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 마음을 헤아리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며 사는 삶이다.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사리사욕을 버리고 선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은 사계절이 변화하듯 때가 되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을 말한다. 자연은 세상 모든 것의 고향이다.

 

여름이다

 

며칠을 세종시 외곽을 헤매고 다니고 있다. 둘레길 노선을 찾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땀구멍으로 노폐물이 빠진다. 시원한 것, 입맛 당기는 것, 고단한 육신을 사르르 녹게 만드는 것을 먹고 싶다. 몸이 알코올을 탐한다. 술은 짧은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다. 입안에 가득 찬 맥주의 첫 한 모금이 짜릿하다.

낮이 밤보다 길다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다. 활활 불타는 장작의 불꽃처럼 긴 낮은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윙윙거리며 쫓아다니는 산모기처럼 한낮의 공기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숨이 막힌다. 소나무, 참나무, 밤나무, 생강나무, 철쭉과 주변의 덩굴식물이 숲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숲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위로 스며든다. 바람은 계곡을 타고 흘러와 능선에서 나를 맞아준다. 숲에서 바람과 내가 서로 뒤엉겨 있는 순간이 좋다.

 

아름다운 고갯길에 산다는 것이 참 좋다

 

여름 햇살이 콘크리트 농로를 비출 때 옛날 마을에서 마을로 걸어 다녔던 고개를 넘었다. 저 멀리 나발터 마을이 보이고 오른편으로 호박들이 점령군처럼 밭을 자치하고 있다. 짙은 초록색 이파리가 한낮의 빛과 잘 어울린다. 그렇게 높지 않은 고갯길이지만 배 과수원이 대부분인 이 길에 호박은 그런대로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호박이 들어간 된장국과 살짝 데친 호박잎으로 점심 한 끼 먹고 싶은 날이다.

어제보다 더 오늘이 더운 여름날이다. 바람도 불지 않아 거대한 나무의 잎사귀들도 숨을 죽이고 있다. 등과 배의 땀이 폭포수처럼 흐른다. 손바닥에도 땀이 맺혀 끈적거린다. 소형배낭의 등받이가 땀에 젖어 하얗게 염분을 만들었다. 내일보다 더 오늘이 더운 여름날이다.

 

한낮의 땡볕이 뜨겁다

 

아미산을 내려와 마을을 지나면 한적한 농로를 걷게 된다. 빨갛게 익어가는 복숭아가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아직 먹을 수 없지만, 복숭아나무를 보면서 걷는 길이 마음에 든다. 복숭아에 싫증이 날 때쯤 샛노랗게 익어가는 살구를 보게 된다. 짧은 흙길이 서서히 끝나가는 지점이다. 시간은 정지해 있지 않고 흘러가지만, 도란도란 이야기꽃은 길 위에 서려 있다.

길옆에 나타난 생명체를 내려다본다. 바닥에 온몸을 붙이고 아주 느린 속도로 전력을 다해 이동하는 달팽이를 발견한 것이다. 귀엽다. 휴대전화를 꺼내 눈을 떼지 않고 동영상을 찍었다. 남들은 흥미가 없어 보이지만 난 달팽이에게 흥미를 느낀 것이다. 긴 머리가 살랑살랑 바람에 날린다. 꾸물꾸물한 움직임에 빠져 잠깐 몰입한 순간이다.

부어오른 눈두덩, 언제 다쳤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새 눈곱마저 생겨 속눈썹에 엉겨있다. 그 누구도 가지 않은 숲속을 헤매다 나뭇가지에 뺨을 맞고, 가시에 온몸이 긁혀도 좋은 숲길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햇빛도 바람도 차단된 울창한 숲속에서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지 푸석거리는 소리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난다. 익숙해질 것 같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숲길 노선 찾기는 자연인의 삶과 컴퓨터 게임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이어지는 순간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은 나에게 세상의 아름다움과 흉함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계절은 어느덧 홀연히 흘러간다. 만물이 타들어 갈 듯 더운 여름이 한 걸음 더 가을로 다가서는 중이다. 자연이란 신비한 이름 앞에 언제나 겸손함을 잊지 말고 보호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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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병이 도졌다. 여행 병이 도져서 통영 여행 중에 제주여행을 위한 항공권을 예약했다. 남들은 여행을 떠날 여유가 없어 늘 아쉬워하는데 난 병이 도지면 여행이 최우선이 되고 나머지는 그다음으로 밀린다. 경제적인 이유를 우선 생각했다면 나는 여행을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수입은 줄겠지만,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이 훨씬 많다. 나에게 여행은 생각날 때 계획하고 결정하면 그만이다. 그게 나의 지병이다.

