수 없다. 밖은 바람이 불어 시원한데도 모기는 나에게 끊임없이 덤벼든다. 진퇴양난을 어찌할꼬?

 

 

후드득, 후드득.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빗소리에 눈이 떠진다. 갑작스레 굵은 빗방울이 텐트에 성기게 떨어지고 있다. 어느새 해풍도 요란하게 불고 바다는 거칠게 포효하며 성을 내고 있다. 해풍의 장난에 밀려오는 파도는 갯바위와 부딪혀 하얀 거품을 연신 토해내고 있다. 밤이 깊어지고 비까지 내리니 암반의 열기가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계속 내릴 것 같은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그친다.

비 온 뒤 하늘이 더 깨끗하다.

보름달은 며칠 사이 그믐달로 기울고 있다. 달이 변하지 않는 것은 바다를 비추는 은빛뿐이다. 달빛을 받은 바다는 은빛 물결을 출렁이며 내 영혼을 설레게 만든다.

 

개도의 밤

 

개도에 발을 딛는다.

북쪽에는 여수반도, 북동쪽에는 돌산도, 남동쪽에는 금오도, 서쪽에는 고흥반도가 있다. 개도는 주위의 섬을 거느린다는 뜻으로 (덮을 개) 자를 써서 개도(蓋島)라고 한다. 개도에는 엿섯 마을이 있는데 화산, 월항, 신흥, 호령, 모전, 여석이다. 개도에는 마을버스가 운행되었지만, 이용자가 거의 없어 지금은 유명무실해졌다고 한다.

암석해안이 발달해 있다.

개도 남부에는 천제봉(328m), 봉화산(338m) 등 비교적 높은 산들이 솟아 있고 북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진다. 섬 중앙부는 구릉지가 형성되어 있다.

 

봉화산에서 바라본 개도와 다도해
개도여객매표소
마을이름 유래

 

대장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5분간의 지하철을 타고, 10분간의 걷기를 하고, 3시간의 기차를 타고, 1시간의 버스(2)를 타고, 20분간의 배 타고 개도에 도착했는데도, 청석포해수욕장까지 약 2.7km를 더 걸어가야 한다.

배낭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거리를 줄여야 한다. 개도선착장에서 신흥마을로 제방을 따라 걸어간다. 경작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이 불청객인 나를 반겨준다. 신흥마을로 접어든다. 인적이 드물어 고요한 골목길을 조용히 걷는다. 힘겨운 35분간의 사투 끝에 계단을 내려와 목적지에 도착한다. 여기가 바로 청석포해수욕장이다.

 

경작지
신흥마을에서 바라본 제방과 경작지
신흥마을

 

산과 인접한 너럭바위에 텐트를 친다.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게 무거운 돌과 줄로 텐트를 고정한다. 바닷바람은 부는데 내 몸을 식힐 정도가 아니라 계속해서 땀이 흐른다. 한낮의 열기를 먹은 너럭바위는 나무를 많이 땐 한겨울 구들장처럼 뜨겁다.

이온 음료를 들고 다시 길을 나선다.

계단이 아닌 해안가로 내려가니 갯내가 한층 짙어진다. 파도에 밀려온 온갖 종류의 쓰레기와 몰래 버리고 간 생활 쓰레기가 지저분하게 널려 있다. 왜 사람들이 해수욕장을 거치지 않고 농로에서 계단으로 내려오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발 쓰레기는 되가져 갑시다.’ 무거운 배낭이 없으니 발걸음이 전보다 한결 가볍다. 등산로 입구가 있는 갈림길까지는 오르막인데도 불구하고 힘이 들지 않는다.

 

청석포해수욕장
개도 야영지 - 청석포해수욕장 암반

 

봉화산에 오른다.

신흥마을 뒤편 갈림길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이정표와 안내판의 봉화산까지 거리가 다르다. 이정표는 1.75km이고 안내판은 4km이다. 양쪽 표기가 다르기에 혼란스럽다. 마음을 굳게 먹고 산행을 시작한다. 최근에 풀을 깎았는지 주변보다 등산로의 깨끗하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등산로의 노선은 풀만 깎았을 뿐 정비되지 않은 상태다. 이름 모를 버섯이 삼나무 숲길에 자라고 있다.

