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주봉 산행 - 오은선과 더불어 사는 세상 '시산제'

 

 

블랙야크 충청셰르파 2월 이벤트 산행의 일환으로

옥천 안남면 둔주봉에서 '오은선과 더불어 사는 세상'의 시산제에 참석을 하기로 했습니다.

 

전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겨울비는 오늘 아침에도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옥천 안남면 둔주봉을 가기 위해

저는 집 인근의 유성온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대전역으로 갈 예정입니다.

 

지하철 타고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옥천버스운송 노선으로 안남면에 갈 계획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즐거운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대전역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탄 후, 11분만에 옥천역에 내렸습니다.

너무나도 빨리 옥천역에 도착을 했기에 기차안에서 책을 읽는 등의 무언가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른 아침의 한가로운 옥천역을 빠져나와

횡단보도를 건넌 후 우체국을 인근의 옥천버스운송에 도착을 했습니다.

 

안남면으로 향하는 버스는 40분 후에나 출발을 합니다.

그래서 천천히 옥천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금구천이 흐르는 금구교를 지나

옥천시내를 통과하여 중앙교까지 거침없이 걸었습니다.

 

 

 

 

이른 아침의 옥천시내는

도시와는 뭔가 많이 다른 느낌의 활기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벌써 문이 열려 있고

약을 사는 사람도 있는 옥천 중앙약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곳은 대학교 동창의 아버님이 운영하시는 약국입니다.

옥천에 온 김에 안부인사를 여쭈기 위해서 잠시 들렸습니다.

 

 

 

 

대학 동창은 저와 마찬가지로 산림자원학 전공하고 졸업까지 했는데

그 다음해에 바로 대학 시험을 다시 치른 후  충남대학교 의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대전 선병원 내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옥천시내에 왔는데... 어딘가요??

중앙약국에 있는데 김창현 셰르파가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중앙약국 앞에서 김창현, 서정필 셰르파를 만난 후

김창현 셰르파의 차를 타고 안남면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옥천버스운송을 타고 안남면으로 가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 버렸습니다.

편리함과 빠름은 얻은 대신에 어릴적 향수를 느껴보려고 했던 시골버스의 낭만을 잃고 말았습니다.

 

 

 

 

안남면에 도착을 한 후

아침식사를 하지 않은 김창현, 서정필 셰르파와 인근식당에 올갱이해장국을 먹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아침식사를 먹는 동안 이정훈, 부부(김태양, 이상철) 셰르파들이 도착을 했습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안남면사무소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오은선과더불어사는세상

마을입구 도로에서 버스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순식간에 주차장에 도착한 버스에서

각양각색의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누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뜬금없이 단체사진도 찍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짧은 혼란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시끄럽고 벅적거려 매우 요란했던 주차장이

오은선 대장의 구령으로 일사분란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맨손체조가 시작된 것입니다.

 

 

 

 

체조가 끝난 후

본격적인 둔주봉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오늘은 둔주봉 산행보다는

오은선과 더불어 사는 세상의 시산제가 가장 큰 핵심입니다.

 

 

 

 

산행 초입에서는 둔주봉 전망대가 보입니다.

 

둔주봉은 해발 384m에 불과한 자그마한 동네 뒤산이지만

최근에는 옥천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명소가 되었습니다.

 

 

 

 

안남초등학교를 끼고 돌아 연주리 마을로 들어서니

어릴적 추억의 놀이감이었던 연탄재를 발견했습니다.

 

연탄은 잘 타게 하려고 위 아래로 통하는 여러 구멍이 뚫려 있어 구멍탄입니다.

구멍 수에 따라 구공탄, 십구공탄, 삼십이공탄으로도 부르지만, 일반 가정에 쓰이는 연탄은 구멍이 22개입니다.

 

안도현의 시가 생각이 났다.

너에게 묻는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제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개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치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평화로운 연주리 마을길을 한무리의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옥천지역 신문사에서 취재를 나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흰색 다운자켓을 입은 분들입니다.

 

 

 

 

마을길, 임도길을 지나 점촌고개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곳에서부터는 숲길을 따라 둔주봉 정자로 향했습니다.

 

숲길이지만 따뜻한 날씨로 인하여 얼었던 길이 녹으면서 미끄러워

둔주봉 정자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숲길 양 옆에는 리기다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습니다

초봄같은 날씨이고 비가 내릴 듯 말듯 한 날씨라 엄청나게 후텁지근하면서 땀이 비오듯 흘렀습니다.

 

 

 

 

15분이 지났을 때 둔주봉 정자에 도착을 했습니다.

둔주봉 정자 주변은 산수화군역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으로 데크설치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습니다.

 

 

 

 

둔주봉 정자에서는

동이면 청마리와 석탄리, 안내면 장계리가 보입니다.

 

 

 

 

 

강 건너로 한반도 좌우반전 모습을 한 풍경이 보입니다.

금강의 물줄기가 빚어낸 한반도 지형이 한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물길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있으니

이 곳이 이름부터 ‘기름질 옥(沃)’에 ‘내 천’(川)인 옥천이라는 것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둔주봉 정자 주변에서 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어봤습니다.

저 멀리 한반도 지형을 맴도는 강물은 아무 말 없이 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전 옥천군 산림조합장의

둔주봉/등주봉에 관한 이야기를 오은선 대장이 경청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다시보는 반가운 얼굴입니다.