살아있기에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이기 위해 여행을 다닌다. 여행을 다니는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생존본능이다. 낯선 곳의 정겨움과 아름다움에 끌려 답답한 도시의 삶에 당당히 맞서게 된다. 여행은 나만의 피신처가 되어준다.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해마다 제주를 3번 이상 찾고 있다. 3월 말 4월 초는 봄바람이 솔솔 부는 오름에서 명상하는 것이 좋다. 5월 말 6월 초와 9월 말 10월 초는 자연의 푸르름 속에 텐트를 치고 누워있는 것이 좋다. 11월 말 12월 초는 제철 생선인 방어를 먹기 위해 모슬포를 방문하는 것이 좋다. 여행을 못 간다고 투정 부릴 이유는 없다. 그냥 훌쩍 떠나면 된다.

 

제주 백패킹

 

백패킹이 좋은 이유는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좋다는 점이다. 책을 읽거나, 명상하거나, 의자에 앉아 멍을 때리기를 하면 된다. 느릿느릿 주변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시간에 틈이 많아 시간의 자유를 느끼며 일상을 보낼 수 있다.

백패킹은 자신을 성찰하면서 내면을 돌아보게 된다. 내면에는 외부 사람에게 표현할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갈등이 있다. 자연과 즐겁게 놀이하듯 내면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자연의 소리와 함께 내면이 소리를 내고 내 몸 깊은 곳까지 소리의 울림이 머물게 된다. 나만의 빛으로 다시 반짝이게 되는 순간이다. 마침내 나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내가 여기에 있어 참 좋다.

나무가 만들어낸 그늘을 찾아 나무 주변을 맴돌고 있다. 장렬하게 내리쬐는 한낮의 햇빛과 마주하는 것은 무리한 것이다. 백패킹을 즐기는 나에게는 해, 달, 들판, 바다 등 모든 자연이 친구가 되어준다.

지구가 만들어낸 공기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낀다. 여름이 찾아오면 선풍기, 에어컨의 인공바람보다 자연 바람의 시원함을 느끼고 싶어진다. 나무 그늘에서 갓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 더위도 사라지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진다. 자연 바람은 은은한 시원함을 느끼게 해 준다. 자연 바람이 알아서 온도를 조절해 준다. 오늘도 자연 바람을 맞으며 한량처럼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숲에서는 새소리를 실은 바람 소리가 바다에서는 바람의 출렁임을 실은 파도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수평선에서 시작된 붉은 빛이 바다와 하늘을 점점 붉은 빛으로 물들였다.

밤에는 어둠이 세상을 지배한다. 도시의 밤은 어둠을 그대로 두지 않고 불을 밝힌다. 도시의 불빛은 하늘에 빛나는 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껏 밤하늘의 별을 못 보고 지내고 있다. 별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불타오른다. 도시의 불빛이 별을 숨기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 도시의 불빛보다 별빛이 더 아름답게 세상을 비춘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진실을 숨기는 것이다.

백패킹을 할 때 인위적으로 만든 야영장을 이용하면 하수이다. 진정한 고수는 자연을 벗으로 삼아 조용히 야영한다.

 

여행과 자유

 

여행을 혼자 다닌다고 외로울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누군가와 꼭 감정을 공유해야만 즐거운 여행이 되는 건 아니다.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면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더 좋아지게 된다. 더 좋아지게 되면 점점 즐거워지고 자주 혼자 여행을 다니게 된다. 문득 도시에서 도망치고 싶어질 때 절대로 망설이지 않는다. 누구도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드넓은 자연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혼자 하는 여행이다.

여행을 계획하면 진정한 자유가 없다. 계획의 그물을 벗어나야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된다. 여행은 나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여행 중에 만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통해 내면의 자아를 만나게 된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냄으로써 자아가 성장한다. 여행을 통해 자아와 교감을 나누고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된다. 자아를 만나기 위한 여행은 언제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주거지 인근에서 휴식은 진정한 휴식이 아니다. 낯선 장소의 아름다움이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제공한다. 훼손된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고 재충전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여행도 삶처럼 몰아치듯 한다면 금세 지치게 된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삶의 고뇌는 힘을 뺀 채로 여유를 가져야 놓아버릴 수 있다. 성난 파도의 포효보다 잔잔히 흐르는 유연한 파도의 부드러움이 여행에서 더 필요하다. 몸의 힘을 빼고 마음은 가볍게 할 때 여행은 더 편안한 일상으로 다가온다.

