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대

 

 

부산대교를 지나 영도해안을 따라 9.1㎞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태종대유원지는

54만 2천평의 면적에 해발250m의 최고봉을 중심으로 해송을 비롯한 120여종의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으며,

해안은 깎아 세운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굽이치는 파도와 더불어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일반버스 66번, 88번, 101번 승차 - 차고지(종점) 하차. 40분소요.

부산역에서 태종대를 대중교통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이용하면 됩니다.

 

부산역-태종대 소요시간 30분, 예상요금 15,000원~20,000원.

택시를 이용해도 무방하지만 버스에 비해 그리 빠르지 않고 요금도 많이 나옵니다.

 

 

 

 

태종대는 부산을 대표하는 암석해안의 명승지로 영도의 최남단에 위치합니다.

 

 

 

 

소형 1,500원, 중형 3,000원, 대형 4,500원, 경차 800원

 

자동차를 이용해서 태종대에 간다면 공용주차장을 이용하면 됩니다.

시간과 관계없이 공용주차장 1일 이용요금은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입니다.

 

 

 

 

1. 걸어서 구경하기

2. 다누비열차 타고 구경하기

3. 유람선 타고 구경하기

 

태종대를 구경하는 방법은 위 세가지가 있습니다.

 

처음엔 다누비열차를 타고 구경하려고 했으나

대기시간만 1시간이 걸린다고 하여 걸어서 구경하기(2시간 ~ 2시간 30분 소요)로 결정했습니다.

 

 

 

 

다음번에는 유람선 선상에서 또 다른 태종대의 정취를 느끼고 싶습니다.

 

태종대는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이탈리아의 나폴리만에 있는 커프리섬을 연상케 할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파도의 침식에 의해 형성된 기암괴석과 울창한 난대림을 비롯해 굽이치는 창파와 어울려 절경을 이루는 곳으로 예로부터 명승지로 알려져 왔습니다.
태종대 유람선은 선착장을 출발, 태종대를 일주하여 한국해양대학교가 있는 조도(아치섬)를 왕복하는 코스로 35분정도가 소요됩니다.

 

 

 

 

태종대는 무료개방을 하고 있다.

 

개방시간은 하절기(3월~10월)는 04:00~24:00, 동절기(11월~2월)는 05:00~24:00

해안가 출입 통제시간은 하절기(3월~10월)는 21:00~05:00, 동절기(11월~2월)는 20:00~06:00(군 작전상 출입금지)

 

 

 

 

다누비열차 운행시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절기 운행시간 09:20~20:00 이고 매표시간은 09:00~19:00

동절기 운행시간 09:20~19:00 이고 매표시간은 09:00~18:30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물론 단체(30인 이상)와 가족요금제가 있어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종대 유원지 입구를 지나 150m를 걸어 올라가면 다누비열차 매표소가 나옵니다.

 

 

 

 

여유와 즐거움 그리고 낭만을 드리는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지 태종대는

다누비열차 운행으로 시민들에게 더욱 편리한 관광이 되실 수 있도록 편의제공을 하고 있습니다.

 

 

 

 

구명사는 현재 전망대 휴게소 절벽을 이용한 염세자살자가 많아짐에 따라 일명 자살바위에 천막식 절을 짓고 불도로 설득하여 자살을 예방하고,

고혼을 달래다 1969년 해안작전도로 개설시에 순직한 육군 제1203 건설공병단 장병 네 사람의 영령을 봉안하기 위해 지난 1976년 군 지원으로 건립되었습니다.

 

 

 

 

다누비열차는 4.3km의 태종대 순환도로를 따라 이동하며 소요시간은 약 20여분입니다.

 

 

 

 

 

태원자갈마당, 구명사, 전망대, 영도등대, 태종사 등 각 정류장에서는

 자유롭게 다누비열차 승·하차를 하실 수 있고, 원하는 장소에서 하차 후 태종대의 천혜의 절경을 감상한 후 다음열차에 탑승하면 됩니다.

 

 

 

 

 

전망대 건물이 나오기 직전에 남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서 걸음을 잠시 멈추웠습니다.

가덕도, 거제도, 다대포, 천마산 등이 보이는 곳이지만 흐린 날씨로 인해 남향대교를 가로막고 있는 해안절벽만이 보이고 있습니다.

 

 

 

 

순환 관광도로의 4.3km 중간쯤에 관광객을 위한 전망대가 있습니다.

태종대를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2곳 중 한 곳이 전망대입니다.

 

해마다 세상을 비관하여 전망대에서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진한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여 삶의 안식과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설치한 모자상이 입구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전망대 앞으로 펼쳐지는 수평선 너머로 일명 주전자섬으로 알려진 생도가 가장 잘 보이고

맑은 날씨에는 일본의 대마도, 제주도 형제섬, 거제도, 나무섬 등을 볼 수 있고 아래로는 해안의 절벽을 볼 수 있습니다.

 

 

 

 

 

전망대 2층에는 한류스타 최지우의 사진전도 함께 열리고 있으며

전망대에서는 간단한 먹거리도 즐길 수 있는 휴게시설들이 있습니다.

 

흐린 날씨로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생도와 주변을 지나가는 배들뿐이라 최지우 사진전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태종대에 같이 놀러온 연인처럼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전망대를 지나 등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태종대를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2곳 중 다른 한곳이 등대입니다.

 

호수에서 태어나 바다와 맞선 바위들이 가득한 태종대는

지구과학적 중요성 및 우수한 경관을 가지는 지역을 보전하고 활용하기 위한 제도인 지질공원에 속해 있습니다.

 

목재데크로 조성된 태종대 식생길을 따라 영도등대로 향했습니다.

 

 

 

 

태종대의 유래에 대하여 '동래부지'에서는 몇 가지로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신라 태종무열왕이 이곳에서 활을 쏘고 말을 달리며 군사를 조련하여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태종이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후, 이곳에서 궁인들과 함께 울창한 수림과 수려한 해안의 절경을 즐기며 한유를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태종이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길에 궁인들이 마중을 나와

이곳에서 만나 연회를 베풀었다는 장소로 사용되어 그것이 유래가 되었다고도 구전됩니다.

