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드의 숲을 걷다.

 

 

주말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신에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고독이라는 벗을 깊이 사귀는 일이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 대전을 출발한 나는

오전 10시쯤 문경새재 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한적한 주차장에서 산행준비를 마치고 문경새재 도립공원 안내도를 살펴봤다.

뭐... 여행은 언제나 틈을 만나러 다닌다는 평소 신념처럼

아무생각 없이 이곳에 왔기에 산행코스를 우선 정해야만 했다.

 

 

 

 

주차장-영남제1관문(주흘관)-여궁폭포-혜국사-대궐터-주봉-영봉-꽃밭서들-영남제2관문(조곡관)-영남제1관문(주흘관)-주차장

으로의 산행코스를 정하고 은행나무 사이로 난 문경새재길을 따라 영남제1관문(주흘관)으로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의 고개', '새로 만든 고개' 등의 뜻이 담겨 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저멀리 석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 34년(1708)에 설관 하였다는 영남 제1관 또는 주흘관이다.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측이 400m로 개울물을 흘러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다.

 

 

 

 

주흘관을 지나 오른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계곡을 따라 여궁폭포로 향하는 숲길은 바코드처럼 쭉 뻗은 전나무가 등산객들을 인도하고 있다.

 

걸어가고 있는 등산객들과 전나무 숲길이 만들어낸 여백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고독이라는 벗과 함께 걷다보니 눈깜짝할 사이에 여궁폭포에 도착했다.

전국적으로 극심한 가뭄으로 물줄기조차 기대하지 않았는데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메말랐는데... 어떻게 물줄기가... 자연의 신비로움에 다시한번 숙연해진다.

 

 

 

 

높이 20m의 이 장엄한 폭포는 수정같이 맑은 물이 노송의 멋, 기암절벽의 풍치 등과 조화를 이루어 그 경관이 수려하다.

 옛날 7선녀가 구름을 타고와 여기서 목욕을 했다는 곳으로 밑에서 쳐다보면 마치 형상이 여인의 하반신과 같다하여 여궁 또는 여심폭포라 불려지고 있다.

 

 

 

 

여궁폭포를 지나서 주흘산 기슭에 위치한 혜국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등산객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 경사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혜국사를 지나 아름드리 소나무숲 사이를 따라 오르막을 올라가고 있다.

 

 

 

 

숲길을 걸을때 함부로 밟지 마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임을 명심하면서 걸어라.

 

 

 

 

혜국사에서 약 1.5㎞ 앞서가는 등산객들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또 걷다보면

좁은 소로 길이 끝나고 확 트이는 넓은 구릉지가 나오는데 지금은 잡풀과 잡목으로 뒤덮혀 있지만 예전에는 대궐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대궐터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행재소(대궐)를 세운 터라는데 이곳에는 샘이 있다.

 

 

 

 

대궐터부터 주봉 하단능선까지는 데크계단을 따라 가야한다.

주흘산에서 일명 죽음의 구간이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혹자들은 900여개, 1,200여개라고 말을 하지만 계단의 수를 세는 것은 무의미하다.

처음엔 굳은 각오로 계단수를 세면서 올라가지만 곧 숨이 차오르고 지치기 시작하면 모든것을 한순간에 잊기 때문이다.

 

 

 

 

죽음의 구간인 데크계단을 쉼없이 올라 주봉 바로 아래에 도착을 했다.

짙은 안개와 간간히 흩날리는 진눈개비로 인해 주변풍광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문경의 진산(鎭山)이기도 한 주흘산은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란 한자 뜻 그대로 문경새재의 주산이다.

 

한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큰 산(中嶽)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런 영산(靈山)으로 받들어 왔다.

 

 

 

 

 

주봉을 지나 영봉까지 능선을 타고 한걸음에 왔다.

 

주흘산 영봉은 높이 1,106m. 소백산맥에 솟아 있다.

서쪽으로 조령천을 사이에 두고 조령산(1,017m)과 마주보며, 포암산(962m)·신선봉(967m)·대미산(1,115m) 등과 함께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주차장에서 영봉까지 2시간밖에 안 걸렸다.

영봉에서 부봉을 거쳐 영남제2관문(조곡관)으로 하산하려 했으나 안개가 더욱 짙어져서 원래 계획대로 꽃밭서덜로 향했다.

 

 

 

 

하산길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식사로 컵라면을 먹었다.

찬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따뜻한 국물이 나도모르게 생각난 것이다.

 

따뜻한 라면국물에 밥도 말아먹고 후식으로 귤과 양갱도 먹었다.

배가 든든하니 발걸음이 한결 더 가벼웠다.

 

 

 

 

산수 수려한 주흘산 깊은 조곡계곡을 따라 하산길이 이어졌다.

 

 

 

 

네 눈은 밝은 해를 알지 못하고,

네 혓바닥은 의로운 말을 하지 못하는구나

눈 없고, 혀 없구나

인간이거든, 눈떠 밝은 세상을 보고

입을 열어 새처럼 노래하라

 

 

 

 

산허리를 돌무더기와 긴 돌로 세워 놓고 그 위에 작고 넓적한 돌을 얹어 마치 장승처럼 세운 곳이 나타났다.

 

 

 

 

이곳이 꽃밭서들인것이다.

오가는 사람들이 소원성취를 위하여 이렇게 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들을 못 낳는 여인이 여기 와서 빌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꽃밭서들을 지나 계곡을 따라 하산하니 영남제2관문(조곡관)이 나왔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다.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문경 조령의 중간에 위치한 제2관문으로

삼국시대에 축성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일명 조곡관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문경새재를 따라 걸어가면 된다.

 

문경새재하면 박달나무가 군생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깊은 산에는 박달나무가 야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나 새재의 한양 나들이 길가에 자라서 옛 선비의 정취를 돋우웠던 나무이다.

 

 

 

 

평탄한 흙길인 문경새재길을 따라 걷다보니

조곡관과 주흘관의 중간지점인 용연위에 있는 교귀정에 도착했다.

 

교귀정은 새롭게 도임하는 신임감사와

업무를 마치고 이임하여 돌아가는 감사가 관인을 인계인수 하던 곳으로 용추폭포 옆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이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죽령을 지나 대미산, 포암산, 주흘산, 조령산, 희양산, 대야산, 청화산, 속리산으로 이어져 소백산맥을 이루어 나간다.

 

이곳이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조선시대의 가장 큰길[嶺南大路]이었던 곳이며 옛날의 유지(遺址)로는 원터, 교귀정, 봉수터, 성터, 대궐터 등이 잔존하고 있다.

조령로의 번성을 말해 주듯 조령로변의 마애비는 관찰사, 현감 등의 공적을 새겨 놓았으며, 주흘관 뒤에는 선정비, 불망비, 송덕비가 비군(碑群)을 이루고 있다.

 

 

 

 

주흘산 조령관문 1관문과 2관문 사이에 위치한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어느덧 다시 영남제1관문(주흘관)에 다시 도착을 했다.

임진왜란 뒤에 이곳에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고 한다.

 

 

 

 

이번 주흘산 산행이 마무리 되는 시점이다.

 

 

 

 

눈 가고 바람이 왔다.

늘 그렇듯 풍경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

풍경은 옛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늘 이 순간을 살지.

거친 바람 마다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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