 

미조항 조도호

 

탄산음료의 거품처럼 보글거리는 소리는 배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는 파도로 점철된다. 아무 데도 안 가보고, 아무것도 안 하면 알 수 없다. 여행 중에 경험하게 되는 생소한 분위기와 냄새가 부드러운 바닷바람처럼 좋다.

삶은 여행과 같은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설레고 흥분되어 잠도 이루지 못하지만, 여행길의 험난함과 마주치게 되면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게 된다. 미지의 세상으로 언제든 떠날 수밖에 없는 삶은 여행과 같아서 더 애틋한 마음이 든다.

 

살고 싶은 섬, 호도

 

360도 주위를 살피며 섬 냄새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 다채로운 식생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호도의 야생화와 더불어 나무는 다른 나무와 똑같이 닮지는 않는다. 훈훈한 초록빛이라도 그 색깔이 다 다르다. 계절은 나무의 변화와 같다. 나는 변화하는 숲속에서 흘러가는 계절을 파악하려 애쓴다. 나는 자연과 유기적으로 얽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충만하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속에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존재들이 있다. 자연은 늘 같은 모습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그 모습이 시시각각 변한다.

갯바위에 앉아 조도와 두미도를 바라보는 한적함이 좋다. 바다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에 호흡을 맡긴다. 이 순간이 여행자로서 가장 좋아하는 명상과 사색의 시간이다. 세상살이에 빠져있을 때는 마음이 흐트러진다. 본래 타고난 밝은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옳고 깨끗한 생각을 하려면 마음을 차분하고 안정되게 해야 한다. 자연과 마주할 때는 언제나 명상에 빠져든다.

생각을 소유하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흘려보낸다. 그래야 집착을 버릴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는 여행지에서 자연에 몸을 맡긴 채 망중한을 즐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명상에 전념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가꿔나가면 얼마든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

 

호도 여행의 화두(話頭)

 

바람이 부는 데로 떠다니는 구름은 신기하게도 풍경화 속 양 떼의 그림처럼 예쁘게 떠 있다.

새벽에 내린 비는 호도를 적시고 바다로 흘러갔다. 물은 물에서 나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이란 근원은 똑같지만 불리는 이름의 형태만 다를 뿐이다. 똑같은 물을 바라보면서 그 물이 다르다는 착각을 하고 세상을 살고 있다. 모든 자연은 궁극적으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갯바위에 서 있는 낚시꾼의 위태로운 상황만큼 수평선으로 점점 기울어져 가는 햇빛에 비친 바다의 윤슬은 그 어떤 빛보다 휘황찬란하다.

나에게 여행의 가장 큰 화두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찰나의 영원함

 

여행지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접하게 되면 처음 의도와는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한 걸음씩 걸어 다닌 길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흥미진진한 여행이 되는 것이다. 여행은 내가 서 있는 장소에 대해 찰나의 영원함을 매 순간 느끼는 것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싶다. 나는 언제나 미지의 장소를 보러 떠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지난주 월요일, 남해 호도에 들었다. 이른 아침 미조항에서 막 배에 오르려는데 등에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배에서 내린다. 배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사는 곳, 조도에 사는 아이들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호도는 미조항의 지척에 산다.

조그마한 포구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해안 절애와 그래서 더 애틋한 기린초와 해국이 첫 마중을 한다. 섬에 들면 늘 마주하는 포구에 목멘 어선 한 척 없는 조그만 항에는 낚시꾼들 몇 명이 바쁘게 캐스팅을 해대고 있었다. 마을 쪽을 향해 난 콘크리트포장 길을 따라 길을 잡았다. 처음부터 가파른 비탈은 길을 이리저리 갈지자로 끌고 다니고, 두어 번의 모퉁이를 지나 마을 당산을 만났다.

 

마을에서 만난 첫 번째 사내에게 저간의 마을 사정과 숲에 있을 법한 옛길과 지명 등에 대한 질문을 두서없이 해댔다. 그는 끝없는 친절을 콘크리트 바닥과 허공에 마구 토해냈다. 더 물을 것이 없을 정도로 질문한 이상의 정보들을 얼굴이 벌게지도록 쏟아내고 있었다. 섬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들 친절할까! 순박해서라고, 외로워서라고 말하지 말자. 그냥 그들과의 인연을 섬여행의 첫걸음으로 삼으면 족할 것이다.