온화한 날씨라기보다는 무덥다.

숲속은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다. 이온 음료는 벌써 바닥을 보인다. 거미줄이 땀으로 뒤범벅된 얼굴에 들러붙는다. 봉화산을 오르는 내내 거미줄과 사투 중이다. 천제봉을 거쳐 봉화산까지는 능선을 오르내린다. 지친 심신에 위안이 되는 건 하늘과 어우러진 다도해를 바라볼 수 있다. 산행을 시작하고 1시간 30분 만에 너운당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개도 등산로 안내판
봉화산 등산로
천제봉
봉화산
너운당 등산로 입구

사위가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텃밭에 물을 주려고 나왔다. 가로등 불빛이 없었더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나서 밤이 한층 더 길어졌음을 실감하고 있다.

물뿌리개로 조금씩 물을 준다.

사흘 전, 고추를 뽑아낸 자리에 무와 상추씨를 뿌리고 쪽파를 심었다. 어느새 흙 속에 묻혀있던 씨앗이 발아해서 새 생명이 움트기 시작한다. 옥상에서 희미하게 밝아오는 여명을 지켜보며 자연의 신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쪽파
상추
알타리무

 

오늘 나는 개도에 간다.

지하철 안, 남들이 분주하게 출근할 때 나 혼자만이 반바지에 등산화를 신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있다. 무심결에 나를 훑어보는 눈초리가 사방에서 느껴진다. 추석 연휴 후 첫 출근길이라 그런지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인 듯하다.

오늘따라 구슬땀이 흐른다.

아침 기온은 높지 않은데 햇살이 뜨겁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져서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서대전역 대합실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땀을 식히고 있다. 기차를 타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개도 백패킹이 시작되는 것이다.

 

서대전역
개도에서 트래킹중인 나

 

개도 백패킹의 대장정이 시작되다.

750분 서대전역에 도착한 무궁화호 기차는 계룡, 연산, 논산, 강경, 익산, 삼례, 전주, 임실. 오수, 남원, 곡성, 구례구, 순천을 지나 1046분 여천역에 도착한다. 역을 지날 때마다 내리고 타는 사람들로 주위가 어수선하다가 전주를 지나니 확연히 한산하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들녘풍경은 계절이 확연하게 가을로 접어들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여천역에서 바라본 하늘은 아직 청명하다.

33번 버스를 타고 4 정거장을 지나 내렸는데 진남시장이다. 백야항을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28번 버스로 환승을 해야 한다. 버스는 15분 전에 떠났다고 한다. 다음 버스는 한 시간 후에 있다. 진남시장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수 날씨를 검색해보니 오후 3시쯤 한차례 소나기 예보가 있을 뿐 대체로 흐린 편이다. 비 예보는 없어 천만다행이다.

 

여천행 무궁화호
여천역
진남시장 정류장
버스를 기다리는 나

 

개도 가는방법 1.(여천역에서 버스타기)

 

다시 버스를 타다.

12시쯤 도착한 28번 버스를 타니 승객이 거의 없다. 모든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도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버스가 움직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버스가 멈춰 서면 무덥고 바람이 후텁지근하다. 하지만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접어드니 버스는 쉼 없는 질주로 이어진다. 백야대교를 지나고 버스 탄 지 50분 만에 종착지인 백야항 선착장에 도착한다.

폴라포를 먹는다.

오후 120분부터 매표라서 백야도 여객선 대합실에 배낭을 내려놓고 하나로마트로 간다. 인근 식당과 카페는 모두 문이 닫혀 있다. 아침을 먹은 후 지금까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려고 하다가 나도 모르게 폴라포를 집어 든다. 꽝꽝 언 폴라포를 입에 물으니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바다는 잔잔하고 백야도는 고즈넉하다.

 

28번 버스
백야도 여객선 대기실
백야도
고즈넉한 백야항

 

매표가 시작되다.

주위를 둘러봐도 개도에 들어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더없이 좋군.’ 승선시간까지 대합실에서 핸드폰을 충전하고 있는데 직원이 언제 개도에서 나올 건지를 묻는다. 개도에서 금오도로 넘어갈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더니 나를 한 번 더 쳐다보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때까지도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태평양 3호를 타다.