작년 10월 ABC트래킹을 함께 다녀온 후 블랙야크 셰르파 송년회에서의 짧은 만남만 있었을 뿐입니다.

 

 

 

 

이윽고

둔주봉 정자아래에서 오은선과 더불어 사는 세상 '시산제'가 시작되었습니다.

 

 

 

 

해마다 새해 시작될 무렵

산악인들 지키고 보호하는 에게 지내는 제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국민의례와 산악인의 선서가 있은 후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시산제 제례 순서에 따라서 강신, 참신, 초헌, 독축, 아헌, 종헌, 헌작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축문을 태워 하늘로 올려보내는 소지를 끝으로 시산제의 폐회가 선언되었습니다.

 

다함께 음복을 한 후에는 둔주봉 산행이 이어졌습니다.

 

 

 

 

 

 하산 후에는

모두 한자리에 모여 뒷풀이 시간도 가졌습니다.

 

우려했던 비가 내리지 않아서 다행이였고

오은선과 더불어 사는 세상의 반가운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고

개인적으로는 산행보다 더 값진 옥천여행을 할 수 있어서 좋았던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뒷풀이 장소 한쪽 벽면에 있었던 박옥분(82세) 할머님의 시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맜있는 음식

준비해준 만내딸

뒤로 두고

집에 오니

플만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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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

반가운 사람들

뒤로 두고

집에 오니

아쉬움만 가득하다.

청풍대교와 금수산

 

 

설 연휴기간에 금수산을 찾았습니다.

금수산은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금성면 성내리, 단양군 적성면 상리에 걸쳐 있는 산입니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선생이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이 빼어난 산이라 하여 금수산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대전을 출발하여 2시간만에 남제천IC를 통과한 후,

청풍호를 따라 상천리마을로 이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청풍교 바로 옆에는 청풍대교가 있습니다.

청풍대교는 청풍교의 노후화로 인하여 새로 건립한 다리입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 지역이 발생하자

지방도 82호선의 이주 도로를 건설하면서 1983년 제천과 충주를 잇는 청풍교를 건설하였습니다.

 

청풍대교는 교각이 호숫가에 위치하여 관광 유람선의 왕래에 지장이 없으며

기하학적인 비대칭 구조물로 인하여 청풍호의 명물이 되고 있습니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15분만에 상천리주차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주차요금은 승용차 3,000원, 버스 5,000원입니다. 

 

동절기(11월~익년 3월)는 05:00 ~ 13:00

하절기(4월~10월)는 04:00 ~ 14:00

상천지킴터 ~ 금수산 구간은 입산시간제한이 있습니다.

자연공원법 제28조에 의거 입산가능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오늘 금수산 산행은 상천리주차장을 출발하여

보문정사 - 용담폭포 - 상천지킴터-금수산삼거리-금수산-망덕봉-용담폭포전망대

를 거쳐 상천리주차장으로 돌아오는 8.8km의 원점회귀 코스입니다.

 

 

 

 

 

백운동마을 초입에서부터 용담폭포에 이르는 돌담길 주변에는 봄의 전령인 산수유가 자생하고 있습니다.

봄에 만개한 산수유를 생각해보면 금수산 풍광과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는 산수유 마을입니다.

 

 

 

 

상천마을은 아랫마을을 백운동이라고 부르고 윗마을을 초경동이라고 부릅니다.

 

상천리는 금수산을 정상을 배경으로 가은산과 금수산 줄기로 에워싸여 있으며

앞으로는 청풍호를 바라보는 남향마을로 초경동에서 바라보는 청풍호는 가히 절경인 마을입니다.

 

 

 

 

대한불교 조동종 보문정사절을 지나 용담폭포로 발걸음 향했습니다.

 

 

 

 

 

금수산 남쪽 기슭에는 사계절 맑은 물이 쏟아지는 높이 30m의 용담폭포가 있습니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서 5 m 깊이의 소(沼)에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습이 승천하는 용을 연상시킨다 해서 용담폭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용담폭포를 본 후

상천지킴터로 돌아가서 금수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처음엔 완만한 경사지의 등산로를 따라 이동을 했습니다.

얼마후에는 급경사지에 설치된 테크계단을 올라야 했습니다.

 

 

 

 

숨이 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잎을 모두 떨구고 서있는 참나무 숲의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발길을 힘겹게 옮겼습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30분만에 금수산삼거리에 도착을 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암벽 위 능선이 금수산 정상이지만 우리는 500m의 거리를 옆으로 돌아서 정상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다시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금수산 정상까지는 급경사지 암반길을 힘겹게 올라야 했습니다.

 

 

 

 

드디어 금수산 정상에 도착을 했습니다.

가을 경치가 빼어난 아름다운 암산으로 월악산 국립공원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금수산 정상은 상악산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금수산 표지석을 배경으로 '나를 찾아 떠나는 도전 명산100' 블랙야크 도전깃발을 들고 인증샷을 찍었습니다.

 

 

 

 

"금수산은 뭇 봉우리가 수려함을 다투고 10여리를 반거한 그 속에는 약초가 많다"라고 [증보문헌비고]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수산에는 예전부터 자연생 약초가 많았는데 ‘비상풀’이라는 약초는 극약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금수산 정상부의 원경은 길게 누운 임산부의 모습을 하고 있어

옛부터 아들을 낳으려면 이 곳에서 기도를 하면 된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금수산 정상에 서서 망덕봉을 바라봤습니다.