사내와 헤어져 마을 길을 따라 10분여 남짓 걸었을까! 마을 길이 끝났다. 저만큼 아래에 검푸른 바다가 혹하고 다가온다. 아직은 호도의 바다를 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급히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숲길로 접어든다. 남녘의 숲들은 늘 새로움으로 이방인을 맞는다. 흔히 보는 예덕나무며 광나무며 마삭줄 등속이 오늘도 반겨준다. 그런데 이 녀석은 뭘까? ‘! 모람이로구나!’ 오랜만에 보는 모람과 더불어 우묵사스레피나무, 섬노린재나무, 돈나무 등이 연속해서 우리를 맞는다. 반갑다.

그렇게 이어진 발걸음이 닫는 호도의 지명들이 예사롭지 않다. 보리마당, 스닷뽀닷, 청늘, 개발매밑, 코밧, 목넘, 진담, 뫼사니홈, 작은홈, 뜨뿌영, 기민장 그리고 서담늘홈 등등. 그 뜻을 알 수 없는 지명들이 연이어 다가온다. 아직은 공부할 것이 많다는 뜻이니 한편 기쁜 일이기도 하다.

 

이미 조성된 탐방로를 벗어나 본격적인 섬 탐사를 시작했다. 먼저 마을 당산 앞에 있는 골짜기를 따라 한달음에 능선에 올랐다. 그리고 작은홈으로 이어졌을 옛 바래길을 찾기 시작했다. 첫 번부터 만만치 않다. 우거진 숲과 가시덤불이 앞을 막는다. 그래도 쉽게 지치지 않는 내 미련스러운 고집에 오늘도 숲은 길을 내주었다.

작은홈에는 시원한 바람이 산다. 덤불과 싸우느라 흥건했던 땀들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등골이 오싹할 만큼 작은홈의 바람은 거칠게 온몸을 덮치고 들었다. 한참을 쉬었다. 지친 몸 하나 의탁하기도 힘든 급경사지에서 그렇게 한참을 쉬며 호도의 첫 속살인 작은홈과 교감하였다.

다시 길을 나섰다. 옛길의 흔적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늘 그렇지만 반복하는 만큼의 호기심이 거친 걸음을 앞으로 이끌고, 기어이는 숲을 벗어나는 길들을 찾게 된다. 뜨뿌영, 기민장을 지나 서담늘홈을 거쳐 다시 출발점인 마을 당산에 도착했다. 숲길을 걷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안도감에 잠시 다리쉼을 한다.

 

얼마쯤 쉬었을까! 다시 능선 삼거리에 올랐다. 이번에는 산봉우리를 따라 능선으로 길을 잡았다. 마을 사람들은 얼만큼이나 숲에 걸음 하지 않았던 걸까. 능선에는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럴 때는 지도와 감각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거친 바람의 친구인 섬의 능선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커다란 상수리 고목과 너럭바위의 부처손 군락지 등을 지나, 기어이 옛 초소가 있던 가물여 앞에 다다랐다. 기암괴석과 바닷가의 연못과 바닷속 동굴과 거친 파도가 함께 사는 곳, 진담과 목넘으로 이어지는 가물여 앞바다는 단연 호도의 절경이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옛 초병들의 흔적을 따라 목넘 골짜기에 다다를 무렵 길을 잃었다. 억지로 올라서면 밭 가생이로 올라설 수 있겠지만, 길이 아니었다. 그때, 마치 짱가라로 되는 양, 저만치 마을 길 위에서 어르신 한 분이 소리를 친다. 힘에 부치시는지 어르신의 목소리는 외마디 비명처럼 골짜기를 맴돌았다. “이리. 빠꾸. 건너.” “일리요? 계곡을 건너야 돼유? 식아, 너 내려오란다.” 어르신의 외마디와 몸짓에 위탁하여 길을 잡았다. 결국, 꼭 맞는 옛길을 따라 마을 길에 도착했다.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전에 어르신은 벌써 돌아서서 잰걸음을 옮겼다. 호도에 사는 강아지들도 이방인에게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꼬리를 흔들거나 살그머니 다가와 바라볼 뿐이다. ‘범섬이라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은 뜻도 모를 삶터와 가물여의 절경과 투박한 친절이 몸에 앉은 사람들이 사는 곳, 호도에 다시 와 볼 일이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이주 만에 다시 찾은 두미도. 오직 선택받은 사람만이 살고 싶은 섬, 두미도를 이해할 수 있다. 헤어진 여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기뻐하는 남구의 누렁이가 나를 반긴다. 종을 뛰어넘은 인간과 동물의 우정이다.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할 때 이미 그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어떤 글로도 표현할 수 없다.