매캐한 냄새를 내뿜으며 배는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다. 혼자라 더 넓게 느껴지는 선실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 큰 배를 내가 전세를 낸 것 같은 기분이다. 제도를 거쳐 개도까지는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도의 모습은 눈에 더 크게 들어온다. 벌써 내릴 시간이다.

 

 

승선권
태평양 3호
텅빈 선실
홀로 여행중인 나
개도(화산)

 

개도 가는 방법 2.(백야항에서 배타기)

대관령 훑어보기 1탄

 

6. 양떼목장

알프스가 아니라 대관령이다.

푸른 하늘에 양떼구름이 유유자적 떠다닌다. 드넓은 바다를 고래가 헤엄치듯 푸른 초원에도 양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수확을 앞둔 인근의 양상추밭, 감자밭과 함께 양떼목장은 알프스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대관령하면 제일 먼저 양떼목장이 떠오른다.

대관령에는 대관령양떼목장, 대관령하늘목장, 대관령삼양목장, 대관령순수양떼목장, 알프스양떼목장, 바람마을양떼목장 등이 백두대간과 인접한 높은 봉우리로 둘러싸인 낮은 경사면에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양떼목장의 즐길거리는 먹이주기 체험과 산책로 걷기이다.

양은 5월 중순에서 10월 말까지 초지 풀이 자라는 시기에 방목된다. 드넓게 펼쳐진 초지를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풀을 뜯는 양떼를 보게 된다. 먹이주기 체험은 축사 안의 양에게 건초를 주는 체험이다. 양은 배가 부르면 더는 건초를 먹지 않는다.

 

대관령양떼목장

 

7. 티롤빌리지

알프스 테마마을이다.

티롤빌리지는 오스트리아의 티롤지방을 모델로 유럽의 광장문화를 접목했다. 용산리 알펜시아리조트 입구에 있다. 도로와 광장의 레벨 차를 이용해 상업시설과 주거시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전형적인 알프스 산악마을의 모습이다.

인형박물관과 노기하우스도 있다.

인형박물관은 국내 유명 인형작가 및 수집·창작한 인형이 10여개의 전시실에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다. 연애계 대표 피구어 매니아인 전영록은 특별관을 통해 취미를 공유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라이브공연을 할 수 있는 노기하우스와 희귀앨범 등 개인소장품을 전시하는 개인박물관도 있다.

 

비엔나 인형박물관
티롤하우스
노기하우스

 

8. 눈꽃마을

대관령은 1950년대 우리나라 스키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목장 경사면에서 고로쇠나무로 만든 전통 썰매를 타고 활강했다고 한다. 썰매는 스키를 짧게 만든 것처럼 생겼다. 이는 사냥과 이동의 편리함을 위해서였다. 그 역사적인 장소에서 2018년에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린 것이다.

대관령은 눈과 얼음의 나라이다.

눈꽃마을은 차양 2리에 있다. 겨우내 눈이 내리면 쌓이기만 하지 녹지 않는다. 백두대간 준령인 황병산 자락이 뒤를 감싸고 있다. 봅슬레이 눈썰매, 스노우래프팅으로 짜릿한 활강을 즐길 수 있다. 전통 썰매, 설피 등과 대관령풍력단지를 조망할 수 있는 눈꽃마을 트래킹도 빠질 수 없는 체험이다.

 

눈꽃마을 유아숲체험 1
눈꽃마을 유아숲체험 2

 

9. 의야지바람마을

의로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횡계2리에 있고 그런 의미로 자연부락명이 생겼다. 바람은 자연의 바람희망의 바람으로 마을 이름을 의야지바람마을이라고 했다. 임진왜란때 경주김씨의 후손이 사부랑이라는 관직을 지냈는데 그 묘가 있는 마을 골짜기를 사부랑골이라고 한다.

·관협업 우수사례 사업지이다.