속전에서는 신라 태종무열왕의 사후(射侯)의 장소였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에 따라서 현재는「태종대」라는 호칭이 보편화되었습니다.

 

 

 

 

태종대는 기우제를 지내던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신라이후에는 동래 지방에 가뭄이 들면 동래부사가 이곳 태종대로 와서 비 오기를 비는 기우제를 직접 올렸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음력 5월 초열흘날에 오는 비를 '태종우'라 하였는데,

그 이유는 조선 3대 임금 태종왕이 가뭄 때 병으로 누워계시다가 비가오기를 바라며 5월초 열흘날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태종대는 옛날의 동래부에서 남쪽으로 30리가 되는 절영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금의 등대에서 남쪽으로 돌아 절벽 비탈로로 10m쯤 가면 해안가 쪽에 암석이 비바람에 침식되어 낮아진 반반한 넓은 자리를 태종대라고 합니다.

 

 

 

 

신선바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해변 절벽에 파도가 드나드는 너비 1m 안팎인 여러 개의 동굴과 해수면 높이의 평평한 바위들이 보입니다.

이들 해식동굴이 파도가 절벽을 깎아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평평한 바위들은 지반이 융기할 경우 융기 파식대로 될 것입니다.

 

신선바위를 둘로 가르는 너비 7m의 바위틈도 파도에 바위가 깎여나간 해식동굴입니다.

 

 

 

 

태종대는 바닷물이 臺(대)의 주위를 돌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석교가 하나 있고,

그 석교로 사람이 간신히 건널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두 臺(대) 가운데 바다를 향한 오른쪽 대를 '신선대' 또는 '사선암'이라 하였고,

그 대 위에 우뚝 선 바위하나가 있는데 이바위를 '망부석'이라 합니다.

 

이 '망부석'에는 왜국에 잡혀간 지아비를 부인이

신선대에서 먼바다를 바라보며 오랜 날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그대로 몸이 굳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등대자갈마당에 도착하면

태종대의 깎아 세운 듯한 절벽과 신선바위 등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굽이치는 파도와 더불어 절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영도등대 아래에는 유람선을 타는 곳이 있습니다.

MBC 무한도전과 나혼자산다에서도 방영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멍게, 해삼 등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간이 천막들이 준비되어 있는데

양도 적고 기본 한접시에 3만원이라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는 않습니다.

 

태종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술한잔 기울이는 운치를 가진 나이지만 별로 땡기지 않았습니다.

 

 

 

 

등대에서의 가슴 뻥 뚫리는 순간을 제대로 느끼고 발걸음을 옮겨 태종사에 도착했습니다.

 

태종사는 지난 1983. 9월 스리랑카 한국유학생 오병문의 소개로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 1과와 보리수나무 2본을 기증받아 이 곳에 봉안 및 식생되고 있는 곳입니다.

 

 

 

 

 

태종사를 지나서 다누비열차가 지나간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맑은 공기와 바다에서 불어오는 잔잔한 해풍은 자연의 상쾌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태종대 구경을 걸어서 한 것이 가장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2시간 25분의 도보여행이 나에게 최고의 힐링여행이 되었습니다.

[대마도]대마도 백패킹 3일차 - 미우다해수욕장 캠핑장

 

 

대마도 백패킹 본격적인 세쨋날은

니이 버스정류장에서 오후 12시 11분 이즈하라-히타카츠 종단버스를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니이를 출발한 종단버스는

1시간 20여분을 달려 히타카츠 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했습니다.

 

조그마한 히타카츠 시내(도보로 10분~15분)를 통과해서 미우다해수욕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미 니이 밸류마트에서 장을 봤기에 히타카츠 미니 밸류마트에서는 주먹밥만 샀습니다.

 

 

 

 

히타카츠에서 미우다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2곳이 있습니다.

 

히타카츠 국제여객터미널을 지나서 걷다보면

시내를 벗어나기 직전 삼거리에서 도로를 따라 산으로 직진하는 방법과 바다 방향으로 우회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비교적 거리가 짧은(약 2km) 직진코스를 선택했습니다.

히타카츠 시내를 벗어나 도로를 따라 직진하면서 올라가다 보면 터널이 나옵니다.(약 900m거리)

 

 

 

 

 

터널을 나오면 바로 이정표가 나오고

우회전하여 1.1km를 내려가면 미우다해수욕장이 나옵니다.

 

바다가 보이기 사작하고 내리막길이 끝나갈즈음 만나게 되는 미우다해수욕장은

'일본의 해안, 100선'에 선정된 이 곳은 쓰시마에서는 보기드문 고운 입자의 천연 모래해변입니다.

 

 

 

 

미우다해수욕장 표지석 뒤로 관리동이 보입니다.

 

관리동 입구에는 근무시간은 08:30~05:00이고 캠핑장 체크인은 1PM~ 5PM이란 안내와 함께

뱀(구렁이, 살모사), 벌 등 위험한 생물이 인근에 많으니 캠핑시 유의하라는 안내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일본 대마도의 모든 캠핑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예약신청서를 작성하여 FAX로 보낸 후 예약확인 FAX를 받아야 합니다.

 

예약신청서 다운로드는 다음과 같다.

쓰시마부산사소(클릭) - 여행정보 - 캠핑장

 

대마도를 오기전에 나는

미우다캠핑장 예약신청서와 예약확인 팩스를 이미 한국에서 주고 받았습니다.

 

 

 

 

관리소에서의 체크인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의사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부분 간단한 사항이라서 뜻을 이해하는 것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영수증과 쓰레기봉투 그리고 한글로 된 종이를 받았습니다.

 

 

 

 

 

사전에 예약된 텐트칠 장소 대여료 1,500엔이외에

쓰레기봉투 2장을 꼭 구매 해야한다고 해서 100엔을 더 지불했습니다.

 

한글로 된 종이에는 '캠프매너를 지킵시다' 라는 문구의 타이틀이 있습니다.

 

 

 

 

텐트를 칠 장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재활용쓰레기 수거통이 있었습니다.