 

현실과 이상

 

무더운 한낮의 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걸음을 옮긴다. 녹음이 짙어진 그늘진 계곡은 맑은 물이 흐른다. 계곡물은 바위에 부딪혀 철퍼덕거리기도 하고 급류가 되어 헐떡거리기도 하며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신음하기도 한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계곡물은 졸졸 흘러야 아름답게 느낀다. 우리는 현실의 계곡물을 보고 이상적인 계곡물을 생각한다.

나무는 잎의 광합성을 통해 하늘로 가지를 뻗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다. 뿌리로 물을 얻고 잎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얻어 햇빛을 통해 광합성을 한다.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과 산소를 만든다. 나무가 배출한 산소를 우리는 숨을 쉬고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나무는 광합성에 이용하는 것이다. 나무와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눈에는 볼 수 없지만, 숲은 살아 있는 생물들의 고향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햇빛이라는 동료가 필요하다.

 

섬과 산

 

자연은 있는 그대로 그냥 놔두어야 한다. 늘 거기에 존재해야 한다. 존재하므로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이다. 하늘을 천장 삼아 봉우리를 마루 삼아 아무것도 없는 바위에 앉는다. 인생의 창밖으로 사랑도, 욕지도를 바라본다. 두 손을 입에 대고 힘차게 외쳐본다. 언어는 떠나버리고 소리만 남는다. 언어는 더는 현실 세계의 존재를 표현하지 못한다.

나뭇잎은 산에서 바닷바람에 흔들리고 나무 사이로 드넓은 바다와 인근 섬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바다의 섬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만 하지 말고 아주 잘 보이는 곳인 산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먼 곳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산을 오르듯 성장하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성장이 눈앞에 보이는 데 더 노력해서 높은 곳으로 맞으러 가야 한다. 길게 출렁이는 파도가 섬에 도착할 때까지 성장에 대한 열정도 파도처럼 어느 쪽으로 흘러가다 멈출 것이다.

 

긴 하루

 

두미도의 봄은 이미 지났고 여름이 찾아왔다. 섬에 하얀 뭉게구름이 걸려 있다. 아침 해가 수평선 위로 떠 오르고 한층 더 빛나고 있다. 예전 섬사람들이 왕래하던 길을 우리는 옛길, 삶의 길이라 여기며 오늘도 찾아다니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산과 바다가 깨끗하고 아름답다.

긴 하루를 보내고 어느새 밤은 깊어졌다. 산과 바다가 섬을 어루만져준다. 두미도를 찾은 여행자들은 밝은 달빛과 별빛 아래 편히 누워 잠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 마시는 맥주 한잔보다 나은 것 아무것도 없다.

 

오랜만에 통영에 들렀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든, 언제쯤 들고 나는지에 대한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굳이 기억하려고도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함께 통영을 누볐던 기억만은 그날의 강렬한 햇볕에 박제된 체 뚜렷이 남아 있다.

통영 서호시장에서 시락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두미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아름다운 섬이라는 것과 머리 두() 자와 꼬리 미() 자를 이름으로 가진 섬이라는 정도의 무지함을 걸머지고 두미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사월 중순이었다. 남구 항의 첫인상은 평범했다. 차를 타고 일주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돌 때도 아주 특별한 인상은 없었다. 물론 청석의 앞바다나 덕리마을의 기암괴석들은 아름다웠지만 아주 특별한 풍광은 아니었다. 그 두미도에서 오월 초까지 일주일을 살아냈다.

 

두미도의 삶터는 북구 항에서 시작한다. 북구는 두미도의 대처다. 제법 반듯한 항구와 몇몇 신식으로 지어진 건물들 그리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항구에서부터 이어지는 비탈에 기대어 앉은 집터들은 섬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곧바로 토해내고 있었다.

북구항의 우측 모퉁이에서부터 옛길이 시작된다. 2015년쯤 완성된 일주도로가 있기 전에 모두가 걸음 하였던 그곳으로 길을 잡았다. 처음부터 오르막길이다. 여전히 잘 보존된 그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임도와 마주하였다. 그곳에서 실거리를 만났다. 지독한 가시 탓에 그들이 부르는 이름 옷까시나무, 그 실거리를 본 것이다. 섬사람들의 삶 속에서나, 불리는 이름에서나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이쁜 꽃을 품은 실거리, 그가 피워낸 노란 아름다움이 한창인 계절이다.

 

옛길의 흔적을 더듬어 첫 번째 다다른 곳이 고운마을이다. 마을 입구인 능선에서 보이는 삶터가 제법 부드럽다. 옹기종기 어우러져 섬사람들의 질긴 삶을 이어가는 몇 채의 집들이 그 너머 바다와 맞닿아 있었고, 그 유순한 삶터만큼이나 선한 고운마을의 사람들이 사는 그런 마을이었다.