행정안전부가 공모한 인구감소지역 통합지원사업1호 사업지로 선정되면서 마을의 모습이 점차 바뀌고 있다. KT의 지원을 받아 세계 최초의 5G 시범 마을이 되었다. 지역활력센터가 건립되면서 치즈만들기, 아이스크림 만들기, 양 먹이주기, 눈썰매 타기 등 마을관광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부랑골
의야지 향토음식점
의야지바람마을 안내도

 

10. 지르메마을

스키와 황태 발생지이다.

횡계리에 있는 지르메마을은 1960년대 제1 스키장이 개장하면서 스키대회가 처음 열렸다. 마을을 흐르는 송천 주변으로는 황태덕장이 들어섰다. 국내 황태덕장 마을로 가장 유명하며 진부령 아래 용대리보다 먼저 들어선 덕장이다. 또한, 스키와 황태를 주제로 한 벽화 거리도 조성되었다.

겨울바람은 매섭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피난 온 함경도 사람들이 호구지책으로 황태덕장을 꾸렸다. 황태는 하늘이 만들어준다고 한다. 오랜시간 하늘의 날씨에 맡겨야 한다. 황태는 33번의 손이 가야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야 좋은 황태가 된다.

 

지르메마을 황태촌
지르메마을에서 바라본 능경봉

 

11. 황태

명태는 다양한 이름을 가진다.

싱싱한 생물이면 생태, 새끼때는 노가리, 얼리면 동태, 반쯤 말리면 코다리, 완전히 말리면 북어, 그리고 황태가 있다. 밤이면 추운 날씨에 꽁꽁 얼었다가 낮에는 따뜻해서 녹기를 서너 달을 보내야 황태가 된다.

황태 음식은 대관령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이다.

황태국, 황태미역국, 황태구이, 황태찜 등이 황태를 이용한 음식이다. 횡계리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황태촌, 황태덕장, 황태회관을 모두 가보았다. 황태정식을 주문하면 황태국이 서비스로 나온다. , 콩나물, 두부, 황태를 넣고 푹 끓인 황태국은 시원하며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반찬으로 나오는 황태식해가 별미이다. 개인적으로 황태의 색깔, 황태의 크기, , 반찬 등으로 판단해보면 알배추가 나오는 황태회관이 제일 맛있었다.

 

황태회관 황태정식
황태구이
황태덕장 황태정식 및 황태찜

 

12. 오삼불고기

대관령면 횡계리는 오삼불고기의 원조다.

1970년대 초, 어느 젊은 여인네가 처마가 낮은 납작한 곳에서 어렵게 주점을 운영하면서 살게 되었다. 아이스박스에 오징어를 넣고 판매하다 보니 오징어가 변해 있었다. 그 오징어를 고추장에 발라 연탄불에 구워 팔았던 것이 오삼불고기의 유래가 되었다.

독특한 풍미를 맛볼 수 있다.

전통적인 조리법은 철판에 호일을 깔고 양념된 오징어와 돼지고기를 올려 요리하는 것이다. 고산지대인 횡계의 추운 날씨가 매운 고추장과 궁합이 잘 맞고 오징어와 돼지고기와 만나 창의적인 먹거리를 개발한 것이다.

 

횡계리 오삼불고기 거리
오삼불고기

 

13. 막국수

대표적인 메밀 산지의 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

삼교리동치미막국수는 폭설이 내린 3월에 방문했다. 대표메뉴인 동치미막국수와 수육을 먹었다. 면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 메밀면 특유의 식감을 느낄 수 있고 동치미육수라 더 시원하고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수육은 무척 비싸지만 고기의 질이 좋고 쫀득했다.

평범한 가정집같은 분위기다.

국민의 숲 인근에 있는 가시머리식당은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하순에 갔다. 식당 인근 지명인 가시머리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더울때는 막국수가 진리다. 메밀면 위에 김가루가 뿌려지고 무채, 오이채가 올려졌다. 빨간 양념장에 삶은 달걀 반쪽을 올린 후 살얼음 가득한 육수를 부었다. 육수는 깔끔하고 시원했고 메밀면은 쫄깃했다.

두 곳 모두 인제의 막국수와는 사뭇 다른 대관령만의 막국수를 맛보았다.