일본 대마도에서 느낀 것이지만... 어떤 장소이든 재활용쓰레기 수거통이 있습니다.

 

 

 

 

주차장에는 폭스바겐 커피숍이 있는데

메뉴는 커피 200엔~300엔, 쥬스 200엔 등 입니다.

 

캠핑 사이트 구축하고 나서 커피한잔 먹으러 갔었지만

이미 폭스바겐 커피숍이 떠나고 없었습니다.

 

 

 

 

 

관리동 뒤편으로 올라가니 넓은 잔디밭이 나왔습니다.

넓은 이 잔디밭을 오늘은 나 혼자 다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무슨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자옆에 텐트를 치고 오늘 하루를 보내기로 결정 했습니다.

이곳이 대마도 백패킹 세쨋날 숙박지인 미우다해수욕장 캠핑장입니다.

 

 

 

 

사실 이곳의 캠핑장은

정자를 기준으로 잔디를 깎은 지역과 안 깎은 곳이 반반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대로 캠핑장 관리가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관리동에 뱀, 벌 등 위험한 생물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문구는 대체 왜 써 놓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소베이파크 캠핑장, 신화의마을 자연공원 캠핑장과는

다르게 미우다해수욕장 캠핑장 주변에는 전기와 수도시설이 없습니다.

 

화장실을 가려해도 멀리 떨어져 있는 해수욕장 화장실을 가야 합니다.

또한 전기는 쓸수도 없고 수도도 해수욕장 샤워꼭지나 화장실 앞 계수대를 이용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가격대비 시설은

대마도 다른 캠핑장에 비해 굉장히 떨어집니다.

 

 

 

 

사이트 구축을 마치고 상설 텐트구역을 구경해 보았습니다.

6인용 텐트 대여료만 3,600엔인 이곳의 시설은 아소베이파크 캠핑장, 신화의 마을 자연공원 캠핑장과 비슷했습니다.

 

 

 

 

 

잔디를 깎은지 한참이나 지나서 풀이 많이 자라 있고

텐트안을 들여다 보니 캐캐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화덕과 개수대는 이용 가능하지만 전기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랜턴을 돈을 주고 따로 빌려야 하거나 자신의 것을 가져와야 합니다.

 

한가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캠프파이어 장소가 넓다는 점입니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상설 텐트구역을 아래의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내 캠핑사이트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화장실과 샤워실이기 때문에 꼭 체크를 해 두어야 했습니다.

 

화장실 앞에는 조그만 개수대가 있는데 세제와 수세미가 있었습니다.

 

화장실 옆으로는 목조건물인 휴게동이 있습니다.

잔디밭보다 이곳이 캠핑사이트로 더 좋지만 허가된 곳이 아닙니다.

점유하지 말고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한국 문구가 있었습니다.

 

 

 

 

 

샤워실 이용은 저녁 5시까지라는 글귀와 함께

시설관리를 위해 밤에는 문을 잠근다고 되어 있었지만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문은 닫혀 있었고 외부의 수도꼭지도 고장이 나 있었습니다.

 

어쩔수없이 미우다해수욕장 주차장에 설치된 외부샤워 시설을 이용했습니다.

 

 

 

 

 

미우다해수욕장은 얕은 바다는 한여름 가족들이 물놀이하기에 적격인 장소입니다.

 

 

 

 

에메랄드 그린의 바다는 남국의 정취조차 느끼게 하며,

운이 좋으면 이 멋진 해변을 혼자서 누릴 수도 있습니다.

 

 

 

 

'일본의 해안, 100선'에 선정된 이 곳은

대마도에서는 보기드문 고운 입자의 천연 모래해변입니다.

 

 

 

 

 

부드러운 고운 입자의 천연 모래해변에

내 블로그 이름인 '뚜벅이가 꿈꾸는 세상'을 섰습니다.

 

조가비 성분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천연 백사장에 햇빛이 반사되어 더욱더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습니다.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이곳 미우다해수욕장을 찾습니다.

해수욕장이 크지는 않지만 아담하게 이쁜만큼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인기 관광코스 중 하나입니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흰 모래와 녹색의 잔디가 만들어낸 풍경화속에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미우다해수욕장 입구는

관리동, 주차장, 화장실, 샤워실, 평상이 있는 정자, 나무의자와 탁자 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차장을 지나 입구쪽에서 바닷가로 걸어가는 곳은

잔디로 덮혀 있으며 나무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어 한층 분위기를 띄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미우다해수욕장 구경을 하고 나니 한 낮의 열기에 몸이 후끈후끈 달아 올랐습니다.

달아오른 열기를 진정시키려고 바로 옆 나기사노유(渚の湯)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나기사노유(渚の湯)는 가미쓰시마 마치 미우다 해수욕장에 위치해 있으며 2004년 2월 오픈 하였습니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노천탕과 대욕탕을 비롯하여

사우나, 전신마사지가 가능한 제트바스와 월풀 욕탕, 탈의실과 휴게실 등 각종 최신시설이 완비 되어 있습니다.

 

 

 

 

 

나기사노유에서 1시간여의 온천욕을 마치고 캠핑 사이트로 돌아왔습니다.

미우다해수욕장을 돌아다니고... 온천욕도 하고... 저절로 배고픔이 찾아왔습니다.

 

서둘러 저녁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음식이라고 해봐야 두 종류의 회, 주먹밥, 김치 그리고 맥주와 소주.

"걸인의 찬, 황제의 밥상"이 따로 없습니다.

 

 

 

 

큰 회 한점을 와사비를 살짝 묻힌 간장소스에 찍어 먹었습니다.

 

음..음.. 맛있다.

씹는 맛이 고소한데...

 

 

 

 

 

참고로... 미니 아이스박스가 이번 대마도 백패킹에 효자노릇을 했습니다.

티아라몰이나 밸류마트에서 회, 신선식품, 맥주 등을 담을 수 있었고, 캠핑장에서는 물을 담는 물통 역할까지 했습니다.

더운 여름에 떠나시는 분들은 꼭 준비해서 가시면 좋을 듯 합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블랙야크 바베큐 미니의자에 앉아 가만히 사색에 빠져들었습니다.