옛길은 고운마을의 삶터를 휘휘 돌아 숲속으로 이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는 설풍마을, 겨우 두어 채의 집들이 비탈진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도 마을의 옛이야기 한 보따리나, 달고나 커피 한잔쯤은 넉넉히 내어주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고운마을과 설풍마을은 그 부드러운 삶터만큼이나 선한 옥빛의 바다에 안겨 산다. 이따금 바다를 지나는 어선들도 힐끔힐끔 마을을 바라볼 뿐, 그 흔한 뱃고동도 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그렇게 침묵의 안부를 확인하며 옥빛 바다의 삶을 지켜내고 있었다.

 

다시 숲을 따라 옛길을 찾아 나섰다. 덕리마을로 가는 길은 고단한 생활 길이다. 덕리마을이 돌절구 제작으로 열을 올리던 시절, 그 무거운 돌절구를 지고 북구를 오가던 길이다. 그 아릿한 흔적을 따라 덕리마을에 들었다. '! 빈터의 흔적이란!' 마치 선사시대의 유적처럼 녹슨 돌담들만이 덕리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들이 절묘하게 가슴을 휘저어 댔다. 이 비탈진 골짜기의 삶을 살아내던 그들은 누구였을까? 어떤 마음으로 겨우 정과 망치에 기대어 돌과 사투를 벌이며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그렇게 살아냈을까?

덕리마을의 바다 끝에는 돌구덕이라고 이름 붙여진 해안 절애가 산다. 덕리마을의 바다는 늘 으르렁대며 돌구덕에 덤벼들고, 돌 구덕은 그 넉넉함으로 우뚝 서 있을 뿐 말이 없다. 결국, 바다는 하얀 물꽃을 돌구덕에 내어주고, 덕리마을 사람들은 그 물꽃을 벗 삼아 골짜기의 고된 삶을 살았으리라.

덕리마을에서 다시 길을 나선다. 연이어지는 해안의 절애는 절벽 위에 길을 만들고, 무사하길 빌고 빌며 겨우 숲을 벗어나면 대판마을 가는 임도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청석마을까지 이어지는 임도는 옛길을 넓혀놓은 길이다.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은 다른 듯하나이다. 고운마을의 부드러운 삶터가 설풍마을에서 끝나듯, 대판마을의 비탈은 청석마을의 넓은 들의 시작이다.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의 앞바다에는 두미도의 꼬리인 동뫼섬이 산다. 호수같이 포근한 청석의 쪽빛 바다를 끌어안고, 동백꽃과 새 울음과 함께 이웃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청석에서 고갯길을 넘어가면 남구가 나온다. 옛 남구의 어린이들이 청석의 학교를 넘나들던 길,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의 어른들이 남구 항을 가기 위해 무던히도 넘던 길이 바로 이 길이다.

 

남구 항과 북구 항은 다른 듯 닮았다. 비탈에 기대어 사는 모습이 영락없이 닮은 듯하다가도, 조금은 더 외로운 듯이 바다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남구 항의 모습이 다르다. 남구는 두미도 제2의 도시다.

남구 항에서 당산을 지나면 다시 사동마을 가는 옛길로 접어든다. 사동마을은 남구와 북구 사이에 있는 마을로서 덕리마을과 더불어 폐촌이 된 마을이다. 임도 위에 있는 독가촌이 그 명맥을 이어가긴 하지만 옛터는 이미 수풀의 세상이다. 그렇게 임도 아래위로 한참을 더듬어 옛길을 따라가자면 저만큼에서 북구 항이 손짓한다.

그만큼에서 북구 항을 본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북구 항이 한결 정겹다. 이만큼의 삶을 두미도에서 살아냈다. 곧 다시 두미도에 들 것이다. 그땐 사동마을의 옛터도 더 돌아보고, 근처로만 지나온 순천마을의 터들도 찾아보고, 덕리마을의 삶터에 앉아 소주 한잔 기울여야겠다.

 

두미도에는 노란 실거리와 하얀 물꽃과 녹슨 돌담과 붉은 동백과 선한 사람들이 산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옛날부터 두미도에 사람이 살았다. 내가 지금 통영에서 바다누리 호를 타고 그 섬에 가는데 두미도를 모른다면 말이 되겠는가? 두미도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천천히 알아보자. 아름다운 섬도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다. 아름다운 섬에 있어도 그 아름다움을 찾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두미도 옛길

 

두미도 옛길을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다. 옛길이 험하다고 찾지 않으면 잊힌 길이 되는 것이다. 옛길을 찾는 데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우선 고지도와 현재 지도를 현장과 비교해 본다. 현지인들의 생생한 증언은 옛길을 찾는 데 최고의 도움이 된다.