 

삼교리동치미막국수 및 수육
가시머리식당 막국수

[프롤로그]

 

새벽 4.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알람도 울리기 전인데 눈이 떠진 것이다. 열린 창문의 방충망 뒤편은 여전히 어두웠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처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은 비였다. 두두두두. 빗소리는 커다란 소음을 일으키며 대야에 떨어졌다. 첨벙첨벙. 순식간에 그 소리가 변했다. 벌써 대야에 물이 차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 고추에 물은 안 줘도 되겠네.’

도시는 비에 흠뻑 젖었다.

비가 내리면서 어둠살이 깔린 거리엔 왠지 모를 우울함이 바람과 함께 나부끼기 시작했다. 아침이지만 거리의 가로등과 상점들은 다양한 색깔의 빛으로 어둠을 밀어내는 몸짓을 시작했다. 그들만의 빛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빛의 현란함 속에서도 도시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엔 우산을 받쳐 든 사람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7월, 어느 비오는 날 아침

 

폭우 속에 나와 K가 있었다.

내가 커피를 사고 K가 물과 담배를 샀다. 우리들의 루틴은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루틴을 마치자 나와 K는 폭우를 뚫고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비는 액체이지만 차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고체처럼 선명하게 앞 유리에 부딪혔다. 유성을 출발하여 진천터널을 지날 때쯤에서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무겁게 깔린 먹구름은 흰 구름으로 대체되었다.

대관령면에 도착했다.

올해만 4번째 방문이고 평소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3월과 5월에는 하루, 6월에는 3일을 체류했다. 7월에는 5일을 체류할 예정이었지만 비가 와서 4일째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3월은 폭설이 내렸고 5월은 비가 왔고 6월과 7월은 흐렸다. 6월의 낮은 서늘했고 7월의 낮은 해발고도만큼 해가 비치는 곳만 뜨거웠다.

다른 지역보다 여름이 시원하다는 것은 대관령면에 오고 나서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3월, 폭설
3월, 횡계리 배추밭
6월, 능경봉 아래 전원단지
7월,횡계리 배추밭

 

 

[훑어보기]

 

1. 대관령면

대관령면은 대부분이 산악지대이다.

강원도 평창군의 북쪽에 위치하며 강릉시에 인접하고 있다. 북쪽에는 황병산, 동쪽에는 백두대간 선자령 · 능경봉 · 고루포기산이 있고, 남쪽에는 발왕산이 있고 서쪽에는 매산 · 장군바위산이 둘러싸고 있다. 높은 고산으로 둘러싸인 고위 평탄 분지 같은 모습이다. 한우연구소, 가금연구소, 양떼목장 등 이국적 풍광의 초원이 대관령면 전역에 산재해 있다.

기후는 변화무쌍하다.

해가 뜨는 듯하다가 안개 같은 구름이 순식간에 뒤덮어 버린다.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다. 여름 기온은 평지보다 4정도 낮다.

 

지르메마을에서 바라본 능경봉과 고루포기산
대관령면
알펜시아 스키점프대

 

2. 대관령

대관령은 큰 고개다.

높은 고개를 뜻하는 관()에 령()까지 붙었으니 높고 험준한 고개였음을 알 수 있다. 대관령은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관문으로 평창과 강릉의 경계에 있다.

4번 대관령에 왔다.

내가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강릉 방향, 위 주차장)을 찾은 것은 6월에 한 번, 7월에 세 번이다. 이곳에 올 때마다 변화무쌍한 기후에 놀라곤 했다. 뜨겁게 햇볕이 내리쬐다가도 순식간에 구름에 뒤덮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시내는 맑은데 이곳은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구름이 낮게 드리워지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주차장은 드넓었다.

현재 이곳은 신재생에너지전시관, 평창대관령수소충전소, 대관령숲길안내센터, 대관령유아숲체험관, 공중화장실이 자리하고 있다. 6월말에서 9월말까지를 제외하고는 드넓은 주차장은 한산하다.

서늘함이 느껴졌다.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낮다고 내 마음마저 서늘해지진 않는다. 이곳은 6월 말부터 캠핑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은 허가된 야영장이 아니다. ‘야영 · 취사 · 쓰레기 투기 금지라는 현수막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질서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휴식을 취하거나 음식물을 먹고 있었다.

주차공간이 없었다.