 정자 기둥을 이용하여 연결시킨 줄에 널려있는 나의 분신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빨래로 보이겠지만

3박 4일 대마도 백패킹을 함께한 나의 소중한 분신들입니다.

너희들이 있어 무사히 내가 대마도 백패킹을 마칠 수 있었구나.

 

고맙다... 애들아!!!

 

 

 

 

뉘엇뉘엇 해가 서쪽하늘로 사라질때

미우다해수욕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해는 서쪽으로 지고 미우다해수욕장은 동쪽에 위치합니다.

해수욕장을 배경으로 지는 해를 찍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멋있는 문구를 찍었습니다.

 

블랙야크

캠핑(백패킹) 셰르파

문성식

 

지금은 여행 트래킹 셰르파이지만...

 

 

 

 

이젠 무엇을 할까??

해가 진 미우다해수욕장의 백사장을 걷고 난 후에 캠핑 사이트로 돌아왔습니다.

 

참... 이곳은 와이파이가 터집니다.

핸드폰 로밍을 하지 않았지만 와이파이는 쓸 수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신나게 노는 거지... 뭐!!!

신나는 댄스음악을 아주아주 크게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면서... 아주아주 맛있는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물을 넣고...

스프를 넣고...

면을 넣고...

남은 김치를 몽땅 넣고...

끓인다... 끓인다... 끓인다...

 

여름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

사람들눈 의식하지 말아요 즐기면서 살아갈수 있어요 내 개성에 사는 이 세상이에요 자신을...

 

이렇게 끓여진 라면과 시원한 아사히맥주로

대마도 백패킹 마지막밤의 만찬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 2시 30분.

후두둑... 후두둑...

이런 꿈이겠지?? 비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와이파이가 되니 인터넷을 통해 날씨를 검색해 봤습니다.

허걱!! 폭우가 내릴 예정이랍니다.

 

잠결에...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본격적인 철수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면 아주 피곤해지니까요.

 

짐을 거의 다 꾸렸을때, 거센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대마도 백패킹 첫날과 마지막날에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 구나!!! 그것도 폭우가 쏟아지는 구나!!!

 

 

 

 

 

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저는 주차장의 정자로 이동을 했습니다.

이동하는 도중에 재활용쓰레기를 버리고 남은 이소가스를 관리동에 놓고 왔습니다.

 

자판기가 있으니 따뜻한 커피한잔 먹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캔커피 한모금을 마시는 동안 시간은 새벽 4시 30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새벽 5시가 넘으니... 비가 잠시 소강상태입니다.

 

혹시나 일출을 찍을 수 있을까...

미우다해수욕장 백사장을 거닐어 봤습니다.

구름이 쫙 내려앉아 일출을 기대할 수 없음을 금새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이곳에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외로운 뚜벅이!!!

 

 

 

 

오전 6시가 다가오니 소강상태의 비줄기가 다시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미우다해수욕장에서 이렇게 있을 수 없어 이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레츠~ 고!! 히타카츠

 

배낭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우비를 입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우산도 함께 씌고 히타카츠 시내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왔던 길을 반대로 걸어가면 되니까... 시간은 30분정도 걸립니다.

 

이렇게해서 3박 4일 대마도 백패킹을 마무리되는 순간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히타카츠에서의 여행뿐.... 아무래도 비는 온종일 내릴 것 같습니다.

[울릉도맛집]기사식당 - 된장찌개

 

 

울릉도 식당의 발견은 역시 기사식당일 것이다.

육지에 비해 훨씬 비싼 물가때문에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먹는 문제이다.

 

 

 

 

 

기사식당은 택시 등을 운전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음식값이 싸고 이용이 간편한 식당을 말한다.

그 중에서 울릉도의 관문 저동항 버스정류장 골목 안쪽에 위치한 기사식당을 소개하려 한다.

 

 

 

 

저동항 일출을 보고 아침을 먹기 위해 기사식당을 찾았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은 없었고 한창 장사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기사식당임에도 메뉴는 정말로 다양하다.

 

한쪽 벽면에 붙여진 메뉴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오늘은 울릉도 특미 음식보다는 정식을 먹기 위해 기사식당을 찾은 것이다.

오늘 정식의 국은 된장찌개라고 했다.

 

가격은 8,000원이다.

울릉도의 모든 음식중에서 제일 싼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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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류, 나물류, 볶음류, 짱아찌류, 생선 등

12가지의 맛 좋은 밑반찬들이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다

 

기사식당의 장점 중 하나는

원하는 음식을 맘껏 가져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뷔페식이고 셀프인데...

손님이 없어서인지 모든것을 차려주셨다.

 

울릉도 기사식당의 밑반찬들은 정말로 맛이 좋았다.

된장찌개가 나오기 전에 밑반찬하고만 밥 한공기를 뚝딱 먹어치웠다.

 

 

 

 

기본 반찬외에 갈치조림도 서비스로 더 주셨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된장찌개가 나왔다.

 

 

 

 

뚝배기에서 뽀글뽀글 끓고 있는 구수한 된장찌개가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풋고추, 파, 무, 두부, 멸치등

각종 재료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는 김치찌개 만큼이나 많이 찾는 음식이다.

 

 

 

 

국자로 앞접시에 된장찌개를 덜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 일행이 성인봉 가기전에

기사식당에서 정식으로 아침을 먹고 갔다고 들었는데 그때는 미역국이 나왔다고 한다. ㅋㅋ

 

 

 

 

맛있는 밑반찬으로 식사를 한번 했고

뽀글뽀글 구수한 된장찌개로 한번 더하고

이렇게 또 한번의 아침식사가 나에게 시작되었다.

[울릉도 백패킹]울릉도 육로 여행 - 지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비밀의 섬

 

 

울릉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이다.

섬 전체가 깍아지른 해안절벽과 가파르고 험준한 산자락으로 이우러졌다. 젊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같은 화산섬인 제주도의 지세가 부드럽고 수평적인 반면, 울릉도는 거칠고 수직적이다.

 

 

 

 

육로 일주, 성인봉 등반, 해상 일주, 독도 탐방

울릉도를 여행하는 네 가지 방법이며, 이중에서 오늘은 육로 일주에 대해 스토리를 쓰려고 한다.