두미도의 자연 앞에서는 아름다운 기운을 느끼게 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산의 힘을 보여주고 바다로 뻗어 들어간 갯바위는 바다를 넘치게 한다. 자연의 웅장함에 기가 꺾인 나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내가 더 나아갈 수 없으니 옛길을 찾을 수 있을까?

옛길을 찾다 보면 가시나무에 긁히고, 산속 벌레에 쏘이고, 뱀과 멧돼지 등 야생동물과 마주치기도 하며, 낭떠러지에 서게 되는 경우가 늘 있다. 하늘은 처음에 육체에 고통을 주지만 마음이 강인해지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을 키워준다. 그런 힘듦을 이겨내고 옛길을 하나씩 찾았을 때는 그보다 더한 즐거움과 내재적인 만족을 느끼게 된다.

 

살고 싶은 섬

 

바다의 고기잡이배 위에 바람이 불어오니 봄은 깊어가고 여름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저 멀리 수평선은 하늘과 맞닿고 하늘의 태양은 구름과 마주하고 있다. 부두의 갈매기는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은 나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오랫동안 홀로 서 있었다. 푸른 바다에 선혈을 남기며 수평선 아래로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물이 좋고 산이 좋아서 살고 싶은 섬, 두미도. 드넓은 바다가 만들어낸 파도의 출렁임을 고즈넉하게 바라보는 것도 좋다. 옛길의 흔적 따라 산속을 헤매도 즐겁다. 공자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지금 나는 물, 산과 더불어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바다가 바라보는 자리에 텐트를 치고 찬 바닥에 팔베개하고 눕는다. 바닷바람이 차가워도 즐거움이 그곳에 있다.

 

두미도 오락(頭尾島 五樂)

 

밤하늘에 뜬 별들을 우러러보고 밤바다의 고요한 속삭임을 듣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머위, 줄딸기, 산괴불주머니 등 야생화를 발견하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바닷바람이 숲의 나뭇가지를 흔들면 잠에서 깬 새들의 아침 인사를 듣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북구에서는 사랑도, 수우도, 삼천포가 바라다보이고 남구에서는 추도, 노대도, 욕지도를 바라보는 것이 네 번째 즐거움이다. 섬사람 특유의 강인함보다 내면에 숨은 온화한 마음을 느끼게 해 준 두미도 섬 주민을 만나는 것이 다섯 번째 즐거움이다.

 

쉼표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잊고 지내는 것들이 많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유는 돈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된다. 한껏 몸을 움직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지친 마음은 자연이 알아서 다독여준다.

초록빛의 두미도가 푸른빛의 바다를 어우르고 있다. 섬의 봄은 푸른 바다로 충분하고 짙은 녹음으로 충만하다. 오늘 난 이곳에서 쉼표를 찍는다.

 

이년 전 사월 어느 봄날, 오래 묵은 빚의 이자라도 갚는 심정으로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나들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는커녕 늘 마음으로는 죄인이다.

유성 나들목을 지나 자연스럽게 우회전을 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대전 IC에서 국도로 길을 잡았다. 왜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흑석리를 지나고 우명동을 지나면서 길은 논산 벌곡으로 접어든다.

"진산 가려고?“

"어떻게 허다 보닝께 이리루 왔구먼!“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자주 다니던 드라이브 코스였지만 꼭 우연만은 아니었다. 왠지 모를 끌림으로 차는 자꾸만 고향 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매년 봄날 하루쯤은 시간을 내어, 들로 혹은 산으로 쏘다니며 나물 사냥을 하곤 했었다. 국수딩이든 벌금자리든 냉이든 달래든 돌미나리든 돌나물이든 취나물이든 두릅순이든 다래순이든 때론 산부추나 도라지나, 우리에겐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루 종일 함께하며 웃고 떠들고 힘들다고 투정하다가, 저녁 무렵 나름대로 어렵게 얻은 노획물을 풀어놓고 소주 한잔을 기울이면 족할 일이었다.

 

덕곡리 도산리를 지나고, 행정리 두지리를 지나 묵산리에 접어든다. 접바위 지나 을음실, 그래 고향이다. 그렇게 이년 전 고향 땅을 걸음 하였다.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을음실, 깊은 내력은 알 수 없으나 뫼 산자가 셋이요, 새가 우는 마을이란 이름을 가진 것이 내 고향임은 변함이 없다.