백두대간이나 대관령 숲길을 찾아온 사람들은 주차할 공간을 찾을 수 없었다. 캠핑카, 텐트 등 주차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차량이 70대가 넘었다. 이런 행태는 야간이나 주말에는 100대가 훌쩍 넘는다고 한다. 대부분은 한달이상 장박을 한다고 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취사의 위험성, 소음, 쓰레기 투기, 화장실 사용문제 등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었다. 불법을 자행하는 사람들이 이런 불편을 호소하며 오히려 악성 민원을 넣고 있는 게 현실이다.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라고 생각된다.

주차료를 받는 휴게소가 있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횡계 방향, 아래 주차장)은 올 초부터 주차료를 받기 시작했다. 최근에 주차료 받는 희한한 휴게소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중앙일보 박진호 기자(7/17, 7/19).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다. 단지, 아래 주차장처럼 위 주차장도 주차요금을 받는다면 캠핑족의 이런 행태는 확 줄었을 것이다.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원만한 해결책을 관계기관에서 하루빨리 찾길 바랄 뿐이다.

 

대관령
6월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 ( 강릉 방향 ,  위 주차장 )
7월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 ( 강릉 방향 ,  위 주차장 )
7월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 ( 강릉 방향 ,  위 주차장 )
7월,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 ( 횡계 방향 ,  아래 주차장 )

 

3. 대관령 국가숲길

대관령에는 국가숲길이 있다.

국가숲길은 산림·생태적,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아 체계적인 운영·관리가 필요한 숲길을 정부에서 지정·고시하고 관리하는 정책이다. 그간 최초 지정된 지리산둘레길, 백두대간트레일, DMZ편치볼둘레길, 대관령숲길과 추가 지정된 내포문화숲길, 울진금강소나무숲길 총 6개소가 국가숲길로 지정되었다.

대관령 국가숲길은 12개 노선으로 약 103km이다.

숲길은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성산면에 걸쳐 있다. 개별노선으로 관리되던 숲길을 대관령의 자연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4개의 주제 순환 숲길(목장코스, 소나무코스, 옛길코스, 구름코스)로 새롭게 구획했다.

 

대관령숲 안내도
대관령 국가숲길 목장코스
올림픽트래일

 

4. 국민의 숲

국민의 숲은 인공조림지다.

대관령 국가숲길 중 개별 숲길에 포함된 국민의 숲은 전나무, 낙엽송(일본잎갈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독일가문비 등이 조림되어 있다. 숲 옆에는 양묘장이 있다. 침엽수가 주종을 이뤄 강력한 살균물질인 피톤치드를 즐기며 걷기에 편안한 숲길이다.

야생화도 다양하다.

은대난초, 동자꽃, 좁쌀풀, 쥐오줌풀, 노루오줌, 은방울꽃, 개쉬땅나무꽃, 고광나무꽃, 산사나무 열매 등 잘 정리된 숲길 주변으로 계절에 따라 야생화가 피고 진다.

숲에 벌레가 없다.

7월 한낮, 무더위에도 숲은 시원하며 모기 등 벌레가 거의 없었다. 국가대표 등 운동선수들의 훈련장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국미의 숲 1
국미의 숲 2
국미의 숲 3
동자꽃

 

5. 등산안내

선자령

백두대간 중심부에 있는 봉우리로 해발고도는 1,157m이다. 강릉시가지와 푸른 동해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초원 위의 풍력발전단지도 장관이다.

능경봉

백두대간에 있는 고산으로 해발고도는 1,123m이다.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겨울에는 무릎이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이는 곳이다.

고루포기산

백두대간에 있는 고산으로 해발고도는 1,238m이다. 울창한 숲, 초원지대, 야생화가 조화를 이루어 풍경이 아름답다.

발왕산

대관령면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우뚝 솟아 있고 해발고도는 1,458m이다. 사계절 휴양리조트인 용평리조트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이다. 정상에는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의 수백년 묵은 주목 군락과 철쭉이 장관을 이루는 산이다.