금수산 정상과 망덕봉은 능선의 오르내림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치 비단이 수를 놓은 듯 아름답게 보입니다.

 

 

 

 

지체없이 발걸음을 망덕봉으로 옮겼습니다.

금수산 정상에서 데크계단을 내려와 망덕봉삼거리에서 암반 등산로를 올라 망덕봉으로 향했습니다.

 

 

 

 

망덕봉으로 향하는 능선길에 충주호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해발 926m 망덕봉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제는 상천리주차장으로 하산하면 오늘 산행을 끝이 납니다.

 

 

 

 

산능선과 능선 사이로 충주호 물길이 계곡을 이루고 있습니다.

 

 

 

 

철계단과 바위능선을 따라 조금은 위험한 하산을 해야만 합니다.

 

오전까지는 잠잠했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을 했습니다.

모자를 쓰지 않아서 머리카락이 바람에 휩쓸려 지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우측능선에 거대한 입석바위 두 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래측 기암은 족두리바위, 위에 있는 기암은 독수리바위입니다.

 

자세히보니 정말 입석 위에 독수리가 움츠리고 앉아 있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입석 꼭대기의 소나무 한 그루가 어떻게 뿌리내리고 삶을 유지하고 있는지 신비하기만 합니다.

 

 

 

 

한참을 위험한 바위능선을 내려와서 용담폭포전망대에 도착을 했습니다.

용담폭포 전망대에서 뒤를 돌아보면 상천리 마을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입니다.

 

 

 

 

용담에서 금수산을 수호하는 신룡(神龍)이

울부짖으며 승천할 때 남긴 발자국 3개를 상탕, 중탕, 하탕의 3담으로 부릅니다.

 

 

 

 

조선시대에는 이 폭포를 ‘용추(龍湫)’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1970년대까지 인근동민과 수산면장이 용추에서 기우제를 봉행했었다고 합니다.

 

 

 

 

계단을 내려와 울창한 숲을 벗어나니 상천리마을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보문정사를 지나 천천히 마을길을 따라 상천리주차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선두로 내려오다 보니

함께 산행했던 사람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배낭을 밖에다 두었더니 어느새 고양이가 배낭옆에 서 있었습니다.

마치 제 배낭을 지키고 있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냥아~ 고맙다.

겨울 동강을 가다.

 

 

겨울 동강을 구경하려고

이른 아침 산악회 버스를 타고 백운산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이 24절기 중 첫번째 절기인 입춘(立春)인줄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겨울 동강을 보려고 봄에 출발을 한 것입니다.

 

 

 

 

대전에서 3시간 30분이 걸려 점재마을에 도착을 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낯선 사람들이 무서웠던 걸까요?

슬슬 꽁무니를 빼면서도 연신 신기한 듯 쳐다보는 강아지들이 매우 깜찍하고 귀였습니다.

 

 

 

 

아직 동강의 얼음이 다 녹지 않았는데

조양강은 영월읍 동쪽으로 65km를 흘러서 동강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아직은 겨울이지만 봄 날씨처럼 포근한 날에

급경사지의 백운산 등산로를 힘겹게 올라갔습니다.

 

 

 

 

백운산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등산로에서 바라보는 동강은

물이 불어 홍수가 된다고 해도 동강의 물을 나무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칠족령의 병풍같은 암벽들이 동강의 세월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광풍이 거세게 불어도 온 산야의 초목을 다 꺾을 수 없다고 말하는 듯 보입니다.

 

 

 

 

비교적 짧은 산행끝에 백운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산 위에 흰 구름이 늘 끼어 있어 백운산이라 불리웠다고 합니다만

봄에 찾은 오늘의 겨울 백운산과 동강은 희뿌연 미세먼지만이 가득했습니다.

 

 

 

 

아름다운 칼날능선을 내려오다 보면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벽의 낭떠러지 아래로 동강이 흐르기에

밧줄과 함께 '추락위험'이라는 표지판이 등산객들의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저 멀리 동강전망 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진 길이 보입니다.

꾸불꾸불한 길이 마치 우리네 인생을 대변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봄에 겨울 동강을 찾아왔더니

내 짧은 인생을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도 생겼습니다.

 

 

 

 

백운산을 올라가는 시간보다 내려오는 시간이 더 걸리고

칼날같은 바위가 솟아 있고 여섯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하산을 할 수 있습니다.

 

칠족령에서 제장마을로 바로 가지 않고 칠족령전망대로 우회하기로 했습니다.

 

 

 

 

칠족령의 아름다움을 보고 나면 힘들었던 산행의 고통은 말끔히 치유되기 때문입니다.

 

 

 

 

칠족령은 옛날 옻칠을 하던 선비집 개가 발에 옻 칠갑을 하고 도망가,

그 자국을 따라 가보니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강의 풍경이 장관이었다는 것에 유래되어 이름 붙여졌다고 합니다.

 

 

 

 

개보다 못한 사람이 안 되려고

봄이 찾아온 칠족령 전망대에서 막걸리 한잔 하면서 망중한을 가져봤습니다.

 

제비가 날아오니 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봄이기 때문에 제비가 날아오는 것이다.

 

 

 

 

 

떠나기 싫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칠족령 전망대로 뒤로하고 제장마을로 하산을 했습니다.

