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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유럽 2탄 - 9일차(6/4), 베흐농, 모네의 집과 정원-지베흐니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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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피곤해도 샤워를 하고 잤을 때의 아침이 훨씬 개운하다. 노트북을 들고 오늘도 로비에 나갔다. 생활 리듬상 평소보다 늦은 시각이지만 내가 쓰려고 했던 여행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오늘만큼은 소풍 같은 하루를 보내려고 한다. 호스텔을 나왔을 때가 한창 출근 시간이었다. 출근하는 파리지앵, 파리지엔느와 섞여 생라자르 기차역까지 40여 분을 분주하게 걸었다. 오늘은 모네의 집까지 설렘을 안고 가고 싶다.

 

 

 

예전 우리나라 비둘기호 같은 느낌의 기차를 탔다. 정해진 좌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좌석이나 선착순으로 앉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차 탑승이 우리네 출근길 지하철에 탑승하는 느낌이 들었다. 운 좋게도 창가 좌석에 앉아 소풍이라는 오늘 콘셉트에 걸맞게 캔맥주를 마셨다. 파리를 벗어나자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한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에 기차는 베흐농에 도착했다.

 

 

 

내가 누군가? 그리고 이번 여행 콘셉트는 웬만하면 걷는 것이다. 그깟 5km를 셔틀버스를 타고 갈 사람처럼 보이는가? 기차역을 벗어나 골목을 걸었다. 파리에 비하면 시골인 이곳은 흡사 우리나라 행정구역상 읍 정도 되는 지역 같았다. 대로변에 있는 마트에서 크루아상과 맥주를 샀다. 그 어떤 것도 나에겐 필요하지 않았다.

 

 

 

다리를 건넌 후 공원을 걸었다. 아침에 선크림을 발랐는데도 햇볕이 따가웠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왜 유럽 사람들이 햇볕을 좋아하는지를 이제야 이해했다.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보니 햇볕을 그리워하는 건 당연하다. 이곳은 프랑스지만 나는 한국인이라 뜨거운 햇살이 싫었다. 조그만 부채로 얼굴을 가리려고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한참을 뙤약볕을 걷다가 나무 그늘이 진 곳을 발견했다. 나에게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파리 외곽, 센강이 흐르는 곳으로 소풍을 왔다. 초록의 녹음을 보자 엉덩이를 철퍼덕 땅에 내려놓았다. 유유히 흘러가는 센강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지금 이 순간이 왜 이러게 좋은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다시 길을 걸었다. 공원을 벗어나 여유롭게 걷다 보니 마을 주변이 온통 꽃이었다. 양지바른 곳에 널어놓은 빨래를 보자 집 생각이 났다. 나도 볕이 좋으면 옥상에 빨래를 널어놓는데. 몽생미셸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아이들이 많았다. 프랑스의 현장학습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러 곳을 다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부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서 줄을 서지 않았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들어가게 된 초록 색깔 이층집, 모네가 살던 집과 정원이었다. 지금의 정원은 모네가 살던 당시에 조성된 정원은 아니다. 대홍수가 일어난 이후 사람들에 의해 다시 조성된 것이다.

 

 

 

 

 

 

 

모네의 집도 편하게 구경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빠르게 줄을 서서 이동해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모네의 삶을 엿보고 싶어 나름 오랫동안 머무르려 노력했다. 아쉬웠던 점은 그의 작품은 다른 미술관에 대부분 전시되어 있고 이곳에는 거의 없었다. 인파에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모네의 연못은 지하로 통하는 터널을 지나야 볼 수 있다. 정원보다는 이곳이 훨씬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 속 버드나무가 이걸까? 사진을 보고 그렸던 장소를 유추해 보지만 그림을 그렸을 거라고 추측되는 장소는 찾을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 수목과 식생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곳에서 모네의 삶을 잠시 엿보며 내 삶을 되돌아본다. 모네와는 결이 다른 삶이지만 내 나름 내 삶을 견실히 구축하며 잘살고 있구나. 기특하다. 성식아!

 

 

 

오후 햇살은 세상을 태워버리듯 더 뜨거웠다. 오전에 걸었던 길을 힘겹게 걸어 다시 베흐농 기차역에 왔다. 기차가 자주 없다 보니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고 벤치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기차를 타고 나서도 내내 졸았다. 아마도 꿈속에서도 모네의 삶을 엿보고 싶었나 보다.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에 베트남 식당에 들어갔다. 처음엔 한식당을 가려다 오후 7시부터 문을 연다고 해서 그만두었다. 소고기 쌀국수, 밥이 나오는 돼지갈비 구이, 맥주를 주문했다. 혼자 먹기에 많은 양이었지만 국물과 고기를 함께 먹고 싶어 주문한 것이다. 칠리소스를 넣은 쌀국수를 매콤하게 먹으면서 돼지갈비를 먹었다. 남은 진한 국물에 국밥처럼 밥을 말아 수저로 떠먹었다. 베트남 음식을 한식처럼 먹었다.

 

 

 

대체 얼마 만에 느낀 포만감인가? 배가 꺼질까 봐 조심스레 걸어 호스텔로 돌아왔다. 샤워하고 얼굴에 팩을 하다 잠들었다. 누군가 내 다리를 건드려서 깼는데 화재 벨이 울렸다고 한다. 주변 동태를 살펴보니 불이 난 것은 아닌데 오작동을 한 것이다. 잠에서 깬 김에 여행용 가방에 짐을 쌌다. 내일은 파리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해야 한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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