장군바위산

칼산, 투구봉과 함께 횡계의 고원지대를 지탱하면서 명성을 지키고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140m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신선바위, 코끼리바위 등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 특히, 맑은 물이 흐르는 백일평 계곡을 끼고 있어 청청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칼산

횡계리를 기점으로 하여 차항리와 용산리 사이의 산으로 해발고도는 941m이다. 참나무숲 사이로 스키점프장과 알펜시아스키장이 보이고 정상에서는 이국적인 풍력발전소와 드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대관령면 등산 안내도
발왕산 엄홍길 숲길 입구
능경봉 등산로 입구

 

1년 전 이맘때에 인제를 갔었다.

어느 지역을 간다고 말하는 순간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나는 오늘 인제에 간다. 늘 만나던 노은동 약속장소에서 K형과 만났다. 이른 아침이라 단골 카페는 문을 열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선택된 곳이 파리바게뜨였다. 장거리 여행을 하기 전 승용차에 휘발유를 넣듯 커피는 우리에게 에너지를 제공한다.

월요일인데도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유성에서 출발하여 청주, 오창, 진천, 충주, 홍천을 거쳐 인제로 향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후텁지근하게 느껴지던 바깥 기온은 점점 내려갔다. 아침 하늘은 아이가 생떼를 부린 듯 흐렸다.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것처럼 엷은 먹색 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을 향해 입김을 세게 불면 엷은 먹색 구름이 흩어져 맑은 하늘이 나올 것 같았다.

 

통영 바닷가의 하늘

 

1년 만이다.

원통에 있는 다들림막국수에 왔다. 과속도 하지 않았는데 약속 시각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일행을 기다리며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입구에 간판이 없었더라면 그냥 시골의 여느 집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작년에 왔을 때도 이곳이 식당이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현관 앞에는 커다란 밤나무가 식당의 수호신처럼 자리하고 있다.

맛집이 없는 고장은 없다.

인제에 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막국수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인제에 오면 막국수를 먹고 있다. 막국수는 춘천이 아니라 인제에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제에는 막국수 맛집이 여러 군데 있는데 그중 합강막국수, 다들림막국수, 방동막국수, 옛날원대막국수를 추천하고 싶다. 식당마다 고유의 육수 제조법이 있어 막국수 맛이 다 다르다.

 

다들림막국수
식당내부

 

비빔 막국수 3, 물 막국수 1, 편육 주세요.

내가 인제에 올 때마다 물 막국수를 먹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 모닝커피를 마시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행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미리 주문했다. 점심시간 전이라 식당에는 우리만 있었지만 금방 모든 자리가 다 찰 것이다. 면을 뽑는 기계음이 들리고 주방의 분주한 움직임은 다양한 소리로 알 수 있었다.

모든 음식은 색감이 있다.

음식은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맛이 달리 표현된다. 맛으로 표현되는 음식은 주관적이지만 색감으로 표현하는 음식은 객관적이라 더 좋다. 두부는 노르스름하고, 수육은 밝은 회색을 띠고, 상추는 녹색이고, 김치는 빨간색이다. 막국수의 달걀은 하얗고, 오이는 밝은 연두색이고, 면은 옅은 자색이고, 김 가루는 까맣다.

 

두부
편육(15,000원)과 기본반찬
물막국수 7,000원
비빔막국수 8,000원

 

막국수를 먹으면 좋은 이유가 있다.

물 막국수는 시원하고 비빔 막국수는 매콤하다. 비빔 막국수를 먹다가 육수를 넣어 물 막국수로 먹을 수도 있다. 면은 탱탱하지만 부드럽고 얼린 살얼음 육수가 시원하다. 막국수를 먹으면 덤으로 편육(수육)까지 먹게 된다. 과식과 폭식을 해도 배가 더부룩하지 않다. 식후 금방 배가 꺼져 또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막국수를 먹으면 온몸이 서늘해진다.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개인적인 취향을 고려하여 식당마다 양념을 따로 준비해 두고 있다. 막국수에 설탕, 식초, 겨자, 들기름을 넣는 것에 대한 고민은 행복한 고민이다. 막국수를 먹는 순간만큼은 모든 일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막국수를 먹는 행위에 마음을 다하고 색감을 즐기며 먹으면 된다. 그냥 천천히 육수를 마시면 머릿속의 번잡함은 소리 없이 사라진다.