백마가 끄는 수레가 개울을 건너는 날, 급히 몸을 피한 물비늘을 찬란하게 앉고 도는 햇살의 눈 부심이 사는 땅. 더위에 지친 각다귀들이 잠시 쉬는 밤, 소금밭처럼 하얀 별 무리를 이기겠다고 그 여린 빛을 뽐내던 반딧불이가 살던 땅. 그런 삶터가 을음실이다.

을음실은 그런 터였다. 진산 읍내에서 문우고개를 넘어서고 심방골을 지나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옥순이가 나온다. 신작로에서 보면 왼쪽의 산기슭이 옥순이다. 어린 기억으로 보면 그곳에서 고향의 삶터가 시작된다.

 

옥순이에는 구백 평쯤 되는 밭이 있었다. 어린 시절 동생을 업고 엄니 젖을 먹이러 다니던 나름 고단했던 기억, 어린 아들의 넉넉한 시험성적에 고구마 가득한 지게를 성큼성큼 지고 가시던 아버지의 첫 웃음 짓던 기억 그리고 늦은 오후 무렵 비탈밭에 지친 엄니가 풀린 다리를 이기지 못해 밭 아래로 구르셨던 전설 같은 기억들이 옥순이의 편린들이다.

옥순이를 지나면 쪽다리가 나온다. 미루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던 쪽다리는 마음에 터다. 어느 봄 늦게 집에 오던 날, 미루나무는 그 큰 몸에 하얀 옷을 걸치고 저 멀리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순간 뒷머리가 쭈삣섰다. 분명 귀신이었다. 허나 망설임도 잠시 이내 씩씩한 걸음을 내디뎠다. 쪽다리 양짓녘에 할아버님께서 누워 계심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쪽다리를 지나 멍미를 돌아서면 마을이 나왔다. 그래 을음실이다. 마을은 겨우 몇십 평쯤 되는 산 아래 여기저기에 집터를 꾸미고 살았다. 몇백 평쯤 되는 농토를 위해 누구의 삶터든 소박한 그런 마을이었다.

아랫말과 윗말을 지나면 옹달샘의 터 얼깅이가 나온다. 그곳에서부터 다시 농토가 시작된다. 바로 뒷짐메다. 제법 번번한 모양새를 갖춘 뒷짐메는 을음실의 곡창지대다. 그곳에 팔백 평쯤 되는 논이 있었다. 어린 나에겐 뒷짐메도 옥순이 만큼이나 멀고 고된 걸음으로만 기억된다.

 

도대체 세월은 무슨 마법을 부렸을까! 옥순이 비탈밭에서 다리가 풀려 밭 아래로 구르셨던 엄니의 아들은 반백의 늙은 군인이 되고, 그의 아들은 오늘 논산훈련소로 떠났다. 아무리 오래전 기억이라고 치도곤을 놓아도 엊그제의 일처럼 고향의 기억이 솟구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삶은 김과 짧음으로, 거침과 부드러움으로 그리고 찬란함과 시린 볕으로 서로 그렇게 순치하며 사는 것인가 보다.

 

그해 뒷짐메 끄트머리 골짜기인 채도골에 들었다. 입구에는 미나리농장이라고 쓰인 정갈한 표지판이 있었다. 평소 나물을 좋아하던 차여서 망설임의 시간도 없이 채도골로 들게 된 것이다. 얼마쯤을 올라갔을까, 아내가 소리친다.

"저게 무슨 꽃이에요?“

"뭔 꽃, 나는 못 봤는디!“

"차 좀 뒤로 빼봐요, 이쁜 꽃이 있었단 말이에요.“

"이쁜 꽃은 무슨" 기어를 넣고 천천히 후진하였다.

"저 꽃, 말이에요, 저 꽃 이름이 뭐예요?“

'! 얼레지!‘

그렇게 이년 전 고향 땅에서 오십 수년 만에 얼레지를 보았다. 늘 지리산에서만 강원도에서만 볼 줄 알았던 얼레지를 채도골에서 본 것이다.

작년에도 채도골에 걸음을 하였으나, 늦은 걸음을 탓하며 얼레지는 꽃을 보여주지 않았다. 올해는 이미 너무 늦은 줄 알면서도 자꾸만 고향 땅이 나를 당긴다. 아니 내 마음이 이미 줄달음을 치는 걸 거다. 그렇게 조만간 걸음 해야겠다. 늦은 얼레지 핑계 삼아 채도골에 들어 짙푸른 고향의 미나리 한 아름 안고 실컷 울어봐야겠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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