 

 

 

 

동강 중심부에 높게 솟아 있는

백운산을 굽이돌아 동강을 제대로 관찰했습니다.

 

뒤풀이로

따뜻한 어묵 국물에 막걸리 한 대접하고

산악회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얼마 후... 빨간 신호등이 울렸습니다.

다들 이미 많은 경험들이 있으셔서 알겠지만 화장실이 급해진 겁니다.

참다참다... 1시간이 지난서 겨우 휴게소에 들려 시원스럽게 볼 일을 봤습니다.

 

위 두 사진을 보면 딱 아시겠죠??

나눔은 실천입니다.

 

 

‘깨닫는다’

라는 말에는 아는 것을 실천하며 끊임없이 개선해 나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2011년 12월 31일 늦은 밤.

 

나의 버킷리스트(죽기전에 이뤄야 할 자신과의 약속)에 '헌혈'이라는 단어 하나가 추가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의 헌혈 도전이 '아름다운도전 명산40'보다도 1년이나 앞서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내 주변에서 혈액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더 늦기전에 헌혈을 실천해서 따뜻한 사랑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작년 1월 2일에는 적십자헌혈유공장 '은장' (헌혈 30회)을 받았습니다.

올해 2월 1일에는 적십자헌혈유공장 '금장' (헌혈 50회)을 받았습니다.

 

저의 헌혈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보통 헌혈을 하면

여행용세트, 외식상품권, 우산, 커피교환권, 영화관람권 등 기념품을 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헌혈기부권 받습니다.

 

헌혈기부권은 헌혈을 통해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고

헌혈 후 기념품을 받는 대신 그 금액만큼을 기부하는 제도입니다.

 

2015년에는 헌혈을 통한 헌혈기부권으로 83,000원 상당한 금액을 기부했습니다.

 

 

 

 

제가 기념품을 받는 경우는 위 사진과 같이 쿠폰 이벤트를 하는 경우에 한합니다.

이전에 받은 영화관람권으로 지난 1월에 '히말라야' 영화를 보았던 것입니다.

 

 

 

 

1997년 7월.

해외여행이 흔하지 않던 그 시절
대학생이었던 나는 홀연히 베트남으로 떠났습니다.

 

내 앞에 닥친 현안들을 뒤로하고 과감하게 베트남 해외 봉사활동을 떠난 것입니다.
짧지만 길게만 느껴졌던 한달동안의 베트남 해외봉사활동은 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버리는 것도 용기입니다.

버리고 떠날 수 있는 것도 더 큰 결단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비로소 버려야 채울 수 있고

떠나는 아픔이 있어야 다시 돌아오는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2000년 1월.

숲해설로 대내외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대학원생이었던 저는 또 한번의 결단을 했습니다.

사이클론으로 고통받고 있는 인도 원주민들을 위해 아무런 댓가도 없는 인도에 1년동안 해외봉사활동을 떠난 것입니다.

 

 

 

 

인도의 Orissa주에 위치한 Gram Vikas라는 단체에서

영국, 스위스, 호주 등 외국펀드를 받기위해 원시부족 마을개발사업의 일환인 Village Mapping에 관여하여 1년동안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약속은 적게 하지만 일은 많이 한다고 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살려고 언제나 최선의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이 스토리는 제 자랑을 하려고 쓴 글이 아닙니다.

 

저는 버리고 사는 연습을 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욕망에 따르는 소비를 그만두고 필요한 것을 좋은 것으로 사는 삶을 사는 것이 어떨까요?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자기 스스로 내실이 깃든 삶을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눔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다.

소주 모히또 - 마이리틀티브 백주부 레시피 따라하기

 

 

모히또(Mojito)
모히토는 럼(rum)을 베이스로 라임즙과 민트 잎을 넣어 만든 칵테일로 발상지는 쿠바다.

 

 

 

 

라임즙에 설탕과 민트 잎을 넣고 으깬 후 잘게 부순 얼음(크러시드 아이스)과 럼을 넣어 완성한다.
모히토의 오리지널 베이스인 럼은 사탕수수 즙을 발효시킨 후 증류한 것으로, 제당산업이 발달했던 서인도 제도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마이리틀티브 백주부 소주 모히또 레시피의 준비물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리고 만드는 방법을 약간 응용하여 뚜벅이 모히또 레시피를 완성하였다.

 

[모히또 준비물]

 

도구 : 절구, 나무공이, 도마, 칼, 모히또 병과 잔, 수저

재료 : 레몬, 깻잎, 돌미나리, 소주, 사이다, 설탕, 소금 그리고 얼음

 

레몬 대신에 라임을 사용하면 더 좋다.
나는 깻잎이외에 돌미나리를 추가하여 향미를 증가시켰다.

 

레몬(800원/개)은 칠레산이며
깻잎과 돌미나리는 집에서 키우는 유기농 채소이다.
롯데사이다와 대전의 O2린 소주를 사용하였고 설탕은 CJ제일제당의 하얀설탕과 신안천일념 소금을 사용하였다.

 

 

 

 

[레몬 세척]

 

레몬을 씻는 이유는 잔류농약성분과 왁스코팅 때문이다.
베이킹소다나 소금으로 세척을 하여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집처럼 보통 가정집에 베이킹소다가 구비되어 있지 않으므로
굵은소금을 이용하여 레몬껍질을 박박 문질러 세척을 한 후 흐르는 물에 씻는다.
굵은소금으로 인해 레몬껍질이 살포시 벗겨져 손에서 레몬향이 올라온다.