 

육로 일주는 보통 저동도동사동통구미남양구암(학포)태하현포

(추산)천부(죽암,선창)섬목 그리고 내수전-석포 옛길, 행남산책로로 진행된다.

 

 

1. 저동항

 

 

 

 

저동은 태하, 도동과 함께 울릉도 개척 당시부터 형성돼 있던 마을이다.

마을 주변에 모시밭이 많아서 모시개라고 불렸다가, 일제강점기에 한자 지명으로 표기할 때 모시 ’()를 써서 저동(苧洞)이 되었다.

 

 

 

 

 

 

저동항의 어선이 촘촘히 늘어선 항구의 정경이 매우 인상적이다.

 

 

 

 

 

 

저동항은 봄과 가을에 촛대바위 위로 해가 떠오르는 광경은 울릉도의 일출을 대표할 만큼 장엄하고 화려하다.

 

 

 

 

 

 

봉래폭포로 가는 길에는 천연 에어컨으로 불리는 풍혈이 눈길을 끈다.

여름에는 바위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곳이다. 아무리 무더운 삼복염천에도 섭씨 4도를 유지한다.

겨울에는 이 풍혈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데 바람의 세기로 날씨 변화를 미리 알 수 있다고 한다.

 

 

 

 

 

봉래폭포는 울릉읍 주민들의 생명수이다.

높이 25m3단 폭포인데, 비슴듬한 벼랑을 타고 쏟아지는 물줄기가 단정하고도 우아하다.

화산섬 폭포수답게 무미, 무취, 무색의 완벽한 천연수이다.

 

 

 

 

 

 

내수전망대는 해발 440m에 설치된 전망대로

오름길에 수많은 동백나무와 마가목 등이 터널을 이루고 있고 정상까지 편도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특히 오징어 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추석 이후부터

동해 밤바다를 화려하게 수놓는 어화는 울릉8경에도 속하는 최고의 밤 풍경 중 하나이다.

 

저동은 봉래폭포, 내수전망대 이외에는 눈길을 끌 만한 절경이나 명소가 별로 없다.

 

 

2. 도동항

 

 

 

 

 

 

 

 

망향봉과 행남봉 사이의 좁은 골짜기를 따라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포항과 묵호에서 출발한 관광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곳인 도동항은 늘 비좁고 번잡한 곳이라는 뜻의 '도방청'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독도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영토박물관이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인들의 망언을 역사적, 논리적으로 반박해주는 서지학자 고 이종학 선생이 남긴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독도전망대는 망향봉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푸른 바다와 도동항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도동약수공원의 안용복장군충혼비가 있다.

조선 숙종 때에 살았던 안용복은 평민 신분인데도 일본에 두 차례나 건너가

에도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임을 확약한다라는 국서를 받아낸 인물이다.

 

그런데도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나라의 허락없이 국제분쟁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그를 서울로 압송해 사형에 처할 것을 논의 했다.

결국 영의정 남구만의 만류로 사형은 면한 대신 유배형을 받아 귀양살이를 하다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참으로 억울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한 민족영웅이다.

 

3. 사동

 

 

 

 

무릉교, 울릉대교(현 울릉터널)를 지나

도사동천 내리막길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사동 흑비둘기 서식지300년 이상의 후박나무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사동리 해안도로는 일주도로 가운데 가장 넓고도 시원스러운 구간이다.

사동리 해안 끝에는 가두봉이 돌출돼 있는데 산사태와 낙석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두봉 터널을 지나면 가동봉 등대를 볼 수 있다.

 

 

통구미라는 지명은 골짝기가 구유(또는 통)처럼 좁다고 해서 붙었다고 한다.

통구미 해안에는 거북바위가 솟아 있다.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뭍으로 기어오르는 듯한 형상이다.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는 용트림하듯 몸통이 뒤틀린 향나무 고목들이 여기저기 뿌리를 내린 모습이다.

 

 

4. 통구미

 

 

통구미라는 지명은 골짝기가 구유(또는 통)처럼 좁다고 해서 붙었다고 한다.

통구미 해안에는 거북바위가 솟아 있다.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뭍으로 기어오르는 듯한 형상이다.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는 용트림하듯 몸통이 뒤틀린 향나무 고목들이 여기저기 뿌리를 내린 모습이다.

 

 

 

통구미터널 입구에는 신호등이 설치돼 있다.

오가는 차량이 서로 비껴갈 수 없을 만큼 터널이 비좁은 탓이다. 통구미터널을 지나면 남통터널과 남양터널이 잇달아 나타난다.

반대쪽 남양터널 입구에도 신호등이 있는데, 진행 신호를 받으면 두 개 터널을 한번에 통과해야 한다.

 

 

5. 남양

 

 

 

 

남양의 원래 이름은 골계이다. 골짜기의 자와 시내 자가 합쳐진 지명이다.

실제로 마을 주변에는 골짜기와 시내가 많고 마을의 중심지도 남양천과 남서천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게다가 혓볕이 잘 들고 날씨가 따뜻해서 울릉도에서 가장 먼저 눈이 녹는다고 한다.

지금의 행정 지명인 남양리라는 지명도 햇볕이 가장 잘 드는 남쪽 마을이라는 뜻이다.

 

일주도로가 통과하는 남서터널 부근의 사자바위와 투구봉에는 옛 우산국의 전설도 전해온다.

 

   신라 지증왕 13(1512) 하슬라(지금의 강릉 지역)의 군주 이사부는 왕명을 받아 우산국 정벌에 나섰다. 신라군이 배를 타고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한 우산국의 우해왕은 천혜의 요새인 골계 해안에 방책을 쌓고 신라군의 침입에 대비했다. 마침내 이사부 장군이 이끄는 신라의 군선이 골계 앞바다에 나타났다. 첫번째 싸움은 수전이었다. 육전에만 능한 신라군은 바다를 끼고 사는 우산국의 수군을 당해낼 수 없었다. 1차전은 당연히 신라군의 처절한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이사부는 다시 치밀한 작전을 세운 다음 우산국 정벌에 나섰다. 이번에는 입에서 불을 뿜는 거대한 나무 사자를 뱃머리에 앞세웠다. 그러자 사자는커녕 뱀이나 토끼조차 본 적이 없는 우산국 병사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나버렸다. 끝내 홀로 남은 우해왕은 투구를 벗어 항복한 뒤 바다에 몸을 던졌다. 당시 신라군이 앞세운 나무 사자는 사자바위가 되었고, 우해왕이 벗어 던진 투구는 투구봉으로 변했다고 한다.

