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보니 유럽 2탄 - 10일차(6/5), 파리여행, 파리~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여행
오늘은 파리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호스텔 체크아웃은 오전 10시이고 기차는 12시 22분이라 오전 시간을 호스텔에서 최대한 편안하게 보내기로 했다. 체크아웃 전까지는 그동안 못다 쓴 여행기를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오전 8시쯤 잠시 카르푸에 다녀왔다. 물, 맥주, 땅콩, 샐러드를 샀다. 바게트를 사려고 했는데 상태가 별로였다. 아침은 간단히 샐러드를 먹었다. 포장지에 샐러드라고 되어있는데 파프리카와 여러 채소를 잘게 갈아 좁쌀(??) 같은 것과 섞여 있었다. 한 모금 먹었을 때 뭔가 생소한 맛이었는데 계속 먹다 보니 맛있어졌다. 생각보다 양도 많고 식감도 좋았다.
9시 40분쯤 체크아웃을 했다. 로비 소파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떤 목적이 있으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런 와중에 로비 층은 들고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11시 15분쯤 호스텔을 나와 파리 북역으로 걸어갔다. 파리에 도착했을 때 이곳을 지나갔는데 떠날 때가 되어서야 다시 이 길을 걷게 되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에게 파리하면 떠오르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문화 차이겠지만 내 기준에 더럽고 매연 가득한 도심 도로변에서 굳이 저러고 싶나 할 정도로 많았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경익 형과 보이스톡을 했다. 어제 카톡으로 사무실 회식 공지를 봤는데 벌써 퇴근하고 회식 장소에 있었다. 난 그들이 먹는 음식이 먹고 싶은데 그들은 내 여행을 부러워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면 살고 있다.
기차가 30분 지연되었다. 작년 이탈리아에 비하면 애교 수준의 지연이다. 쓸데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8번 플랫폼에서 탑승이 시작되었다.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인파에 밀려 내 의지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벨기에 브뤼셀 경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목적지인데 객실이 많다 보니 기차가 길었다. 내가 타야 할 객차는 플랫폼에서는 맨 끝인데 기차 진행 방향으로 보면 맨 앞이었다.
테이블이 있는 창가 좌석을 예약했다. 가방에서 노트북과 물, 맥주를 테이블에 꺼내놓았다. 기차는 빠르게 파리를 벗어나 벨기에로 향하고 있다. 차창으로 프랑스의 시골풍경이 캔맥주가 줄어드는 속도만큼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 네덜란드 로테르담과 스히폴 공항에서 정차한 후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출발은 30분 지연이었는데 도착은 1시간이나 늦었다.
고흐와 히딩크의 나라에 왔다. 기차에서 내렸을 때 온몸을 감싸는 싸늘한 바람에 놀랐다. 파리보다 북위가 높다지만 이정도로 추울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인파의 행렬을 따라 기차역을 벗어났다. 암스테르담 북쪽에 있는 호스텔에 가려면 배를 타야 한다. 이 배는 무료로 운행되는데 암스테르담 중앙역과 브이크슬로터웨그(Buiksloterweg)를 수시로 운행하고 있다.
배가 출발한 지 2분 만에 반대편에 도착했다. 사람, 자전거, 오토바이가 뒤섞여 배에서 내리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앞으로 자주 배를 타다 보면 익숙해지겠지만 지금은 나에게 그야말로 혼동의 길이다. 더군다나 호스텔 가는 길이 울퉁불퉁해서 여행용 가방을 끌고 가기가 어려웠다.
클링크노르트 호스텔은 1920년대의 실험실 건물을 개조한 곳이다. 전체적으로 깨끗한 느낌 실내가 좋았고 넓은 로비와 공용공간, 지하의 바와 주방 등 모든 시설이 완벽하게 갖춘 곳이다. 더욱이 반갑게 맞아주는 직원의 태도가 기분 좋았다. 런던에서 숙박한 호스텔과 같은 회사였다. 6인실 121호실 1번 침대를 배정받았다. 객실 안에 화장실과 샤워장이 있다. 침구 정리를 한 후 여행용 가방을 열어 옷가지 등을 사용하기 편하게 정리해 두었다.
호스텔을 다시 나왔을 때는 오후 6시였다. 배를 타고 다시 중앙역으로 왔다. 사람과 자전거 전용 터널을 지나 중앙역 앞 시내에 왔다. 중앙역을 등지고 시계방향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둘러볼 생각이다.
인도뿐만 아니라 도로까지 점령한 인파에 섞여 바실리카 성당을 지났다. 늦은 시간이라 문이 닫혀 내부는 구경하지 못했다. 성당 뒤편 운하가 흐르는 골목을 들어섰을 때 진한 대마초 냄새가 코를 찌른다. 우리나라와 달리 네덜란드는 대마초가 합법이라 거리에서 많이 피워댄다. 런던, 파리와 비교하면 거리는 암스테르담이 훨씬 깨끗한 편이지만 담배꽁초는 지천에 널려있다.
좁은 운하를 오가는 작은 배들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아 자주 셔터를 누르게 한다. 운하 주변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섰다. 말레이시아, 태국, 중국, 한국 등 아시아식당이 많은 골목이다. 저녁은 태국식당이 괜찮을 것 같아 한 바퀴 돌고 다시 올 생각이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다. 구글맵을 보면서 골목과 운하를 번갈아 가며 걸었다. 렘브란트가 거주하며 작업했던 미술관과 광장을 지나쳤다. 계속 걷다 보니 담 광장이 나왔다. 그곳에 네덜란드 왕궁이 있는데 무슨 행사 중이라 바리케이드가 쳐져 사진이 이쁘지 않았다. 담 광장은 비둘기의 천국이다. 사람의 손길에 도망가지도 않고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안네 프랑크와 가족이 나치를 피해 비밀 별채에 숨었던 안네 프랑크의 집을 가보고 나서 태국식당으로 향했다.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인데 대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식당에서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나, 다른 음식을 먹으면 먹었지 절대로 기다리지 않는다. 걷다가 본 레바논 식당에 갔다. 운하 옆에서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메뉴가 케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 말레이시아 식당에 들어갔다. 실내가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노안 때문인가?
나시고랭과 생맥주를 주문했다. 맥주를 한 입 마시고 어둑함에 눈이 익숙해지자 말레이시아풍의 내부장식이 눈에 보였다. 흰 접시에 이쁘게 세팅되어 나시고랭은 양도 많았다. 한국인은 밥심인데 밥을 보고 흥분해서 숟가락을 서둘러 집어 들었다. 하루 한 끼 누리는 호사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식당에서 식사하면 호사긴 한데 마치 중국집에서 볶음밥과 맥주 1병을 먹고 3만 5천원을 계산한 기분이다.
오후 9시가 지나도 여전히 환했다. 오늘은 이만 호스텔로 돌아가 쉴 생각이다. 중앙역에서 배를 타고 호스텔로 와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잠시 지하 주방에 가봤는데 주방이 엄청 분주했다. 나도 내일 저녁은 주방을 이용해야지. 침대에 누웠는데 정면에 보이는 통창이 아직도 환했다. 음…. 해가 언제 지는 거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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