막국수를 먹은 뒤 카드로 계산을 했다.

은행 계좌에 존재하는 돈이지만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돈을 사용했다. 존재하지만 사용할 때는 없는 돈을 쓴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무엇을 먹고 다니든지 나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의 총량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옛날원대막국수
곰취수육 20,000원
곱배기 막국수 10,000원

 

한계령을 넘었다.

내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도시 생활로 찌든 내 안의 번뇌를 깨끗하게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내 모든 발걸음에 선명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걸어온 발자국이 아쉽지 않게.

도로에 한여름 냄새가 난다.

한낮의 불볕더위가 공기를 뜨겁게 달궈 시큼한 냄새가 난다. 살아 있는 식물은 메말라 앙상해지고 그림자의 그늘은 점점 좁아진다. 햇빛의 딱딱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원통에서 한계령을 넘어 필례약수에 왔다.

이곳에 인제 천리길이 있다. 길에도 목적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인데 목적 없이 만들어진 길이라면 쓸모없는 길이 되고 만다. 더군다나 걷는 사람에게 허무감을 주기 쉽다.

 

한계령
한계령휴게소
점봉산 자락(오색방향)

 

지난주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불볕더위라 낮에 햇빛을 받으면 그늘을 찾게 된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 천둥소리와 함께 먹장구름이 산릉선을 넘어와 순식간에 폭우가 쏟아졌다. 눈앞의 사물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내렸다. 리모컨을 눌러 텔레비전을 끄듯 리모컨으로 비를 멈추게 하고 싶었다.

인제에서의 밤은 길었다.

여느 때처럼 저녁을 먹고 술자리가 이어졌다. 늘 보는 사람들이지만 마치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처럼 밤늦게까지 왁자지껄했다. 밤이 길었던 만큼 아침은 금방 찾아왔다. 산을 감싸고 있는 안개 같은 흰 구름이 산들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아침 기온은 높았으나 체감온도는 훨씬 낮게 느껴졌다.

 

인제 전통시장

 

인제의 산은 푸르다.

푸른 숲, 내가 찾아간 필례약수의 주변 숲도 푸르렀다. 불볕더위를 이겨낸 찰피나무와 까치박달 나무가 열매를 흐드러지게 맺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필례약수를 가다 보면 찰피나무 가지 틈으로 맑은 하늘이 숨어 있다. 구름을 뚫고 빛이 대지에 닿으면 음지가 사라지고 양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양지는 음지를 없애버린다. 마치 음지는 가짜이고 양지가 진짜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낮의 따가운 햇볕이 도로 위로 쏟아졌다.

햇빛이 장맛비처럼 강렬하게 내비친다. 햇빛을 머리에 이고 걷자니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떨어진다. 아지랑이가 꿈틀거리는 필례계곡에는 사람들이 나무 그늘서 삼삼오오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필례계곡
필례약수
찰피나무
까치박달나무

 

숲속에 앉아 계곡을 흘러가는 물을 바라봤다.

굳었던 몸이 이완되면서 마음마저 차분해진다. 내 호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내 안의 계곡 속에 빠져들었다. 세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편안함이 나에게 찾아들었다. 맑은 물처럼 내 의식도 점점 맑아지고 있다.

이곳만큼 숨쉬기 좋은 장소도 없다.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숲을 이뤄 우거져 있고 맑은 계곡이 사시사철 흐른다. 무심코 쉬는 숨이 아니라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복식호흡을 해야 한다. 호흡에 집중하면 마음과 몸이 편안해진다.

 

5단 폭포

 

숲길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숲길 조사가 고되고 힘들수록 숲길을 더 놓은 길이 될 수 있다. 숲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숲 안을 들여다보면 밖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난공불락의 요새 같이 지형이 험한 숲에 숲길 조사자의 열정이 더해지면 불가능할 것 같은 숲길 노선에 서광이 비치며 온기로 채워진다.

덤불 숲, 흔들리는 이끼긴 돌, 무더위,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 갈증, 산모기의 공격. 느릿느릿 움직이는 뱀, 모든 역격을 이겨내고 지금 내가 내딛는 걸음이 좋은 숲길이 된다면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

 

필례약수에서 바라본 귀둔리 야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