 

 

 

 

[레몬썰기]

 

도마와 칼을 이용하여
레몬을 반으로 자른 후 레몬 반은 얇게 슬라이스를 만든다.
레몬이 많이 들어가면 더 좋으니 아끼지 말고 사용하면 된다.(2개 정도)

 

 

 

 

[설탕 투하]

 

슬라이스 된 레몬 반을 절구에 넣은 후
나머지 레몬 반을 즙이 나도록 짜준 후 레몬껍질을 절구에 같이 넣는다.

 

그리고 설탕을 두 숟가락 넣는다.
더 맛있게 먹으려고 백주부처럼 세 숟가락을 넣었다.ㅋㅋ
나도 세 숟가락 넣었다. 큰 수저로...

 

 

 

 

[깻잎, 돌미나리 추가]

 

깻잎 10장을 꼭지를 자르고 잘게 채 썬 후 돌미나리와 함께 절구에 넣는다.
돌미나리는 줄기는 빼고 잎만 떼서 넣는 것이 포인트다.


민트 대신 사용하는 깻잎, 돌미나리는 독특한 향이 나는 채소로서
어떤 채소이든 독특한 향이 나는 채소들은 모두 사용이 가능하다.

 

 

 

 

 

[소주 투하]

 

레몬, 설탕, 깻잎, 돌미나리가 들어간 절구에 소주를 1/2 넣는다 .

 

 

 

 

[절구 빻기]

 

나무공이를 이용하여 절구를 열심히 빻는다.
어느정도 레몬, 깻잎 그리고 돌미나리의 향이 잘 날 수 있을 정도로만 빻으면 된다.

 

 

 

 

[모히또 병에 담고 소주 넣기]

 

절구에서 나무공이로 빻아진
소주와 설탕이 첨가된 레몬, 깻잎, 돌미나리를 모히또 병에 옮겨 담는다.


그리고 모히또 병의 2/3까지 남은 소주를 넣는다.

 

 

 

 

[사이다 넣기]

 

모히또 병이 꽉 차도록 사이다를 넣고
레몬, 깻잎, 돌미나리, 소주, 사이다가 골고루 섞일 수 있도록 잘 저어준다.

 

 

 

 

[모히또 완성]

크러시드 아이스, 레몬이 첨가된 모히또 완성!

 

모히또 병에서 잘 저어준 모히또를 잔에 따른다.
절구에서 잘게 부순 얼음(크러시드 아이스)과 레몬은 더해 뚜벅이 모히또를 완성한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조금씩 나눠 먹는다.
소주를 마시듯 절대로 원샷은 하지 말자. 제발 맛과 향을 음미하며 천천히 마시자.

 

 

 

 

내가 2000년도 인도에서 생활할때 럼을 베이스로 모히또를 많이 만들어 먹었었다.
그 당시 친구들은 없지만 오늘 그때 그 기분을 16년이 지난 후에 다시 느껴본다.

 

모히토는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쿠바에 머물며 집필할 때 즐겨 마신 칵테일로도 유명하다.


헤밍웨이가 “내 삶은 라 보데기타의 모히또와 엘 플로리디타의 다이키리에 존재한다” 라는 말을 남겨
쿠바의 선술집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갑하산 산행 - 계룡산 산줄기 조망

 

 

대전은 들이 넓고 커서 예부터 한밭이라고 했습니다.

대전시내에서 바라보면 서쪽으로 금남정맥의 명산 계룡산을 배경으로

금수봉, 도덕봉이 삽재 건너 갑하산, 우산봉으로 이어져 북쪽의 금병산으로 흐릅니다.

 

 

 

 

1월 25일 오후 2시부터 기상특보(한파주의보)가 해제됨에 따라

계룡산의 아름다운 숲 설경을 보기 위해 유성에서 동학사주차장까지 가는 107번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갑동 버스정류장에서 하차를 했습니다.

그리고 걸어서 1.3km를 이동한 후 삽재에 도착을 했습니다.

 

 

 

 

숲속에서는 나무만 볼 수 있고

숲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눈맛을 자랑하는

대전 서편의 갑하산과 우산봉으로 발길을 돌린 것입니다.

 

 

 

 

 

눈과 낙엽이 뒤섞여 있는 숲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유성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또한 계룡산 수통골지구의 도덕봉도 하얀 설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가을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산행의 맛을 한층 더해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갑하산으로 향하는 숲길과 능선길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서쪽 편으로 펼쳐지는 계룡산 산줄기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장쾌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갑하산 정상에 도착을 했습니다.

 

갑하산이라는 명칭은 갑소(甲所), 갑골, 갑동 등으로 바뀌어온 지명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갑소의 소(所)는 고려시대의 행정구역의 하나로 주로 왕실이나 관아의 공물을 생산하던 사람들이 생활하던 구역이며, 주로 갑옷을 만들었던 곳이라 합니다.

 

 

 

 

갑하산에서 우산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은

대전 최고의 능선 산행코스로 손색이 없습니다.