 

 

 6. 태하

 

 

 

 

 

남양리에서 태하리로 가려면

구암터널, 사태감터널, 구암마을(국민여가캠핑장)을 지나고 수층교, 수층터널, 삼막터널, 태하터널을 지나야 한다.

 

 

 

 

태하 버스정류장 옆에 성하신당이 위치한다.

 

  성하신당(聖霞神堂)은 조선 태종 17(1417), 조정에서는 삼척만호 김인우를 안무사로 임명해 울릉도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키도록 명했다. 수토 정책이 실행된 것이다. 명을 받은 안무사는 배 두 척을 몰고 태하동에 상륙했다. 주민들을 모두 배에 태우고 뭍으로 떠나기 전날 밤, 그의 꿈에 해신이 현몽해 동남동녀 한쌍을 섬에 남겨두고 떠나라라고 명했다. 그러나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안무사는 이튼날 배를 출항시켰다. 그러자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사납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도리 없이 배를 되돌린 안무사는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간밤의 꿈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꿈에서 만난 해신의 명대로 곱게 생긴 소년과 소녀를 골라 내 처소에 두공 온 필묵을 찾아오라고 시켰다. 아이들이 심부름을 간 사이 안무사는 곧바로 닻을 올려 출항했다. 내내 거칠게 일렁거리던 바다가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주민들을 데리고 육지로 무사히 돌아온 안무사는 섬에 두고 온 아이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로부터 8년 뒤 수토관으로서 울릉도를 다시 찾은 그가 태하동에 가보니 서로 꼭 껴안은 채 백골이 된 두 아이의 주검이 남아 있었다. 안무사 김인우는 아이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그 곳에 사당을 지었다. 그것이 바로 성하신당이다.

 

 

 

 

 

태하황토굴은 낙석 발생 위험구간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황토굴은 거대한 상어 아가리처럼 생겼다. 굴의 일부는 주황색에 가까운 황토로 뒤덮여 잇다. 육지의 황토와 달리 부드러운 흙이 아니라 단단한 돌에 가깝다. 생산량이 미미해서 담을 쌓거나 집 짓는 재료로 쓰기는 어렵다. 태하의 옛 이름인 황토구미도 여기서 유래했다. 황토굴의 황토는 조선 시대에 아주 특별한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조선 조정은 울릉도 개척령(1882)이 내려지기 전까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수토 정책을 유지했다. 수토 정책이란 왜구의 침입이 빈번해짐에 따라 울릉도 주민들을 모두 육지로 이주시킨 뒤 주기적으로 관리를 파견해 순찰하게 한 것을 말한다. 흔히 쓰이는 공도 정책이라는 표현은 일본인들이 붙인 것이라고 한다. 조선 조정에서는 울릉도와 가까운 육지에 근무하는 삼척영장을 수토관으로 임명해 주기적으로 울릉도를 순찰하게 했다. 임무를 마치고 뭍으로 돌아온 수토관은 이곳의 황토와 울릉도 향나무를 증거물로 제출했다고 한다.

 

 

 

 

 

총연장 304m의 레일과 39도에 이르는 가파른 경사로를

20인승 전기차 2대가 동시에 운행하며 분당 50m의 속도로 약 6분 정도 소요된다.

 

 

 

 

 

 

모노레일 정상에서 태하등대까지 이어지는 대풍감 산책로를 걸어가노라면

동백나무락의 맑은 자연속에서 심신의 스트레스를 더 내려놓게 되고 자연의 기운으로 충전된다.

 

바람을 기다리는 언덕이라는 뜻의 대풍감은 돛단배가 항해를 위해 바람을 기다리는 곳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해안절벽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가 위치하고 있다. 거친 바람의 영향을 받아 이 일대의 향나무는 키가 크게 자라지 못한다.

 

 

7. 현포

 

 

 

 

 

태하와 현포를 잇는 현포령은 구절양장의 고갯길이다.

태하 방면의 남쪽 고갯길은 S자 모양의 급커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현포리는 거문작지라고도 불린다.

개척 당시 배를 타고 온 개척민들 눈에 대풍감에서 노인봉까지 약 시오리 정도의 해안선이 까마득해 보여서 그런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천지개벽시 옥황상제가 울릉도 주민을 구원하기 위해

산 정부에 깊이가 밝혀지지 않은 큰 구멍을 만들었다는 전설을 가진 송곳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짐승이 없는 울릉도에 그것도 바다 한 가운데

대형 코끼리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광경이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주상절리 바위 앞쪽에 생긴 큰 자연굴이 마치 코끼리가 코를 바닷속에 담그고 물을 마시는 형상을 하고 있다.

 

 

8. 천부

 

 

 

 

옛날부터 선창이 들어서 있던 곳이어서 옛선창으로도 불렸다.

조선 시대에는 울릉도에 몰래 들어온 왜놈들이 벌목해서 배를 만들거나 고기잡이를 하던 곳이라 해서 왜선창이라고도 불렸다.

 

원래의 천부마을은 이곳이 아니라 본천부마을이다.

움푹한 분지에 자리잡은 본천부마을은 울릉도에 개척령이 내려진 직후 옛선창을 찾은 두 양반 노인이 식속들을 이끌고 처음 들어와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당시 울창했던 나무들을 베어내고 천막을 친 뒤 사방을 둘러보니 하늘만 동그랗게 보여 천부’(天府)라고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천부항에서 섬목방향으로 약 100m 지점에 설치된 해중전망대는 바닷속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전망대는 천부마을 해안과 전망대를 잇는 다리(107m)와 수심 6m에 있는 해중전망실, 수상 6m 높이의 해상전망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9. 섬목

 

 

 

 

삼선암은 아득한 옛날, 이곳 경치에 반한 세 선녀가 목욕을 하다가

하늘로 올라갈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이곳의 세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거의 붙어 잇는 듯한 두 개는부부바위이고, 홀로 서 있는 바위는 일선암’(또는 가위바위)이라 불린다.