 

서쪽을 바라보면 계룡산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계룡산 전망대라 일컬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세먼지때문에 시계가 좋지 않아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동쪽에는 국립대전현충원, 월드컵경기장 등이 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이 훤히 보이는 곳은 굴참나무 2그루가 무참하게 베어져 있었습니다.

아름드리 나무를 베어내서 전망을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신선봉으로 향하는 숲길에는

요괴소나무라 불리우는 나무가 있습니다.

 

 

 

 

영험한 기운을 품은 소나무의 기운을 탐내던 요괴가 기운을 취하려 하자

신선봉에서 이곳을 지키고 있던 신선이 요괴를 가두고 땅에서부터 족쇄를 나오게 하여 봉인하였다고 합니다.

 

 

 

 

거북이 모양의 거북바위도 볼 수 있습니다.

 

계룡산에 오르면 승천할 수 있는 거북이가 계룡산에 오르기 위해 갑하산을 넘다가

갑하산에서 쳐다본 계룡산의 절경에 반해 갑하산에 남아서 그곳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신선봉 정상에 도착을 했습니다.

 

신선봉에서 우산봉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이동을 합니다.

눈쌓인 숲길이 매우 정겹게 느껴지며 푸근함을 함께 선사하기도 합니다.

 

 

 

 

우산봉을 향하는 숲길에는 효자샘물이 있습니다.

 

먼 옛날 갑동마을에는 갑동이와 노쇠한 어머니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어머니의 건강을 위하여 갑동이는 하루종일 병수발을 하였습니다.

병수발을 하던 도중 잠깐 잠이 든 갑동이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갑동아, 저 앞산의 샘물을 100일간 어머니게 드려라! 그리하면 어머니는 낫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사라졌습니다.

다음날부터 갑동이는 꿈속에 나타난 노승의 말처럼 100일간 샘물을 어머니께 떠다 드렸습니다.

이후 갑동이의 효심과 100일간의 샘물로 어머니는 회복하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파른 경사의 우산봉에 올라 주변을 살펴 봤습니다.

미세먼지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절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산봉에는 '세시랑이야기'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백제시대 유성 갑천변에 살던 여인이

우산봉 산신령에게 정성껏 기도를 올려 아들 셋을 낳았습니다.

장성한 세 아들은 신라군과 싸움을 위해 떠났으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산신령에게 세 아들이 우산봉의 시랑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순간 여인은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고, 선계에서 세 아들과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우산봉에 정성껏 기도하면 훌륭한 아들을 얻는다는 소문이 자자해 여인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안산산성은

서문지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 백제시대 산성으로 유명합니다.

매년 3월 1일에 산성제를 거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전둘레산길 8구간인 안산산성으로 향하지 않고

우산봉에서 구암사 방향인 반석7단지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하산길의 숲길에서 서산대사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글귀이기도 합니다.

 

눈길을 걸을 때

흐트러지게 걷지 마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어에는 이의 길이 될 것이니

 

이렇게 산행의 참 맛을 느낀 갑하산 산행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대덕사이언스길 코스2

 

 

전국의 걷기 열풍이 일어난지도 10년이 다 되어간다.

산 주변, 해안 주변, 호수 주변 등 대부분이 그 느낌이 비슷한 길들 뿐이다.

 

 

 

 

 

내가 자란 대전에도 그와 비슷한 길들이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고향 유성에는 조금은 특별난 대덕사이언스길이 있다.

 

 

 

 

대덕사이언스길은 대전 도심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 과학기술의 심장부인 대덕 연구단지를 걷는 길이기도 하다.

도시와 자연, 그리고 과학이 어울어진 전국 유일의 길이라 생각한다.

 

 

 

 

대덕사이언스길은 코스1,2로 나뉘어져 있다.

 

다소 체력이 필요한 산길이 많지만 산림욕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코스1과

산길은 적지만 연구단지 내부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걷는 코스2로 구분되어 있다.

 

 

 

 

한국과학의 심장부를 걷는 대덕사이언스길 코스2는 국립중안과학관(주차장)을 출발하여,

성두산공원(산성) ~ 대전과학고입구 ~ 대전시민천문대 ~ 산성공원 ~ 충남대 ~ 궁동공원 ~ 유성구청 ~ KAIST ~ 대전지방기상청을

국립중앙과학관(주차장)으로 돌아오는 10km의 코스이다.

 

 

 

 

1월 16일 토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대덕사이언스길 걷기위해 집을 나섰다.

 

집에서 6km 떨어진 중앙국립과학관까지는

대전의 공공자전거인 타슈를 타고 갔다.

 

낙엽이 깔린 한적한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느덧 우리나라 원자력의 안전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을 지나 성두산공원의 구성동산성에 도착을 했다.

 

성두산의 정상에 흙을 쌓아 만든 성으로 '거북성이라고 한다.

성의 둘레는 580m로 산 정상부에 쌓은 북성과 남쪽으로 뻗은 산의 능선을 따라 길쭉하게 쌓은 남성으로 구분된다.

 

 

 

 

대덕사이언스길은 2011년 5월에 만들어졌다.

이미 존재하던 크고 작은 옛길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보안문제상 KAIST를 제외한

다른 정부출연연구소는 들어갈 수 없기에 숲길에는 휀스가 설치되어 있다.

 

 

 

 

자연학습장이 조성되어 있는

성두산공원을 내려오면 대전과학고 입구를 지나게 된다.