 

바위 굴 앞의 얕은 바다에는 환상적인 물빛을 자랑하는 선녀탕이 있다.

바다 쪽에 우뚝 솟은 갯바위 하나가 파도를 막아주는 덕택에 심산유곡의 작은 못처럼 아담하다.

얕은 수심, 에메랄드 빛 바다, 아담한 모양만 봐도 선녀탕이라는 이름이 썩 잘 어울린다.

 

 

 

 

 

 

2012년 보행연도교가 연결되면서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개방된 관음도는 원시림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보물섬이다.

 

  관음도는 울릉도 개척 당시 경주에서 건너온 어부 김씨가 관음도 부근의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태풍을 만나 이 섬으로 대피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추위와 굶주림에 떨던 어부가 밤에 불을 피웠더니 수많은 깍새가 날아들었다. 가까이 내려앉은 깍새를 몇 마리 잡아 구워 먹어보니 아주 맛이 좋았다고 한다. 그 뒤로 깍새는 명이(산마늘)와 함께 울릉도 개척민들의 목숨을 지켜준 먹을거리가 되었다.

   관음도 절벽 아래쪽에는 관음쌍굴이 있다. 높이 14m의 큰 굴 두 개가 나란히 뚫려 있는데, 일주도로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유람선을 이용해야 한다. 옛날에는 해적의 소굴이었다고 한다. 해적들이 그 안에 배를 숨겨두었다가 다른 배가 지나가면 갑자기 나타나 약탈과 살윢을 일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관선터널은 섬목 산줄기 아래쪽에 뚫려 있다. 일주도로의 마지막 터널이다.

 

 

10. 내수전 - 석포 옛길

 

 

 

 

 

 

 

 

운치 좋고 아름답고 편안한 숲길이 줄곧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간다.

내수전이 시작되는 곳에서 1.3km 거리에는 정매화골이 있다.

 

현재 정매화골의 공사로 인해서 그 느낌이 다소 반감될 수는 있어도

‘정매화’라는 인정많은 주막집 여인이 살던 곳이어서 그런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하지만 1962년부터 1981년까지 산 이효영씨 가족이 더 유명하다.

폭우나 폭설이 일었을 때 19년간 무려 300여명의 인명을 구조했다.

지금은 소담한 계곡이 어우러진 내수전둘레길의 쉼터이다. 인근의 큰 바위도 멋스럽다.

 

 

11. 행남산책로

 

 

 

 

 

 

울릉도 최고의 해안산책로이다.

도동등대(행남등대)를 가운데 두고 행남산책로와 저동해안산책로를 연결하면 환상적인 트레킹 코스가 완성된다.

바다와 마주한 기암절벽과 천연동굴은 절경을 실감케 한다.

그 틈새로 들고나는 물빛 또한 짙은 에메랄드 빛의 유혹이다.

 

 

 

 

 

 

 

 

도도등대(행남등대)에서는 저동항과 저동마을, 긴 방파제와 촛대바위 그리고 저동 앞바다의 북저바위와 죽도까지 보인다.

촛대바위는 고기잡이를 떠난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던 딸이 기다림에 지친 나머지 바위로 굳어버렸다는 전설이 서려 있어 녀바위라고도 불린다.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팔영산

 

 

8개의 봉우리가 남쪽을 향하여 일직선으로 되어 있는 팔영산은 산세도 험준하고 기암괴석이 많습니다.

그리고 능선에는 팔영산자연휴양림도 조성되어 있어 일년내내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8개의 봉우리 정상에 올라설때면 다도해의 아름다운 절경과 함께 고흥군 전체가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블랙야크 마운틴북 대전도전단과 함께 고흥 팔영산 산행을 하였습니다.

대전에서 7시에 출발한 블랙야크 랩핑버스는 쏟아지는 비와 눈을 피해서 무사히 팔영주차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화장실을 다녀오니 사람들의 흔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충청도 사람들은 행동이 결코 느리지 않습니다. 겁나 빠릅니다.

 

 

 

 

총거리 8.2km의 팔영산 산행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팔영주차장- 능가사팔영자동차야영장- 흔들바위- 유영봉- 성주봉- 생황봉- 사자봉- 오로봉- 두류봉- 칠성봉- 적취봉- 깃대봉- 탑재-능가사- 팔영주차장

 

 

 

 

팔영산 탐방지원센터에 들려 날진병에 뜨거운 물을 담고서 능가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어차피 혼자가 된 이상... 천천히 움직이기로 합니다.

시간이 문제이지... 결국 오르막 경사지에서 제가 다 추월하니까요??

 

웅장한 팔영산의 배경으로 위치하고 있는 능가사 대웅전은 국가 보물 제 1307호로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게 높습니다.

정문격인 사천왕상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4호로 규모가 전국에서 가장 큰 예술적 가치가 있습니다.

 

 

 

 

능가사 지나 천천히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감나무밭이 풍요롭게 펼쳐져 있고 감을 따지 말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내것이 아닌 것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전히 같이 온 사람들의 모습은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전 절대로 조급하지 않습니다. 탐방객 집계선세를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오은선 대장이 ABC트래킹에서 인정한 산행실력이 이제부터 빛을 발할 순간입니다.

 

 

 

 

등산로 주변에는 소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는 활엽수림에

때죽나무, 철쭉, 동백나무도 자생하고 있는 아름다운 숲길을 펼쳐집니다.

 

 

 

 

두 눈이 튀어 나올정도로 아름다운 숲길을 천천히 즐기면서

오르막 경사지를 쉼없이 5분여 올라가니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처럼... 뛰어봐야 벼룩입니다.

 

 

 

 

벌써 왔어??