 

이제부터 자동차도로변 보도로 따라 시민천문대까지 이동하면 된다.

 

 

 

 

대덕사이언스길은 시설물이 최소로 설치되어 있다.

약도가 그려진 종합안내판을 제외하면 숲길에만 이정표가 있을 뿐이다.

다른 곳에서 많이 사용하는 리본 등은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다.

 

 

 

 

도로와 하천변이 인접하고 있고

은행나무, 느티나무, 목련, 연산홍, 쥐똥나무, 둥근향나무 등이 조경되어 있는 보도를 따라 걷게 된다.

 

 

 

 

연구단지종합운동장앞 횡단보도를 건너 대전시민천문대로 향했다.

다시 이곳 대전시민천문대부터 궁동공원까지는 완만한 숲길이 이어진다.

 

 

 

 

대전시민천문대는

매주 화요일 ~ 일요일, 오후 2시 ~ 10시까지만 개관한다.

 

 

 

 

대전의 별은 '북두칠성'이다.

 

대전의 별 북두칠성은 첨단과학도시 위상 제고와 시민의 자긍심을 심어주면서

우주특별시로서의 상징성을 높이고 희망찬 미래의 대전을 안내하는 뜻으로 2009년 8월 29일 선포되었다.

 

북두칠성은 자미원에 속하는 동양의 별자리로

한국과 중국에서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로 유명하며 황제의 수레로 불리기도 했다.

 

 

 

 

대덕사이언스길은 새로 개설한 구간이 일부만 있다.

 

 

 

 

단절구간은 중앙국립과학관 옆길과

해양연구소부터 기계연구소까지 샛길 등만 새로 개설을 한 것이다.

 

 

 

 

완만한 능선숲길을 따라

충남대학교 중앙도서관이 위치한 고개에 도착했다.

 

지금은 시내버스가 다녀서 충남대학교 학내를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90년대 대학시절 수도없이 넘어다녔던 고개인데, 너무나 힘들어서 아리랑고개라고 불렀다.

 

 

 

 

대덕사이언스길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대전시민천문대, 지질박물관, 화폐박물관, 국립중앙과학관 등은 전국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과학학습시설이다.

 

편안하게 그 길을 내가 걸고 있다.

 

 

 

 

숲길을 벗어나 궁동공원에 도착을 했다.

도심을 통과하는지라 이정표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궁동공원의 종합안내판이 마지막 구간안내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로도

운동삼아 가끔 찾는 대덕사이언스길때문에  대학시절 향수를 느낄 수 있다.

 

80년대말부터 90년대초까지

오렌지족이 이름을 날리던 때

압구궁동이라고 불리우며 9시 뉴스에도 나왔던,

그때 그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관광특구 유성의 24시간 영업하는 궁동이 소개된 것이다.

 

 

 

 

궁동을 지나 유성구청으로 향하는 길에

손을 꼭잡고 걸어가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노년의 인생이 아름답다.

 

 

 

 

드디어 유성구청에 도착을 했다.

이젠 갑천변을 따라 난 도로를 걸어서 KAIST와 대전지방기상청을 지나 국립중앙과학관(주차장)으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들었다 해도 도심이다 보니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음 목적지만 확실하게 머릿속에 넣고 걸으면 금방 자신의 위치와 행선지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대전 도심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 과학기술의 심장부인 대덕 연구단지를 가로지르는 대덕사이언스길을 걸었다.

바코드의 숲을 걷다.

 

 

주말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신에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고독이라는 벗을 깊이 사귀는 일이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 대전을 출발한 나는

오전 10시쯤 문경새재 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한적한 주차장에서 산행준비를 마치고 문경새재 도립공원 안내도를 살펴봤다.

뭐... 여행은 언제나 틈을 만나러 다닌다는 평소 신념처럼

아무생각 없이 이곳에 왔기에 산행코스를 우선 정해야만 했다.

 

 

 

 

주차장-영남제1관문(주흘관)-여궁폭포-혜국사-대궐터-주봉-영봉-꽃밭서들-영남제2관문(조곡관)-영남제1관문(주흘관)-주차장

으로의 산행코스를 정하고 은행나무 사이로 난 문경새재길을 따라 영남제1관문(주흘관)으로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의 고개', '새로 만든 고개' 등의 뜻이 담겨 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저멀리 석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 34년(1708)에 설관 하였다는 영남 제1관 또는 주흘관이다.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측이 400m로 개울물을 흘러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다.

 

 

 

 

주흘관을 지나 오른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계곡을 따라 여궁폭포로 향하는 숲길은 바코드처럼 쭉 뻗은 전나무가 등산객들을 인도하고 있다.

 

걸어가고 있는 등산객들과 전나무 숲길이 만들어낸 여백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고독이라는 벗과 함께 걷다보니 눈깜짝할 사이에 여궁폭포에 도착했다.

전국적으로 극심한 가뭄으로 물줄기조차 기대하지 않았는데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메말랐는데... 어떻게 물줄기가... 자연의 신비로움에 다시한번 숙연해진다.

 

 

 

 

높이 20m의 이 장엄한 폭포는 수정같이 맑은 물이 노송의 멋, 기암절벽의 풍치 등과 조화를 이루어 그 경관이 수려하다.

 옛날 7선녀가 구름을 타고와 여기서 목욕을 했다는 곳으로 밑에서 쳐다보면 마치 형상이 여인의 하반신과 같다하여 여궁 또는 여심폭포라 불려지고 있다.

 

 

 

 

여궁폭포를 지나서 주흘산 기슭에 위치한 혜국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등산객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 경사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혜국사를 지나 아름드리 소나무숲 사이를 따라 오르막을 올라가고 있다.

 

 

 

 

숲길을 걸을때 함부로 밟지 마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임을 명심하면서 걸어라.

 

 

 

 

혜국사에서 약 1.5㎞ 앞서가는 등산객들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또 걷다보면

좁은 소로 길이 끝나고 확 트이는 넓은 구릉지가 나오는데 지금은 잡풀과 잡목으로 뒤덮혀 있지만 예전에는 대궐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대궐터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행재소(대궐)를 세운 터라는데 이곳에는 샘이 있다.

 

 

 

 

대궐터부터 주봉 하단능선까지는 데크계단을 따라 가야한다.

주흘산에서 일명 죽음의 구간이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혹자들은 900여개, 1,200여개라고 말을 하지만 계단의 수를 세는 것은 무의미하다.

처음엔 굳은 각오로 계단수를 세면서 올라가지만 곧 숨이 차오르고 지치기 시작하면 모든것을 한순간에 잊기 때문이다.

 

 

 

 

죽음의 구간인 데크계단을 쉼없이 올라 주봉 바로 아래에 도착을 했다.

짙은 안개와 간간히 흩날리는 진눈개비로 인해 주변풍광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문경의 진산(鎭山)이기도 한 주흘산은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란 한자 뜻 그대로 문경새재의 주산이다.

 

한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큰 산(中嶽)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런 영산(靈山)으로 받들어 왔다.

 

 

 

 

 

주봉을 지나 영봉까지 능선을 타고 한걸음에 왔다.

 

주흘산 영봉은 높이 1,106m. 소백산맥에 솟아 있다.

서쪽으로 조령천을 사이에 두고 조령산(1,017m)과 마주보며, 포암산(962m)·신선봉(967m)·대미산(1,115m) 등과 함께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주차장에서 영봉까지 2시간밖에 안 걸렸다.

영봉에서 부봉을 거쳐 영남제2관문(조곡관)으로 하산하려 했으나 안개가 더욱 짙어져서 원래 계획대로 꽃밭서덜로 향했다.

 

 

 

 

하산길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식사로 컵라면을 먹었다.

찬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따뜻한 국물이 나도모르게 생각난 것이다.

 

따뜻한 라면국물에 밥도 말아먹고 후식으로 귤과 양갱도 먹었다.

배가 든든하니 발걸음이 한결 더 가벼웠다.

 

 

 

 

산수 수려한 주흘산 깊은 조곡계곡을 따라 하산길이 이어졌다.

 

 

 

 

네 눈은 밝은 해를 알지 못하고,

네 혓바닥은 의로운 말을 하지 못하는구나

눈 없고, 혀 없구나

인간이거든, 눈떠 밝은 세상을 보고

입을 열어 새처럼 노래하라

 

 

 

 

산허리를 돌무더기와 긴 돌로 세워 놓고 그 위에 작고 넓적한 돌을 얹어 마치 장승처럼 세운 곳이 나타났다.

 

 

 

 

이곳이 꽃밭서들인것이다.

오가는 사람들이 소원성취를 위하여 이렇게 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들을 못 낳는 여인이 여기 와서 빌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꽃밭서들을 지나 계곡을 따라 하산하니 영남제2관문(조곡관)이 나왔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다.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문경 조령의 중간에 위치한 제2관문으로

삼국시대에 축성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일명 조곡관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문경새재를 따라 걸어가면 된다.

 

문경새재하면 박달나무가 군생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깊은 산에는 박달나무가 야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나 새재의 한양 나들이 길가에 자라서 옛 선비의 정취를 돋우웠던 나무이다.

 

 

 

 

평탄한 흙길인 문경새재길을 따라 걷다보니

조곡관과 주흘관의 중간지점인 용연위에 있는 교귀정에 도착했다.

 

교귀정은 새롭게 도임하는 신임감사와

업무를 마치고 이임하여 돌아가는 감사가 관인을 인계인수 하던 곳으로 용추폭포 옆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이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죽령을 지나 대미산, 포암산, 주흘산, 조령산, 희양산, 대야산, 청화산, 속리산으로 이어져 소백산맥을 이루어 나간다.

 

이곳이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조선시대의 가장 큰길[嶺南大路]이었던 곳이며 옛날의 유지(遺址)로는 원터, 교귀정, 봉수터, 성터, 대궐터 등이 잔존하고 있다.

조령로의 번성을 말해 주듯 조령로변의 마애비는 관찰사, 현감 등의 공적을 새겨 놓았으며, 주흘관 뒤에는 선정비, 불망비, 송덕비가 비군(碑群)을 이루고 있다.

 

 

 

 

주흘산 조령관문 1관문과 2관문 사이에 위치한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어느덧 다시 영남제1관문(주흘관)에 다시 도착을 했다.

임진왜란 뒤에 이곳에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고 한다.

 

 

 

 

이번 주흘산 산행이 마무리 되는 시점이다.

 

 

 

 

눈 가고 바람이 왔다.

늘 그렇듯 풍경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

풍경은 옛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늘 이 순간을 살지.

거친 바람 마다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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