제 모습을 보자마자 모두들 똑같은 말을 하십니다.ㅋㅋ

오르막 경사지를 걸어서 그런지 흔들바위에서 거친숨을 쉬어가기로 합니다

 

마당처럼 꼼짝하지 않는다고 하여 마당바위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흔들바위는

힘센 어른이 밀고 당기고 시름하다 보면 큰 바위가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기에 흔들바위라고 불리고 있답니다.

이게 말이여 막걸리여~!!ㅋㅋ

 

 

 

 

모두들 흔들바위 안내판의 내용이 어의가 없어서

유영봉으로 향하는 오르막 경사지에서는 힘든 줄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팔영산 정상 봉우리 능선에 올라서니

다도해의 절경과 함께 고흥군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랜시간 차갑게 느껴지는 바람을 맞으면서도

정말로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들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옛 문헌에 의하면, 이 산의 이름은 팔영산 이외에 팔전산, 팔령산, 팔점산 등으로 불리웠으며

산의 정상에 팔봉이 있는데 처째 유영, 둘째 성주, 셋째 생황, 넷째 사자, 다섯째 오로, 여섯째 두류, 일곱째 칠성, 여덟째 적취라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유영봉을 시작으로 8개의 봉우리를 오르고 내려야 할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유영봉

 

유달은 아니지만 공맹의 도 선비례라

유건은 썼지만 선비풍체 당당하여

선비의 그림자 닮아 유영봉 되었노라

 

 

 

 

 

성주봉

 

성스런 명산주인 산을 지킨 군주봉아

팔봉 지켜주는 부처같은 성인바위

팔영산 주인되신 성주봉이 여기로세

 

 

 

 

생황봉

 

열아홉 대나무통 관악기 모양새로

소리는 없지만 바위모양이 생황이라

바람결 들어보세 아름다운 생황소리

 

 

 

 

사자봉

 

동물의 왕자처럼 사자바위 군림하여

으르렁 소리치면 백수들이 엎드리듯

기묘한 절경속에 사자모양 갖췄구려

 

 

 

 

오로봉

 

다섯명 늙은 신선 별유천지 비인간이

도원이 어디메뇨 무릉이 여기로세

5신선 놀이터가 5로봉 아니더냐

 

 

 

 

두류봉

 

건곤이 맞닿는 곳 하늘문이 열렸으니

하늘길 어디메뇨 통천문이 여기로다

두류봉 오르면 천국으로 통하노라

 

 

 

 

 

 

잠시 쉬었다 갈게요~!!!

 

컵라면, 김밥, 케익, 멸치볶음, 매실장아찌, 김장 겉절이 김치 등 풍성한 음식들로

막걸리, 맥주, 복분자, 포조주와 함께 두류봉을 지나 칠성봉에 오르기 전에 아주 배불리 점심을 먹었습니다.

 

어의없게 모두들 팔영산 깃대봉은 안 들리고 하산을 할거라 말합니다. 후후...

그래서 인증을 안한 저만 열심히 다녀왔기에 칠성봉과 적취봉의 함께한 인증사진은 찍을 수 없었습니다.

 

 

 

 

칠성봉

 

북극성 축을삼아 하루도 열두때를

북두칠성 자루돌아 천만년을 한결같이

일곱개 별자리 돌고도는 칠성바위

 

 

 

 

적취봉

 

물총새 파란색 병풍처럼 첩첩하며

초목의 그림자 푸르름이 겹쳐쌓여

꽃나무 가지엮어 산봉우리 푸르구나

 

 

 

 

팔영산은 소백산맥이 서쪽으로 힘에 지친 듯 기울다가

동남으로 고흥반도를 바라보며 점암면 성기리, 강산리, 영남면 양사리 등에 걸쳐 우뚝 솟아 있는 산입니다.

엄청난 바람을 뚫고 적취봉을 지나 도착한 깃대봉에 도착을 했습니다.

 

팔봉의 그림자가 멀리 한양에 까지 드리워져서 팔영산이라고 불렀다고 하고,

일설에는 금닭이 울고 날이 밝아 오면서 붉은 햇빛이 바다 위로 떠 오르면 팔봉은 마치 창파에 떨어진 인판과 같다 하여 그림자 영자를 붙였다고 하고,

또한 옛날 중국 위나라 태화연간에 팔봉의 그림자가 멀리 위주의 세수대야에 비추어 왕이 몸소 이 산을 찾아보고 비로소 그림자 영자를 붙여주었다고 전합니다.

 

 

 

 

 

쓸쓸한 인증샷을 찍고 깃대봉을 뒤로하여 하산길 접어들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적취봉 아래 갈림길에 도착하니 그제서야 적취봉에 도착한 일행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보자마자 한마디씩 하십니다. 벌써 다녀온거야???

제가 원래 걸음이 빠르잖아요... 혼자서 다니면... ㅋㅋ

 

 

 

 

 

 

 거리이지만... 하산길의 발걸음은 누구에게나 가볍게 느껴지나 봅니다.

중간에 만난 편백숲을 지나 탑재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편백숲이 이처럼 아름답게 느껴진적이 없었습니다.

 

편백나무 숲보다 잣나무 숲에서 피톤치트가 더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만 알려드릴게요...ㅋㅋ

 

 

 

 

웃고, 떠들고 하다보니...

어느덧 숲길을 벗어나야 될 시점까지 하산을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사진을 찍어봅니다.

표정들이 한사람 한사람 살아있습니다. 미디어에 익숙하신 분들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습니다.

 

 

 

 

 

 

 

옛날에는 순천의 송광사, 구례의 화엄사, 해남의 대흥사와 함께 호남의 4대 사찰로 꼽혔던 능가사에 다시 도착을 했습니다.

약100평되는 경내의 분위기는 자연수 연못이 있어 주변 환경을 정화시켜 주며 대웅전의 단청은 고색 창연하여 감탄을 하게끔 합니다.

아직 오염되지 않아 자연적인 정취를 맘껏 느껴볼 만 합니다.

 

해가 뜨면 아침 이슬이 마르고, 바람이 불면 붉은 먼지가 일어납니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야 한다라는 뜻을 제대로 알게해 준 팔영산 산행이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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